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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쟁점|안락사 논쟁

기계적 생존이냐 인간다운 죽음이냐

  • 임기영 < 아주대 의대 교수·의학부장 >

기계적 생존이냐 인간다운 죽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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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락사 논쟁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논의 그 자체다.
  • 이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 자율권을 포함한 환자의 권리, 의료자원 의 정의로운 분배, 의사의 치료 의무의 한계, 호스피스 운동 등 의학윤리의 중요한 이슈들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죽는 것은 아니다. 쉽고 평온하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렵고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평온하고 안락하게 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의학의 발전 때문이다.

의학의 발전은 사망의 주요 원인뿐 아니라 최종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변화시켰다.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첨단 의학장비 개발로 이제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생명을 거의 무한정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계에 연결되어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것을 삶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0년간의 사회적 변화 역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 자기 침실에서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 둘러싸여 임종했다. 성직자와 왕진을 온 의사는 환자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평온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었고, 환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평온이나 안락과는 거리가 멀다.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과 친구들은 병실 밖으로 내몰리기 일쑤고 환자의 침상 곁은 수많은 의료진들이 점령한다.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 최후까지 온갖 조치를 취한다. 환자의 입에는 인공호흡을 위한 기도관이 물려지고, 수많은 전극과 수액 줄이 부착되고 꽂힌다. 그것들은 환자가 완전히 숨을 거둔 다음에나 제거된다. 가족들이 환자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의료진이 사망선고를 내린 후 시신이 흰 천에 덮여 냉장실로 옮겨지기 전의 짧은 시간뿐이다.

평화롭게 죽을 권리

안락사를 뜻하는 유사너지아(euthanasia)는 좋음, 편안함을 뜻하는 eu-와 죽음을 의미하는 thanatos가 합쳐진 용어다. 즉 수월한 죽음, 고통이 없는 빠른 죽음, 평화로운 죽음을 말한다. 좀더 정확히는 치료될 수 없는 상황이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통증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해주는 행위(웹스터 사전)를 뜻한다.

넓은 의미의 안락사에는 소위 의사조력자살 (physician-assisted suicide)이 포함된다. ‘죽음의 의사’로 유명한 미국의 잭 커보키언(Jack Kervokian)이 시행한 방법이 의사조력자살인데, 최종적으로 생명을 끊는 행위자는 환자 자신이다. 즉 의사는 환자에게 자살기구나 약품을 제공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환자 자신인 것이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안락사는 의사 혹은 제3자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환자의 동의 유무에 따라 자의적 안락사와 타의적 안락사로 나뉜다. 또한 그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적극적 안락사는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서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외부적 행위인데 반해,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지연시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최단시간 내에 환자가 자연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원래 환자가 앓고 있던 병이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된다.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의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의미없는 치료를 중단하고 진통제나 안정제를 투여하여 고통을 줄여주면서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의 의사에 반해 치료를 강행하는 것을, 신체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과 환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한편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흔히 안락사의 극단적 예로 드는 것이 우생학적 안락사다. 그러나 이것은 치료 불가능한 환자가 아닌 특정 인종이나 장애자, 기형아를 대상으로 하므로 명백한 살인행위이며 따라서 안락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논란이 되는 것은 환자의 요구에 의해 의사가 실시하는 자의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다.

유럽과 캐나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항상 70%를 상회하며, 안락사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 견해를 취하는 미국인들도 절반 이상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와는 달리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최근 네덜란드가 안락사를 합법화한 것이 세계 최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금지 혹은 반대와는 무관하게 실제로는 여러 나라에서 안락사가 묵인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커보키안처럼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실행한 의사들이 거의 기소되지 않았거나 기소되었어도 실질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최근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도 1980년 이후 의사에 의한 안락사를 사실상 허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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