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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논문 결론은 오빠의 인간사랑’

노동학 박사된 전태일 여동생 전순옥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박사 논문 결론은 오빠의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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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순옥 씨의 졸업논문 표지에는 이런 구호가 적혀 있다.
  • “They are not machines!(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30년 전 그녀의 오빠는 불길 속에서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입 안으로 들어차는 화염 속에 비명처럼 외쳐댔던 전태일의 메아리가, 붉은 표지로 묶인 막내 동생의 논문 위에서 이제는 전세계를 향해 울려퍼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제2의 인생’이라는 표현을 쓴다. 무언가 특별한 계기나 사건을 통해 새로운 각오로 살아가는 모습을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한다. 인생을 살아온 연륜만큼 제2, 제3의 인생을 시작한 굵은 나이테도 늘어나겠지. 이러한 계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내 앞에 나타날 수도 있고, 때론 우연처럼 갑자기 인생의 가도(街道)에 튀어오를 수도 있으리라.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한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이 그 사건으로 될 수도 있다.

이 사람 ‘전순옥(全順玉)’도 어쩌면 그런 평범한 인생의 과정을 밟아 온,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냥 ‘전순옥’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르지만 ‘전태일(全泰壹)의 동생’이라고 하면 ‘그래?’ 하고 관심의 눈빛을 보일, 마흔일곱 살의 늦깎이 노동학 박사 전순옥 씨를 만나보았다.

“제 인생에는 지금까지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전환점은 큰오빠가 죽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무작정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던 지난 1989년, 그리고 영구 귀국해 돌아온 지금이 세 번째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월27일 순옥 씨는 인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마저 되지 않는 영어실력으로 무작정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벌써 11년. 그동안 그녀가 나가고 들어온 국제공항이 인천으로 옮겨갔고, 큰오빠 전태일은 정부에서 공식 인정한 ‘민주화 유공자’가 되었다.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숨죽여 읽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익명의 팸플릿은 ‘전태일 평전’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찾아 이젠 대학신입생 필독서로 팔리고, 그 글쓴이가 인권변호사 고(故) 조영래 씨라는 것이 그의 사후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1년 만의 금의환향

문성근, 홍경인 등이 열연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개봉되었고, 전태일 분신 30주년을 맞아 지난해 서울 청계천에는 ‘전태일거리’도 생겨났다. 떠나갈 때 30대 중반이던 그의 나이는 불혹(不惑)을 훌쩍 넘겨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외적인 변화말고 순옥 씨 스스로 겪은 변화는 뭐가 있을까? 그 동안 전태일 가(家)의 근황에서 순옥 씨의 소식은 ‘영국에서 유학중’이라는 오래된 진행형 기사였다. 지난 99년에는 IMF 구제금융 이후 순옥 씨도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유학을 포기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귀국한 그의 여행가방 속엔 노동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가지는 영국 워릭 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들어 있었다. 순옥 씨의 이 논문은 ‘학기 최우수 논문’에 선정되었고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영국 웨일스 소재 카디프 대학에서는 사회과학부 초빙교수의 신분을 주었다. 하지만 순옥 씨가 11년 전 홀연히 영국으로 떠난 것은 단순히 박사학위 받아 금의환향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순옥 씨의 인생에 두 번째 전환점이 된 ‘영국행 비행기’는 굴곡 많은 인생 역정에 비추어 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우연한 계기를 통해 다가왔다. 1988년에 그녀는 일본의 좌익 노동조합 중 하나인 전평노동조합의 초청으로 한 달간 일본에 머물며 그곳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해 증언할 기회를 가졌다. 그 이듬해에는 독일에 석 달 동안 머물며 독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또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일본, 독일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당시 그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고민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일본과 독일의 노동자들이 과거에 한국의 노동자들을 미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일본과 독일 등지에 있던 다국적기업들이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찾아 대거 한국으로 이주했고, 이것은 그곳 노동자들에게는 실직(失職)과 인원감축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엉뚱하게 그들은 한국 노동자들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과 독일을 방문했던 80년대 후반에는 한국이 민주화되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지면서 60, 70년대에 한국에 들어왔던 다국적 기업과 한국기업들이 한국보다 더 싼 노동시장을 찾아 다시 떠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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