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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정윤회 파문’ 수습 후 朴 대통령 절대 신임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화

  •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우병우, ‘정윤회 파문’ 수습 후 朴 대통령 절대 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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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기춘-우병우 직통 라인 가동
  • ● ‘꼬리로 몸통 흔들기’로 탈출?
  • ● 배제된 김영한 민정수석, 항명→사퇴
우병우, ‘정윤회 파문’ 수습 후 朴 대통령 절대 신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정윤회 씨,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부터 시계방향)

“검사장을 지낸 김경수·최재경 변호사가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퇴진을 전제로 후임을 물색 중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여당 지휘봉을 잡은 8월 9일 이후 정가와 법조계 주변에서 나돈 말이다. 우병우 수석은 강남의 처가 땅을 넥슨코리아가 매입하는 데 간여했다는 등 온갖 논란에 휩싸여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비주류에게서도 퇴진 압박을 받았지만 우 수석은 “정무적 책임을 지거나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버텼다. 그러다 사정 라인의 총책임자인 그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1호 감찰대상’이 되는 지경에까지 몰렸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초대 곽상도 수석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연루 의혹이 제기되자 ‘인사검증 실패’ 책임을 지고 2013년 8월 물러났다. 임명 6개월 만이다. 그런 그가 대구에서 ‘진박(眞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부활했으니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여기에 해당한다.

후임 홍경식 수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연쇄 낙마 사태로 인해 2014년 6월 교체됐다. 임명된 지 10개월이 지나서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영한 수석은 지난해 1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의 여파로 자진 사퇴했다. 임명된 지 7개월밖에 안 됐을 때였다.



대타(代打) 부재론

‘박근혜 청와대’의 제4대 우병우 민정수석은 지난해 2월 임명됐다. 그는 본인과 관련된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최장수 민정수석이 됐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우 수석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면서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은 7월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에서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국가 안보를 위한 소명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설명했지만, 우 수석을 감싸기 위한 ‘중의법’이란 해석이 쏟아졌다.

박 대통령이 우 수석을 감싼 것은 제기된 의혹만으로 물러나게 할 수 없다는 소신에 따른 듯하다.  정윤회 문건 파문 당시 ‘문고리 권력’ 비서관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에게 적용한 잣대와 같다. 또한 우 수석 같은 ‘정무적 감각이 있는 사정 라인 관리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대타(代打) 부재’ 현실을 감안한 결과로 비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정권 말기에는 대통령과 권력 주변을 겨냥한 공세가 밀려온다. 지금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비롯한 박 대통령 핵심 측근들에 대한 의혹 폭로가 봇물을 이룬다. 정확한 ‘팩트’를 파악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옴짝달싹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에 레임덕에 빠져들게 된다. 더구나 권력 말기엔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같은 사정기관이 차기 권력으로 눈길을 돌리는 현상도 생긴다.

따라서 권력자 처지에선 이를 통제하고 제압할 든든한 호위무사가 필요하다. 특히 사정기관들을 묶어두려면 민정수석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저 시스템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누가 그 일을 맡느냐가 핵심이다. 여기엔 정무적 능력이 필수적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그 적임자로 우병우 수석을 염두에 뒀고, 같은 맥락에서 보호막을 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 수석은 어떻게 박 대통령으로부터 정무적 능력을 인정받았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로 돌아가봐야 한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28일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정윤회 씨가 청와대에 근무 중인 대통령 측근 3인방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 개입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정씨가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해임을 논의했다는 내용의 청와대 문건이 근거로 제시됐다.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 농단’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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