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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궁전’의 고단한 일꾼 웨이터·웨이트리스

성희롱 시비·파업으로 얼룩진 특급호텔의 겉과 속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화려한 궁전’의 고단한 일꾼 웨이터·웨이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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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달 남짓 계속되고 있는 일부 특급호텔의 파업 사태. ‘배부른 짓’이라 보기엔 속사정이 만만찮다. 군대식 조직, 자의적 인사, 만연한 성차별 관행…. 화려함 뒤에 숨은 그들의 누추하고 고단한 일상.》
‘그녀는 아름답다. 스물 셋, 버찌꽃 같은 젊음. 아름다운 그녀는 세련되고 단정하다. 귓불에서 반짝이는 작고 동그란 귀고리. 걸음걸이도 완벽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아름다운 그녀는 직장도 근사하다. 별 다섯 개 달린 특급호텔. 아니, 직장이 근사해 더 아름다워보이는 걸까. 어쨌든 오후 3시, 느지막이 일어난 그녀는 공들여 화장을 하고 평범한 집을 벗어나 ‘꿈의 궁전’으로 향한다. 고급이 아닌 것, 번쩍이지 않는 것, 비싸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꽃과 미소와 대리석의 향연. 밤 12시 마법이 풀릴 때까지, 화장실 변기마저 오리지널인 그곳에서, 그녀는 내내 공주처럼 우아할 것이다….’

TV가, 혹은 영화가 보여주는 호텔 직원들의 깔끔한 일상. 그러나 정작 현실 속 그녀의 한나절은 대체로 누추하고 고단하다. 작은 손등 위로 도드라진 힘줄, 티눈 박인 발바닥, 하인 부리듯 하는 막돼먹은 손님들과 선임하사처럼 무서운 선배. 정식 직원이 아니어서 겪는 설움이며, 높아진 눈 높이를 받쳐주기엔 너무 얇은 월급봉투는 또 어떤가.

두 달 남짓 파업중인 특급호텔 노조원들에게 대다수 언론과 국민들은 “나라 망신 다 시킨다” “배부른 소리 그만 하라”며 모진 타박을 주었다. ‘아름다운 그녀’와 ‘잘난 그 남자’ 들은 왜 살벌한 노동가(勞動歌)로 손님 쫓는 짓을 계속하는 걸까. 혹 그들의 매일이 노래보다 더 생경하고 아슬아슬한 까닭은 아닐까. 불거져 나온 성희롱 사건은 조직 탓인가, ‘그녀’들 탓인가.

서울 시내에는 모두 13개의 특급호텔이 있다. 호텔마다 적게는 700여 명, 많게는 30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한다. 전체 인원의 40% 정도가 식음료부에 집중돼 있다. 바, 라운지, 레스토랑 등을 관리·운영하는 부서다. 객실 관리부, 조리부가 그 뒤를 잇는다. 인사·총무·홍보 등 영업 지원 부서들은 대개 ‘사무실’이란 이름으로 통칭된다. 업무 성격이 확연히 달라 부서간 인사교류는 거의 없다.

실력만큼 중요한 외모 관리

고객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호텔 직원은 말할 것도 없이 식음료부의 웨이터, 웨이트리스다. 대부분 전문대 이상에서 관광학을 전공한 전문 인력들이다.

호감가는 외모에 늘 깔끔한 이들은 때때로 엄혹한 우리 노동시장에서 ‘선택받은 소수’로 여겨진다. 쾌적한 근무 환경, 최상류층과의 일상적 ‘교류’, 어쩐지 많을 것 같은 연봉. 선진 업종인만큼 조직 문화도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리라.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최고가 되고 프로로 인정받을 수 있을 듯한 분위기. 게다가 모두 세련된 선남선녀들, 그 속에서의 생활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글쎄요, 사무실 쪽은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니에요. 일 고되고 스트레스도 많구요. 밖의 사람들은 몰라요. 겉으로 뵈는 건 다 번쩍번쩍 화려하기만 한 걸요.”

A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일하는 김미경(가명·27)씨. 지방 전문대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95년 초 A호텔에 입사했다. 그러나 이 곳이 첫 직장은 아니다. 대개의 관광 관련 학과 학생들이 그렇듯 김씨도 2학년 때인 1994년, 산학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방도시 특급 관광호텔에서 ‘현지 적응훈련’을 마쳤다.

