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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신도시 라이벌 10년

‘잘난 분당’, ‘못난 일산’?

  • 안영배 ojong@donga.com

‘잘난 분당’, ‘못난 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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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산은 개혁·진보, 분당은 보수·안정
    ●일산은 대외개방형, 분당은 독립지향형
    ●일산 명문 백석고와 분당 명문 서현고
    ●일산은 거대한 기자촌, 분당은 정보맨의 기지
    ●일산과 분당, 누가 더 잘 사나?
성남시 분당구와 고양시 일산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도권의 양대 신도시다. 6공화국 시절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에 의해 도시개발이 진행된 지 10년, 일산과 분당은 폭발적인 속도로 자가 성장해 수도권의 ‘공룡 도시’로 자리잡았다. 인구 수에 있어서도 현재 분당은 39만1500명, 일산은 41만4000명을 자랑하는 매머드급 신도시다.

사통팔달의 잘 짜인 도로망, 풍부한 편의시설, 공원 등 녹지로 둘러싸인 상큼한 환경. 이제는 일산과 분당을 설명하는 일상적인 표현들이다. 두 도시에선 개발 초기의 삭막함과 황폐함은 좀체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수도권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주거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주민 대부분은 이른바 ‘외지인’들. 주로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흘러들어온 이방인이 그들이다. 현재도 주민 중 대다수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다. 낮에는 주부와 아이들만 보이는 전형적인 베드타운인 것이다.

그럼에도 두 도시는 어느새 지역 특색을 갖춘 나름의 ‘정서’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두 도시 사람들 간에 은근한 경쟁심까지 유발해서 서로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일산이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인 호수공원을 자랑하면, 분당은 그에 질세라 전통과 현대미를 조화롭게 살린 중앙공원을 맞수로 내놓는다.

지난 4·13 총선은 분당 사람과 일산 사람의 서로 다른 정서를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었던 무대. 정치권에서는 두 신도시 모두 비교적 지역색이 덜한 데다, 학력수준이 높은 편이고, 중산층이 밀집해 있는 등 수도권 민심을 대변하는 ‘신정치 1번지’라는 점에서 공천단계부터 상당한 고심 끝에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그런데 선거 결과 표심(票心)은 서울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 만큼이나 극명하게 달리 나타났다.

‘경기 남부의 신정치 1번지’인 분당 신도시는 두 선거구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싹쓸이한 반면, ‘경기 북부의 신정치 1번지’인 일산 신도시는 두 선거구 모두 민주당 후보가 휩쓸었다. 더욱이 일산에서는 인접한 선거구인 덕양 갑, 을에서도 약속이나 한 듯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전문가들은 두 지역의 뚜렷한 선거 결과가 분당과 일산 주민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산 사람들이 개혁 및 진보 지향적이고, 분당 사람들은 안정 및 보수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일산, 한나라당에서 민주당 지지로

먼저 일산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일산이 갑, 을로 선거구가 나뉘기 전 자민련 일산지구당 자료에 의하면 일산지역 유권자의 고향은 영남 22%, 호남 20%, 충청 20%, 원주민 18% 등 지역적으로 골고루 분포돼 있다. 경상, 호남, 충청권에 비해 지역색이 옅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통계청의 ‘고양시 일산구 인구이동보고서(99년)’에 의하면 서울(45.6%)과 일산 인근의 경기권(44.7%)에서 전입해온 사람들이 전체 주민의 90.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주민 구성을 보이는 가운데 일산 사람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역대 선거에서 반(反) 김대중, 반 민주당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일산 유권자들은 96년 총선에서 국민회의(민주당)보다 신한국당(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했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같은 일산 주민이던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38.5%)보다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44.8%)를 더 많이 지지했다. 또 지난해 8월 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하는 등 일산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우세지역으로 분류됐던 곳이다.

일산갑구에서 이 지역 출신 3선의원인 이택석 의원(자민련)과 전국구 오양순 의원(한나라당)을 제치고 당선된 정범구 의원(시사평론가)의 말.

“일산갑 유권자(약 13만3000명)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한나라당 우세 지역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평수가 커지는 곳일수록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영남 사투리가 눈에 띄게 많았고, 반대로 평수가 작아지는 곳일수록 민주당 지지 성향의 호남 사투리가 많다는 특징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30평형대에 사는 주민들 중에서도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나는 이들을 주 대상으로 개혁론과 인물론을 앞세워 파고들었다.”

정의원은 일산갑의 경우 30평형대 아파트 값이 서울로 치면 20평형대의 서민층 아파트 값과 비슷하므로, 사람들도 당연히 개혁을 강조하는 민주당을 지지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실제로는 스스로가 보수와 안정을 희구하는 중산층 계급이라는 ‘허위 의식’을 적잖게 갖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또 이런 성향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보다는 일산에서 온종일 생활하는 가정주부와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팽배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산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전원 당선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일산에서 총선 시민연대 활동을 한 고양시민회의 신기철 사무국장의 설명.

“일산구민을 포함한 고양시민들 중에는 과거의 친여 성향, 즉 보수 성향의 주민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민방위교육장에서 최근의 남북정상회담 건과 관련해 강사가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호응해주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30~40대의 젊은층이 지속적으로 일산으로 유입되면서 여론 주도층으로 자리잡았고, 주민들 사이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이 컸다고 본다. 거기에 더해 정범구씨 등 비교적 참신한 인물이 민주당 후보로 등장한 것도 주효했다고 본다.”

