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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홍욱희의 새천년 세상읽기

국가를 바로 세우는 시스템 연구를 아십니까?

  •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환경학박사

국가를 바로 세우는 시스템 연구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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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하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른 채 무심히 사용하는 단어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최근까지도 ‘담론’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그렇지만 IMF 위기를 맞으면서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새로운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식의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그 의미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그 뜻을 유추해서 별불편 없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여럿 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과학자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스템(system)’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엉망이라느니 서울시의 지하철 시스템이 어떻다느니, 우리 나라 정치시스템은 구제불능이라느니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사람들이 갖는 인상은 대체로 어떤 것일까? 어쩌면 시스템이란 단어가 붙는 집단이나 조직은 하나같이 규모가 대단히 크고, 그 내부가 복잡해서 아무도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그런 괴물 같은 존재로 쉽게 인식해버리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시스템이란 용어가 이처럼 일반 대중에게만 ‘잡힐 듯하면서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모호한 단어는 아닐 것이다. 필경 전문인 중에서도 과학의 여러 분과 중에서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시스템학(systemology 또는 system sciences)’이 있고, 또 시스템의 원리와 속성을 밝힌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이 20세기 과학의 중요한 성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벽두에 왜 뜬금없이 시스템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연구 분야의 하나가 바로 시스템학이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 시스템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없이는, 그리고 사회 지도층은 물론 일반 대중까지 시스템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없이는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필자의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시스템 이론을 우리 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 중국은 왜 무서운 나라인가 ]

1999년 현재 중국의 인구는 12억5000만명으로 세계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또 국토는 남한 면적의 100배에 이를 정도로 광대하다. 90년대에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줄곧 10%대를 유지해왔으며, IMF 위기로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도 중국은 별로 영향받지 않았다.

중국이 급격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이행하면서 사회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서구의 퇴폐문화가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1990년 소련이 지상에서 사라진 이후 중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발전 속도가 지속된다면 중국의 경제력은 서기 2020년이면 일본을 능가할 것이며, 2050년에 이르면 미국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우리의 이웃인 중국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견해를 요약한 것이다. 현시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가 아직은 국민소득 면에서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것이 사실이지만, 미래를 따져본다면 중국은 그야말로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호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한다면 우리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는 아닐지 적이 염려된다.

따라서 이런 중국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약 중국의 엄청난 인구라든지 지속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 등의 가시적인 현상들만 보고 21세기 중국의 발전 가능성을 쉽게 짐작해버린다면, 그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작 중국의 발전 잠재력은 전혀 다른 곳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매년 개최하는 전인대 회의와 병행해서 중앙정부 지도자들과 각 성(省)의 지도자들이 전원 참석하는 인구·자원·환경 회의를 개최하는 나라다. 전인대 회의가 일종의 정치행사라면 인구·자원·환경 회의는 국가운영 전략을 수립하는 실무회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로 친다면 매년 한 번씩 대통령과 총리는 물론 각부 장관과 지방 16개 시도의 지사들이 전원 참석하는 국가발전전략회의를 여는 셈이다.

여기서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임지로 돌아간 성장(省長)들은 성 단위 회의를 주재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얻어진 결론에 의거해서 다시 시(市)-진(鎭)-향(鄕)-촌(村) 단위까지 일련의 회의가 열린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최고 발전전략이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의 향촌까지 구석구석 전파되면서 범국가적인 지역발전 계획으로 성안되는 것이다(이런 시스템을 우리의 반상회 조직에 비교하면 정말 곤란하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토록 치밀한 국가관리 시스템으로 과연 무엇을 성취했을까?

