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의약분업 대통령도 망설였다”

‘DJ 동서’ 서재희 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장의 4시간 격정 토로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5-03-23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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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14일, 서재희(徐載熹·73)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보건복지부(장관 김원길)에 제출한 사표가 마침내 수리됐다. 취임한 지 13개월, 임기를 2년 10개월이나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서 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전(前)동서, 그러니까 사별한 첫부인 차용애 여사의 동생 차은경(67) 씨의 남편이다. 대통령 친인척인데다,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추천한 의사 출신 평가원장이라는 이유로 취임 전부터 언론과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지난 3월, 의보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온 뒤부터는 ‘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여론 악화와 ‘반대파’의 공세에 밀려 도중하차하고 만 것이다.

    원고마감이 임박한 8월16일 오전 9시, 송파구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서 전원장을 찾았다. 60평 남짓한 공간은 손때 묻은 가구, 10년은 됐음직한 가전제품들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원장 재임 시절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은 그였다. 서 전원장은 “그 때는 눈물나게 억울한 일이 있어도 위치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또 말을 하면 할수록 대통령께 누만 끼치게 될 상황이었다. 이제 홀가분한 몸이 됐으니 밝힐 것은 밝히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할 것 같아 제안에 응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말 다 털어내기로 한 듯 “이런 걸 좀 물어봐 달라”며 직접 작성한 예상질문지까지 내밀었다. 주로 자신의 과거 행적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쏟아진 비난 중 ‘억울하다’거나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인터뷰는 4시간 넘게 계속됐다. 심평원 직원들의 고생, DJ 친인척이란 이유로 고통받던 날들, 언론 공격에 시달릴 때의 참담했던 심경 등을 토로할 때는 감정이 복받쳐 몇 번씩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억울했다”

    -퇴임하신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지금 심경은 어떠신지요.

    “시원섭섭합니다. 시원한 건 근거 없는 모함에 시달릴 이유가 없어져서이고, 섭섭하다는 건 사옥 마련 등 직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기 때문이죠.

    사실 애초부터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중책인데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대통령 친인척이라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될 텐데 괜찮을지, 그런 걱정들을 많이 했지요. 나이도 있고, 심평원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 마땅한 후임자가 나타나면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그 시기가 좀 빨리 온 거죠.

    원장직을 수락한 건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심평원 초대 원장 아닙니까. 지난해 7월1일,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를 통합하면서 보험연합회에서 수행하던 의보 심사기능을 독립시킨 것이 바로 심평원이니까요. 의보통합은 물론이요 의약분업의 핵심기관인 셈인데, 정말 잘 이끌어 의료제도 개선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 평생 공정하게 살아왔고 분업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지난해 6월 말, 서 전원장이 심평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은 물론 건강연대·경실련·전국사회보험노조(옛 지역의보노조) 등의 반대가 잇따랐다. ▲의협에서 추천한 개업의사라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서를 공정하게 심사·평가할 수 없고 ▲고령에 30년 넘게 개업의로만 활동해 행정능력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악조건’에도 원장에 내정된 건 대통령의 동서이기 때문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었는데요.

    “한마디로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절 추천한 곳이 청와대라든가 여당이라든가, 그러면 또 몰라요. 근데 의협이 했단 말입니다. 심평원 독립이라는 것 자체가 의협이 요구한 일이예요. 이전에는 보험연합회가 심사 기능을 갖고 있다 보니 ‘보험자 입장’에서만 일처리를 해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바로 잡자고 여야 의원 만장일치로 심평원 설립을 결정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의사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 심평원 직원의 3분의 2 이상이 의료인입니다. 상근·비상근 합쳐 550여 명이나 되는 간호사, 의사들이 심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심평원 자체가 의료인 손에서 굴러가고, 의료인으로서의 전문 지식이 어디보다 크게 요구되는 조직이란 말이죠. 그러니 의사가 원장이 되면 안 될 이유가 뭡니까. 심평원장은 의료인이 아니어도 좋고, 의료인이면 더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원장 취임 후 이런저런 의사 모임이 있을 때 가서는 꼭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추천해 원장 됐지만 내가 보호하는 것은 정직한 의사뿐이다, 비도덕적인 의사는 도둑에 진배없으니 앞장서서 척결하겠다고요. 사실 지금까지의 그 수많은 적발 실적을 누가 다 올린 겁니까. 바로 심평원이 한 일 아닙니까.”

    그는 경력과 나이를 문제삼은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원장이 어디 직접 심사를 하나요. 중요한 건 직원들이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가는 것이지요. 행정능력을 문제 삼는데, 제가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더 무슨 경력이 필요합니까. 직원들로부터 신망 받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수 있으면 된 것이지요. 제가 그만둔다니 직원들이, 원장님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각계에 진정서라도 내겠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는 겁니까. 정말 되묻고 싶습니다.”

