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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고단한 백성들’의 대변자

국선변호인의 세계

  • 정혜진 |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itsmehyejin@hanmail.net

‘외롭고 고단한 백성들’의 대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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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25~28개 사건 배당

‘외롭고 고단한 백성들’의  대변자

피고인과 상담하는 필자. [사진제공·정혜진]

드라마 속 서 변호사와 현실의 국선전담변호사가 다른 또 한 가지는 서 변호사는 박정우 사건에 전적으로 매달리지만, 현실에선 그럴 수 없다는 점이다. 법원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는 한 달에 25~28건가량의 사건을 새로 받는다. 한 사건에 피고인이 2명 이상인 경우도 있으니 한 달에 최소 25명, 많게는 30명 이상의 피고인을 새로 만나 사건을 검토하고 얘기를 들어야 한다. 새로 받는 사건만 있는 게 아니라 기존에 받은 사건 중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도 수십 건 들고 있는데, 그 사건들에 대해서도 증거 신청하고,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면 피고인을 다시 만나서 의논해야 한다. 그러니 한 사건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 그 외의 다른 사건 변론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건을 맡아 변호하다보면 드라마 속 박정우 사건처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건이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돼 있으니 그 사건과 다른 사건을 똑같은 강도로 열심히 할 순 없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대충 한 다른 사건의 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이 성의가 없다는 둥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국선변호인이 항상 성의 없는 변호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떤 피고인에겐 정말 열심히 해서 무죄를 받아준, 자기 일처럼 온몸을 내던진 그 국선변호인이 다른 어떤 피고인에겐 한두 장짜리 부실한 변론요지서만 내고 사건을 끝내는 성의 없는 변호인일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늘 두려움이 있다. “이건 간단한 사건이야,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하지만 증거가 확실하잖아”라고 판단해 대충 변론한 사건인데, 진실이 그 반대에 있는 경우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말이다.

실제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위험한 물건으로 폭력을 행사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피고인이었는데, 그 사건에 적용된 법률 조항엔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었다. 피고인은 집행유예 결격자라 유죄로 인정되면 실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증거를 보니 유죄가 확실한 것 같아 첫 상담 자리에서 “부인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자백하고 반성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형(刑)이라도 좀 적게 받자”고 했는데, 피고인은 화를 내며 나가 사선변호인을 선임했다. 수개월간 증거조사를 한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억이 선하다. 그 피고인이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능력이 되고 그 변호사가 열심히 했으니 망정이지 내가 그 변론을 맡았다면 억울한 옥살이를 시킬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그 피고인에겐 내가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국선변호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일명 ‘장발장법’으로 불리던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중 상습절도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변호사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내가 맡은 국선 사건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해 최종적으로 위헌 결정을 받은 사건이었다. 언론에선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변호사가 국선전담변호사라는 사실을 내세워 ‘10초 변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성의한 국선변호인은 옛말이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앞서 얘기한 그 피고인이 언론 보도에 나온 국선변호인이 자기 사건을 그렇게 성의 없이 대하던 그 변호사인 걸 알면 뭐라고 할까. ‘대충 해도 되는 사건이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피고인을 떠올려보면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저절로 자세가 고쳐지곤 한다.





기자와 법조인

나는 대학 졸업 후 지방 일간지에서 15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출범한 2010년 로스쿨에 입학했다.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된 사람 중엔 나이가 많고 과거에 다른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꽤 많은데, 나도 그중 한 명인 셈이다. 종종 “왜 법조인으로 변신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사실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었던 건 아니다. 종이신문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나이 들어서도 안정되게 직업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로스쿨 제도가 생긴다고 하니 큰 고민 없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한 것이다. 어찌 보면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해야 하겠다.

법조인이 되고 보니 기자와 법조인은 ‘팩트(사실)’를 좇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기자가 좇는 사실과 법조인이 밝히려고 애쓰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다르긴 했다. 예컨대 사실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가 달랐다. 기자에게 사실은 ‘찾아내야’ 하는 것인 반면 법조인에게 사실은 법적 가치와 논리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사실을 다루는 시간의 차이도 극과 극이다. 기자는 사실을 손에 넣은 후 가능한 한 빨리 알려야 하므로 때론 분초를 다투며 사실에 접근하는 반면, 법조인은 기본적 사실이 충분히 알려진 후 법적 책임을 따지는 뒷수습 과정에서 사실을 정립한다. 탐구하는 사실의 종류도 다르다. 기자는 사회적 파장이 큰 일의 사실에 관심을 두지만, 법조인은 개인의 사적인 사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 차이점이 있지만, 기자로서 팩트를 탐구하던 습관이 변호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점에서도 나는 시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변호사 업무 중에서도 국선전담변호사를 하게 된 건 공익적인 일을 한다는 ‘고매한’ 가치도 물론 마음에 들었지만 ‘영업에 자신이 없어서’라는 현실적 이유도 컸다. 국선전담변호사를 해보니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 외에도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된 나 같은 사람에게 국선변호인 업무는 매우 잘 맞는 일이어서 더 다행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바로 변호사가 된 엘리트보다 15년간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만나는 피고인 중 상당수는 합리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고, 억지 주장을 늘어놓으며,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다. 교육 수준이 현저히 낮고(문맹인 사람도 여럿 만났다), 어려울 때 부탁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없고, 그렇게 경제적·사회적 불안이 계속되다보니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분노 조절이 잘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선전담변호사에게 애환을 얘기해보라면 소통이 힘든 사람을 대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으로서 느끼는 그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국선전담변호사가 갖는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니라면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국선전담변호사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느 대선배 국선전담변호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외로움과 고단함의 밑바닥에 떨어진 백성들’의 변호인이다. 






신동아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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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itsmehye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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