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우리시대 '입담가' 8인의 자화자찬

  • 입력2005-05-02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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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심전력으로 진심을 전합니다”

    정보통신 담당 기자들을 대상으로 벤처기업 사장 인기투표를 한다면 누가 1등을 차지할까? 아마 안철수 소장(안철수연구소)일 것이다. 그는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 그중 만만찮은 수의 기자들은 그를 ‘존경’하는- 벤처기업인이다. 또, 한 인터넷 컨설팅업체가 지난해 말 벤처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안 소장은 압도적인 비율로 ‘가장 존경하는 CEO’ 1위에 올랐다. 부침 많은 벤처업계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곧 ‘브랜드’인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나 인터뷰해 본 사람은 안다. 그가 얼마나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지를. 그는 상대 매체가 일간지든 월간지든 방송이든 기업 사보든 한결같이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기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열 번 받아도, 똑같은 대답을 조금도 귀찮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없이 말해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안철수 소장이다. 그의 ‘말하기’ 요체는 이렇듯 ‘진심’과 ‘한결같음’에 있다.

    신문기자, 잡지기자, 방송기자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으로 그를 인터뷰했다면 그 결과물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99% 이상 똑같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당연하지 않으냐고,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 자신을 다채롭게 포장하고 연출하려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안철수씨의 경우는 고지식할 정도로 그러한 연출이나 포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상대를 가려 말하지 않는다. 가식도 없고 연출도 없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그의 말은, 사실 재미는 별로 없다. 네, 네, 하는 또박또박한 대답이나 반듯하게 앉은 자세, 정확한 발음으로 구사하는 표준어와 교과서를 읽는 듯 정연한 말투 등은 ‘모범생’의 표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의 총체는, 의외로 더없이 강력하게 듣는 이를 몰입시키고 설득한다. 바로 그 안에 ‘진심’ 또는 ‘진실’이 또렷하게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좀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아직도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력해야지요.”

    역시 진부한 이야기, 교과서에서 만났을 법한 수사다. 하지만 그것이 안소장의 입을 통해 나오면 조금도 진부하지 않은, 도리어 신선하고 감동적인 울림으로 전달된다. ‘성실’과 ‘정직’이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자신의 말과 일상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김상현 한경닷컴 기자

    ▶염진섭 (야후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준비된’ 말은 실패가 없다”

    염진섭 사장은 벤처업계에서도 ‘말 잘하는’ CEO로 꼽힌다. 달변에다가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이 때문에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은 물론, 외부 강연에도 단골로 초대되곤 한다. 그리고 그에겐 ‘말 잘하는 CEO’라는 수식어에 또 한 가지 ‘늘 공부하는 CEO’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이것이 그의 ‘말 잘하기’의 성격을 잘 규정한다.

    그의 말은 매우 논리적이고 직설적이며 때로는 신랄하다. 에두르지 않는다. 한 대기업 특강에서 임원들에게 그가 날린 직격탄은 그 회사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e-메일 못쓰는 임원, 비서가 e-메일을 프린트해주는 임원, 고객의 e-메일을 받고 일주일 만에 답장쓰는 임원은 당장 사표를 내십시오, 했더니 장내가 썰렁해지더라구요. 그래도 그게 제 생각인 걸 어떡합니까?” 한 유력 신문사 특강에서도 “인터넷에서는 야후코리아가 ○○일보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 신문사 임원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는 말할 때 상대의 상식을 깸으로써, 상대가 불편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보통신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 중에 그를 껄끄러워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미리 잘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가는 곤란해지기 쉽다.

    여기에서 ‘곤란해진다’는 것은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면박당한다거나 무시당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 내가 좀더 조사해 보지 않은 채 섣부르게 질문했구나’ 하고 기자가 스스로를 질책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는 언제라도 서너 개의 근거 자료를 제시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인터넷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그 나름의 분석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준비된 말’이기 때문에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발화(發話)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뛰어난 언술은 상당부분 남독(濫讀)에 가까운 책읽기에서 나오는 것같다. 그는 “10권을 한꺼번에 보는 스타일”이다. 기자가 그를 만났을 때도 그의 책상 위에는 ‘메타캐피털리즘’ ‘단순함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같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지난해 11월, 12월에는 죽도록 술만 마셔서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었다”고 엄살을 떠는 염사장이지만 매달 평균 5∼10권은 완독한다는 게 주위의 귀띔이다.