    서 전원장이 ‘낙하산 인사’라는 말에 강력히 반발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쉽게 말해 “일개 동네 의사가 대통령 빽으로 덜컥 요직에 기용됐다”는 것은 그의 의학계 위치나 의약 분업과 관련한 역할을 과소평가한 때문이라는 속뜻이 깔려 있다. 오히려 의협 측에서 그의 ‘파워’와 ‘로비력’을 높이 사 난색을 표하는 복지부에 강력 추천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 했다.

    -당초 1999년 7월 시행키로 한 의약분업을 1년 뒤로 연기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신 걸로 아는데요.

    “그렇습니다. 과정을 간략히 설명드리죠. 1998년 당시 제가 의협 고문이었는데, 의협회보나 의사회지 같은 매체를 보면 의약분업과 관련된 갑론을박이 대단했습니다. 어느날 송년 모임이 있다 해서 나갔는데 또 그 자리가 분업 토론회장 비슷하게 돼버리더군요. 제가 말할 차례가 되어 ‘어쩌면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냐, 이 중요한 문제를 의협회보 같은 데서만 떠들면 뭐하나, 복지부 장·차관, 청와대 복지수석, 필요하면 대통령이라도 만나야 할 것 아니냐’고 했지요. 근데 이 사람들이 ‘대통령은커녕 장·차관 만나기도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그러다 그만 얘기가 이상하게 풀려, 제가 정·관계에 분업 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사람으로 낙점이 됐습니다. 모임 참석자들이 그렇게 만장일치로 가결을 했어요. 제 입으로 한 말도 있고, 안하겠다고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명감을 갖고 뛰어들었죠.”

    -아무래도 대통령 인척이라는 것이 도움이 됐겠군요.

    “그랬지요. 1999년이 되면서 여러 사람 만나 얘길 들어보니, 역시 분업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아요. 이렇게 시작해서는 그 좋은 뜻을 도저히 살릴 수 없겠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맨투맨으로 독대한 자리에서 지금 분업은 절대 안된다는 말씀을 간곡히 드렸어요. 한 40분, 말씀 한마디 없이 제 얘기를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시던 대통령께서 ‘복지수석한테 연락해 얘기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복지부 장·차관, 복지수석, 김원길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 참여연대 관계자와도 약속을 했는데, 그 사람이 아무 연락 없이 나타나질 않는 바람에 대화에는 실패했어요. 국회의원들도 몇 명 만났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 반응이란 게 고작 ‘지금 안 하면 어떻게 하냐, 1년 더 미룬들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거예요. 참 답답해서 혼났습니다.”

    -복지부 측에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그 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차관 말씀이, 1993년에 시작된 일을 이제 와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어떻게 말하느냐는 겁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들이 법으로 정해 놓은 걸 행정기관에서 보이코트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준비 안 된 건 사실 아니냐고 따졌더니 또 이렇게 말해요. ‘언제 한들 준비가 되겠는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약 오·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자는 건데 이 좋은 걸 행정부에서 어떻게 안 한다고 하나.’ 그 때 제 심정은 솔직히 이랬습니다. 내가 대통령을 가까이서 뵙고 평생 존경해온 사람으로서 그 분을 욕되게 하는 일만은 어떻게든 막아야질 않겠는가, 이 상태로 분업을 시행했다가는 국민들 원성이 하늘을 찌를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는가…. 그래서 다시 김원길 정책위의장을 만났지요. 대화 끝에 김의장으로부터 ‘1년만 미뤄보자’는 얘길 들을 수 있었어요. 김장관과는 그 일을 계기로 무척 다정한 사이가 됐습니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1999년 2월24일, 국민회의 당3역으로부터 의약분업 실시 연기에 대한 건의를 받고 이를 수용, 연기를 지시했다. 서 전원장으로 대표되는 의학계의 뜻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완벽한 준비 없이 분업을 강행했다가는 국민연금 확대실시 파동처럼 대량 민원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해서 1년 후인 지난해 7월1일 비로소 의약분업이 시행됐는데요, 그때는 준비가 잘 됐다 싶으시던가요.

