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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文理를 튼 깨달음, 醫道의 경지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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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道學) 세계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반드시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 없이 혼자 깨닫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간혹 ‘나는 스승 없이 혼자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자기가 깨달았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경우다. 그런 사람은 결국 스스로 망신(亡身)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은 물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게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작고한 성철 스님이 생전에 “내가 하는 주된 일은 ‘나 깨달았소’하고 찾아오는 중들에게 그대는 아직 못 깨쳤다고 하며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그런 면에서 동원 선생은 스승 복을 타고난 행운아라 볼 수 있다. 사서삼경 같은 유학의 세계에 침잠하는 동안 학문이 높은 스승을 예닐곱 명 거쳤고, 또 오늘의 그가 동양의학의 정수를 깨치기까지 계은선생이라는 도력 높은 스승이 절대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그와 스승의 일화를 들어보자.

“내가 열여섯 살 나이에 문리(文理)를 확 터보려고 너무 책에 몰두한 나머지 죽을 병을 얻어 부모 속도 많이 썩였지요. 그때 아무도 못 고치던 병을 한약 한두 재 먹고 낫게 했으니 그분이 대단해 보였지요. 그런데 당시 나도 사서삼경을 꿰던 시절인데, 계은 선생님이 ‘학문을 많이 하고 안 본 책 없어 줄줄 입으로 흘러 나오지만 득력(得力)을 못했구먼’ 하면서 말만 하는 공부는 필요없다고 싹 무시하지 뭡니까. 그러니 제가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몸이 병 들 정도로 이제껏 한 것이 헛공부라는 걸 깨닫고 여러 날 고민하다 선생님께 배움을 청하고 사사했습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주역’ ‘황제내경’ ‘장중경’ 등으로 이어지는 동양의학의 정통 코스를 밟으며 연마했다.

겸하여 불문진단학(不問診斷學, 묻지 않고 환자의 병세를 진단하는 학문)의 한 방편으로 상학(相學, 관상학)과 명리학(命理學, 사주학)도 연구했다 하는데, 주변에서는 그의 수준이 한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다.



혹시 그의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은 아닐까? 그가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듯이 말이다.

“그건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그런 공부를 해서 그런 건지…. 상(相)을 볼 때 이런 것은 있었어요. 고향(속리산 남녘마을)에 있으면 우리 집에 어른들이 많이 놀러오곤 했는데, 한 어른의 상을 보니 그 집에 불이 날 듯싶어 얼른 가보라고 하니, 실제로 아이들이 보리짚 쌓아놓은 곳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었고….

그러니까 환자를 진단할 때도 상대방을 보고 듣고 바로 알아내는, 그런 거지요, 뭐. 노자가 ‘도덕경’에서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고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경지는 돼야 한다고 말했지요. 실제로 장중경 같은 이는 환자를 보고 지금 병을 고치지 않으면 몇십년 후 어느 때 죽는다고 짚어냈잖아요.”

한방에서는 병을 진단할 때 환자의 얼굴을 보고(望診), 말을 듣고(聽診), 이것저것 물어보고(問診), 만져보고(觸診) 병세를 알아내는 사진법이 있다. 그중 환자만 보고서도 알아내는 망진을 최고로 친다. 한나라 때 의사 장중경이 그저 보기만 하고 모든 것을 알아내므로 신의(神醫)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고 듣고 바로 상태를 알아내는 그 역시 이미 장중경과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뜻일까? 그는 인터뷰 내내 ‘내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다’고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해박한 고전 지식과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듣는 사람이 ‘새겨서’ 판단해 보라는 무언의 암시를 강력하게 풍겼다.

아무튼 그가 고향 속리산 기슭에 살던 시절에는 고향 사람들을 상대로 환자를 치료해준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고향 마을에 의료시설이 전혀 없고, 장마라도 지면 사람이 못 다니는 오지다 보니 다급한 대로 침도 놓아주고 약도 처방했다. 젊은 시절 그가 고향 사람들에 베푼 인술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최근에 마을 사람들이 동원 선생의 덕을 기리는 비(碑)까지 세웠다고 한다.

황홀한 깨달음의 세계

이처럼 재능이 특출한 그에게 도학(道學)과 의역학(醫易學)을 전수한 스승은 제자를 불러 각별히 당부했다.