    “스톡옵션이 휴지조각이 돼도 직원들이 남아 있도록 하는 게 비전이고, 그것을 만드는 게 CEO의 몫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고, 제대로 된 비전도 나올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항상 ‘준비된’ CEO가 들려주는 명쾌한 CEO론이다.

    김상현 한경닷컴 기자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게 비결이죠”

    경제평론가 김방희(36)씨는 MBC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 ‘손에 잡히는 경제’를 매일 25분간 진행한다. 명확하고도 유려한 말솜씨와 침착하고 편안한 진행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98년 4월 전임자인 엄길청씨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으면서 증권과 부동산, 생활경제 위주의 프로그램에 인터넷과 뉴미디어 분야를 강화하며 시대의 흐름을 타는 변화를 시도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증권사 경제연구소를 거쳐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서 10년간 경제분야를 담당하다 방송계에 입문한 기자 출신. 그때는 ‘글’이 사실을 보도·분석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말’이 그 본령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저희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서울대 정운찬 교수는 원래 방송을 꺼리는 분입니다. ‘글은 퇴고할 수 있지만, 말은 한번 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공중파를 30여분이나 맡아 한다는 데 대해 굉장히 걱정이 많았습니다. 뭘 얘기하든 중요하게 들릴 텐데 잘못하면 어떡하나, 뭐 이런 두려움이었죠. 하지만 한두 마디 실수할 수는 있더라도 진심으로 얘기하면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있게 임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방송원고를 써서 PD와 마주앉아 말의 고저장단을 원고에 표기하며 연습하기도 했고, 6개월 정도 방송에 맞는 발성을 익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인 아나운서나 앵커를 닮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제가 벤치마킹하는 사람은 CNN의 래리 킹입니다. 그 사람은 그리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별로 좋지 않죠. 하지만 인터뷰에서 한가지 질문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 바로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만한 질문을 정확하게 던져요. 정말 본받고 싶은 부분이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선 이런 스타일이 아직 잘 통하지 않지만요(웃음). 한편 오프라 윈프리는 논리적인 인터뷰 스타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듣고 자기화해서 거기에 몰입하는, 말하자면 심성 따뜻한 정신과 의사같은 분위기를 풍기죠. 이건 저에겐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과 관련해 김씨가 가장 중시하고 고민하는 부분은 테크닉이 아닌 ‘진심’을 담는 방법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참 많습니다. 다만 ‘진심’을 전달하는 데는 그리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화려하고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 말하는 것은 얼핏 그럴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결국 듣는 이의 뇌리에는 그 내용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잖습니까?”

    또한 그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말할 때 논리적인 귀결을 찾는 능력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몰입하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천편일률성’과 ‘유머감각의 부족’도 흔한 병폐로 꼽았다.

    “게다가 말이란 게 묘미도 있지만 함정도 있어요. 우리 나라에선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해당분야의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라기보다는 ‘연예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죠. 또 말을 잘 하는데 몰두하게 되면 거기에 빠져 말로 모든 걸 때우려는 우도 범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다시 글을 쓰고 있어요.”

    김씨가 ‘말하기’에서 최우선으로 주는 충고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면 말을 잘 할 수도 있다’는 것. 덧붙여 테크닉을 배우고 싶다면 신문이나 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권한다.

    “어릴 때부터 말과 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닌데,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며 혼자서 신문이나 영어잡지, 책을 소리내어 읽곤 했어요. 이것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고 봅니다. 또 책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좋은 소재를 무궁무진 제공하기도 하죠.”

    한 권을 읽고 다음 권을 시작하는 식이 아니라 한 주에 서너 권을 ‘동시발주’해 책을 읽는 게 그의 독서스타일. 게다가 경제나 방송 부문에 한정하지 않고 고고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것도 특징이다.

