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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21세기 한국을 위한 교육 · 복지 · 기업문화 개혁론

소화불량 걸린 복지부를 확대개편하라

<복지정책>

  •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정책)

소화불량 걸린 복지부를 확대개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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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축소가 결코 능사가 아니다. 늘릴 곳과 줄일 곳을 합리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모든 부처와 공무원을 기준도 없이 일괄적으로 줄이는 식의 행정개편으로는 21세기 사회복지 시대에 대비할 수 없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3년간의 사회복지제도의 개혁은 그 강도와 속도에서 지난 30여 년간의 변화와 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이다. 20여 년을 끌어온 의료보험조합 통합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과감하게 통합방식의 의료보험으로 전환했으며, 의사·약사 등 이익집단의 목소리 때문에 수십년간 시행이 어려웠던 의약분업을 우여곡절 끝에 시행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복지제도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를 시행했다.

지난 3년간 추진된 사회복지 개혁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개혁의 내용이 가히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강도와 속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대표적인 사회복지개혁정책으로 꼽을 수 있는 의료보험 통합,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의약분업 등은 사안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들이며 동시에 제도 하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인력과 행정체계의 준비가 엄청나게 필요한 것들이다. 이 정책들이 모두 집권 3년을 전후하여 시행되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급속한 개혁으로 인해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다.

둘째는, 사회복지 분야의 개혁정책들이 경제정책들과 노선의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은 김영삼 정부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적 노선이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유독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복지책임을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의료보험 통합, 소득비례방식의 국민연금 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복지의 책임을 개인과 시장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이념이 강하게 내포된 정책들이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여러 나라가 대부분 신자유주의적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한 것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

셋째로, 우리나라의 복지모형에 거의 결정적 영향을 준 일본복지모형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나 정치인, 관료 등 정책 결정자와 집행가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수십년간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역사는 일본 제도를 모방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생활보호제도 등 거의 모든 복지제도는 일본 제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 통합, 도시 자영자에 대한 소득비례연금제도 도입, 의약분업 전면 시행은 일본제도와 과감히 결별을 선언한 ‘한국형 복지제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선발주자의 경험을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우리의 능력으로 앞길을 개척해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사회복지정책, 뿌리째 흔들려

그러나 최근 야심차게 추진되던 사회복지 개혁정책이 의료보험 재정파탄과 의약분업의 효과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다른 정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초생활보장법도 정착이 안 된 상태이고, 국민연금은 수백만 명이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는 있으나 개혁이 물거품이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상당기간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마디로 사회복지분야의 정책들이 어떻게 하면 좌초를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첫째로, 정권교체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사회복지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행정부가 정책을 입안하면 집권당이 국회에서 이를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과정을 통해 정책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일어나면서 적어도 복지정책 분야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집권당이 정책을 형성하고 행정부에 정책 수행을 지시하는 정반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료보험 통합, 기초생활보장제도, 그리고 의약분업은 시민·노동사회의 요구를 집권당이 수용하여 정책 결정을 하고 이를 행정부에 요구한 정책이다. 정책입안과 형성의 주도권을 빼앗긴 이러한 상황은 관료들에게는 극히 낯선 것이었다.

수십년간 익숙해진 정책과 논리들을 하루아침에 뒤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관료들은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일부 관료들은 노골적인 저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집권당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적어도 집권당 내부에서 ‘개혁정책의 사령탑’을 구축하거나 아니면 개혁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행정부 관료를 교체해야 하는 데도 집권당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더욱이 정책위원회 의장 등 여당의 고위 인사들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개혁정책의 추진 강도는 현격히 떨어졌다. 정책형성의 주도권을 상실한 관료, 개혁정책을 챙기지 않는 집권정당 이 두 가지 상황이 결합되면서 개혁정책의 위기가 가시화한 것이다. 한마디로 당과 행정부의 정책결정, 관리감독 시스템의 공백상태가 가져온 결과이다.

둘째로, 새로운 혁신 정책을 담보하기에는 너무 고착화되어 있는 우리나라 국가 전반의 행정시스템 문제를 들 수 있다. 사회복지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복지부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 국세청 등 범행정부적 대처가 필요한 사안들이었다. 사회복지분야의 개혁정책들이 집권 초기에 정책구상 차원에 있을 때 아무도 개혁정책을 집행할 국가의 전반적 행정체계의 정비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정부 개념에 집착하면서 확대할 곳과 줄일 곳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인 공무원 감축이 진행되었으며, 고질적인 부처이기주의를 협력체제로 바꾸어줄 메커니즘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한마디로 행정적으로 정교한 개혁의 마스터플랜이 없는 상태에서 개혁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 파동과 의료보험 재정 파탄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신규 가입자 1000만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국세청,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등 국가의 행정기구와 공무원들 그리고 행정자료가 총동원되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고작 3000여 명에 불과한 연금관리공단 직원들이 도시자영자 1000만명을 가입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료보험의 경우 의료계의 파업에 밀려 의료보험 재정에 끼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수가인상을 감행함으로써 재정파탄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집권당이나 행정부 모두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이 이러한 사태로 전개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행정적으로 정밀하게 준비되지 못한 개혁정책이 정권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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