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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서울 강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하루

  • 곽희자 자유기고가

서울 강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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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앞두고 강남의 유명학원들은 대대적으로 예비중학생 학부모를 위한 설명회를 개최한다. 설명회장에 오는 어머니들은 주로 첫아이를 중학교에 보내는 초보들이다. 이미 첫아이나 둘째 아이를 진학시켜본 어머니들은 주변 학원에 대해 훤히 알기 때문에 굳이 설명회장을 찾을 필요가 없다. 나도 풋내기 어머니로 드디어 J학원 학부모 설명회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학원 관계자는 2000년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의 입시 경향을 전망하고, 자기 학원의 교육방법도 홍보한다. 그런데 학원은 한결같이 아무리 무시험으로 대학을 간다 하고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게 대학 문이 넓어진다 해도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좋은 대학 가게 돼 있으니 지금과 같은(성적 올리기 중심의) 공부방법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서울대 등 유명대학들이 학교장 추천을 받아 선발하는 학생의 수를 늘리겠다고 했는데, 추천받는 기준은 학교 내신성적과 수능점수가 될 수밖에 없다며 거듭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신을 잘 받기 위해선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가 제일 중요하다, 이 성적은 3년 내내 간다, 그러니 결국 남보다 빨리 준비해야 기선을 제압할 수 있고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참석한 어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를 했다. 강사는 시험 잘 보는 방법과 과목별 학습방법까지 꼼꼼히 알려주었다.

하지만 학원의 예비중학생반 12월 시간표를 보니 숨이 탁 막혀왔다. 종합반 수업은 일주일에 3일, 방학 전에는 오후 5시30분~밤 11시까지 하루 5시간30분씩 공부하고, 방학 중에는 오전 9시30분~오후 6시30분까지 9시간씩 공부한다. 75분 수업에 5분 휴식으로 시간표만 보아도 질려버렸다.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관계자에게 이렇게 무리하게 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느냐고 묻자 “6학년 겨울방학에 처음 시작한 아이들은 어차피 늦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만 방학 동안 1학기 과정을 한번 끝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깊은 회의에 빠져 설명회장에 앉아 있는 다른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어떻게 공부시켜야 할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서초동에서 왔다는 다른 어머니는 “2002년부터 대입제도가 많이 바뀐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떻게 바뀌는지 잘 몰랐는데 오늘 여기 와서 들어보니까 대충 알 것 같아요. 모르고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방향을 알고 아이를 지도하면 좀더 낫지 않겠어요?”라며 이 학원에 등록하겠다고 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어머니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입시를 위해 학원에 보내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학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변명처럼 “다른 아이들도 안 한다면 모를까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순 없잖아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5학년 때 시작해야 안 늦어

설명회에 다녀온 뒤 며칠 안 돼 나는 다시 J학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미 저녁 7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아이의 손을 이끌고 상담하러 오는 어머니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내가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는 대치동에서 왔다는 어머니 세 명이 아이들의 테스트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마다 자기 아이들은 벌써 다른 학원에서 1학년 영어·수학을 한 번씩 끝냈다고 했다. 내가 “벌써?”라며 놀라자 “그 정도는 보통 수준”이라며 “강남에서는 4~5학년 때부터 중학교 공부를 시작해 6학년 무렵이면 중학교 2·3학년 공부를 하는 애들도 많다”고 했다. 1년 앞서 선행학습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놀라웠지만, 2~3년씩 앞서 배운다는 말에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추세가 그렇고, 미리 공부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앞서 나가니 나쁘다고만 할 순 없죠.”

자녀가 넷이라는 한 어머니는 위로 세 아이 모두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영어·수학 선행학습을 시켰더니 중학교에 들어간 후 시험기간에는 영어·수학은 전혀 손 대지 않고 암기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해 좋은 성적을 내더라며, 막내도 5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 중학교 과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는 선발기준도 다양해지고 한 가지 특기만 있어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성적에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상담실의 어머니들은 입을 모아 몇 퍼센트 안 되는 기회를 보고 모험을 하겠느냐, 오히려 그게 함정이고 그 장단에 춤추는 사람들이 미련한 거다, 아무리 교육제도가 바뀌어도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게 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무렵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반배정 테스트(영어·수학)를 마치고 아이들이 지친 표정으로 상담실로 돌아왔다. 이 학원에서는 테스트를 통해 성적순으로 4개 반에 배정한다. 지난 여름 방학 때부터 이 학원을 다녔다는 한 남학생은 “처음엔 TA-1반에서 공부하다가 지난번 테스트에서 영어점수가 좋지 않아, 신입생 중심으로 돼 있는 신M2반으로 내려갔는데,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짜증나요”라고 했다.