    김씨는 경인방송에서 ‘휴먼파워, 벤처코리아’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투명한 기업경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고, 방송대 위성 텔레비전에서 ‘21세기 한국경제의 전망’이라는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 1999년에 출시된 ‘손에 잡히는 주가’ 비디오에 출연하는가 하면, 현재는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김방희의 경제읽기’라는 칼럼을 연재중이다. 또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자문위원도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영신 자유기고가

    “내 사전에 ‘당황’은 없다”

    하일성 KBS 야구 해설위원은 애드립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곧잘 허구연 MBC 해설위원과 비교된다. 학벌이나 야구선수로서의 경력에서 허위원은 하위원을 압도한다. 하지만 중계방송에서 입씨름을 벌이면 하위원이 밀리지 않는다. 허위원이 해박한 야구이론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동안, 하위원은 장기 훈수를 두는 ‘동네 아저씨’처럼 구수한 말투로 상황을 풀어준다.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도 당황하는 법이 없다. ‘허허’ 웃으면서 “야구라는 건 정말 몰라요. 저런 일도 있네요”라고 눙치며 넘어간다.

    하일성 위원은 1949년 생이다. 아버지는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고, 하위원도 백마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전력이 있다. 이런 영향으로 집안 분위기는 다소 보수적이고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가 경험한 조직문화는 규칙이 중시되는 야구에서 나름대로 강점이 되었던 듯하다.

    하위원은 어려서부터 암기력이 뛰어나 사회나 국사과목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뒷날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야구해설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암기력은 78년 해설자로 데뷔하던 시절 빛을 발한다. 당시 야구해설자로는 이호헌씨와 고 김동엽 감독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름값이나 실력에서 이들을 압도할 수 없다고 판단한 동양방송 제작진은 하위원의 암기력에 승부를 걸었다. 그래서 야구규칙과 각종 자료를 모두 외우도록 주문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원아웃에 주자 1, 2루 상황에서 내야에 플라이가 떴다고 치자. 이런 상황에는 내야수가 공을 놓쳐도 타자는 아웃이다. 야수가 고의적으로 공을 떨어뜨리고 더블플레이를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인필드플라이’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해설자들이 “인필드플라이네요”라는 말로 해설을 끝낸다면, 하위원은 “야구 규칙 몇 조, 몇 항에 의거해…” 하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니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것이다.

    하위원이 해설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둘째 요인은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한 경력이다. 하위원은 74년부터 양곡종고와 환일고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했다. 이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호랑이’로 불릴 만큼 매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하위원은 “교단에서 학생들을 설득하는 거나, 마이크를 잡고 시청자를 이해시키는 거나 조리있는 말솜씨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한다. 야구 해설을 마치 학교 수업하듯이 이끌어간다는 설명이다.

    하위원의 야구 해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흐름’과 ‘감각’이다. 결국 그는 야구경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고, 자신은 이야기꾼이 돼 해설하는 것이다. 그는 그날 경기의 중요한 고비에서 늘 ‘승부’를 던진다. 예를 들면 “여기서 번트에 실패한다면, 오늘 경기 어렵습니다”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이 매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틀릴 때도 많다. 그럴 때 하위원이 하는 말이 있다.

    “경기 흐름이 갑자기 바뀌는데요.”

    하위원의 임기응변은 그가 실수를 했을 때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 이승엽이 큰 타구를 날렸다. 하위원은 “넘어갔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타구는 더 뻗지 못하고 펜스 앞에서 외야수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간다. 그러면 곧바로 말을 바꾼다.

    “팔로우 동작에서 허리가 동반되지 않았어요.”

    그 짧은 순간에 이승엽의 허리까지 주시했을까? 그보다는 하위원 특유의 ‘넘겨짚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도 있다. 홈팀이 1점 뒤져 있고 9회 말 마지막 공격이다. 투아웃에 주자 1,3루. 타석에는 8번 타자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위원은 더블스틸 작전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마침내 주루코치의 사인을 훔쳐본 주자들이 뛰기 시작한다. 2루 세이프, 홈에서 태그 아웃. 하위원의 다음 말이 궁금해진다.