중국은 70년대부터 범국가적으로 ‘계획생육(計劃生育)’이라는 인구관리 정책을 엄격히 실시해왔는데, 그 첫 목표는 금세기 말까지 인구를 13억명 이내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목표를 달성해 세기말 현재 중국의 인구는 12억600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21세기의 인구 증가 전망에 대해서도 서구 전문가들의 우려와는 달리 중국측 전략가들은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식량증산 속도에 맞춰 인구증가 속도를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식량 생산이나 자연환경 보전, 국민 생활의 질 향상 등의 부문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원래의 관리목표를 달성해나가는 데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인구증가 억제 성공, 착실한 경제성장, 지속적인 개방정책 추구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은 21세기의 관리목표 달성을 위해서 착실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동안 국가 재정능력 때문에 비교적 등한히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보전을 위해서 21세기부터는 환경보호 지출을 GDP의 5∼10%까지 끌어올리고자 1000여 개 항목을 정해서 185억 달러라는 거액을 책정하고 있다. 또 범국가적인 교육개혁을 위해서 26개 실천 목표를 수립했는데, 한 가지 예로 현재 7%대에 머물고 있는 대학진학률을 서기 2030년에는 30∼40%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런 중국의 국가관리 시스템은 얼핏 60~70년대 우리 나라의 개발독재식 국가관리 시스템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오해하지 말라. 현재 중국의 국가관리 시스템은 군사독재의 산물이 아니라 그 동안 중국이 치밀하게 연구해왔던 시스템 연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행 국가관리 시스템을 모든 것을 계획에 기초하는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시스템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우리는 중국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12억이 넘는 인구를 거느린 나라가 사회주의의 빗장을 열어 젖힌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칠 줄 모르는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면, 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일치 단결해서 다음 세기까지 착실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국가 백년대계’를 수립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중국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이자 배워야 할 점이라고 하겠다(중국을 러시아와 비교해 보라).

[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

역사적으로 과학에서 연구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체론, 다른 하나는 부분론이다.

전체론이란 유일하게 실재하는 존재, 즉 사물은 전체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체는 그 구성 부분들을 초월하는 총체이며, 부분은 단지 전체를 위해, 또는 그 전체로 인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뿐이다. 전체는 각 부분들의 속성에 환원될 수 없는 특유의 성질을 지니는데, 이런 성질은 오직 전체만이 가질 수 있으며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게 될 때에 비로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다.

예컨대 시계는 무수히 많은 나사와 톱니로 이뤄진 부품들의 집합이지만, 우리가 그 부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고 해도 그것들에서 나중에 만들어지는 시계의 속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체론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체론적인 과학사상은 16, 17세기까지 오랜 세월을 풍미했는데, 그것은 이런 전체론적 관점이 당시 사회현실과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즉 노예제도에 기초했던 왕권사회에서는 통치자가 곧 국가라는 신념이 강했는데, 전체론적인 입장이 곧 부분으로서의 노예나 국민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관점을 대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세 이후 왕권과 신권이 약해지고 시민권이 점차 강화되면서 과학계에 부분론이 등장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근대 과학은 부분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부분론이란 전체 속에 포함된 각 부분들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그 부분을 탐구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과학사상이다. 이런 부분론에 의하면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은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며, 전체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성질을 집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부분론자들은 부분에 대한 연구만으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분론에 의하면, 시계는 중요한 운동 부분인 진자와 그 진자의 힘으로 움직이는 톱니들을 세밀히 검토함으로써 그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진자와 톱니만으로는 시계를 이해하기 곤란하다면 부분론의 일환인 기계론이 시계의 기능을 충분히 증명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시계는 정교한 기계장치에 불과하고, 그 기계장치란 바로 부분론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계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체론과 부분론 중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체론과 부분론은 사물을 탐구하는 관점이 다를 뿐이지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다같이 일장일단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세기 들어서 한참이 지나기까지 과학은 거의 전적으로 부분론의 견해를 고수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현대 과학의 찬란한 발전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론적인 관점이 지나치게 득세한 나머지 그 부작용이 나타나게 됐는데, 오늘날 대학의 학과나 병원의 진료과목이 지나치게 세분되는 현상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부분론을 고수하다 보면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20~30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전체론과 부분론의 한계를 직시하게 됐다. 그래서 그 양자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론을 찾았는데, 그 결과 나타난 과학사상이 바로 시스템론이었다. 시스템론은 전체와 그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 모두 실재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전체는 각 부분의 단순한 집합체나 각 부분을 초월하는 추상적 총체가 아니며, 상호 연관을 갖는 각 부분이 구성된 통일체라는 것이다.

[ 우리 주변의 시스템들 ]

시스템으로서의 전체는 각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갖는데, 이런 성질은 전체를 구성하는 순간 홀연히 나타난다. 따라서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의 성질과 변화 뿐만 아니라 전체 자체가 지니는 성질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부분은 전체의 틀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또 전체는 부분을 자체의 존재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굳이 시계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시스템론에서는 진자나 바퀴의 운동을 규명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시계의 속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진자와 나사와 바퀴를 갖지 않는 시계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시계가 시계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진자와 바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런 부분들이 갖지 못하는 시계 고유의 성질, 즉 시간을 나타내는 속성 때문인 바, 그것은 부분론에 의거해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시계 고유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고장난 시계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시계 속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분이 전체에 기여하는 바에 대한 검토도 전체에 대한 검토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시스템론의 견해이다.

