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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문화 대혁명’ 의료 改惡 백서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한국판 ‘문화 대혁명’ 의료 改惡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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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정부의 의료 개혁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연상시킨다. 보험은 수지를 맞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교과서적인 논리를 무시하고, 보험은 소득 재분배를 우선으로 한다는 논리로 통합을 추진한 것이 의료보험 재정 붕괴를 가져왔다. 정부는 의보 개혁 실패를 의약 분업이라는 새로운 개혁으로 덮으려 하다 더 큰 위기를 초래했다. 의료 개악을 초래한 장본인은 누구인가. 주역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천년 민주당이고 조역은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이다. 의보통합과 의약분업 법안을 추진해 의료 개악을 초래한 관련자를 샅샅이 밝힌다.
한국은 확실히 ‘냄비 국가’다. 3월12일 박태영(朴泰榮)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올해 의료보험(정식 명칭은 국민건강보험) 적자가 3조∼4조원에 이를 것이다”고 밝힌 후 언론은 연일 의보 재정 파탄 원인 분석에 열을 올렸다. 3월21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최선정(崔善政) 보건복지부장관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김원길(金元吉) 민주당 의원을 임명했을 때만 해도, 언론은 의보 재정 파탄 원인을 밝히는 데 열심이었다. 그러나 3월26일 김대통령이 9명의 장관을 경질하는 개각을 단행하자, 의보 재정 파탄에 관한 기사는 쏙 들어가버렸다. 그새 언론의 관심은 다른 데로 옮아가버린 것이다.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이번 사건은 1주일쯤 갈 것 같아. 그 정도면 언론도 더 이상 쓸 말이 없을 걸. 한국인은 냄비 체질이라 언론이 1주일만 떠들어도 ‘아이고 지겨워’ 하며 다른 기사를 찾아. 그래서 우리도 ‘1주일만 소나기를 맞자.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날이 온다’ 하고 견디는 거야. 이러니 한국은 개선(改善)이 안 돼. 개혁(改革)을 하겠다며 들어선 정권도 그 분위기에 젖어, 개혁은커녕 개선도 못하고 물러나버리지. 섣부르게 개혁을 시도했다가 그것이 개악(改惡)으로 귀결되는 현실이 바로 한국병(韓國病)의 첫째 원인이야. 이런 것을 잘 알면서도 냄비 체질의 독자들에게 영합하느라, 문제점을 제대로 파헤치지 않는 언론과 정치권도 문제야. 실패한 개혁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없기 때문에 한국은 연일 개혁을 시도하는데도 형편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거야.”

과연 한국은 실패한 개혁에 대한 분석이 없는 사회다. 개혁 주체들은 개혁이 실패하면 또 다른 개혁으로 실패를 덮으려 한다. 그래서 ‘개혁, 개혁!’이 이어지는데, 이러한 개혁이 개악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개혁이 개악으로 귀결된 대표적인 사례가 작금의 의료 사태다. 실정을 거듭한 김영삼(金泳三) 정권이 IMF 구제금융을 초래했듯이, 김대중(金大中) 정부도 의보 재정 파탄을 시작으로 위기로 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의료 개혁이 실패한 원인과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다면, 한국은 더 큰 위기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개혁실패에 분석이 없는 사회

의료 개혁이 실패한 첫째 원인은 ‘도덕 해이(moral hazard)’에 있다. 의보가 건실하게 운영되려면 국민들이 의보 조합에 내는 보험료와, 의보 조합이 병의원에 지불하는 수가가 일치해야 한다. 77년 도입된 의보는 상당기간 ‘감기 의보’로 불렸다. 감기처럼 치료비가 싼 병에 대해서만 보험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가의 치료비가 요구되는 병도 의보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국민들로부터 오는 ‘표’를 의식한 정치인과 의보를 ‘공짜’로 생각한 국민들 사이에 묵시적인 ‘야합’이 이뤄진 것이다.

의보를 유지하려면 눈을 부릅뜨고 곳간(財政)을 지키며, 의보료를 100% 걷으러 다니는 ‘사천왕(四天王)’이 있어야 한다. 입법권을 쥔 정치인들은 이러한 사천왕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기심이 강한 국민에 ‘영합’해, 사천왕을 저주했다. 그렇다면 사천왕 뒤에 있는 ‘부처님(대통령과 복지부장관)’이라도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들 또한 사천왕을 배척했다. 이로 인해 곳간이 눈에 띄게 비어가자 정치인들은 다른 곳간도 열도록 요구해, 그곳마저 텅 비게 했다. 의보 재정을 파탄낸 주범은 도덕심이 붕괴된 국민과 그들에게 야합한 정치인이다.

한국 의보는 크게 지역의보와 직장의보로 나뉜다. 지역의보에는 농어민을 대상으로 한 ‘농어민의보’와 도시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도시의보’가 있다(농어민의보와 도시의보는 의보 초창기에 쓰던 말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다).

직장의보에는 공무원의보와 사립학교 교직원의보, 그리고 기업체를 상대로 한 139개 기업체의보가 있다(기업체의보는 여러 개의 직장을 대상으로 한 의보라 직장의보로 불리지만, 이 글에서는 혼동을 줄이기 위해 기업체의보로 표기한다. 이 글에서 쓰이는 직장의보는 기업체의보와 공무원의보·사립학교 교직원의보를 총괄한 것이다. 그리고 사립학교 교직원의보는 ‘교원의보’로 줄여서 표기한다).

의보의 효시인 기업체 의보는 1977년 1월1일 직원이 500명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됐다. 이때 정부는 기업주와 근로자가 의보료를 반반씩 부담케 했는데, 기업주들은 “의보료를 왜 우리가 부담해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정부는 이러한 반발을 막느라 의보요율을 아주 낮게 잡았다. EU의 의보요율은 소득액의 15%, 일본은 11%, 대만은 9.6%인 데 비해 한국은 지금도 3.4%에 머물고 있다. 초기 의보가 ‘감기 보험’으로 불린 이유는 낮은 요율 때문이다.

1979년 1월1일에는 공무원의보와 교원의보가 출범해 직장의보가 완성됐다. 직장의보는 워낙 ‘짜게’ 운영됐기 때문에 지난 20여 년 동안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직장의보가 건실하게 운영된 이유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는 월급쟁이들은 소득이 완전 공개되는 ‘유리지갑’을 가졌으므로, 의보측은 공정하게 보험료를 징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원천징수 방식으로 보험료를 떼니,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징수율은 언제나 100%다. 이러니 직장의보는 재정이 튼튼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의보는 직장의보보다 10여 년 늦게 시작됐다. 지역의보가 늦어진 이유는 의보료의 공정한 징수와 100% 징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 사각 지대에 있는 국민을 외면할 수도 없어, 정부는 88년 1월 농어민의보를 시작하고, 89년 7월1일에는 도시의보를 시행했다. 지역의보는 시행 초기부터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의보료 징수율이 70%대, 심지어 60%대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의 지역의보와 비슷한 90%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98년 통합 후의 지역의보 징수율은 다시 70∼80%대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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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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