    “너무 성급했네요. 투수쪽이 더 큰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습니다”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야구라는 것이 다 그렇다’는데 어쩔 것인가?

    유머감각은 하위원만의 강점이다. 그는 경기가 지루해진다 싶으면, 재빨리 해설의 방향을 바꾼다. 내용은 아나운서에게 맡기고 선수들의 사적인 얘기나 야구계 뒷얘기를 열심히 떠든다. 어느 선수가 어떻게 결혼했고, 어느 선수는 무슨 꿈을 꾸었고…. 하일성은 시청자들이 솔깃할 만한 화제를 계속해서 풀어놓는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이게 불만이다. 어떤 선수는 ‘자기도 모르는’ 얘기를 TV를 통해 들을 때도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별명이 ‘하꾸라’다.

    야구경기가 없는 겨울철에도 하위원은 활발하게 TV에 출연한다 퀴즈 프로, 요리 프로, 토크쇼…. 이것은 ‘해설자는 항상 팬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하위원의 지론과 관련이 있다. 또한 방송사 쪽에서도 하위원의 재치있는 입담이 아쉬운 형편이다.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툭 던지는 한마디가 ‘양념’ 구실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하위원이 ‘TV 진품명품’이라는 프로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한 출연자가 집안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며 붓글씨가 쓰인 족자를 내보였다. 그러자 하위원이 글씨를 보며 그럴 듯한 평가를 내렸다.

    “어르신께서 살아 생전에 약주를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하일성씨,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하고 되물었다. 하위원의 대답이 걸작이다.

    “보세요. 글씨가 호방하잖아요”

    야구인들 사이에서 하위원은 ‘Y담의 1인자’로도 불린다. 그의 Y담은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도 새롭다. 그는 술자리가 벌어지면 다른 사람의 얘기를 유심히 듣는다. 그리고 거기에다 살을 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쩌다 부부동반 모임이라도 있으면, 그는 자리가 끝날 때까지 좌중을 웃긴다. 그의 말 한마디 때문에 멀쩡한 부부가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서먹서먹하던 관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지곤 한다.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심은 관심과 뱃심에서 나온다”

    오전 10시경, KBS의 간판 아침프로 ‘아침마당’ 생방송 중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때 진행자인 이상벽씨(54)의 한 마디.

    “전기가 나갔네요. 여의도에서 전기가 나가다니 참 신기하지 않나요. 하긴 우리 어렸을 때는 참 전기가 많이 나갔었죠. 이럴 때마다 귀신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생각이 나지 않아요?”

    술렁이던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며 분위기는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이렇게 몇 분이 지난 후 다시 전기는 들어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방송은 진행된다.

    편안한 진행과 여유있는 웃음으로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국민 MC’ 이상벽씨는 방송가에서 유명한 재담가다. 그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마다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것은 이씨의 재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진행하는 ‘아침마당’을 보고 한 번쯤 웃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씨의 재담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바가 없지 않다. 이씨는 자신의 구수한 말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경기도 안성) 덕분이라고 말한다.

    “서울말처럼 짧고 깍쟁이처럼 들리지 않으면서도 너무 늘어지지 않는 말투 덕분에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는 것 같습니다.”

    또한 둥글둥글한 인상과 편안한 너털웃음은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친숙함을 준다. 그러나 사실 그의 재담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이씨는 말을 그냥 내뱉지 않는다. 항상 생각하며 말한다. 우선 그는 외래어나 한자어, 그리고 문어적 표현은 되도록 지양하며 철저히 우리말과 구어적 표현을 쓰려고 한다. 다음은 이씨만의 말하기 노하우.

    “입심은 관심과 뱃심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하려면 우선 매사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봄에 어떤 꽃이 피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단순히 ‘봄이 왔다’고 말하지 않고 ‘무슨 꽃이 피었으니 봄이 한 걸음 더 다가온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뱃심은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입니다. 든든한 뱃심을 가지려면 우선 아는 것들이 많아야겠죠. 독서도 많이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등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말이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1947년 황해도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씨는 뜻밖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이다. 대학 시절부터 각종 교내 행사 진행을 맡은 것은 물론 그룹사운드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신문사에서 10년 동안 연예담당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재담의 기초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씨의 계획은 소박하다. 8년째 진행하고 있는 KBS의 간판프로 ‘아침마당’만 열심히 할 생각.