“그대는 학문을 많이 한 사람이니 의학으로 행술(行術)할 생각은 말고 의학을 깨우치는 의도(醫道)를 펼치라.”

이후 그는 스승의 당부를 실천하기 위해 스물아홉 살인 1971년 대전 보문산 기슭으로 이사하면서 한의사와 약사회 소속 약사들을 대상으로 동양의학 한마당을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대전에 나온 이후부터는 스승의 엄명을 실천했는데, 그는 지금까지도 환자를 진료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대전에 정착한 뒤 그 이듬해인 1972년 무렵, 그는 깨달음의 세계를 강력히 체험하게 된다. 책을 읽던 어느 날 문득 득도(得道)의 황홀한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당시 이를 직접 지켜본 제자 서인석(徐仁錫·내과전문의) 박사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자.

“어느날 선생님이 희색이 만면하시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실 듯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선생님을 뵐 때마다 몇 달간 계속 그러시니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내가 처음에는 이 학문에 이치가 모호하여 공부를 그만두려 하였으나 이제 모든 원리가 하나로 통함을 깨달은 것 같다’고 내심을 토로하셨다. 그 후 선생님은 누가 무엇을 물어와도 하나의 힘(力)의 운행원리(역의 太極과 음양오행)에 의한 대답을 술술 풀어내셨다.

이는 생각하건대 선생님께서 이미 여러 번의 부정을 거친 끝에 그 극에 이르러 돌연 긍정적인 면으로 변화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른바 고인들이 설파한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은’ 일이관지(一以貫之) 의 경지로 나아가신 것임을 뒤늦게나마 알 수 있었다.”

미래읽기와 천기누설

서씨는 스승을 모신 이후 신비한 체험도 여러 차례 겪었다고 말한다. 서씨가 의예과를 다니던 1974년 1월 어느날, 동원 선생이 서씨를 데리고 대전 중앙시장 뒷골목으로 들어가 술을 한잔 하면서 “자네는 2대 독자 외동아들이니 몸을 잘 간직해야 하네. 올해 음력 7월 중순에 나라가 크게 뒤집어지는데 그때만큼은 몸을 조심하게” 하고 충고했다. 서씨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와서는 스승의 말을 가족들에게 전한 뒤에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정확히 양력 8월15일 광복절에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스승의 말씀이 기억나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는 것이다. 서씨는 이때의 일로 그간 양의사 신분에서는 꺼림칙하게 여겨온 명리학(命理學)도 공부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런 일은 1978년에도 재연됐다. 군의관으로 입대하게 된 서씨는 스승으로부터 또다시 몸조심하라는 당부를 들었다. 그때는 아예 날짜까지 정확히 짚어가며 “내년 술월(음력 9월) 며칠, 크게는 국지전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나라에 혼란이 오니까 그때를 맞춰 휴가를 내든지 어떻게든 몸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어라”는 말씀이었다.

당시만 해도 군의관은 일반적으로 전방에 배치됐으므로 서씨는 정말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74년에도 그런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79년 10월26일 스승이 말한 바로 그날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 온나라가 혼란에 휩싸였던 것이다.

동원 선생은 이 사건을 겪은 후 다시는 나라의 미래를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요 천기누설(天機漏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학도 고차원으로 진입하면 천기에 해당하므로, 최근의 ‘의역한담’ 출간을 끝으로 더 이상 책을 안 쓰겠다고 말한 것도 진도가 더 나아가면 천기누설에 해당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필부에게는 한없이 부러운 게 예지력 아닌가. 어떻게 해서 미래의 일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 동원 선생의 말.

“어느날 한순간에 그간 공부해온 것들이 하나로 관통하는 깨달음을 얻으면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가 돌아가는 상황까지 훤히 내다보입니다. 특히 나라의 운명은 기문둔갑을 뚫어지게 알면 제대로 풀 수 있어요.”

아무튼 도가에서는 이런 것을 두고 이통(理通)이라 하고 그 어떤 깨달음보다 ‘단단하다’ 하여 높게 친다. 예를 들어 영통(靈通)을 한 사람도 한순간에 세상일을 환히 볼 수 있지만, 이치가 뒷받침되지 못한 경우 순식간에 무너지거나 더 이상 진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속인들이 영적인 존재의 힘을 빌려 신통한 예언을 하다가도 그 영적인 파워가 약해지면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그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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