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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평택기지 이전 임박

민주당의 사드 반대는 자가당착

  • 이정훈 기획위원 | hoon@donga,com

민주당의 사드 반대는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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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땐 무용지물인 핫라인

민주당의 사드 반대는 자가당착

1월 5일 송영길 등 민주당 의원들이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기념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 대통령이 대중관계 개선에 주력한 것은 최순실 씨의 영향으로 보인다. ‘문화융성’을 박근혜 정부 국정기조로 내세우게 한 최씨는 중국에 대한 한류 수출을 가속화하고 떡고물을 챙기려 한 듯하다. 여기에 중국에 공장을 세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중국시장을 키우고자 바람을 잡자 박 대통령이 전승절 참가를 고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은 5개월 뒤인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박 대통령은 매일 중국과의 핫라인을 연결했으나 시 주석은 끝내 받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당황했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현실을 깨달은 박 대통령은 미국을 필두로 유엔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착수하자 북한의 돈줄인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고 1월 13일 사드 배치 검토를 발표했다. 중국을 버리고 미국 품으로 날아든 것이다.

한국과 미국 측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사드 3무론이 와해됐다. 그러자 성주 주민들은 물론 중국이 발끈했다. 야당은 사드 배치에 대해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복잡한 사드 정국이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는 옳은 것인가. 박 대통령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중국의 생각을 오판하는 실수를 범한 바 있으니, 이들의 반대 역시 그러한 점이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 들어 한미동맹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미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느냐”라는 말을 회자시킨 노무현 정권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기지를 경기 평택으로 옮기는 중대한 합의를 했다. 그때 노무현 정부가 내건 이전 명분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이 주둔하는 것은 꼴 보기 싫다’였다. 이 속 시원한 결정 뒤에 돈 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안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 이전은 1987년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처음 내걸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스스로 이 계획을 포기했는데, 이유는 비용 때문이었다.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기지는 이전을 요구한 측에서 이전과 건설 비용을 대도록 돼 있다. 용산기지 이전에는 9조 원이 들 것으로 판단됐다. 그리고 서울에 미군기지가 있으면 오히려 북한이 서울을 공격하기 어렵다고 봤기에, 노태우 정부는 1993년 6월 정식으로 용산기지 이전 보류를 미국에 통보했다.

노무현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대미(對美) 자주를 내세운 이들은 미군으로부터 돌려받은 용산 땅을 분양하면 이전과 건설 비용을 건질 수 있다고 보고, 의정부와 동두천 미군기지 이전도 함께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국회에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비준안을 제출해 동의를 받아냈다(2004년 12월).

경기 평택에는 K-6 또는 험프리스로 불리는 미군기지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그곳을 여의도 면적의 5배(1467만7000㎡)로 확대해 주한미군을 한데 모으는 공사를 시작했다. 현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뚫고 밀어붙인 것이다. 그때 미국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고 한다. 용산기지는 대일항쟁기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라 기지 운용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對美 자주 국방’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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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8일 동두천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 2사단 2-8기병대의 부대기 수거식이 열렸다. 이 부대는 제일 먼저 평택기지로 이전했다. 수거식은 미군이 주둔지 이동 전 전통적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동아일보 장승윤 기자]

냉전기에 세계는 핵전쟁을 우려했고 미군은 핵전쟁에 견딜 수 있는 벙커를 만들었다. 용산기지라면 가까이 있는 남산에 벙커를 만들면 좋을 텐데, 남산은 서울시민의 산이 된 지 오래였다. 이 때문에 한국 육군이 북파공작원(HID) 훈련소 등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남 끝자락 청계산에 벙커를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 건설 비용은 미국이 댔다. 키리졸브나 을지연습 기간에 청계산을 오른 등산객들은 산 여러 곳에서 접시 안테나를 펴놓은 미군 트럭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청계산 벙커에서 미군이 실전을 가상한 작전을 연습하고 있다는 의미다. 접시안테나는 통신위성 등과 연결해야 해서 벙커 밖에 배치한다. 그 시기 한국군은 관악산에 벙커를 만들어 유사시 서울에 있던 주요 기관과 3군 본부 등이 들어가게 했다.

이후 서울은 급속히 팽창했다. 그 팽창이 강남지역에 집중되다 보니 용산기지에서 청계산 벙커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만약 한강 다리가 폭격으로 끊어지기라도 하면 미군은 청계산 벙커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노무현 정부가 한국 돈으로 용산기지 이전을 제기하니 미국은 ‘얼씨구’나 하고 바로 받았다. 다만 한미동맹을 상징해 한미연합사는 용산에 두고 주한미군과 8군사령부, 그리고 전투부대인 2사단만 옮기기로 했다.

내친김에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도 밀어붙였다. 그때까지 주한미군은 여러 곳에 산개(散開)해 있었다. 즉 현지 상황에 맞게 배치됐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 위기에만 대응하도록 특화돼 있다는 의미다. 이를 한곳으로 모으면 특정 지역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니 모든 위기에 달려가 상대하는 ‘신속대응군’이 될 수 있다.

주둔 지역 방어가 아니라 아주 넓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위기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는 미군기지를 서울 밖으로 밀어낼 생각에 이를 수용했다.

주한미군의 핵심인 2사단은 두 개 전투여단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한 개 여단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이라크전 수행을 위해 바로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우리는 귀중한 전투부대 하나를 잃게 된 것이다.

사단은 통상 3개 여단(연대)으로 편성된다. 과거 한국군은 모 군단 소속 기갑여단을 작전 배속시켜 미 2사단이 사단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미 2사단 예하가 1개 여단으로 줄어들자, 한국군은 기갑여단 2개를 배속시켜 미 2사단을 한미연합사단으로 만들었다. 이는 어떻게든 제대로 작전할 수 있는 미군 사단을 만들어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한국의 강력한 의사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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