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나는 ‘수습’할 뿐 ‘역할’은 없다”

박 대통령 腹心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6-08-02 10: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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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은 당 대표 선출을 위한 8·9 전당대회를 치른다. 친박근혜계는 김무성 전 대표에게 줬던 당권을 되찾아오려고 8선의 서청원 의원을 차출하고자 한 듯하다. 이 과정에서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그의 선언문엔 비장감이 감돌았다.

    “당의 화합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한 제단에 다시 한 번 나를 바치고자 한다. 내가 죽어야 당이 산다면 골백번이라도 고쳐 죽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변했다는 관측도 있다.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총선 탈당파 7명이 복당했다. 7월 8일 새누리당 의원들의 청와대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유 의원에게 덕담을 건넸다.

    그러나 인사치레와 실리는 다르다. 당 대표라는 자리는 어마어마한 실리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 후반기 성공에, 차기 대선후보 선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청와대는 자기 사람을 앉히려 할지 모른다. 비박계는 물론 양보하지 않을 테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다시 혈전을 벌이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는 전언이 돈다.





    ‘막후 설계자’의 뜻?

    전당대회 출마를 검토하다가 관둔 일부 친박계 중진은 ‘청와대의 교통정리’를 암시했다. 홍문종 의원은 “청와대 쪽에서 내게 ‘당 대표 대신 최고위원에 출마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서청원 의원이 당 대표에 출마하는 쪽으로 정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경환 의원은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도 나의 불출마 의사를 미리 알았다. 청와대에 의사 전달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당대회 밑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 수석은 취임 후 여의도 정치권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뜨거운 감자인 ‘유승민 복당’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막후 설계자’인 김 수석의 뜻이 작용한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 수석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지금 여당의 전당대회를 지켜보는 거다. 뚜렷한 주자군(群)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여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청원 의원의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 출마가 막판에 무산됐다는 소문이 동시에 나올 무렵이었다. 다음은 김 수석과의 이어지는 대화다.



    “고민을 듣고는 있었다”

    ▼ 당내 친박계와 청와대가 서청원 의원에게 당권가도를 터주기 위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만일 그렇게 하고 있고 그게 가능하다면 다른 분들(이주영, 한선교, 이정현 등 친박계 주자들)이 안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그 일(교통정리)은 정무수석인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 이야기는 결국 당의 계파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증폭시킬 뿐이다.”

    ▼ 대표 출마 여부는 순전히 서 의원 본인이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란 뜻인가.


    “그렇다. 그 부분은 서 의원께서 8선 국회의원인데, 충분히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겠나.”

    ▼ 홍문종 의원은 청와대 쪽으로부터 ‘당 대표 대신 최고위원에 나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는데.

    “나와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 최경환 의원은 김 수석을 지목해 자신의 불출마 의사를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최 의원께선 두세 번쯤 내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출마할 생각이 없다. 정말 진심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알고 있었다. 최 의원께서 그런 고민 중이라는 걸 내가 듣고는 있었던 거다. 얼마 전 최 의원과 다른 의원들을 함께 만났을 때도 그런 고민을 이야기하더라.”

    김 수석은 6월 23일 최 의원과 홍문종·유기준·정우택·한선교 의원 등 친박계 중진이 서울 모처에서 회동하는 자리에 나갔다. 이 자리에서 전당대회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고 전해지지만 확인되진 않는다.

    물론 여권 일각의 해석에 따르면, 청와대 측이 이런 논의에 참여했다고 해도, 전당대회에 어느 정도 관여했다고 해도 꼭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청와대의 처지에선, 영 엉뚱한 사람이 당 대표가 돼 대통령이 망하게 되는 일만큼은 막고 싶을 것이고 이는 인지상정일 수 있다.

    ▼ 최 의원의 불출마 의지를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다른 참모들과 공유하지 않았나.

    “정무수석이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정도다. 대통령께서 누가 출마하고 안 하고에 관심을 보이거나 관여하실 상황이 아니다. 별도로 전달하거나 보고드릴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김 수석은 통화 중에 ‘청와대 비서의 처신’을 수차례 언급했다. 이에 대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여당이 돌아가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할 책무가 있다. 언론에 말을 전하지 못할 뿐이지 충분히 그런 일을 하고 있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갈등이 좀 덜 번지게…”

    김 수석 취임 1주일 만인 6월 16일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탈당파 7명의 복당이 전격 결정됐다. 여권 주변에선 ‘김재원의 첫 작품’이란 말이 나온다. 대통령의 신임이 돈독한 김 수석이 총대를 메고 건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당사자인 김 수석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 유승민 의원이 복당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나.

