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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세상읽기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

  • 신영복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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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한 서울대 출신자 모임 관악민주포럼(회장·박석운)은 지난 4월19일 창립 1주년 기념강연회를 열었다.
  • 강사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영복 교수.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관계론적 사고의 중요성과 사회운동의 올바른 방향,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풀어놓았다.
  • 녹취 후 정리한 것을 신 교수의 감수를 거쳐 게재한다. 편집자
저는 여러분이 말하는 식으로 대학입학 연도를 따지면 59학번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4·19, 3학년 때 5·16을 겪었지요. 신동엽 시인은 4·19에서부터 그 이듬해 5·16까지의 시절을 ‘잠시 푸른 하늘을 보았던 시절’로 묘사하였지요. 정말 그 시구처럼 저도 그 시절에 잠시 보았던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그 이후에 제가 겪었던 긴 세월 동안에 정말 푸른 하늘처럼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 하늘이기도 합니다. 그 시와 관련해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4·19혁명이란 사실은 총알이 모자를 뚫고 지나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으로 착각하였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젊음을 불태운 소위 80년의 투쟁과 87년의 6월항쟁도 4·19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가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고 잠시 푸른 하늘을 보여줬다가는 사라진, 그리고 지금은 다 잊혀진 과거가 되었다는 점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바쳐 현장으로 감옥으로 뛰어들었던 그때의 열정도 식어버리고 사람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저마다 엉뚱한 일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전공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독서도 체계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책을 통한 공부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통한 공부를 더 많이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특수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사회와 역사를 읽으려고 고민한 셈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학교의 선후배 교수들과 우리 대학의 사회교육원에 오시는 분들입니다. 주로 교육운동이나 노동운동 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과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에 사회를 바꾸어내는 역량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은 상황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렵다는 것은 이를테면 운동의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정부가 보여주는 한계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충격 때문이겠죠. 사실입니다. 사회변혁에 관한 근본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의 객관적 상황을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87년 당시의 열정과 헌신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민주화투쟁에 투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주변화되고 흩어지고 서서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주체적 역량도 취약하고 객관적 조건도 열악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방향으로 우리 고민을 모아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관한 평소의 제 생각을 몇 가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주체 역량이 역사를 결정한다

사회변혁 문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체적 역량의 문제이고 둘째는 객관적 조건의 문제입니다.

주체적 역량의 문제는 크게 양적(量的)측면과 질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양적 측면은 차치하고 우선 질적인 문제에 관해서 논의해보지요. 이른바 질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역량의 조직, 즉 조직적 역량을 중심에 두고 본다는 뜻입니다. 사회변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 역량입니다. 그것도 조직적 역량, 조직화된 역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역량을 보는 관점이 너무 피상적이고 형식적이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물론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리고 큰 목소리를 내고, 그러한 고양된 분위기가 중요하기도 합니다만 사실 중요한 건 역량의 질적 측면입니다. 저는 사회 변혁의 주체적 역량이 지금처럼 분산·소멸 내지는 개량된 이유는 민주화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민주화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 결정적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불철저한 인식의 공유에 기초한 역량 결집이었다면 그것은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토대 그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지요.

저는 전주교도소에서 6월항쟁 소식을 들었습니다. 담 넘어 들어오는 소식은 굉장히 부풀려 있어서 거의 80년 광주 때와 같은 상황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6·29선언으로 일단락됩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전주교도소 담 너머로 보이는 완산 칠봉이었어요. 동학혁명군과 관군의 공방전이 치열했던 곳이지요. 이 싸움은 결국 전주화약(全州和約)으로 마무리되고 맙니다. 6·29와 전주화약이라는 두 사건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감옥에 앉아 있는 저로서는 6월항쟁을 이끈 지도부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여러 루트를 통해서 알아봤지요. 역시 6·29라는 그런 형태로 일단락지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도부의 성격이 중요하니까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를 회상하면서 문민화·민주화 이후의 미온적이고 기만적인 전개과정에 대하여 울분을 토로합니다. 투쟁의 성과를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잡혀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감옥에 구속되고 그야말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많은 사람들이 그 이후의 과정에서 소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전선의 소총소대가 아닙니다. 누가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가, 그것이 운동의 성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6·29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과정은 이미 그때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시 설정했던 민주화의 목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수준, 이것이야말로 그 후의 전개과정을 결정하는 것이며 결국 오늘의 문제들을 배태한 원인인 것입니다. 배신도 아니고 변질도 아닌 것입니다. 당시 지도부를 구성했던 계층이 그 후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의미에서 냉혹합니다. 비약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극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의 토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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