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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조기유학 열풍

“영어 배우러요? 교육환경이 싫어서 떠납니다”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영어 배우러요? 교육환경이 싫어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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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익히려는 게 아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환경이 싫다. 이렇게 선언하며 한국을 떠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외국에서 선진문물을 배워 조국에 이바지한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한국의 공교육은 어쩔 것인가. 정부도 뾰족한 수가 없다. 그 실태와 대책을 취재했다.
서 울 목동 아파트에 살고 있던 중산층 주부 안아무개씨(35)는 지난 8월18일 아들 세 명을 데리고 호주로 이주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세 아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큰아들은 중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막내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안씨는 3∼4년 전부터 막연하나마 아들 삼형제를 외국에서 공부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영어 회화 공부를 조금씩 시켰다. 조기 유학 계획은 큰아들 김민영군(가명·13)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구체화되었다. 김군은 성적이 뛰어난 편이었으나, 그다지 소질이 없는 과목에도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또 막상 중학교에 들어가니, 중간고사다, 기말고사다 해서 어린 아들이 파김치가 되는 것이었다. 이곳 저곳 과외 학원을 다니다 보면 김군은 밤 12시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안씨는 중학교 때부터 하루 4~5시간씩 잠을 자야 일류대학을 갈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아이가 보기 안쓰러웠다. 그 시간이면 훨씬 창조적인 일에 매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안씨는 소아과병원 원장인 남편과 상의해서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들을 혼자 외국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인 안씨가 유학비자를 내고 아이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남편은 한국에 남아서 의사일을 계속하며 가족 뒷바라지를 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남편 김씨는 어떻게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렸느냐는 질문에 분명한 이유를 댔다. 첫째는 한국 교육이 너무 획일화되어,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학급수도 너무 많고, 학생 수에 견주어 교사 수도 적고, 질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촌지를 바라는 교사와 어머니의 학교 기여도에 따라 학생 등급이 가려지는 현실에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공립 초등학교와 사립 초등학교를 번갈아서 보내 보았지만 이런 상황은 똑같더라는 것이다.

김씨는 학교 주변환경도 지적했다. “학교 주변에 온갖 술집과 러브호텔이 꽉 차 있지 않은가. 이런 교육환경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나쁜 데 물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한국 정치가와 공무원은 나쁜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키려는 마음 자세가 없다.”

그는 이어서 호주와 한국의 교육환경을 비교했다. “호주 시드니에도 유흥시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와 주택가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런 시설이 없다. 호주는 아예 어린 아이들이 이런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공부를 시킨다고 말했다. 어릴 때에는 이런 교육보다도 사회 규범 교육, 도덕 교육이 중요한데, 성적 위주, 1등 위주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런 교육 환경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기 자식들이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 싫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안씨는 교과서와 수업 내용 차이까지 거론했다. “한국의 산수 교과서는 한마디로 수학 경시대회용이다. 세계 평균 수준보다 너무 어렵고 시험 위주로 만들다 보니 아이들이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 보니 수학 교과서가 너무 재미있고 쉽게 짜여 있다. 내용도 실생활과 연관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식이니 관심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차츰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 부부의 큰아들은 한국에서는 중학교 1학년이었으나 학기가 맞지 않아 시드니의 공립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했다. 김군이 속한 학급에는 학생이 30명이라고 한다. 시드니에 온 지 두 달쯤 된 김군은 “영어가 서툰 아시아 아이라고 해서 따돌리고 욕하는 아이는 전혀 없다. 잘 도와주고 같이 놀아준다. 호주는 좋은 점이 많다. 일단 한국처럼 서로 경쟁하듯 공부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김군은 본인이 원해 호주로 유학한 경우다.

최근 들어 조기유학의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유학 연령층도 갈수록 낮아져 이제는 초등학생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98년 이후부터는 해외연수를 다녀온 초등학생이 크게 늘었으며, 이민이나 유학을 위해 자퇴하는 초등학생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국회 교육위 소속 이재정 의원(민주당)은 최근 서울 강남구 등 6개구를 상대로 초등학생 해외 유학·연수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 겨울방학 중 해외연수를 다녀온 학생은 218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올 여름방학에는 1023명으로 늘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조기유학 서울강남에 집중