    “그런 보도를 봤는데, 사실 내가 역할을 한 건 아니다. 당의 혁신비대위에서 결정해버린 거다. 나는 수습을 하는 거지, 그전 단계에서 역할을 한 건 하나도 없다.”

    ▼ ‘수습’이라면 어떤?

    “탈당 의원들의 복당 문제로 많은 갈등이 있었지 않나. 그런 갈등이 그래도 좀 덜 번지게 하는 일을 한 거다. 당과 청와대가 잘 화합해나가야 하니…. 서로 반목하지 않게 만드는 일을 여러 가지 해야지(웃음).”

    ▼ 유승민 의원 복당 이후인 7월 8일 청와대 오찬에서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을 포함해 많은 참석자와 일일이 악수하며 덕담을 나눴는데, 그런 장면이 나오도록 정무수석실이 조율한 건 아닌가.


    “대통령과 당 소속 의원들 간 오찬의 시작과 끝 사이 모든 일을 맡는 건 정무수석 본연의 업무가 맞다. 하지만 나는 그냥 비서 아니냐. 비서가 무슨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그날의 모든 일은 다 대통령께서 결정하고 이행하시는 거다.”

    ▼ 청와대 오찬 전날 저녁,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 선배인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소주 회동’을 했다는데. 전당대회 얘기는 안 나왔나.

    “오래전에 내가 정 원내대표에게 ‘소주 한잔 사주세요’ 하고 날짜를 잡은 일정이었다. 둘이서 허리띠 풀어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정 원내대표는 ‘전당대회에선 완전하게 중립’이라고 하더라.”

    김 수석과 통화한 날, 비박계의 리더인 김무성 전 대표는 서울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지지자 1000여 명과 대규모 만찬 회동을 가졌다.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 결집을 방불케 하는 모임이었다. 김 수석은 김 전 대표와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 김무성 전 대표가 세(勢)를 과시하는 대규모 모임을 가졌다. 계파 갈등이 다시 촉발되지 않겠나.

    “청와대 비서로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그런 지위에 있지 않다고 본다.”

    ▼ 그래도 정무수석으로서….


    “정무수석은 나설 때와 안 나설 때가 있다. 이것저것 다 나서면 안 된다고 본다.”

    ▼ 청와대와 여당의 가교 노릇을 해야 하지만, 여권 전체의 결속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여당 화합은 당 내에서 구성원들이 할 일이다. 나는 당·청 관계를 화합시켜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과제를 여당에 잘 설명해 협조를 받아야 한다. 절실한 문제다. 법안이나 예산, 모든 걸 국회에서 다 결정한다. 당이 대통령의 국정과제와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 협조해준다면 국정 운영이 탄력을 받고 원활하게 된다. 당과 청와대가 서로 화합하고 돕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 당내 계파 갈등 문제에 정무수석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계파 갈등이 완화되고, 나아가 그런 말이 더 이상 안 나오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느 한쪽에 끼어들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한다면 그건 정무수석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는 것이다.”

    ▼ 청와대가 당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게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된다?


    “관여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계파 갈등이 좀 없어지도록 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지만, 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대신 민심을 살피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관리하는 일은 해야 한다.

    지금 영남권 신공항 결정 이후 갈라진 민심을 어떻게 추스를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남남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고 있다.”

    ▼ 여소야대, 3당 체제에서 야당과는 어떻게 대화하고 있나.

    “야당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국회에서 사실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야당과 소통하고 협조를 구하는 일도 정무수석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충분히 노력해야 하고, 실제로 하고 있다.”



    “분에 넘치는 소명의식 없다”

    ▼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라 특히 정무 보좌가 중요할 텐데.

    “정무비서로서 어쨌든 대통령께서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보좌하고자 한다. 대통령께서 생각하는 국정 방향과 국정철학을 잘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자 한다. 나갈 자리와 안 나갈 자리를 분명히 하면서 맡겨진 소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비서가 무슨 분에 넘치는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김 수석은 ‘청와대 비서는 입이 없다’는 금기(禁忌)를 깬다. 그가 정치권, 나아가 사회의 여러 이해당사자들과 솔직담백하고 투명하게 잘 소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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