“호텔에 대한 환상을 깨는 거죠. 선배들이 아무리 말해줘도 잘 몰라요. ‘그래도 호텔인데’ 하고 생각했다간 실망만 더 커져요. 정말 살벌하거든요.”

재떨이 비우고 접시 닦고 쓰레기 버리고 청소하고…. 단순하고 힘겨운 노동의 반복 또 반복. 실습중에 일찌감치 호텔맨 되기를 포기해버리는 학생도 적지 않다.

“늘 꼭 죄는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어야 하죠. 일이 많은데다 종업원은 업장에선 앉아있을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하루 8시간, 10시간씩을 서서 보내야 해요. 발가락 모양은 엉망이 되고, 그 때문에 여덟 번이나 티눈 수술을 한 선배도 있어요. 저만 해도 무거운 접시 들고 종종 걸음 치느라 오른쪽 팔뚝만 남자처럼 근육질이 돼 버린걸요.”

그래서 웨이터, 웨이트리스 중에는 허리가 아프다, 무릎이 시리다는 호소를 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업장 근무자들은 그외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상당히 많다. 먼저 외모와 관련된 것들. 여성의 경우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목걸이, 달랑거리는 귀고리, 결혼예물을 제외한 반지, 팔찌나 화려한 머리장식물 등은 착용할 수 없게 돼 있다. 매니큐어나 지나친 염색도 금물. 립스틱 색깔까지 회사에서 지정해 준다. 남성도 여성 못지 않게 깔끔해야 한다. 과음으로 얼굴이 엉망이거나 입에서 술냄새라도 날라 치면 선배들의 질책을 피할 수 없다.

몸매 관리도 중요하다. 웨이터, 웨이트리스의 유니폼 사이즈는 한정돼 있다. 특히 여자 쪽은 마른 편이 아니면 입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래서 출산 후 직장 복귀가 눈앞에 다가온 여직원들에게 지상 과제는 다이어트다.

싫은 손님은 장관 국회의원 검사

김씨는 “출근일까지 옛 몸매를 회복하지 못해 담당 매니저에게 ‘한 달만 봐달라, 그 때까지 다 빼겠다’고 사정하는 언니도 봤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런만큼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호텔 업장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호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마스크(얼굴)’다. 로비 라운지에는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 나이트클럽은 화려하고 서구적인 얼굴, 중식당은 동양적 미모 등 업장 성격에 따라 선호하는 ‘마스크’도 다 다르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간 엄수다. 지각 세 번이면 ‘경고’에 처해질 정도다. 호텔에 따라서는 수당 지급에 반영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고 시간관념이 투철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직장이다.

그렇다고 호텔 종업원들이 ‘몸’만 쓰는 것은 아니다. 영어, 일어 회화는 필수. 1년에 한 번씩은 토익 또는 회사 자체에서 출제한 문제로 영어 시험을 쳐야 한다. 새로운 음료, 요리에 대한 지식도 그때그때 익혀야 한다. 특히 바(BAR) 근무자는 수백 가지 주류·음료의 이름과 성분, 아울러 그를 조합한 수십 가지 칵테일을 자유자재로 제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나 업무 습득의 어려움은 정신적 부담에 비하면 오히려 견딜 만한 것이라 한다.

B호텔 프랑스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이정민(가명·25) 씨는 “손님 대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생떼를 쓰거나 여직원이라고 성희롱에 가까운 추파를 던질 땐 정말 이 직업에 회의가 들죠.”

B호텔 직원들은 중견 방송인 K씨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직원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호칭은 대개 “야!” 또는 “아가야”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여직원들의 외모를 일일이 품평하는가 하면 밖에서 특정 웨이트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라, 오늘 나랑 저녁 먹자”는 말도 한다. 때론 너무 심하다 싶어 정중히 항의하고 싶지만 K씨와 호텔 경영진의 오랜 친분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다. K씨의 해코지가 두려운 까닭이다.

검사장 출신 국회의원 L씨는 폭탄주 제조용 잔을 빨리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비스 중인 중식당 직원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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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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