    “사람들이 아침마다 내 방송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와 뭉클한 감동을 느끼며 하루를 멋지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내가 하는 일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더욱 편안하고 멋진 진행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지은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말은 체력입니다”

    요즘 방송사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강사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다. 이 가운데 2001년 들어 가장 각광받는 이를 꼽으라면 단연 한의사 김홍경씨를 들 수 있다. 그는 교육방송(EBS) ‘김홍경이 말하는 동양의학’을 통해 주목받다가 지난 1월26일 마지막 방송을 한 데 이어 KBS ‘시사포커스’, MBC ‘아주 특별한 아침’ 등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이빨쟁이’인 것 같다. 말이라면 몇날며칠이라도 하겠지만, 글은 원고지 네댓장을 써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퇴고를 많이 한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가 ‘타고난 말솜씨’의 소유자라는 것은 몇 가지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한 강좌에서 무려 8시간이나 쉬지 않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하면, EBS 방송강연은 늘 4회분을 하루에 녹화한다. 울산방송에서는 6회분을 한번에 소화하기도 했다. 강좌 1회를 최소 50분으로 잡아도 무려 300분을 혼자서 이야기한 셈이니, 한 마디로 그는 ‘괴력의 입담가’다.

    여기에는 물론 ‘엄청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1984년부터 전국의 한의대생을 상대로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를 진행해왔다. 학생들과 40일 동안 먹고 자면서 침술을 전수하고 한의학의 원리를 함께 나누는 이 강좌기간, 그의 하루 수면시간은 거의 한두 시간에 불과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의 말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그러면서도 구수하다. 말의 내용을 보면 종횡무진, 동양의학의 심오한 사상에서부터 서태지와 팝송에 이르기까지 온갖 화제를 섭렵한다. 말 그대로 잡학사전이다.

    게다가 형식은 하이퍼텍스트적이랄까. 허준의 ‘동의보감’ 얘기를 하다가 이은성의 대중소설 ‘동의보감’ 얘기로 옮겨가는 식으로 말이 가지를 치고 꼬리를 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신통하게 원래의 화제로 돌아와 결론을 맺는다. 수미상관을 이루니 듣는 이들은 정신없이 그의 말솜씨에 빠져들 수밖에.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한의학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 도중에 음악이나 개그도 넣고, 제 경험도 집어넣는 거지요. 제 자신이 방탕한 생활도 해보고, 폐결핵에 걸려 6개월간 절에도 들어가 있어 보고, 주역선생을 찾아다니거나 운기학자를 만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지금은 잊혀진 야사(野史)를 많이 알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홍경의 ‘말하기’를 단숨에 정의하기는 어렵다. 때론 고답적이고 때론 시류와 부합하는 듯 하면서도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엄청난 박학다식과 다양한 경험, 넘치는 에너지가 그의 ‘말’을 이루는 요소들임엔 틀림이 없다. 어쨌든 그의 ‘말’은 오늘도 수많은 열광적인 청취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김영신 자유기고가

    ▶정혜신 (피부과 전문의)

    “내 무기는 관심과 사랑”

    오늘날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 피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젊은 여성들 뿐 아니라 중년 남성들까지도 피부 가꾸기에 열심인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순전히 ‘피부관리’ 때문에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KBS의 아침 프로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고정적으로 나와 피부관리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는 젊은 여의사가 있다. 피부과 전문의답게 고운 피부와 밝은 미소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지함피부과 청담점’의 정혜신원장(33). 그의 알기 쉬운 설명을 듣고 있으면 피부에 대한 이해가 훨씬 빨라지는 느낌이다.