“TA-1반과 신M2 반이 뭐가 다른데?”

“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TA-1반 아이들은 학원에 오래 다닌 애들이라 공부하는 자세가 잡혀 있고, 수업중에도 다들 열심히 해요. 그런데 신M2반 아이들은 그게 안 돼 있어요. 놀려는 애들도 많고요. 이런 애들은 교무실에 끌려가 각목으로 맞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으면 학원에서 나오지 말라며 잘라버려요.”

학교에서는 손바닥 한 대만 때려도 신고를 하느니 교직에서 물러나게 하느니 흥분해서 달음질치던 학부모들이 각목까지 동원해 실력행사를 하는 학원에 대해서는 항의하는 일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학원강사가 학생을 때려 문제가 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 학생은 학기중 학원 가는 날이면 오후 3시 반쯤 귀가해 학원 수업준비를 한다고 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매일 10분간 짧은 테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5시에 오는 학원 버스를 타려면 4시30분쯤 저녁을 먹어야 한다. 만약 이때 저녁식사를 놓치면 수업이 끝나는 밤 11시까지 꼼짝없이 굶는다. 그리고 보통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12시. 방학이 되면 조금 여유가 생기지만 대신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진다.

“잠 좀 실컷 자고, 학원 안 가는 날만큼은 게임이나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알아서 공부하게 제발 좀 내버려둘 수 없나요?”

학교에선 초등학생, 방과 후엔 중학생

대치동 D초등학교의 6학년 담임교사가 말하는 수업 풍경.

“6학년 1학기 때부터 중학교 공부를 하는 애들이 많은데, 2학기 때가 되면 안 하는 아이가 없는 것 같아요. 쉬는 시간이면 학원 숙제 한다고 중학교 문제집 내놓고 앉아 있죠. 6학년 것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이 중학교 문제집 풀고 있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그 교사는 아이들이 중학교 공부만 공부고, 초등학교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숙제를 내줘도 안 해오고 수업시간에는 조는 애도 많다고 걱정했다.

아이들마다 선행학습을 시작하는 시점은 차이가 있지만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6학년 겨울방학이 중학교 공부를 시작하는 마지막 시기고, 보통 5학년 2학기 무렵부터 시작한다. 시작 시점은 강남에서도 지역별로 조금씩 편차가 있다. 대치동과 압구정동 쪽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일찍 시작하고 학원가의 열기도 다른 곳에 비해 뜨겁다.

“갈수록 더 빨라지는 것 같아요. 주변 아이들이 다 6학년 때부터 하니까 경쟁에서 앞설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좀더 빨리, 좀더 빨리 하다가 5학년에서 4학년으로 내려가고 있어요.”

압구정동에 산다는 한 학부형은 학원이 앞장서서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바로 학원의 수준별 수업이 경쟁을 가속시킨다는 것이다.

“처음 학원에 가면 반배정을 위해 레벨 테스트를 하는데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중학교 문제를 주고 풀라고 하니 다른 학원에 다녔거나 개인과외를 한 적이 없는 아이들은 수준이 낮은 반에 배치될 수밖에 없죠. 부모나 아이 모두 학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뒤졌다는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학원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학부모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

실제 강남의 학원들을 대부분 3~4단계로 반을 나누어 운영한다. 수준별 학습이라고 하지만 실제 진도 위주로 나뉜다. 높은 단계의 아이들은 이미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두 번 정도 반복하고 다시 2학년 단계로 넘어가는데, 처음 수강하는 아이들은 이제서야 1학년 과정을 시작하니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학부모들의 자존심 싸움이 경쟁을 부추긴다. 압구정동 C학원의 수학교사는 “무조건 내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앞서야 된다는 부모들의 경쟁의식이 지나친 선행학습을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한 어머니에게 아이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니 아랫반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 따라갈 수 있으니 그냥 있게 해달라며 막무가내였어요. 정말 자녀를 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H학원의 홍모 원장도 어머니들의 과잉경쟁의식은 학원을 선택하는 과정에도 나타난다고 했다.

“유명하진 않아도 잘 가르치는 학원을 발견하면 절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아요. 학원측에서 다른 수강생을 소개하면 학원비를 깎아준다고 해도 데려오는 법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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