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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개성공단

“다 죽으려 해요,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개성 이임동 대표의 울분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다 죽으려 해요,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 이임동 ㈜개성 대표는 차분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으나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 우려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분노로, 분노는 허탈로 바뀐 듯했다.
“다 죽으려 해요,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이임동(54) ㈜개성 대표는 개성공단에서 임가공 생산과 ‘초코파이’ 납품을 했다. 북한에 초코파이 단맛을 퍼뜨린 주인공이다. 초코파이는 옛 소련에서 자본주의 상징이던 코카콜라에 비견됐다. 북한 근로자들은 간식으로 나온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중간상에 넘겼다. 북한 각지 장마당으로 한류(韓流)의 단맛이 펴져나갔다.
북한 당국이 2014년 근로자들이 그간 너무 많이 먹어 질렸다는 이유로 초코파이 제공을 막으면서 납품을 접었다. 자본주의 단맛이 퍼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평양은 북한산 빵을 간식으로 제공하라고도 요구했다. 기업이 구입해 제공한 북한산 빵은 식감이 거칠어 근로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상여금 구실을 하던 초코파이가 사라진 것도 불만이었다.
이 대표는 해군 함장으로 영해를 지키다 2006년 중령으로 전역하자마자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개성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가면서 10년을 살았다. 2010년 ㈜개성을 설립해 생필품을 제조했다. 2013년에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개성공단 위기 시 행위주체의 역할에 관한 연구-입주기업 위기 극복 활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이 남측 인원 전원 추방, 모든 자산 전면 동결을 통보한 2월 11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차분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으나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우려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분노로, 분노는 허탈로 바뀐 듯했다.
▼ 소식을 듣고 어땠나.
“암담하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서 가진 국가관, 가치관에 비춰 이 사태를 보면 비참할뿐더러 한심하기까지 하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측면 외에 안보적으로도 소중했다. 개성공단의 한국인은 전쟁을 막는 데 기여했다. 이제 평화가 사라지고 전쟁 위기가 상존할 것이다. 전쟁을 막을 담보가 사라졌다. 참담하다. 서울 불바다 운운하던 20여 년 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더욱이 미군이 북한 핵 시설,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길이 열렸다.”



“보상이 아니라 대출”

▼ 입주 기업들의 분위기는.
“침통하다. 다들 죽으려 한다. 괜찮은 곳도 있긴 하다. 신원에벤에셀이나 인디에프처럼 독자 브랜드를 가진 의류 기업은 사정이 낫다. 중국, 동남아에도 생산기지를 갖고 있어서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 기업은 다 어렵다. 북한에만 생산기지가 있는 업체와 임가공 공장은 다 죽는다. 생산을 못하면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OEM이라도 1차 밴드(직접 디자인해 생산)는 살길이 있다. 누구보다 베트남, 중국에서 사업이 안 돼 개성공단에 온 기업들은 더는 갈 데가 없다. 독자 프로모션을 하거나 1차 밴드인 곳은 10%가 안 된다. 자산을 동결해 설비를 빼올 수도 없다. 다 망했다.”
▼ 보상을 받지 않나. 
“정부 발표를 들은 기업들이 비웃는다.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보상이 아니다. 보험과 대출이다. 남북경제협력사업보험은 보상 내용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가입 안 한 기업이 태반이다. 금융 지원? 2013년 남북교류협력기금을 2% 금리로 대출받은 적이 있다. 1년 단위로 연장해주더니 지난해 상환하라고 연락이 왔더라. 상환 일자를 넘기고 90일 지나면 금리가 9%로 오른다.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는데 대출금을 어떻게 상환하나. 갈 데까지 갔다가 개성밖에 답이 없어 이곳에 온 기업이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해 빌린 돈을 갚겠나.” 



“이 상황에 그게 할 말인가”

“다 죽으려 해요,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이임동 ㈜개성 대표가 2013년 작성한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의 한 대목을 가리키고 있다. 조영철 기자

▼ 재가동될 것 같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기업이 개성공단에 들어가겠나. 배신의 경험은 무섭다. 정부를 믿고 들어간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어떻게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나. 개성은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폐쇄됐다. 정권이 바뀌면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정부가 보상을 약속해줘야 입주하겠다는 기업이 나올 것이다. 국가가 칼 들고 개성에 가라며 협박하는 방법도 있겠다.”
▼ 위험(risk)을 알고 들어간 것 아닌가.
“이 상황에서 그게 할 말인가.”
답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고약하다. 얄미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입 있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우리가 개성에 간 이유가 돈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개성에서 생산하면서 다들 사명감이 생겼다. 100억 원을 투자한 한 기업 대표는 사명감으로 일했다면서 후회 없다 말씀하더라.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다. 볼모 노릇하면서 전쟁도 막았다. 미군이 북한 핵 시설을 정밀 타격하면 서울은 어떻게 되나. 핵은 차치하더라도 수도권 전역을 사거리로 둔 장사정포 공격은 어떻게 막을 건가.”
▼ 입주 기업이 호황이었다.
“유명한 브랜드 옷은 다 개성으로 왔다. 백화점에서 팔리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거의 다 개성에서 만든 것이다.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수익을 많이 냈다. 그런데 그간 번 것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보게 됐다. 다시 못 일어나는 기업이 수두룩할 것이다.”
▼ 세계 각국에 강력한 대북 제재를 요구하면서 당사자인 우리가 북한을 계속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면 북한을 제재해야지, 왜 한국 중소기업을 제재하나. 북한 제재 효과는 별로 없고 한국이 보는 손해만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북한에 주는 임금이 1이라면 우리가 얻는 경제효과는 10이다. 중국만 신났다. 개성에 중국 기업이 들어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은 중국에 노동력을 송출하면 그만이다. 임금 수준도 단둥 같은 북-중 국경 쪽이 개성공단보다 높다.”



“우리 젊은이들은 안 죽나”

▼ 어떤 방식으로든 징치(懲治)해야 했다. 
“오늘 만난 어떤 분이 ‘이번 기회에 한 방 먹여야 한다’고 하더라.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과 싸울 뻔했다. 우리 젊은이들은 안 죽나.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어른답게 대처해야 했다.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전쟁 위기가 상존하는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워야 하나. 10년 간 개성에서 일하면서 통일 방식을 깨달았다. 교류, 협력이 통일로 가는 첩경이다. 정치로는 싸우더라도 경제로는 시너지를 내야 한다. 창(窓)이 하나도 없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전쟁 위기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 김정은이 원망스럽겠다.
“두말할 나위 있나. 모든 원인을 북한이 제공했다. 핵실험 안 하고, 미사일 안 쐈으면 이런 일 없었다. 체제를 지킨답시고 저러는 것 아닌가. 그런 북한을 제대로 관리 못한 우리 정부도 원망스럽다. 매뉴얼도 없는 것 같다. 정책이 조변석개한다. 경상도 말로 헷닥헷닥 바뀐다. 신뢰 프로세스니 드레스덴 선언이니 하는 것은 뭐였나. 북한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참담한 일을 일으켰다. 해군에서 전략·전술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전쟁하면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싶다. 정부에 신뢰가 안 간다.”    
▼ 개성이 그립겠다.
“거길 왜 가겠나. 뭐 좋은 일이 있다고….”


신동아 2016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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