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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르포|춤추는 중년들

“쉘 위 댄스? 스탭을 밟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 박은경 자유기고가

“쉘 위 댄스? 스탭을 밟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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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춤추다 다투는 커플이 많은데 아마 춤이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아내와 춤을 출 때 자주 다툰다. 아내보다 내가 서툴 수밖에 없고, 그러다 아내가 이런저런 요구와 조언을 하면 때로 감정이 상해 충돌한다. 부부사이에 감정소통이 껄끄러우면 이상하게 호흡이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가끔 티격태격 다투면서 춤을 추더라도 지금 아내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씨. “혼자 춤추니까 영 재미가 없다. 그래도 열심히 실력을 쌓아 가서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경이면 김씨처럼 동아문화센터에서 댄스스포츠를 배우는 회원들이 하나둘 ‘토요모임’에 얼굴을 내민다. “평균 20∼30쌍이 춤을 추러 온다. 그 중에는 부부도 있고, 혼자 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다 회원이니까 알아서들 파트너를 찾아 함께 즐긴다. 강습시간이 아니니까 분위기도 자유롭고 화기애애하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춤을 통해 건전하게 사귀기 때문에 회원들이 좋아한다”고 귀띔하는 댄스강사 박효씨. 82년부터 이곳에 몸담아온 박씨는 얼마 전 프로 댄스선수 생활을 마감한 국내 스포츠댄스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우리 회원이 9백명 정도 된다. 이중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연령층이 가장 많다. 남녀 비율은 엇비슷하다. 춤을 배우러 오는 중년남성이 2∼3년 전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늘었다. 아마 댄스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전세계 공식 명칭이 ‘댄스스포츠’로 통일된 일명 ‘사교춤‘은 ‘제비족’ ‘카바레’와 더불어 우리나라 50∼80년대 퇴폐문화의 상징으로 아직도 많은 중·장년 층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 중심에 50년대 중반 우리사회를 발칵 뒤집은 ‘희대의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이 있다. 훤칠한 외모와 빼어난 춤 솜씨로 70여명의 여대생을 농락해 ‘혼인빙자간음죄’로 법정에 섰던 박인수. 당시 26세 해병대 헌병으로 근무ㅏㅎ던 그는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뭇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댄스홀에서 여관으로 이어졌던 박인수의 카사노바 행각. 그러나 법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판결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일간지 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서울지방법원을 통해서만 보더라도 지난 7개월 동안 도합 68건으로 사흘에 한 건의 비율로 법원 문을 찾아들어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30대 남녀들이라는 것이다. (중략) 이혼소동의 실마리를 들추어 보면 ‘인테리’ 여성, 농가출신의 유부녀가 ‘사교댄스’에 미쳐 밤거리를 쏘다니는가 하면, 경제력이 미약한 남편을 밤낮으로 욕설과 악의에 찬 태도로 대하는 허영녀 등….”

댄스강사 박효씨는 “내가 처음 춤을 배운 곳도 비밀댄스교습소였다. 일본 적산가옥 2층 다다미방에서 비닐장판을 깔고 배웠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안방교습’이라 불렀다. 춤 배우는 걸 감추기 위해 장바구니 들고 교습소를 드나들던 가정주부도 적지 않았다. 비밀댄스교습소에 대한 규제가 풀린 게 91년이었다”고 회상한다.



중동특수와 장바구니 아줌마

이때부터 60년대까지 국내 춤바람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던 빠른 템포의 라틴아메리카 사교댄스 ‘맘보’와 그 뒤를 이은 ‘차차차’가 휘어잡는다. 가수 심연옥이 부른 ‘도라지 맘보’라는 댄스음악이 춤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50년대 말에 등장한 록큰롤 댄스의 일종인 ‘트위스트’는 대중들 사이에 “신발 밑창이 닳도록 비비는”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사회악’으로 규정된 사교춤에 대한 단속은 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강화됐다. 대신 미국에서 상륙한 존 트래볼타 주연의 댄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젊은이들을 ‘디스코’열풍으로 몰아넣었다. ‘제비족 광신회 일당 9명 체포’라는 제목으로 당시 신문에 실린 기사내용을 보면 ‘댄스스포츠’의 어두웠던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회악 등 퇴폐풍조 소탕에 나선 경남지구 합동단속반은 마산 진해 등지를 무대로 유부녀 48명을 농락하고 협박 공갈로 돈까지 뺏어온 광신회(제비족) 일당 9명을 체포하고 3명을 수배했다. (중략) 이들은 원양어선 선장부인, 제재소 사장부인, 치과원장부인 등 부유층 유부녀와 처녀, 과부 등을 상대로 댄스교습을 미끼로 유혹 간음한 후 공갈협박으로 금품을 갈취하고…. (중략) 간음행위를 자행하던 상습댄스공갈단 일당 12명 중 9명을 체포하고 같이 놀아나던 유부녀, 처녀 등 48명을 소환하여 엄중조사 중에 있다.”