실제로 일산 주민들이 보수·안정 성향에서 개혁·진보 성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도 있다. 일산을구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정당’으로 각인된 민주노동당 후보가 자민련과 민국당 후보를 제치고 3위(6250표, 8.5%)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일산과 이웃한 아파트 밀집지역인 덕양을구에서도 민주노동당 후보가 6.2%(4165표)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러한 득표율은 서울에서도 좀체 찾아보기 힘든 진보계층 지지표인 것이다.

분당 정서, ‘민주 NO, 한나라 OK’

‘일산은 서울의 강북과 정서가 비슷하고, 분당은 서울의 강남과 정서가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일산은 서울의 강북쪽 사람들이 대거 진출한 곳임에 비해, 분당은 서울의 강남쪽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옮겨갔다.

이 지역에서 6선한 오세응 의원측 자료에 의하면 분당지역 유권자의 고향은 영남이 30% 이상, 호남 23~26%, 충청과 경기가 각 5% 정도다. 수적으로도 영남 지역 출신이 우세한 곳이다. 분당 유권자의 본적지별 분포를 보더라도 서울 출신이 64%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을 영남 출신(14%)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영남 출신으로 강남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이 분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서울의 강남 정서가 그대로 연장돼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분당에서는 역대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표차로 이겼다.

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오세응 의원이 33.1%의 득표율로 국민회의(민주당) 후보(25%)를 물리쳤다. 이어 9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51.1%를 득표한 반면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35.3%에 머물렀다. 이런 수치는 수도권은 물론 서울 강남보다도 정도가 심한 반(反) DJ 성향의 지표였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분당지역의 독특한 정서를 감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경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씨(분당갑)와 한국통신프리텔 사장을 지낸 정보통신 전문가 이상철씨(분당을) 등 ‘거물’을 내세웠지만 결국 한나라당 정서를 당해내지 못했다. 분당을구에서 7선 고지를 바라보다가 최저 득표로 실패한 오세응 의원(자민련)은 분당 정서가 영남 정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철저하게 호남 대 비호남 구도의 선거전이었다는 것.

한편 이번 선거에서 분당은 일산과 비교해볼 때 또다른 면에서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일산의 경우 일산과 인접한 덕양지역까지 전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과는 달리, 분당의 경우 신도시를 제외하고는 그와 인접한 수정과 중원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한나라당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눌렀다.

이는 구시가지 사람들(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과 신시가지 사람들(성남시 분당구)의 정서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분당에 출마한 각당 후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분당독립시’ 문제를 선거 구호로 들고 나왔다. 분당 사람들을 독자로 두고 있는 생활문화 정보지 ‘분당소프트 21’의 발행인 고진석씨는 각당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독립시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분당 신시가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남 구시가지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강하다. 옷차림, 분위기 등에서 분당 사람인지 성남 사람인지를 구별해낼 정도다. 분당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편의시설이나 문화시설이 뒤진 성남 구시가지로 가는 일도 드물다. 택시도 웃돈을 줘야 갈 정도다. 분당 사람들은 ‘성남시 분당구’라는 현 행정지역명 대신에 ‘분당시’ 혹은 ‘서울시 분당구’라는 말에 정서적으로 더 기울어 있는 편이다. 실제로 분당 사람들은 분당에 시설이 없어 충족하지 못하는 문화적 욕구는 서울 강남에서 주로 해결한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도 공연행사가 있을 때면 분당 지역에 안내문을 돌릴 정도다. 그만큼 분당 사람들이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분당독립시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논리는 이렇다. 분당이 성남시 지방세수의 약 68%를 부담하고 있는 데 반해 실제로 분당 주민을 위해 투자되는 비율은 훨씬 낮다는 것. 이들은 “올해만 해도 분당구의 세입이 1678억원인데 비해 세출은 1379억원에 불과해 300억원의 예산이 다른 구로 빠져 나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금은 분당 사람들이 제일 많이 내지만, 정작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당독립시 추진위원회 이준호 위원장은 “성남과 분당은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사실상 다른 도시나 마찬가지인데, 성남시가 분당의 문화시설이나 주민편의시설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는 만큼 분당은 꼭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성남시의 분당 백궁과 정자지구 개발을 둘러싼 논란처럼, 시청이 분당의 자족기능을 갖추기 위해 업무용으로 남겨둔 토지를 마음대로 용도를 바꿔 사용한다는 인식도 독립 논의를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일부 분당 주민들은 “성남시에서 분당을 더 이상 개발하지 말고, 이대로 놔두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성남시와 구시가지 쪽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분당 신도시 입주 초기에 아파트 등록세와 취득세 때문에 분당에서 세금이 많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전체 성남시 세수의 40%밖에 안 된다는 것. 또 분당에서 나오는 생활하수 및 오수, 쓰레기 등을 수정과 중원지역에 설치된 혐오시설에서 처리하고 있는 마당에 분당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라고도 한다.

분당구청의 한 관계자는 분당독립시 문제는 인위적으로나마 ‘분당의 상류층 정서’를 갖고 싶어하는 일부 분당 주민들의 왜곡된 욕구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분당의 독립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96년 총선에서 당선된 당시 한나라당 오세응 의원(현 자민련)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지만 4년 동안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 분당이 독립하려면 지방자치법에 따라 성남시의 주민투표와 시의회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인구가 4대6의 비율로 열세인 분당 쪽이 불리하다는 것.

어떻든 이번 총선에서 성남과 구시가지에서 민주당 후보가 전원 당선되고 분당에서는 전원 한나라당 후보가 된 것처럼, 양 지역의 정서적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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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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