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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분신 30년 인생을 바꾼 사람들

  •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전태일 분신 30년 인생을 바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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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스물세 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 그의 죽음은 침묵을 강요당하던 노동자들의 의식을 깨웠다. 그의 삶은 노동자들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그의 죽음은 본격적인 노동운동의 서곡이 됐다. 전태일의 분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민주화 투쟁의 밑거름이 됐다. 그가 떠난 지 30년. 전태일과 더불어 청춘을 불살랐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는 민주열사 묘역이 있다. 평범한 공동묘지였던 모란공원이 민주화의 성지로 변모한 것은 30년 전의 일이다.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스물세 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이곳에 묻히면서부터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시위 도중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그때만 해도 전태일의 분신이 한국 노동운동의 ‘불꽃’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태일이 분신한 지 2주 만에 결성된 청계피복노동조합은 70~80년대 노동운동의 ‘신화’였다. 경제개발 과정에 희생만을 강요당했던 노동자들의 처참한 실상이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전태일 사건은 노동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른 시발점이었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공장 담벽을 넘어 세상 밖으로 진출한 계기였다.

전태일의 분신은 한 시대의 충격이었다. 그의 죽음은 70년대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전태일의 뒤를 이어 노동운동에 투신한 사람들, 재야에서 활동하다 정치권으로 진출한 사람들, 뒤늦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인생을 바꾼 사람들…. 그들은 30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형의 뒤를 따른 동생 전태삼

전태삼(51)씨는 전태일의 동생이다.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최후의 선택을 준비하던 무렵 태삼씨는 3개월간 용문산에 들어가 있었다. 태삼씨도 형을 닮아 공부에 대한 욕심이 컸던 탓인데, 당시 전태일은 동생이 공부하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태삼씨는 “형이 무언가 결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1시간이나 말을 못하고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형은 나에게 어머니와 가족의 일을 맡기려 했다”는 말로 전태일의 의중을 헤아렸다.

전태일은 분신하기 얼마 전 용문산에 머물고 있는 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보다 남을 높이 평가하고 존중할 수 있는 생각과 사상을 공부하는 데 기초로 삼아라.’ 이때부터 며칠간 태삼씨는 낮이나 밤이나 형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고 한다.

태삼씨가 명동 성모병원에 도착했을 때 형 전태일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태삼씨는 붕대로 감아놓은 형의 주검 앞에서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형, 이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거야? 이제 됐어 형?”

태삼씨는 한동안 학업에 열중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1년씩 다녔을 뿐 한번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태삼씨는 전태일의 친구들로부터 청계 평화시장의 실상을 접하면서 달라졌다. 태삼씨는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형이 못다한 일을 이루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태일처럼 재단보조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그는 ‘김흥택’이란 가명을 썼다.

태삼씨는 81년 신군부에 의해 청계노조가 강제 해산당하면서 구속됐다. 춘천교도소에서 보낸 2년여의 징역생활. 태삼씨는 “형의 뜻을 잇는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털어놓았다.

83년 출소한 태삼씨는 취직과 해고를 반복하며 청계천 주변을 떠돌았다. 가족의 생계문제도 시급했다. 아내와 삯바느질을 시작해 작은 공장도 마련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수표를 빌려주었다가 부도를 맞았다. 그때의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서울 쌍문동에 있는 그의 집엔 붉은색 가압류 딱지가 가득했다. 아파트도 이미 가등기로 넘어간 상태다.

비록 집안은 어려워졌지만 형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형이 있었기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비록 형처럼 ‘움막’을 치고 살지만 한번도 삶의 좌표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 태삼씨는 다만 “어머니를 편히 모시지 못한 것이 형에게 미안할 따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노동문제 연구하는 전순옥씨

전태일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전순옥씨(45)는 10년째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고학하고 있는데 최근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전공은 역시 노동문제. 순옥씨는 최근 “오빠의 30주기 추도식에 졸업장을 바치겠다”는 말을 했다고. 순옥씨는 앞으로 노동운동에 종사하면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할 계획이라고 한다.

막내 동생 순덕씨는 한때 청계천에서 저소득층 빈민 자녀들을 위한 놀이방을 운영한 적이 있다. 순덕씨는 현재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회 일을 거들고 있다. 순덕씨의 남편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현재 녹색연합 사무처장으로 있는 임삼진씨.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임여진양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1968년 6월.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재단사 친구들과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전태일은 창립총회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있는데도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바보처럼 찍소리 못 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는 바보들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날 의기투합했던 친구들은 초창기 청계피복노조의 주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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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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