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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 붐, 실패 없는 ‘맞춤유학’이 뜬다

  •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조기유학 붐, 실패 없는 ‘맞춤유학’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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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의 성공조건은 뚜렷한 목표의식, 올바른 유학시기, 어학 등 기초학력 구비, 학비조달 능력, 충분한 준비기간이다.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게 정설이지만, 그 나라 언어에 쉽게 적응하는 만큼 잃는 것도 많다. 자신의 성격과 목표에 맞는 학교와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성공 조건이다. 》
IMF 위기가 아니었다면 90년대 초반 ‘떠나자’ 열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을 것이다. 한때 “유학이 과외비보다 적게 든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으면서 조기유학은 중산층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불황이 깊어지던 97년부터 조기유학생(초·중·고교 유학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96년 1만2473명이던 조기유학생이 98년에는 1만738명으로 줄었다. 여기에는 해마다 늘고 있는 유학적자를 이유로 정부가 미성년 무자격 자비유학생에 대한 외화 송금 제한과 병역제재, 학부모에 대한 세무조사 등 강력한 봉쇄조치를 취한 것도 원인이 됐다.

유형별 감소경향을 살펴보면 조기유학 거품이 걷히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정식으로 유학을 인정받았거나 부모와 해외파견근무로 조기유학을 하게 된(파견동행) 경우, 이민 입양 등 해외이주로 인한 조기유학생 등은 경기변동에 관계 없이 오히려 늘거나 소폭으로 주는 데 그쳤다.

반면 유학인정을 받지 못한 불법유학자는 96년 3517명에서 98년 1129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에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학생수도 크게 늘었다. 96년 7588명이던 귀국학생이 97년 1만215명으로 늘자 언론은 일제히 ‘편법 조기유학생 귀국 급증’ ‘조기 유학생 컴백 홈 열풍’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기유학생들의 ‘U턴현상’을 취재하던 중 만난 한 유학원 관계자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그는 “조기유학은 대세다. 정부의 규제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그 숫자가 줄어들지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조기유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시기를 늦추고 있을 뿐”이라며 정부의 유학 제한조치에 의문을 표했다. 실제로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자 그의 말대로 조기유학은 다시 꿈틀거렸다.

98년 귀국한 조기유학생은 9511명으로 96년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소추세가 완화했고 99년 8월19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로 조기유학 장벽은 사실상 사라졌다. 미국 고교에서 조기유학중인 김모군 등 2명이 병무청을 상대로 낸 이 소송에서 법원은 “교육부장관이 발부하는 ‘국외유학인정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외여행연장 가신청을 거부한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 당황한 것은 교육부. 결국 국민의 교육선택권 제한에 따른 불만 및 민원을 해소하고, 지식기반사회에 부응하는 창조적인 국제 인력 양성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현행 조기 자비유학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자비유학을 규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피지 등 극소수 개발국가뿐이라는 것도 변명처럼 밝혔다.

조기유학이 전면 허용되는 시기를 놓고 일부 언론에서 3월초라고 못박기도 했으나 교육부는 아직 당정회의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포시기는 확실치 않으며 범위도 전면허용일지 단계적 허용일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무용지물이 된 규정에 얽매여 계획을 변경할 사람은 없는 듯하다. 2월초 방문한 강남 한 유학원에서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미국 유학수속을 진행중이었다. 이 여학생의 부모는 3년 전부터 유학을 준비했고 그동안 규제 때문에 시기를 늦췄지만 이제는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학생의 성적증명서나 보호자의 재직증명서 등 비자발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뿐만 아니라 유학 지역과 학교까지 결정한 것을 보아 상당기간 준비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조기유학에 대한 반대여론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자비유학 규제완화 방안’ 공청회에서는 무분별한 조기유학으로 학교가 공동화하고 국제수지적자가 가중되며, 국내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해외로 도피해 현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탈선하는 등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으로서 주체성 형성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최근 ‘한국애들 정말 불쌍해’라는 깜찍한 제목의 책이 나왔다. 96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떠난 이수경 학생이 지난 3년 동안의 캐나다 학교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수경이가 무엇을 배우고 숙제는 어떻게 해갔는지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외국생활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 수 있는 재미있는 기록이다. 수경이는 캐나다 생활이 너무 신난다고 하면서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할 때 공부하고, 원할 때 놀고, 원할 때 운동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다 즐거워질 텐데”라고 적고 있다. 바로 이런 교육환경에 대한 동경 때문에 너도나도 조기유학을 떠났다.

캐나다로 간 학생들이 모두 수경이처럼 학교생활이 신난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같은 책에서 수경이는 ‘H.O.T와 똑같은 헤어어스타일을 하고 물 좋은 노래방을 찾아 몰려다니면서 하급생에게 인사를 강요하거나 욕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썼다. 수경양의 아버지 이광수씨가 지난 4년 동안 지켜본 한국 학생들은 영어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탈선의 길로 빠져들곤 했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 조기유학생은 물론이고, 이민자 자녀들조차 쉽게 영어가 늘지 않아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 아이들은 주로 한국인과 어울려 영어가 서툴다. 만약 영어를 빨리 배울 목적으로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생활하면 향수병이나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부딪히는 낯선 환경은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학업 성적이 떨어지고 외로움까지 겹치면 아이들은 쉽게 좌절하고 탈선의 길에 빠진다.”

이씨는 캐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부모가 반대해서 돌아갈 수도 없다고 처량하게 말하는 아이를 만난 적도 있다. 그 학생은 이제 한국에 돌아가봤자 대학에도 못 들어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우울한 얼굴을 했다.

수경이네가 사는 아파트에는 한국에서 조기유학 온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 꽤 된다. 늦은 밤 어린 남녀 학생들이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잡담을 하다 이씨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피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자 부모가 서둘러 캐나다로 유학을 보낸 한 남학생도 적응에 실패했다. 한국에서 유학온 여대생과 동거하다 들통이 나서 부모 손에 끌려 강제로 귀국했다. 그때 여학생은 임신상태였다고 한다.

이광수씨는 “자식을 나무라기에 앞서 한국에서도 공부를 제대로 못하던 아이가, 그것도 늦은 나이인 11학년(고등학교 2학년)에 유학 와서 영어를 잘 배워 대학에 들어가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 거라는 부모들의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그 부모는 아들이 영어라도 잘 하기를 바라고 보냈을지 모르지만 아들은 영어 배우려다 인생을 망쳤다.

이처럼 도피성 유학생이 몰리는 학교는 캐나다 내에서도 대부분 2,3류로 꼽힌다. 그래서 캐나다 학교 중에 한국 유학생을 아예 받지 않거나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선별해서 받으려는 학교가 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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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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