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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북한

목숨 앗아간 죽음의 ‘속도전’

여명거리가 ‘비명거리’ 된 사연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목숨 앗아간 죽음의 ‘속도전’

  • ●초고층아파트 등 100여 棟 9개월에 건설
  • ●하루 3만 명 24시간 2교대로 공사 투입
  • ●부실 공사 우려… “절대 사지 마라”
목숨 앗아간 죽음의 ‘속도전’

여명거리 건설 현장. 노동신문

북한이 ‘여명거리’라고 부르며 평양의 신도심으로 건설하는 평양 대성동 용흥사거리. 5월 노동당 7차 대회 때 이곳을 방문한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뉴욕의 맨해튼을 연상케 한다면서 평양과 맨해튼을 합쳐 ‘평해튼(Pyonghatt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평양은 핵실험(1월 6일) 이후 유엔과 한미 제재가 발표된 직후인 3월 18일 여명거리 건설을 공표했다. 김정은은 “어떤 제재와 압력 속에서도 마음먹은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정치적 계기로 만들자”고 지시했다.



“올해 중에 일떠세우자”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서부터 영생탑이 있는 용흥사거리까지 3㎞ 구간에 초고층 ‘살림집’(아파트) 단지를 짓는다. 70층, 55층, 50층, 40층, 35층 아파트와 상업·공공시설 등 100여 동을 신축·보수한다.

여명거리는 노동당 창건 70주년(2015년 10월), 7차 당대회(2016년 5월) 치적용으로 건설한 ‘미래과학자거리’의 2배 규모다. 김정은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한국)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며 “올해 중에 반드시 일떠세우자(건설하자)”고 강조했다.

북한 당국은 ‘올해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라’는 김정은의 뜻에 따라 노동당 간부와 주민들에게 “7차 당대회 구호인 ‘만리마 창조속도’로 공사를 진행하라”고 방침을 하달했다.

노동신문은 7월 1일 “충정의 200

일 전투의 첫 한 달 동안 여명거리 건설장에서 세인을 놀라게 하는 기적적 성과들이 다발적, 연발적으로 일어났다”면서 “살림집 골조공사가 전체의 85%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여명거리 공사는 4월 3일 시작됐다. 착공 석 달 만에 30층, 40층 높이까지 골조를 세웠다. 한밤중에도 등을 밝히고 공사를 계속한다. 건설 현장에는 군·청년돌격대, 대학생 등 하루 3만여 명이 휴일 없이 24시간 2교대로 동원된다. ‘하루에 한 층을 건축’하라는 비상식적이고 과도한 목표가 하달됐다(한국 아파트의 경우 1개 층 건설에 7~10일 소요). 비정상적 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사고가 잇따른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내부에서 여명거리가 아니라 ‘비명거리’라는 조소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터파기 공사에 앞서 사전 예고도 없이 ‘2일 내 철거지역 전체 주민을 소개(疏開)하라’고 지시했다. 주민들이 짐을 급하게 옮기려고 창밖으로 이삿짐을 던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는데, 행인이 떨어지는 짐에 맞아 사망했다. 상당수의 군인과 주민이 중장비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낡은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죽었다. 4월에는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 중간 지점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60여 명이 매몰돼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김정은이 “여명거리 건물마다 TV 등 가전까지 모두 구비해주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해 일부 주민들은 “가전이 아니라 가구다” “70층까지 어떻게 걸어 올라갈지 한심하다”고 꼬집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난 탓에 전기가 끊기는 일이 잦은 것을 비꼰 것이다. “속도전으로 지은 살림집은 위험하니 절대로 사지 말라”는 말도 나돈다고 한다.   



 “70층 살림집 지어본 적 없다”

북한 당국은 여명거리 건설 비용과 관련해 큰돈을 거래하는 무역일꾼에게는 2만 달러, 해외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는 1인당 500달러를 납부하도록 강요했다. 러시아, 중국, 쿠웨이트 등 50여 국가에 6만 명의 북한 노동자가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파견 노동자를 담당하는 대외건설지도국이 상납금 및 건설물자 조달과 관련해 노동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대외건설지도국 간부가 소환·처벌받을 것이라는 협박성 지시까지 하달됐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해외의 북한 근로자들이 ‘힘들게 일해도 생활비마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며 “일부 당 간부들마저 ‘잠도 못 자며 힘들게 일한 노동자에게 대가도 제대로 못 주는데 과도한 추가 상납금까지 납부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지시다. 비정상적인 일들이 결국 체제 와해의 뇌관이 될 것’이라면서 암암리에 절망감을 토로한다”고 전했다.

북한의 대외 홍보용 잡지 ‘금수강산’ 7월호에 ‘여명거리 건설지휘부 일꾼 김진성’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다. 김진성은 “전대미문의 제재와 압살 책동이 극도에 달하던 때 건설을 발기할 줄 몰랐다”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70층짜리 살림집을 지어본 경험은 없다”고 언급했다.  

정부 소식통은 “여명거리 건설이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고 자재 수급도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한 속도로 진행된다”면서 “3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2014년 5월 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가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2014년 아파트 붕괴 사고 때는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인민보안부는 최근 인민보안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어쨌거나 북한 당국은 올해 내 완공 목표를 완수하고자 ‘만리마 속도’로 여명거리 공사를 진행할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착수한 평양 순안공항 재건축 공사가 조기 완공 지시에도 3차례(2013년 12월→2014년 4월→2014년 12월→2015년 4월)나 완공이 연기되자 마원춘 국방위원회(국방위원회는 최근 국무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설계국장에게 책임을 물어 계급을 강등했다. 2013년 미림승마장 건설 때는 공기(工期)를 맞추고자 “승마장 바닥에 아스팔트를 깔지 말라”는 김정은의 지시를 어긴 공사설계 책임자가 총살당했다는 후문이다.



‘북한 病’ 의 징후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초고층 아파트는 북한이 앓는 병의 징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다. 김정은은 모던(modern)한 나라가 되려면 건물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초고층 아파트는 북한 경제의 업적이 아니라 북한이 앓고 있는 병의 징후다. 또한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돈이 갈 곳이 없어 건설로 몰렸다. 신흥 자본가가 권력기관과 결탁해 아파트를 짓고 그 기관에 일부를 상납하고 나머지는 분양하는 독특한 형태다.” 



신동아 2016년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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