과학사에서 볼 때 시스템론과 시스템이라는 두 용어는 1930년대부터 사용됐다. 부분론과 전체론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사상으로 시스템론이 나타났고, 이런 시스템론에 입각해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실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시스템(system)이란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이란 상호 작용하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통합된 전체를 의미한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어떤 시스템들이 있을까?

먼저,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을 살펴보자. 가족의 구성원에는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때로는 조부모, 기타 일가친척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구성원 사이에는 분명히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부모는 부모 나름의 역할이 있고, 자식은 자식 나름의 책임이 있으며, 또 부모 자식 간에는 명백히 일정한 위계질서가 성립한다. 따라서 가족은 하나의 훌륭한 시스템이며, 가족관계는 시스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학교에도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고 그 구성원 사이에서 많은 상호작용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학교 시스템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회사나 정부도 그 각각이 시스템이며 군대나 경찰, 국제기구도 당연히 시스템에 해당된다. 각종 조합이나 시민단체, 동창회나 향우회 모임 등도 조직의 형태를 지니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없을 수 없으므로 당연히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체계와 단체는 시스템 연구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스템이 어디 그 뿐이겠는가? 이제 시스템 이론이 처음 탄생한 당시로 되돌아가서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 시스템의 두 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

기술 발전에 있어서 1,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20세기 초엽은 정보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개인용 컴퓨터와 인공위성을 매개로 한 범지구적 네트워크에 힘입어 그야말로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런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정보통신의 기본 원리나 기본 기술은 대부분 한 세기 전에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통신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유선으로 전달되던 전화나 전보는 무선전화와 무선전보로 대치됐고, 라디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텔레비전 이론이 탄생했으며, 그 결과 대서양을 넘나드는 무선통신의 양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1940년대에 들어서자 무선통신은 한층 빠른 통신 속도와 신호 전달의 정확성이 요구됐는데, 이런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가 전개되는 과정에 새로운 정보 이론들이 확립됐다.

그런가 하면 2차 세계대전 때 유도탄의 탄도 계산을 위해서 처음 만들어졌던 전자계산기가 단순히 계산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정보처리를 위한 기계로 발전하면서 숫자계산을 논리연산으로 대체시키는 새로운 논리체계가 필요해졌다. 한편, 양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수많은 신기술이 개발됐는데, 그중에서도 잠수함에서 적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소나(Sonar) 기술과 적 항공기를 추적하는 레이더 기술은 놀랄 만큼 발달했다. 그런데 이런 추적기술들 역시 생성되는 방대한 양의 신호를 처리하기 위해서 새로운 정보이론이 필요했다.

무선통신 기술과 전자계산기, 전파추적 기술들에서 요구됐던 새로운 정보이론이란 전선과 트랜지스터 속을 오가는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을 원활히 유통시키는 데에 필요한, 말하자면 정보의 교통정리를 위한 이론들이다. 쉽게 설명한다면 과거에는 전선 속을 흐르는 정보의 양이 지극히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하드웨어의 발달로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자 마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수가 증가하면서 교통통제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진 것처럼, 정보처리용 소프트웨어가 절대적으로 요구됐던 것이다.

이처럼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그 속을 흐르는 정보라는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에 못지않게 중요시되는 그런 실체를 가리켜 전자공학자들은 시스템이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전자계산기를 전산기 시스템이라고 하고, 시내전화망을 지역전화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이런 복잡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되는 존재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이렇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집합체로 본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훨씬 다양한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회사나 정부, 학교나 조합과 같은 인간관계가 주를 이루는 조직들뿐만 아니라 지하철, 철도, 버스 등의 교통 서비스, 은행의 금융전산망,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우편배달 서비스, 물류 등 정보나 상품의 이동과 배분이 주를 이루는 조직들도 시스템에 포함되는 것이다. 심지어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체인음식점 등도 네트워크화한 시스템이고, 가정에 설치한 방범설비도 보안시스템이며, 정부가 연구개발의 진작을 위해서 수립한 계획도 연구개발 시스템이다. 이처럼 시스템은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우리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현대인은 이런 시스템이 없이는 한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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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환경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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