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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21세기 한국을 위한 교육 · 복지 · 기업문화 개혁론

신노동 패러다임, 규제에서 협력으로

<노동문제>

  • 이광택 (국민대 교수·노동법·산업사회연구소장)

신노동 패러다임, 규제에서 협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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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경제체제 내에서 노동법과 기업경영은 상호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경제적 발전은 지속되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집단적 보호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기업의 유연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근로자의 개별적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
세계는 1980년대 이래 대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흐름에 의하여 커다란 사회적 변동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80년대 말 이래로 진행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더욱 힘을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대량실업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더욱 가속화되었다. 사용자의 부담은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정부의 지출은 한계를 노출함에 따라 기존의 사회보장형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비판은 국민경제의 불안정성 증대, 고용사정의 악화, 높은 실업률의 지속 등을 이유로 하여 ‘탈규제’라는 개념하에 이른바 고용에 장애가 되는 복지국가형 법규를 허물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의 세계화 또는 지구화와 함께 더욱 강화되고 있다. 세계화과정은 1980년대에 GNP 성장에 비해 국제교역의 증가가 2배에 달한 것과 교역증가에 비해 해외직접투자의 증가가 2배에 달한 사실로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더우기 세계화과정은 국제경제활동에서 다국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주역을 등장시켰다. 이들의 활동은 국가경제의 활동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큰 경우가 많다. 1000개의 세계적 회사의 시장가치가 미국경제규모의 2배에 달한다는 추산이 있다.

또한 몇 개의 다국적기업 자산은 그 규모가 국제노동기구(ILO) 가맹국의 국민생산보다도 크다. 이와 함께 생산이 국제적으로 조직되는 결과 국제무역의 40% 가량이 기업내부에서 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국제경쟁력과 기술혁신이 세계각국의 시장과 조직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시장의 세계화와 분절(segmentation)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신기술은 개별기업 뿐만 아니라 전산업에 대하여 기업전략과 조직구조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기술이전이 날로 용이해지고 노동비용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신흥산업국가(NICS)에서 노동자와 관리자의 능력이 향상됨으로써 선진국의 기업과 근로자에 대해 엄청난 비용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고용조정이 이루어져 많은 직종이 사라지는가 하면 새로운 직종이 등장하여 노동시장에서는 혼란이 조성되고 근로자들에게는 불안이 조성되고 있다. 성장영역으로 신속히 이동한 근로자들은 곧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그밖의 상당수 근로자들은 임금하락, 비정형 저임금 직종으로의 이동, 실업 등으로 손실을 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지역협력체제의 구축에서 볼 수 있는 무역장벽 축소노력은 국가적 제도로서의 노사관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노동법에 대하여 요구되고 있는 ‘탈규제’ 논의는 “노동법적 구속이 기업으로 하여금 시장의 요구에 유연성을 가지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을 저해한다”는 공통적인 기본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기업 내지 기업인에게 노동법은 곧 ‘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신노동사회의 패러다임

21세기에는 노동력에 대한 수요의 감소와 동시에 구직활동의 증가가 예측되고 있다. 20세기에 한때 경험했던 완전고용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종래의 노동사회는 질서 있고, 분화되고, 규율화된 사회였고 그 패러다임은 규제였다. 즉 종속 경제활동이 인간답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질서와 규율이라는 보호막이 필요했던 것이다. 임금노동 형태의 종속 경제활동이 장래에도 지배적인 사회화의 모형으로 남을 것인가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사회의 종말 또는 노동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노동사회’에서는 사회적 노동의 조직에 기초가 되는 공간 및 시간의 모델이 변화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신노동사회의 패러다임에서는 협력과 자생조직이 이를 지탱하는 형성원리가 된다.

생존공간을 개인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으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엄격히 구별하는 것은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사적 영역과 시장 사이에 회색지대의 노동형태가 나타난다. 특히 전통적인 불법취업 또는 실업자의 비정형노동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화로 말미암아 경제활동을 공장과 사무실 밖에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경영상의 필요성과 개인의 희망이 보다 잘 맞아 떨어진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인적 노무급부’(즉 경제활동으로서의 탁아 및 간호),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는 디지털화된 ‘생산·관리적 노무급부’(즉 제조업 또는 은행, 보험업에서의 고객관리), 임금형 경제활동이라는 종속구조로부터 벗어나려 하거나 아웃소싱에 의해 그러한 구조에서 벗어나는 1인 마이크로 기업, 장소의 구애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컨설팅활동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세계화 시대에서는 지역까지도 그 공고한 장벽을 잃게 된다. 지금까지는 노동이 공간에 기속됐고, 따라서 문화에도 강하게 기속됐던 것이 사실이다. 정보 전달기술의 발달로 거리의 개념이 용해되고 있다. 이로써 사회적 노동의 문화기속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동일한 생산라인내에서 상이한 문화 사이의 협력도 가능해진다.

시간활용의 형태도 다양화되고 있다. 생활에서 부족한 자원은 바로 ‘노동’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학적으로는 새로운 개인화 경향이라 말할 수 있다.

생애에서 경제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종전의 가치규칙과 시간규칙이 그 기속성을 상실한다. 서로 다른 시간의 편린, 즉 경제활동시간, 교육시간, 가족시간, 시민시간, 혼자만의 시간 등은 유동성을 갖는다. 남성과 여성은 가정에 대하여 평등하게 또는 공동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시민으로서의 시간은 앞으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경제활동의 중심적 역할이 약화됨에 따라 경제활동영역에서의 종속구조와 계층구조가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참여적 시민이 되어 자원노동에서 구조변화를 기대하며 경제활동과 참여라는 두가지 활동의 조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노동사회는 시민적 노동사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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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택 (국민대 교수·노동법·산업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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