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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접대 일번지 룸살롱 요지경

  • 김영철 자유기고가

대한민국 접대 일번지 룸살롱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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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1~4월에만 4,581개가 새로 생긴 룸살롱. 그룹 ‘지정’ 업소부터 종업원 600명의 중소기업형까지. 여의도 증권가 뺨치는 룸살롱의 정보력, 무서운 생존력.》
대한민국은 흔히 ‘접대공화국’으로 불린다. 지난해 국세청 국감자료에 따르면 1996∼1998년 3년 동안 국내 기업이 공식적인 접대비로 신고한 액수는 약 9조9898억 원. 비공식적으로 쓰는 접대비가 신고된 것보다 더 많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고 보면 얼마나 많은 돈이 소비성 경비로 지출되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빚에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기업들이 접대비 지출 규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의 이런 기형적인 접대문화의 한 축에는 ‘향락 1번지’라 불리는 룸살롱이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 J사의 경리이사를 맡고 있는 K씨(47)는 “관계나 금융권 인사를 상대로 한 접대의 절반 이상은 룸살롱에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J사의 경우엔 잦은 술자리 접대를 해결하기 위해 강남 역삼동 일대에 몇 곳의 ‘지정’ 룸살롱을 두고 있다. 회사 일과 관련된 접대를 할 때 임원들의 사인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한 업소들이다. 접대할 손님의 비중에 따라 출입하는 룸살롱의 급수도 달라진다고 한다. 국내 50대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 기업들도 J사와 마찬가지로 두세 곳 정도의 지정 룸살롱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로 지정 룸살롱의 종업원들은 기업의 ‘숨은 정보원’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접대장소로 룸살롱을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편적으로 보자면 ‘값비싼 향응 = 최고급 접대’라는 인식이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탓이다. ‘소주를 권하면서 청탁할 순 없지 않으냐’는 기업체 임원들의 얘기에선 그런 한국식 접대풍토가 그대로 묻어 나온다.

그러나 룸살롱이 최고의 ‘접대 명소’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룸살롱만이 지닌 폐쇄성과 은밀성이 바로 그것이다. 룸살롱은 밀실(룸) 영업을 전제조건으로 삼은 유흥업종이다. 룸살롱(영어 Room + 불어 Salon)이란 용어 자체가 방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설비한 술집이란 뜻을 지닌다.

“방은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또 우리를 음산한 꿈속에 가두어 두기도 한다”고 함석헌 옹이 남긴 이 얘기 속에는 방이 지닌 속성이 잘 드러나 있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룸살롱 업주도 룸이 지닌 은밀함이 손님을 끄는 무시 못할 요인임을 인정했다.

“소주 권하며 청탁할 순 없는 일”

고급 술과 아름다운 여급은 분위기를 돋워주는 소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업주의 얘기였다. 열린 공간에서는 쉽게 하지 못할 일, 남이 봐서는 안 되는 일을 하기에 룸살롱만큼 적당한 장소가 없다는 것. 청정하리라 믿었던 386세대 의원들이 5·18 전야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던 것도 어쩌면 룸이 지닌 속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IMF 구제금융 체제의 터널을 지나온 지난 몇 년 동안, 룸살롱은 우리 사회의 우울한 화두 중 하나였다. 무너진 중산층과 서민층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안겨주는 상징적 요소가 돼왔기 때문이다. 하루 술값으로 수백만 원을 탕진하는 부유층 인사들, 밀실에서 이뤄지는 부적절한 로비들…. 과연 우리의 접대문화는 어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걸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거론되는 룸살롱신드롬. ‘주식(酒食)’회사 룸살롱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일그러진 접대문화의 현주소가 그대로 비친다.

올 들어 하루 38개씩 개업

최근 룸살롱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www.nta.go.kr)에 올라 있는 ‘개업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넉달 사이 새로 문을 연 룸살롱은 전국에 걸쳐 4581개소. 하루에 38개꼴로 룸살롱이 들어선 셈이다. 유흥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의 경우 올들어 지난 4월까지 매일 1.18개꼴로 문을 연 것으로 나타났다. 99년 1년 동안 전국에서 개업했던 룸살롱이 6200개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신장 추세다. (표 참조)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룸살롱 개업 붐이 인 것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해 10∼12월 석 달 동안 개업한 룸살롱 수는 무려 2900여 개에 이르렀다. 국세청 관계자는 “당시 IMF 시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코스닥 등 증권시장에 불기 시작한 주식 열풍이 룸살롱 개업을 부추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룸살롱 업주들의 ‘모자 바꿔쓰기’ 때문에 개업 업소 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점도 있다”고 했다. 모자 바꿔쓰기란 유흥업주들이 인정과세 등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폐업을 하고 새로 개업하는 행위를 일컫는 유흥가 은어.

그러나 룸살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배경에 대한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서울 강남 삼성동 L룸살롱 업주인 J씨(45)의 얘기.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매스컴에서 연일 고급술집이 손님들로 꽉꽉 들어찬다는 보도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 떼돈 욕심에 업소를 차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죠. 또 원래 룸살롱의 경우 고급향락업소라고 해서 사업자금을 은행에서 대출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파이낸스사 같은 유사금융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편법 대출이 가능해진 겁니다. 이런 회사들이 새로 룸살롱을 하려는 사람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거나 거액의 대출금을 풀었던 거죠. 당시엔 하룻밤 자고 나면 어디에 새 업소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려 깜짝 놀라곤 했어요. 그러나 우리 룸살롱이란 게 겉보기와는 달리 ‘속빈 강정’이에요. 쉽게 보고 덤비다간 망해 나가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시중자금이 엉뚱한 방향으로 풀려 룸살롱 개업 붐을 뒷받침했다는 J씨의 얘기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지난해 금감원이 전국 600여 개 파이낸스사 가운데 41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파이낸스사 중 상당수가 룸살롱 등 향락업소의 자금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최근 룸살롱의 무분별한 개업 붐은 유사금융회사들의 문란한 자금운용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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