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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샌드위치 세대’ 40대의 흔들림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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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남자의 좌절과 방황은 당사자가 심리적 갈등과 정서적 혼란을 겪는 ‘40대 사춘기’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할 때, 그리고 아내가 TV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훔치는 남편에게 “꼴값떠네”하고 비아냥거릴 때 찾아온다.》
가전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대기업의 상무 A씨. 30대에 이미 능력을 인정받아 이사로 진급, 우리 사회에서 초고속 승진 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현재 마흔세 살. 능력 있는 변호사 아내(40)와 고1, 중3 딸 둘을 두고 단란하게 살았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었고 회사에서 오너의 신임을 두툼히 받고 있어 잘릴 염려도 별로 없다. 이미 상당한 부를 축적한 데다 잘 나가는 아내를 두고 있어서 경제 생활도 여유만만하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어느날 갑자기 ‘중년의 흔들림’이 찾아왔다.

“도대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회사가 생산한 냉장고 한 대, 텔레비전 한 대 더 판다는 것이 덧없이 느껴진다. 우리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이 다른 회사에서 나오지 않는, 그래서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사회가 불편해할 그런 상품도 아니고… 그저 판매실적으로 내 자리를 몇 년 더 보전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이것저것 가릴것없이 다 때려치우고 머리 깎고 산에나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제는 도를 닦아 내가 사는 의미를 찾고 싶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한번도 살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려 상도 여러 번 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의 최고 명문고교를 다니면서 미대에 진학한다는 것은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 눈총만 받을 짓이어서 제대로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아내의 요구대로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개미같이 일해왔다. 결국 내 인생인데 내 뜻대로 살지 못했다. 너무 비참하다.”

이와 같은 A씨의 방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아내와 마찰을 빚게 됐다. 아내는 결혼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A씨의 변한 모습에 당황하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A씨는 지독한 고독감을 느끼면서 술로 텅빈 가슴을 달랬다. 그러다가 한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됐다. 그 여인은 전적으로 A씨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었다. 그녀를 만나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 듯했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A씨와 아내의 관계가 더 나빠지고 말았다. 현재 A씨는 아내와 이혼을 고민하던 중 병원에서 심리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한 중년 남자의 방황이 가정 해체의 위기까지 초래한 경우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올해 마흔다섯 살의 건축 감리사인 B씨는 전업주부인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사업 특성상 IMF 체제 때 큰 위기를 맞았으나,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사무실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IMF 때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허탈감에 빠져 일하기가 싫고 아예 직업을 바꾸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다.

그 역시 ‘중년의 흔들림’을 타게 된 것이다. 어느날 B씨는 아내에게 이런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아내에게 “다 늙어서 철딱서니 없는 말만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아내는 커가는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드니 계속 벌어야 한다고 주입하듯 강조했다.

B씨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나 생각하니 가족까지 귀찮아졌다.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그러다 보니 몸에 이상까지 생겼다. 무기력, 두통, 불면, 초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이어 성기능 장애까지 찾아왔다. 그런 장애 증상이 B씨를 비관적인 정신 상태로 더 악화시켰다. 보다 못한 아내는 B씨를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불혹 아닌 미혹의 나이40대

A씨와 B씨는 ‘40대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연 40대란 무엇인가? 40대는 이른바 중년(中年)이다. 이 시기의 인간형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동서양에서 언급해왔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루소(1712~1778년)는 저서 ‘에밀’에서 연령별로 인간을 탐구한 뒤 이렇게 말했다.

“10세 때는 과자를 즐겨 먹고 20세가 되면 사랑에 눈을 뜨다가 30세가 되면 쾌락에 탐닉한다. 그러다 40세가 되면 야망을 불태우고 50세엔 욕심에 사로잡힌다.”

40대는 야망과 야심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양의 공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한층 본질적인 면에서 연령별 인간형을 지적한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志于學), 30에 주체적으로 자립했다(而立). 40에 이르러서는 미혹되지 않았고(不惑), 50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

어느 학자는 이를 공자의 역설적인 표현으로 풀이했는데, 이를 테면 40대가 가장 흔들리고 미혹(迷惑)되는 시기이므로 경계하려는 뜻에서 ‘불혹’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다.

이렇듯 방황과 흔들림으로 상징되는 ‘불혹의 40대’는 의학적으로 남성 갱년기가 진행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최형기 교수의 말.

“주로 42∼52세에 찾아오는 남성 갱년기는 여성 갱년기에 비해 뚜렷하지는 않지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산량이 20대의 절반으로 감소돼 골격·근육·피부 등에 노화가 현저하게 나타나며, 발기력 감퇴·성욕저하·피로감·발한·탈모·소화장애 등 전신증상과 현기증·안면홍조·관절통·혈압 상승 등 순환기장애가 나타난다. 또 이로 인해 기억력감퇴·우울·불면·집중력 상실·강박관념·두통·이명 등 신경정신계 증상들도 따른다.”

