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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마약전쟁

“황홀경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마약중독자의 고백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황홀경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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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아무개씨(46)는 오랫동안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올 가을 결혼할 예정이다.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그의 몸과 마음 상태는 크게 좋아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약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말한다. “히로뽕을 끊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이씨는 몇 번이나 마약을 끊으려다 실패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마약 관련기관에서 자원봉사로 상담도 하고 초등학생을 상대로 마약강연도 했다. 또 올해 들어선 전문적인 마약상담사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만학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그의 연락처를 알아낸 것은 6월8일 오후였다. 그날 밤 그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아내 될 사람을 소개했다. 그 자리가 길어지는 바람에 인터뷰 약속은 다음날로 미뤄졌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시내 중심가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 자리에는 그의 결혼 상대자와 더불어 그녀의 남동생, 그의 여동생 등이 함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인터뷰에 응하기 전 그는 “흥미 위주로 다루지 말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

그가 처음 마약을 접한 것은 1974년 대입 재수생 시절이었다. 당시 서울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히피문화가 유행이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명동과 신촌 일대에는 대마초가 흔했다. 주한미군을 통해 환각제인 LSD도 돌아다녔다. 명동의 한 음악감상실에 자주 들락거리던 그는 음악 하는 친구들의 권유로 ‘별 생각 없이’ 대마초를 피웠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중독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또 실제로 그렇게 자주 하지도 않았다. 마약보다는 오히려 알코올에 더 심취했다.

그가 마약에 깊이 빠져든 계기는 사업실패에 따른 고통이었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그는 1988년 어느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재수 시절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났다. 이씨가 “너무 괴롭다”고 하자 그 친구는 히로뽕을 권했다. 당시 그는 이미 알코올 중독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술과 히로뽕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몸이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히로뽕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삶이 파멸로 치닫는 것을 깨닫고 알코올 중독자모임을 찾아갔다. 그 모임을 이끄는 성당 신부는 그에게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로 가 봉사활동을 하도록 권했다.

“사회의 온갖 유혹에서 멀어져야겠다 싶어 ‘꽃동네’를 찾아갔다. 그렇지만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마약을 끊지는 못했다. 휴가 삼아 사회에 나올 때마다 다시 히로뽕을 투약한 것이다. ‘꽃동네’에 머무르는 10년 동안 그런 일이 대여섯 차례 되풀이됐다.”

그가 꽃동네를 나오게 된 동기는 ‘분노’였다. 1998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런데 ‘꽃동네’ 측은 그가 충격을 받을까 염려해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사회에 나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꽃동네’ 측의 처사에 몹시 분개했다. 또다시 ‘몸이 망가질 정도’로 히로뽕을 투약했다.

황홀감 뒤에 오는 비참함

약기운에서 깨어난 후 그는 ‘꽃동네’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어느날 외박을 나왔다가 우연히 동창생인 의사 친구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 침례교회에 다니는 그 동창생은 그에게 신앙을 권했다.

그는 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서울 목동에 있는 한 침례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는 그에게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줬다.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한 그는 1999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의 ‘약물 상담사’ 과정에 등록했다. 1년 과정이었는데, 6개월 만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마약에 손을 댄 것이다.

“주변 친구들과 나 자신을 자꾸 비교하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다 우연히 예전에 약을 했던 친구를 만났다. 다시 약을 하면 큰일난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며칠 뒤 약에서 깨어나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기자가 ‘우연히’라는 표현에 의문을 나타내자 “술에 취해 나도 모르게 약을 거래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 것 같다”고 고쳐 말했다. 히로뽕의 ‘마력’에 대해 그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이 세계에서는 ‘생각이 꽂힌다’는 표현을 쓴다. 사업에 실패하고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재벌이 돼 수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환상을 보게 된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황홀한 기분에 젖어 있다 깨어나면 이번엔 반대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비참해진다. 그 비참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약을 찾게 되는 것이다. 투약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 기가 막힌 느낌이 찾아온다. 그것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약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망상이다. 그런 느낌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중독될수록 약효는 더 빨리 떨어지고 몸과 마음, 나아가 영혼까지 망가진다.”

13년 동안 마약에 빠져 있는 동안 그의 건강은 크게 나빠졌다. 위와 간이 상했고, 뇌가 손상됐다. 술과 병행하다 보니 폐해가 더 컸다. 특히 기억력에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 약속을 잊어먹기 일쑤고, 이미 한 얘기를 또 하거나 했던 얘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약에 빠져 있는 동안 ‘현실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 보니 나쁜 짓을 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갑갑해 미칠 것 같다”는 말로 기억상실증에 따른 괴로움을 토로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가지 단편적인 장면들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전체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약을 구한 장소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병원에 입원했다. 마지막으로 입원한 것은 지난해 11월. 함께 교회에 다니던 어머니가 죽자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또다시 히로뽕을 찾은 것이다.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을 투약했다.”

며칠 만에 제정신이 돌아온 그는 국립공주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곳에서 공주치료감호소 근무 경력이 있는 조성남 의료부장의 따뜻한 배려에 힘입어 상태가 호전됐다. 이것이 인연이 돼 그는 현재 조부장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만든 ‘약물중독자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마약환자 치료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부분의 병원 시설은 감금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치료병원을 가봐도 치료 프로그램이 충실치 않다. 지난해 국립부곡정신병원에 가보니 텅텅 비었더라. 마약을 하다 구속되면 1년 정도 형을 살면 된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2년 이상 감금되니 환자들이 입원하기를 꺼린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오면 바로 집으로 가게 돼 있는 현재의 치료시스템은 문제가 많다. 사회적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여유를 갖지 못하다 보니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감정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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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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