    “말하는 데에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그냥 제 목소리 자체가 적당한 톤에 차분한 편이고 말하는 속도도 빠르지 않고요. 차분한 목소리 외에 제 외모도 일조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러나 상담에서만큼은 확실한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피부과는 상담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를 찾는 한 여성 환자는 다른 병원 남자 의사에게 자신의 피부상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요. 괜히 민망했기 때문이죠. 환자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고, 의사는 그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말투도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와 의사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이 바로 말투거든요. 공격적이지 않고 포용적이며 부드러운 말투가 필수지요. 환자가 의사를 마치 친구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또 한 가지, 쉬운 어휘를 사용해야 합니다. 피부 관리에 대한 설명에서 불필요한 의학 용어는 절대 금물이죠.”

    1999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피부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정원장은 재활의학과 의사와 결혼, 올해로 만 3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항상 바쁜 와중에도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말은 곧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말은 논리적인 생각 뿐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말에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담기거든요.

    흔히들 의사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러려면 의사와 환자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 그건 관심과 사랑이에요.”

    이지은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눈으로 말해요”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닉슨 대통령을 하야케 한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지의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강연을 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중 생각나는 한 토막.

    “클린턴 대통령은 대화 상대를 휘어잡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다. 이런저런 스캔들로 그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도 일단 클린턴을 만나기만 하면 대부분 그의 팬이 돼버린다. 특히 여성들은 백발백중이다.

    클린턴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직시한다. 자기가 말할 때건 상대방 말을 들을 때건 시선은 항상 상대방 눈동자에 고정돼 있다. 심지어 콜라를 마실 때조차도 얼음이 든 유리잔 밑바닥을 통해서 상대의 눈을 직시한다(클린턴은 열렬한 콜라 애호가라고 한다)….”

    원래부터 말 잘하기로 소문났던 클린턴은 거기에다 자신의 눈까지 보조 무기로 활용했다. 강렬한 시선을 통해 대통령이 자기 말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 상대방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시사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다가 16대 국회에 진출한 정범구 의원(민주당·경기 고양일산갑)도 눈빛이 강하다. 그리고 그도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직시한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대화에 몰두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고 한다. “상대의 눈을 직시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라는 설명도 클린턴과 같다.

    때로는 너무 강한 눈빛 때문에 신경 쓰일 때도 있었다. 자신의 눈빛과 스타일이 토론자로 나온 인사를 주눅들게 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 고민스러웠다는 것. 가뜩이나 신경 쓰이는 게 방송인데, 사회자까지 자기를 째려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래서 마련했다는 나름의 대비책.

    “토론자로 나오는 분들에 대해서 가급적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했습니다. 토론 도중에 그 분이 잘 쓰는 어휘나 문장을 제시하기 위해서지요. 그러면 대체로 토론자들이 가졌던 긴장감이 상당히 누그러집니다.”

    다른 장점도 많겠지만, 정의원은 말로 성공한 사람이다.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4년부터 방송활동을 계속했다.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KBS ‘정범구의 세상읽기’ 등 고정 프로로 ‘떴고’, 1997년 대통령후보 합동 TV 토론회 사회자로 나서 ‘확실하게’ 떴다. 그래서 결국 국회의원 배지까지 가슴에 달았으니 최소한 말이 그의 성공여정에 핵심 무기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 잘하는 비결’을 묻자 정의원은 “상대 입장에서 사안을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1 대 1 대화에서는 물론이고 의정활동에서도 “국민들은 이 사안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항상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내 얘기만 늘어놓는 것은 대화라고 할 수 없어요. 내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상대방 얘기도 잘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대가 ‘아, 이 친구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말하기 전에 최소한 키워드(key word) 정도는 메모해놓는다. 회의석상이라면 시간에 쫓기기 십상이므로 가급적 핵심만 얘기한다. 자기 의견을 개진할 때 간단한 비유를 드는 것도 효과적이다. 중요한 발언 기회가 있을 때에는 몸상태가 최상이 되도록 신경 쓴다….

    그가 말하는 ‘말 잘하는 비법’이란 게 대체로 이렇게 상식적이다. 결국 그 ‘상식’을 얼마나 현실에 적용하느냐가 정범구 의원과, 다른 수많은 ‘말 못하는’ 사람들을 구분지었다.

    송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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