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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조종사의 生과 死

  • 이정훈hoon@donga.com

항공기 조종사의 生과 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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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항기 기장들이 파업을 벌였다. 하늘에서는 그 누구보다 막강한 ‘창공의 대통령’이 지상에 내려와 ‘노동자’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왜 노조를 만들었는가. 밤 하늘을 가르는 민항기 조종실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조종실의 분위기는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조종사들의 세계를 벗겨본다.
기자는 이런저런 출장으로 비행기를 자주 탄다. 민항기는 물론이고 헬기와 군 수송기를 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항공기와 조종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 민항기 조종실에는 뒤에서 봤을 때 왼쪽에 기장석, 오른쪽에 부기장석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빈 의자가 하나 있는데, 과거 항법사가 앉던 자리다. 지금은 자동항법장치가 그 일을 대신해 빈 자리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기자는 이 자리에 앉아 서울-제주를 왕복한 적이 있었다. 지난 9월에는 지중해 연안 이스트르에 있는 프랑스 공군 기지에서 파리 외곽의 오를리 공항으로 오는 다쏘항공의 팰컨항공기 조종실에도 탑승하였다.



황홀한 스펙터클



조종실에서는, 가끔 조그만 객실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시원한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조종실에서 바라본 풍광 중 기억나는 것은, 제주에서 서울로 올 때 본 것이다. 아직 달이 뜨지 않은 아주 맑은 밤이었다. 달빛이 없으니 하늘에서는 별들이 마음껏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산이나 논밭으로 추정되는 지상에서는 불빛이 올라오지 않았다. 반면 대도시 위를 지날 때는 별빛보다 더 크고 황홀한 빛이 올라왔다.

그러다 한 도시 상공을 지날 때 레이저 쇼처럼 아주 크고 밝고 화려한 빛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했다. 비행 시간으로 따져보니 대략 대전쯤인 것 같았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야간 경기가 열린 모양이었다. 야간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은, ‘철석같이’ 라이트가 운동장을 비춘다고 믿겠지만, 조종실에서 본 경기장은 하늘로 빛을 내쏘는 거대한 화등잔이다. UFO를 타고 처음 지구로 접근하는 우주인이 있다면, 이것을 ‘아름다운 지구의 눈’ 혹은 지구인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주로 내쏘는 ‘탐조등’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때마침 여승무원이 커피를 갖고 조종실에 들어왔다. 그녀도 이 빛덩어리를 봤는지, “어머-. 정말 멋있다!”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자는 황홀함에 도취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객실 승무원들은 여간해선 이러한 광경을 보지 못한다. 오직 조종실에 탑승하는 기장과 부기장만이 이 장관을 즐길 수 있다. 이들은 10㎞ 상공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따라 서녘 하늘로 ‘선 셋 크루즈(sun set cruise·일몰 비행)’를 한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태양 빛이 얼마나 찬란할 것인가. 그래서 조종사들은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태양 빛(Ray)을 차단(Ban)하는 ‘레이밴(Ray Ban)’을 쓴다. 이 레이밴을 일본인들이 ‘라이방’으로 읽었고,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 선글라스를 ‘라이방’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종사들은 결코 폼으로 레이밴을 쓰는 것이 아니다.

전투기를 조종하는 사람을 조종사라고 하는데 비해, 민항기를 조종하는 사람은 기장 또는 부기장이라고 한다. 항공법 제50조는 기장을 항공기 비행에 대해 책임지는 자로 항공기 안의 모든 승무원을 지휘 감독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조종사는 영어로 ‘파일럿(pilot)’으로 불러도, 기장은 대장이라는 뜻을 가진 ‘캡틴(captain)’으로 부르는 것이다. 태극기를 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장은 항공기의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 때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대신해 항공기 안에서의 질서를 유지할 권한과 책임을 갖는 ‘창공의 대통령’이다.

기장과 부기장은 항공사에 따라 색깔과 모양이 약간씩 다른 제복을 입는다. 그러나 제복 소매와 어깨 위 견장에 금줄을 치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금줄이 네 개면 기장이고, 세 개면 부기장이다. 기장·부기장들은 하나같이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다닌다. 이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담배를 좋아하는 기장이라면 담배를, 외국으로 나가는 국제선 기장이라면 양말도 집어넣겠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항공기 매뉴얼이 들어 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조종술을 사용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기장·부기장은 어디를 가든 반드시 매뉴얼을 갖고 다닌다.



아찔한 수막 현상



기장·부기장의 세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무래도 객실 여승무원들이다. 기장을 보좌하는 부기장 중에는 총각이 적지 않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기장·부기장의 연봉은 상당한 수준이다. 게다가 외국 생활을 한 경험도 많아 매너까지 세련돼 있다. 이러한 총각을 예쁜 처녀 승무원이 가만히 둘 것인가? 이런 이유로 총각 부기장 중에는 여승무원과 연애해 결혼하는 이가 적지 않다.

캡틴의 세계가 항상 우아하고 품위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찔한 위기 상황에 접할 때도 적지 않다. 지난 9월21일 프랑스 이스트르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 오는 팰컨항공기 조종실에 탑승했을 때의 일이다. 이미 해는 져서 깜깜한데, 짙은 안개가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비까지 뿌렸다. 조종실 앞유리창에도 와이퍼가 달려 있다. 이 와이퍼는 유리창에 붙는 빗물을 힘차게 훔쳐주건만 정작 유리창 앞은 깜깜하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팰컨항공기는 오를리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춰갔다.

조종사들은 이착륙을 할 때 가장 긴장한다. 착륙 직전 항공기는 매우 천천히 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생각밖으로 빨라서 시속 350㎞ 내외에 이른다. 착륙 바퀴를 접지시키는 순간의 속도도 시속 250∼300㎞다. 한참 고도를 낮추었는데도 오를리 공항의 활주로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조종실에서 너무 굵어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리 헌드레드” 잠시 후 다시 “투 헌드레드”라는 소리가 이어졌다.

모든 민항기 조종실에는 항공기가 지상에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고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동으로 고도를 읽어주는 장치가 있다. 조종사가 아무런 조취를 취하지 않아도, 300피트(약 100m)까지 내려가면 “스리 헌드레드”, 100피트로 내려가면 “원 헌드레드”, 50피트에 이르면 “피프티” 식으로 녹음된 중년 남자의 저음이 터져 나온다. 이 소리는 매우 크고 음산해서 깜박깜박 졸던 조종사라도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다.

“원 헌드레드”를 부를 때까지도 보이지 않던 활주로 불빛이 “피프티”를 외치기 직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타났다. 언제 안개가 있었냐는 듯 활주로 불빛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잠시 후 “쿵” 소리를 내며 팰컨항공기가 착륙했는데 그 순간 살짝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객실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으나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기자는 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기장은 그 순간 재빨리 바퀴 방향을 틀어 팰컨기가 활주로 정중앙을 달리도록 했다.

기자는 이러한 미끄러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활주로를 빠져나와 천천히 주기장(駐機場·항공기를 세워 놓는 곳)으로 달릴 때쯤 기장을 향해 “유 슬라이딩(You sliding·당신 미끄러졌지)”이라고 말을 걸었다. 프랑스인 기장은 그 뜻을 알아듣고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댓스 라잇(That’s right·당신 말이 맞아요)”이라고 대꾸했다. 팰컨항공기가 미끄러진 것은 ‘수막(水膜) 현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이 흐르는 활주로에 고속으로 달리는 항공기 바퀴가 닿는 순간, 얇은 물의 막이 생기는 데 이를 수막 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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