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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 사죄 요구한 강성 친노

백원우 前 국회의원

  • 김경국 국제신문 기자

이명박에 사죄 요구한 강성 친노

이명박에 사죄 요구한 강성 친노

출생 | 1966년 서울
학력 | 동국대부속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경력 |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 노무현 후보비서실 정무비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행정관, 17·18대 국회의원
저서 | ‘노무현 부치지 못한 편지’(공저·2009) 외

“이명박 사과해.” 백원우 전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 사건이다. 2009년 5월 29일 경복궁에서 진행된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자 “여기가 어디라고…”라며 고함을 지르고 뛰어나가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1심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후 “그렇게 하는 백원우 의원을 껴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는데…”라는 말로 위로했다.

친노 인사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백 전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의 연결고리도 노 전 대통령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한 ‘정치적 동업자’ 그룹에 속한다. 백 전 의원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85학번 운동권 출신이다. 1986년과 1990년 두 차례에 걸쳐 시국사범으로 1년 4개월간 복역했다. 그후 잠깐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인생의 첫 멘토가 된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만나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그때 제 의원의 가훈에서 따온 ‘가짐 없는 큰 자유’는 지금도 백 전 의원의 생활신조다.

1996년 그는 대학 선배인 안희정 현 충남지사의 소개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줄곧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이 돈이 없어 ‘장수천’ 사업을 할 때 물장사도 같이 했고, 라디오 방송을 할 때는 작가 활동도 했다.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으로 후일 ‘노풍’의 진원지가 된 ‘노사모’ 탄생에도 일조했고,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인터넷 팀장으로 ‘노하우’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실 행정관이던 그가 2004년 총선에서 경기도 시흥갑에 출마해 덜컥 당선, 화제가 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탄돌이’로 분류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20대 총선 당시 백 전 의원의 유세를 지원하면서 “우리 백원우 후보, 노무현의 동지고, 저 문재인과도 아주 오랜 동지입니다”라고 힘을 실어줬다. 2012년 대선 때도 문재인 캠프에서 정무특보를 맡아 힘을 보탰다.




신동아 2017년 6월 호

김경국 국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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