최교수는 또 남성 갱년기는 개인의 건강이나 직업 환경에 따라 진행속도나 증상에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를 테면 일반적으로 40대 남성이 발기장애를 겪을 경우 대개 갱년기 증상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데, IMF를 겪은 이후 한국의 남성 갱년기 환자 수가 급증한 것도 바로 이런 주위 환경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 동창회에 매년 참여하고 있는 40대 후반의 회사원 최모 부장은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 중 상당수가 신경성 위염, 과민성 대장염, 만성 두통 따위로 치료받고 있어서 다음 모임은 아예 정신병동에서 하자고 했다”라고 씁쓸히 말했다.

고려대 심리학과 한성열 교수(50)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이 시기의 남자는 내면에 억제돼 있던 여성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정서적이며 의존적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당사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 역시 남성의 여성적인 변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남성의 여성화 현상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중년기란 비교적 안정적이고 변화가 심하지 않은 시기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다, 어릴 적부터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오는 여성적인 면에 대해 심리적 괴리감을 느낀다. 또 남자들은 감정을 다른 사람과 잘 나누지 않기 때문에 이 나이의 다른 남성들도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결국 스트레스로 작용해 심장마비 등 심각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중년기 남성들은, 청소년기에 심리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혼란을 겪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중년기에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과 정서적 혼란 역시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년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제2의 사춘기’이기 때문이다.

한교수는 또 이 시기는 자신의 삶에서 지금까지 매우 중요하게 여겨온 두 영역, 즉 일과 결혼생활(사랑)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시기라고 한다. 일과 결혼생활은 남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재평가 과정에 중년 남성들은 사춘기 소년처럼 심리적으로 많은 갈등과 정서적인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중년의 사랑

특히 중년의 사랑 영역은 영화와 소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중년기 방황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IMF시절 ‘정리 해고’와 ‘살생부’라는 험악한 상황을 힘겹게 넘긴 직장인 C씨(42)의 경우를 보자. 스스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계속 회사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무력감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놓고 허탈해하던 C씨는 어느날 갑자기 서른살의 미혼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한눈에 반해버린 사랑이었다.

C씨는 이 나이에도 자신에게 첫사랑과 같은 감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하며 그 여자에게 깊숙이 몰입해갔다. 그 여자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냥 행복했다.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그녀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활력이 솟았다. 희한하게도 그런 활력과 생기가 시들해진 가정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 그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내와 자식에게 애정 표현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C씨의 고백.

“나는 그렇게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도 애정 표시를 잘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 자신이 본래부터 황폐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를 만나 사랑하면서 내면에 숨어 있던 감성을 발견했다. 그녀를 만나면 세상이 달라 보였고 길가의 쓰레기통까지 의미가 부여되면서 아름다웠다. 내가 마치 시인이 된 듯싶었다. 나에게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녀 역시 사랑이 깊어지면서 처자식이 딸린 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고생을 함께 해온 아내에 대한 연민, 자식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내 이중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나를 포기했고,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후닥닥 결혼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면서 처음으로 그녀 앞에서 남자의 눈물을 보였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 다시 태어나 결혼하자고 하면서 1년간의 열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C씨는 지금도 자신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준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이전에 보지 못하던 자상한 남편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내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고려대 한성열 교수는 C씨의 경우처럼 중년에 나타나는 남자의 바람기는 가정을 깨고 싶어하지는 않으면서 젊은 여성을 만나 자신이 늙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부인과 문제가 있는 남자들은 상황이 심각해진다고 한다.

중년의 사랑 문제로 가슴앓이가 심각해져 정신과를 찾은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올해 마흔일곱 살의 D씨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부인과 빚는 불화로 1년 전부터 좌절감에 시달려왔다. 가끔씩 약국에서 안정제를 구입해 복용해왔지만 불면과 불안이 조금씩 심해졌다.

그러다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주 찾아가던 술집 아가씨와 가까워졌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털어놓는 유일한 상대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 대한 끌림과 집착이 커져갔다. 20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상대방 아가씨도 그를 잘 따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D씨는 평생 처음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어 그녀를 만날 때마다 이것저것 선물을 주면서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들떴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마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어린 딸을 돌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를 책임지기 위해 부인과 이혼하고 싶었지만 장성한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결혼생활을 청산하기는 쉽지 않았다.

심하게 갈등하던 이씨는 어린 연인과 헤어지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연락을 끊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녀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죄책감으로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는 최면치료로 그런 감정을 없애고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최면치료 전문병원을 찾았다.

D씨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찾아보기 위해 전생퇴행요법을 받았다. 최면상태에서 자신을 조선시대 선비로 기억해낸 D씨는 술집 아가씨가 바로 자신의 외동딸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그 삶에서 부인이 일찍 죽은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외롭게 살다가 그 딸이 출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죽기 전에는 딸을 걱정하였으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최면상태에서 이 기억을 떠올린 후 D씨는 그 아가씨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이해하게 되었고, 과도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무렵 부인과도 좋아져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김영우 신경정신과의 최면치료 상담사례).

정신과 전문의 김영우 박사는 40대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이성문제로 상담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전생(前生)의 인연을 찾아냄으로써 연인 관계를 정리하고 모범적인 가정생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생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환자가 연인과 이러저러한 인연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상처가 자연스럽게 치료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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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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