7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또한번 춤바람의 열기로 몸살을 앓게 된다. 수많은 ‘가장’의 중동진출과 함께 ‘장바구니를 든 가정주부’들이 카바레로 몰려들었던 것. 당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립기념 강연회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는 “남편과 시부모의 학대 외에 해외취업으로 인한 장기별거로 아내들은 욕구불만이 쌓이고 그 반향으로 가출을 하거나 춤바람이 늘어가고 있다. 30대 주부가 가장 위기이며 이혼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밝히고 있다.

댄스강사 박효씨는 “더 이상 사교댄스를 배우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과거 댄스교습과 관련한 떠들썩한 사건들 때문에 지금까지 춤을 배운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중·장년 층에서는 아직도 사교댄스나 사교춤이라고 하면 카바레와 제비족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한다.

‘쉘위댄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댄스스포츠’로 통칭되는 춤은 크게 스탠더드댄스와 라틴아메리카댄스(라틴댄스)로 구분된다. 스탠더드댄스에는 왈츠, 탱고, 슬로우, 폭스트롯, 비엔나왈츠, 퀵스탭 등이 있다. ‘파도치듯 떠오르고 내려간다’는 의미를 지닌 왈츠는 우아한 멋을 즐기는 40대 이상 중년남녀에게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왈츠에 비해 비엔나왈츠는 속도가 빨라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난해 상영된 ‘탱고’를 본 뒤 댄스스포츠를 배우게 됐다”는 4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정열적이고 환상적인 탱고가 마음에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벌써부터 마음속에 은밀한 꿈을 키우고 있다. “정년퇴직한 뒤 탱고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에 가보고 싶다. 여행도 즐기고, 바에서 멋지게 탱고를 추면 근사할 것 같다.”

20대부터 40대 이하 연령층이 즐기는 라틴댄스는 룸바, 삼바, 차차차, 파소도블, 자이브가 있다. 환상적인 리듬과 동작을 가진 룸바는 여성댄서의 춤사위가 특히 매력적이다. 쿠바에서 유래한 차차차는 라틴댄스 중에서 가장 사랑 받는 춤이다. 삼바 춤을 추다 허리를 다친 경험이 있는 전직 교사 출신의 60대 남성은 “그래도 삼바가 좋다. 율동이 생동감 넘친다”고 귀띔한다.

‘사교춤’으로 불리는 댄스스포츠 종목은 아니지만 ‘춤’에 대한 중·장년층 남성들의 묘한 거리감은 재즈댄스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재즈댄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곽용근 원장에 따르면 “30대후반부터 50대까지 재즈댄스를 배우러 오는 남성이 최근 부쩍 많아졌다. 5월 이후 갑자기 늘었는데 아마 영화 ‘쉘위댄스’의 영향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강남 일대 두 세 곳에 불과하던 댄스스포츠 학원이 지난 1∼2년 사이 10여개로 늘었다”고 한다. 스스럼없이 ‘사교춤’을 배우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곽 원장은 “아직까지 중년 남성들은 또래 주부들에 비해 체면치레를 많이 하고 숫기가 부족하다. 수강기간 한 달을 못 채우고 슬그머니 빠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신 여성을 빼고 자기들끼리 팀을 짜서 단체교습을 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수나 대기업 간부 등 몇몇 남성회원들은 개인레슨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연말이나 휴가철이 되면 회원들의 특별레슨 요구에 시달린다는 곽 원장. “연말에는 파티장에 가서 멋지게 춤추고 싶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강남 일대 30대 부부들 사이에선 춤을 포함한 파티문화가 한창 성행하고 있다.”

국내 부부 댄스스포츠모임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파라클럽’은 해마다 연말이면 시내 특급호텔 연회장을 빌려 댄스파티를 연다. 지난해 12월 이 모임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홍경식·변종진 부부는 “이때가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댄스 마니아 부부들이 모여 들어 성대한 춤의 향연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서울 근교 리조트를 빌려 1박 2일에 걸친 야외무도회를 갖는다. 회원으로 가입하기 전 게스트로 초대된 적이 있는데, 그때 약 50쌍 정도 모였다. 음악에 맞춰 서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춤도 추고 자유롭게 대화도 나누고…. 정말 천국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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