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총선특집

권력을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22년 만남 통해 지켜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 허문명 |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권력을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1/3
  • ●‘민심의 발걸음 소리’에 예민한 ‘촉’ 지녀
  • ● 탈당 1주일 전 찾아온 안철수에게 “때 기다려라”
  • ● DJ 입각 제의…“경제팀 내가 꾸려야” 하자 ‘없던 일’로
  • ● 노무현 “당신을 쓰고 싶은데 너무 親美라 해서…”
  • ● “박 대통령, 정말 정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권력을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근혜 대통령 경제멘토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

1월 14일 오후 스마트폰에 문자메시지가 뜨는 순간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불과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이제 정치고 뭐고 신물이 난다”고 했는데 다시 정치를 한다니. 게다가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야당 선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나.

며칠 뒤(1월 19일)에 있을 그와의 점심 약속은 취소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연말에 새해 인사차 정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처음 출근했다”면서.



더민주당 첫 출근 날

권력을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3월 4일 서울 프리마호텔에서 열린 호남향우회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그 앞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2시간에 걸친 이날 대화는 그의 ‘돌발 행보’에 대한 배경 설명이 주를 이뤘다. 문재인 당시 더민주당 대표가 3일 동안 집을 찾아왔으며, 그의 진정성과 정성에 먼저 마음이 흔들린 부인이 “저렇게 진심 어린 얘길 하는데 웬만하면 받아주시면 어때요?”라고 했다는 말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 오래전부터 문재인 부부와 깊은 관계였다는 내용이 보도됐지만 “그건 낭설”이라고 했다.

이날 만남엔 가까운 지인 서너 명이 동석했는데 “야당을 최소한으로라도 살리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안철수 신당(국민의당)이 막 출범한 직후라 더민주당 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박영선 의원이 잔류냐 아니냐를 저울질 중이라는 얘기가 뉴스로 다뤄질 때였다. 김종인(이하 직함 생략)이 말했다.

“안철수가 탈당하기 일주일 전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민주당에 들어갈 때는 다 포용해서 대통령후보가 되겠다는 생각 아니었나.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신중하게 때를 기다려라’고 조언했다.”

당시 안철수 의원이 뭐라고 답했는지 물어봤다.

“그 사람은 본래 가타부타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다(웃음). 난 그의 행동이 너무 나쁘다고 본다. 오로지 자기가 대통령 나가는 것만 머릿속에 있다. 나중에 윤여준(전 환경부 장관)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안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간 뒤 ‘내가 민주당을 먹었습니다’ 했다는 거야. 근데 막상 들어가보니 이상하게 돌아가거든. 총선은 다가오지, 자기가 데려온 20여 명을 국회에 내보내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지, 그래서 자기 기반을 닦으려고 탈당한 거야.”

그의 말이 이어졌다.

“정치란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서 하면 안돼. 대의를 좇아야지. 자기가 야당을 분열시켜놓고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고.”



비상한 기억력

그는 야당이 뭉쳐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되짚어보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중단 이후 공개적으로 꺼낸 그의 ‘야당 통합’ 발언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더민주행(行)을 결정했을 때부터 머릿속에 있었던 것이다.

친노(親盧) 패권주의 청산 문제도 화제가 됐다. 그는 “그게(친노)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니다. 기준을 세워 정리해나갈 것이다. (그 사람들이) 똘똘 뭉쳐 저항하면 내가 그만두면 되는 거지. 하지만 별것 아니다. 그렇게 못할 거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를 지금껏 만나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조부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에 관한 것이다. 그는 부친이 일찍 타계해 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가인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청년 시절에 의병활동을 했고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학부를 나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정치활동도 했는데 민정당(1963년 가인이 옛 민주당 인사들 중심으로 만든 정당) 대표를 맡았다.

그는 이날도 조부가 자신의 지금 나이인 77세 때 창당해서 동분서주하던 얘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조부가 그때 그렇게 에너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1, 2년이라도 더 사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대목에선 어쩌면 자신도 비슷한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게 불어닥친 운명의 소용돌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20년 넘게 지켜본 김종인은 정치감각이 뼛속 깊이 각인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조부의 심부름을 하면서 당대 쟁쟁한 정치인들을 두루 만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자랐으니 평생 정치 현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청년 YS(김영삼)가 지역구를 달라고 쫓아다닌 얘기에서부터, 야당 통합 협상 때 집에서 조부가 좌장이 되어 3당 지도자들이 협상했지만 깨진 사연 등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김종인은 1940년생, 만 76세이지만 에너지가 넘친다. 매일 체육관에 나가 운동하며 관리한 덕분인지 언뜻 보면 60대 같다. 그 나이에 체구도 그렇게 건장하고 기억력도 그만큼 좋은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는 자유당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주요 역사적 사건과 정치 일정을 날짜까지 세밀하게 기억한다.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만남까지 날짜와 장소, 대화 내용을 적시하기에 한번은 의심이 가서 그가 언급한 날짜를 찾아봤는데 정확하게 맞았다.



‘대통령감 될 만한 사람’

김종인을 처음 만난 것은 정운찬 전 총리의 소개를 통해서다. 1994년 말 경제부 기자로 한국은행을 출입하던 어느 날 정운찬 당시 서울대 교수가 “대통령감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가보니 그가 앉아 있었다.

당시 그는 하는 일도, 소속된 곳도 없이 자유롭게 살던 야인(野人)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그만두고 1992년 14대 민자당(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지만 이듬해 9월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돼 1994년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 판결을 받았다.

밥집 구석진 자리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소탈한 성품이 첫 만남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때 기자는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한국 정치사 분석과 대안을 막힘없이 설파하는 그에게 많이 놀랐다. ‘대통령감’이라던 말이 허언(虛言)만은 아니었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그의 사무실(서울 종로구 부암동 대륙문제연구소)을 찾았다. 책상에는 늘 ‘이코노미스트’ ‘타임’ 등 외국 잡지와 신문,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야인으로 살면서도 이런저런 세상사에 대한 관심, 한국 경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는 “독일 경제학자 뢰프케가 ‘나라가 잘되려면 법관, 기자, 대학교수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했다”며 언론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당시  기자생활 4, 5년차이던 나를 통해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대학 동기동창들을 대거 불러내 그와 저녁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기업 샐러리맨, 박사과정 연구원, 영화감독 지망생 등 직업도 다양했는데 김종인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젊을 적 경험을 들려주면서 격의 없이 어울렸다. 함께 노래방에까지 간 것도 기억이 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그의 사무실이 붐비기 시작했다. 초유의 국난 앞에 선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 그에게서 해법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이가 많아졌다. 그해 김대중(DJ) 대통령이 당선되자 그를 경제부총리로 등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진보·개혁 성향의 경제학자들도 거들었다. 하지만 그는 입각하지 않았다. 훗날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재정경제부 장관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내게 최대한 자율성을 줘야 하며 따라서 경제팀도 내가 꾸려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입각 제의는) 당연히 없던 일이 됐다. 그 사람들이 아마 속으로 ‘한 자리 주면 고맙다고 하면서 낼름 받아야지…’ 했을 거다.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고(웃음).”


1/3
허문명 |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목록 닫기

권력을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