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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의사·약사·한의사·의보조합

‘너 죽고 나 살기’ 20년 싸움

  • 이종찬 아주대 교수·의학사상 및 보건정책

‘너 죽고 나 살기’ 20년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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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의료보험조합 통합논쟁,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권 다툼, 양·한방 의료 일원화와 한약 분쟁
  • ● 한약 분쟁의 불똥, 의약분업으로 튀다.
  • ●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작은 권리 찾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바야흐로 한국 의료계는 대논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다. 현재 진행되는 논쟁의 큰 줄거리는 다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의료보험 관리 운영 체계를 둘러싼, 소위 조합론 대 통합론 사이의 의료보험 논쟁 ② 한방의료와 양방의료를 일원화하자는, 의사와 한의사 사이의 의료 일원화 논쟁 ③의사와 약사의 업무 영역을 정확히 설정하자는 의약분업 논쟁 ④약사가 한약을 임의 조제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한의사와 약사 간의 한약 분쟁을 말한다.

각각 시작된 시점이 다른 이 4가지 논쟁은 처음에는 서로 무관한 듯 보였다. 그러나 2000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돌변하고 있다. 강의 지류들이 어느새 본류로 합쳐지면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렇게 4가지 논쟁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어서 이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각각의 논쟁은 한 그루의 나무다. 숲을 보아야 한다.

의료보험 관리운영체계에 대한 조합론과 통합론 논쟁은 가장 정치적 양상을 띠고 진행됐다. 전두환 정권 이래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 의제는 정치적 부담이 돼왔고 정부, 각 의료보험조합, 의사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사용자단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자단체, 전국농민회 등 농민단체, 그리고 최근에는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이 쟁점은 말 그대로 ‘총력전’ 체제로 확대됐다.

아마도 지난 20년간 모든 사회정책 가운데 의료보험 관리운영방식만큼 온갖 이해단체들이 줄기차게 대립해온 정책 과제도 없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의료보장 방식에서도 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이 논쟁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의료보장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독일 비스마르크 모형인 국민의료보험제도(national health insurance, NHI)와 영국 비버리지 모델인 국가의료보장제도(national health service, NHS)가 그것인데, 양쪽 방식을 두고 논쟁한 나라는 있어도 한국처럼 관리운영방식을 둘러싸고 20년에 걸쳐 갈등을 겪은 나라는 없다.

한약 분쟁, 잠자던 의약분업 깨워

앞으로 한·양방 일원화, 의약분업, 한약 분쟁도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각각의 논쟁결과가 다른 두 논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서로 긴밀한 상관성을 갖는다. 특히 논쟁 당사자들인 의사, 한의사, 약사는 각 논쟁을 제로 섬(zero-sum) 게임으로 간주하여 논쟁에서 지면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가 크게 손상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의료인과 약사들이 사회적 체면을 던져버리고 격렬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양·한방 일원화 논쟁과 한약 분쟁이 시작된 구조적 원인은, 의사와 약사들은 부인하지만, 1980년대 들어 한의사들의 경제적 지위가 급격히 상승한 것과 관계가 깊다. 1960~70년대 개발 독재의 결과로 경제 성장이 열매를 맺으면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계층이 한약(보약)과 건강식품을 찾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의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상승했다. 약사와 의사들이 의료분야의 사촌인 한의사들이 ‘땅 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의사들은 의료 일원화를 통해, 그리고 약사들은 한약 조제를 통해, 한방의료 시장을 나누어 가지려 했다.

1953년 약사법은 의약분업을 전제로 제정됐다. 1963년 개정된 약사법에서도 의약분업이 명기됐다. 그 후 몇 차례 의약분업의 기회가 있었지만 계속 유보됐다. 그렇게 미적미적하던 의약분업 논쟁은 공교롭게도 1993년 3월5일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깨끗이 관리하여야 한다”는 약사법 시행규칙 제 11조 1항 7호이 삭제됨으로써 불거져 나온 한약 분쟁에 의해 촉발됐다. 얼핏 보면, 약국을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는 법 조항에 대해 한의사들이 집단 대응을 했던 이유는, 약사들의 한약 조제 금지를 규정했던 이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약사들의 한약 조제를 방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약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 의약분업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약사들의 주장을 정부가 수용했고 1994년에 약사법이 개정됐다. 개정 약사법은 1999년 7월까지 의약분업을 시행하도록 명시했다. 결과적으로 한약 분쟁이 잠자고 있던 의약분업 논쟁을 깨운 것이다.

원래 정부, 의사단체, 약사단체는 1999년 7월 의약분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했으나, ‘준비부족’-한국 사회 보건의료 정책 실시가 연기될 때마다 약방에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수사법이다-을 이유로 2000년 7월로 연기됐다.

시간을 번 의사들은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통해 현행 의약분업 실시 모형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했다. 한국의료사(史)에 기록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연인원 수만 명의 의사들이 모여 정치적 압박을 가했다. 마침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약사단체도 4월 집회를 예고하고 있어 양측의 분위기가 험악하다.

정책에서 시기(timing)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1999년 의약분업의 실시 시기를 놓쳤고, 의사단체는 2000년 총선을 절묘하게 이용해 그것을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

실패로 끝난 경실련의 중재

약사에게 한약 조제권을 허용할 수 없다는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집단시위로 시작된 한약 분쟁은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부로 권력이 교체되는 묘한 시점에 일어났다. 그것도 직접 당사자인 한의사와 약사가 아닌, 한의대 학생과 약학대 학생 사이에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졌다. 한의대 학생들이 법정수업기한을 어겨가면서 격렬한 시위와 집회를 통해 한의사의 권익을 쟁취하려 했고, 물론 약대 학생들 역시 물리적 행동에 나섰다.