이 자료에 따르면 해외연수를 위해 방학을 전후로 장기 결석을 한 학생도 98년 79명에서 99년에는 13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9월 말 현재 198명이나 된다. 또 해외 연수 및 국제학교로 전학하기 위해 자퇴한 학생도 98년 179명, 99년 215명, 올 9월 말 현재 162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조기유학 열풍이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 서울만 해도 강남지역의 학교들에서 이런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서울지역에서 올 여름방학중 해외연수를 한 초등학생 1023명 가운데 강남구(303명), 서초구(231명), 송파구(299명) 등 3개구에 사는 학생은 833명인 데 비해 구로구(69명), 금천구(55명), 도봉구(66명) 등 3개구에 사는 학생은 19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학생들의 해외연수 지역은 북미·호주 등 대부분 영어권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어학연수가 조기 영어교육을 위한 것이며, 조기 유학이나 국제학교로 편입하기 위한 준비단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부 외국어고교의 경우에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외국대학으로 곧장 진학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 학교들이 편성한 ‘유학반’이 바로 그것이다. 이 학급에서는 일반 학생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친다. 이는 대상 학생이 우수 학생이란 점에서 국내 명문대 합격을 최고로 여기는 학부모와 고교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리는 것이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의 ‘해외유학반’에서는 일주일에 4일 동안 방과 후 3시간씩 토플과 ‘SAT’를 가르친다.

이 학급은 인성과 품성, 일정 정도 이상의 어학 능력과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뽑아 미국 하버드, 프린스턴 같은 아이비리그와 명문 주립대학 입학을 목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 학교의 유학반이 인기를 끌자 서울의 또 다른 외국어고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학부모로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미국이 가장 인기

현재 조기유학 대상국은 미국·캐나다·영국·호주 등 주로 영어권 국가들이다. 지원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순이다. 미국은 한국의 조기 유학생이 가장 많이 몰리지만,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나라다.

미국의 학교는 크게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나뉜다. 공립학교는 국가나 주에서 지역주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학교이며 대부분 미국 학생들이 다닌다. 수업료는 없으며 학교 근처에 사는 가정의 자녀들이 통학하므로 기숙사 시설은 없다. 일부 극소수 학교를 빼고는 공립학교는 외국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따라서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입학허가서(I-20)를 발행하지 않으므로 한국 유학생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또 현재 미국 이민법이 강화되면서 공립학교로 전학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영주권이 없는 한 사립학교를 보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명 사립학교는 수업료가 지나치게 많은데도 미국 전 지역 또는 외국으로부터 학생을 모으고 있다. 사립학교는 외국학생에게 입학허가서를 발행하므로 한국학생들이 정식 학생 비자를 받고 유학할 수 있는 학교다. 기숙사를 갖춘 사립학교들은 ‘버딩스쿨(Boarding School)’이라고 하며, 대부분 대도시에서 떨어진 조용한 소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전원적인 분위기의 넓은 캠퍼스에서 풍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 대 학생 비율은 대개 1:6에서 1:12 정도로 매우 낮아 소규모 수업이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 관계가 밀접하므로 학생 개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고 규율은 비교적 엄격한 편이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학비가 만만치 않다. 기숙사비를 포함한 경우 1년에 적게는 미화 2만 달러에서 2만5000달러 정도 든다. 또 미국에는 불법 체류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감당하지 못하면 미국에서 공부하지 못한다. 또 비자를 얻는 과정에 미국은 이런 조건을 면밀히 심사해서 자격 요건이 모자랄 경우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외국인들은 원칙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사립학교만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가 학생비자 신분으로 유학을 가거나, 영주권을 얻으면 자녀들에겐 학비가 무료인 공립학교에 갈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그래서 이를 편법으로 이용하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유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집에서 살림하던 어머니들이 자녀 조기유학을 위해 갑자기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비자 거절률이 낮고, 학비도 미국보다 싸다. 또한 미국과는 달리 모든 학교는 아니지만 일부 공립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가능하다. 캐나다에는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공립학교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인 ESL을 둔 곳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정책을 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건이 미국보다는 유리하다.

영국은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비자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할 때 입학허가서, 여권, 체류지 주소, 학비 송금 영수증, 잔고 증명서 등을 영문으로 내면 즉석에서 학생비자를 발급해준다. 하지만 영국은 비용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미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유학정보업체인 ‘지오넷’의 노유정 과장은 “조기유학 상담 대상국은 대부분 미국이며, 비용상 문제가 있거나 비자에 문제가 생기면 캐나다로 돌린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와 뉴질랜드는 캐나다보다도 비용이 싸고, 그중 뉴질랜드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유학 추세는 해가 갈수록 연령층이 낮아지는 추세다. 노과장에 따르면 IMF 이전에는 주로 고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 가끔 있는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초등학생 중심으로 문의가 들어오고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97년 이전에는 아무래도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의사나 임대업자 같은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주로 조기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일반 봉급생활자 같은 서민층에까지 그 대상이 넓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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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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