1993년 9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분쟁 초기 단계에 양 집단을 중재하러 나섰다. 이것은 그때까지 제3자로 분쟁을 지켜보던 시민과 시민단체가 의료정책에 적극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경실련의 중재안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정부는 약사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예고에 들어갔다. 그것은 ①한방의료에서 의약분업 실시 ②한약사 제도의 신설 ③기존 약사에 대한 한약 조제권 인정 ④한약조제 지침서를 포함하여 한약조제 시험, 한약학과 설치, 한약사 배출 문제 등을 포함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의료제도 전반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경실련의 섣부른 중재는 한약 분쟁을 해결한게 아니라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한약조제 시험을 둘러싼 2차 한약분쟁으로 번졌다. 1995년에 약사들은 1994년에 개정된 약사법이 자신들의 한약조제권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헌법 소원을 제기했고 한약조제 시험을 전면 거부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약사 단체의 헌법 소원을 기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약사 단체는 돌연 이를 취하했으며 한약조제 시험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였다. 약사들의 이런 방향 전환은 한의사들의 저항을 불러왔으며 한약조제 시험 출제자로 참여했던 한의과대학 교수들이 출제를 거부함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각 논쟁은 이해 당사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정작 논쟁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키며 그에 따른 적절한 의료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 그만이다.

사실 국민들이 의료보험에 대해 갖는 불만은 “의료보험료를 납부하는데도 진료비 중 본인 부담금이 너무 많다.” “조합론, 통합론이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모르겠다. 어느 쪽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 편하고 의료비가 싼가?” 정도다.

또 국민들은 한·양방 일원화에 대해 이렇게 불만을 토로한다. “아플 때 의사와 한의사 중에 어느 쪽으로 먼저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의사와 한의사로부터 한꺼번에 진단받고 치료받을 수는 없나?” 환자들이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양쪽 의료기관을 이용함으로써 지불하는 중복의료비가 아니라 치료받을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의사들의 집단 시위, 한의과대학과 약학대학 학생들의 격렬한 집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한결같이 “의약분업과 한약 분쟁으로 자기들끼리 싸우면 될 일을 왜 휴진과 휴업을 해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물론 각 논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들은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왔다. 그럼에도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자신들의 논리에 빠져 정작 의료 소비자인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또한 전문가들은 각자의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논쟁에만 매달리다 보니, 논쟁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 관련되어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보험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서 시작된 의료 논쟁은 연쇄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의료보험 논쟁, 잘못 끼워진 단추

광복 이후 한국 의료계 첫 논쟁은 조합론(의료보험 조합을 규모의 경제 범위 내에서 적정하게 관리하자는 주장) 대 통합론(전국의 모든 의료보험 조합을 단일화하자는 주장)의 대결이다. 1980년대 초 시작된 이 논쟁은 20년 동안 지속됐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면서 일단 통합론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논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시작은 유신정권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 유신정권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경제가 성장하는 성과가 나타나자 북한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의료체제의 가장 큰 장점인 전국민에게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북한의 정책과 제도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 한 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픈 아이를 등에 업은 남한의 어머니가 치료비가 없어 울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고 “당신의 조국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삼던 유신정권의 정당성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북한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의식한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부랴부랴 일본의 의료보험제도를 베꼈다. 이렇게 해서 1977년부터 실시된 의료보험은 500명 이상 사업장의 피고용자와 공무원 및 공·사립학교 교직원들과 같이 매월 일정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계층에 제한적으로 실시됐다. 오늘날 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의료보험 조합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렇듯 한국 의료보험 제도는, 비스마르크가 1883년에 독일 노동자들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해 세계 최초로 의료보험을 실시했던 것처럼, 북한 사회주의 의료제도에 대해 우위를 점하려는 ‘체제경쟁’의 산물로 탄생했다.

1970년대 정치적 이유로 의료보험 제도를 급조하는 데 동원된 정부 당국자나 학자들이 앞으로 실시해야 할 의약분업과 이 제도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고민할 리 없었다. 또 그때까지는 대중적 수요가 많지 않았던 한방진료를 양방진료 중심의 의료보험제도에 어떻게 편입할지 미리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1979년 의료보험법이 개정되면서 피고용자 수가 300명 이상인 사업장까지 의료보험 조합이 설립됐다. 전국 곳곳에 의료보험 조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개중에는 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었다.

재정 적자로 제때 보험 급여를 의료 기관에 지불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면서, 1980년대 초 보건복지부(당시는 보건사회부) 내의 몇몇 관리들은 조합들을 통합해 단일 보험자 조직으로 개편하려는 대안을 제시했다. 논쟁에 불씨가 지펴졌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했던 1980년부터 83년까지의 1차 논쟁, 노태우 정부가 집권했던 1988년부터 89년까지의 2차 논쟁, 김영삼 정부 집권 시기였던 1995년부터 1997년에 이르는 3차 논쟁,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통합이 이루어진 시기까지 4차 논쟁이 거듭된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의 이익단체가 총출동하는 격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일단 통합론의 승리로 끝났지만, 과연 통합론자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통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계속된 이 역사적인 논쟁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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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아주대 교수·의학사상 및 보건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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