    “아니지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간에 의사들이 협상 테이블을 보이코트하고 나오면서 문제는 더욱 커져만 갔고…. 그런데도 일부 인사들이 마구 밀어붙여서 결국은 시행되고 말았어요. 스스로들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알 일이에요. 그렇게 무책임하게 군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당시 서 전원장은 ‘의약분업안 반대’의 소신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지난해 6월 20일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을 어기고 운영 중이던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서재희의원의 폐업계를 제출한 것. 서 전원장은 20~22일 사흘간 폐업한 후 24일부터 정상 진료를 하다 28일 다시 폐업계를 제출했다. 같은 달 22일에는 “정부의 잘못된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협의 폐업투쟁을 전폭 지지한다”는 의협 성명서에 원로 의사 11명과 함께 서명했다. 서 전원장은 심평원장에 내정된 후 일련의 과정이 문제시됐을 때도 “정부의 의약분업안은 잘못됐다는 신념 아래 의협의 폐업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도 통탄할 것”

    -2000년에도 역시 준비가 덜 됐다고 판단했다면 다시 한번 연기를 시도해볼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시 대통령께 연락을 드렸죠. 그래서 방문 날짜까지 잡았는데 대통령께서 너무 바빠 뵙지 못하게 된 거예요. 그 때가 총선 직전이었거든요.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더군요. ‘분업 강행은 안된다, 이대로 가다간 의대생들까지 들고 일어난다(얼마 후 실제로 그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고 다시 진언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대통령께서는 ‘1년을 더 미루지 않았나. 나라고 이제 어찌 하겠나. 자네가 다시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해 보든지’하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통화를 끝으로 저도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미룰 수 없다는 걸 안 거죠. 대통령께서 단안을 내려 특단의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연기는 있을 수 없는 상태까지 온 거였습니다. 무엇보다 여야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안 아닙니까.”

    서 전원장의 말대로라면 김대통령 또한 의약분업 시행에 완벽한 자신감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끝까지 망설이고 걱정했다는 편이 맞지 않을까.

    -지난 3월, 건강보험 재정 파탄 문제가 이슈화되자 김대통령은 여당 최고위원과의 간담회에서 “의약분업은 내 책임이 크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또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이 (복지부장관한테) “속았다”고 했다는 말을 언론에 전하기도 했지요. 말씀대로라면 대통령의 이런 말들 속에는 진심이 녹아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분명 멋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에요. 아마 통탄을 하고 계실 겁니다. 저한테 들은 말씀도 있으시고….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이나 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런 면에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잘못했다는 거예요. 대통령께서 ‘하자’ 그러셔도 ‘죽어도 못한다’고 강하게 소신을 폈어야지, 이제 와서 ‘나는 책임 없네’하고 발뺌만 하면 그걸로 다인 거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그건…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지요. 짐작 가는 사람들 그대로겠지. 하지만 넓게 보면 모두의 책임이랄 수 있어요. 우선 자기들이 만든 법 때문에 생긴 일을 나몰라라 하는 정치인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논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저 책임 벗을 생각에만 골몰해 있잖아요. 분업 문제는 정치권에서 풀어야 합니다. 노력을 해야지요. 막말로 이게 나라 살림이 아니라 집안 일이고, 국민이 아닌 내 아이가 아프다면 이런 식으로 대응하겠습니까. 학자들 책임도 커요. 의약분업이란 ‘대의명분’은 보통 사람들도 주장할 수 있는 일이고 학자들은 좀 더 실질적인 방안을 내놨어야지요. 그걸, 이때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여서는, 아이고…. 만전 기하지 않은 행정가, 화난다고 협상 테이블 박차고 나간 의료인…, 그 누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막상 심평원에 출근하고 보니 어떠시던가요. ‘준비 안된 의약분업’임을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셨을 법도 한데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의약분업은 매우 바람직한 제도입니다. 문제는 준비가 너무 안돼 있다는 거였죠. 그래도 심평원장을 맡은 건 기왕 이렇게 된 일, 하루 빨리 정착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의약분업의 최고 목적이 뭡니까. 약물 오·남용 방지지요. 이걸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병원과 약국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면 좋으련만 그게 안되니 조정하는 기관이 필요한 거고, 그것이 바로 심평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조직조차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더라 이 말이예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심평원이 출범하기 전, 심평원 주비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놓은 일이 없더군요. 처음 와 보니 직원 1270여 명 중 500여 명이 심사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한 달에 6억건씩,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하루 3000건씩을 심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설상가상 의약분업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병원처방전뿐 아니라 약국쪽 청구내역까지 심사해야죠. 일이 딱 두 배로 늘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병원-약국 간 연계검사가 불가능하더라는 거예요. 처방내용과 조제내용을 함께 심사해야만 허위·과당 청구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는데, 양쪽 급여청구 시점이 다르고 전산화되지 않은 청구도 많아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심평원 심사직원들은 간호대를 나오고 종합병원에서 2~5년 이상 근무하다 뽑혀 온 사람들입니다. 고급 인력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박봉에 매일 밤 10시, 11시까지 꼼짝도 못하고 일을 합니다. 공휴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어요. 또 인사적체가 심해 4·5급이 대다수를 차지해요. 승진을 시켜주려 해도, 그러려면 원칙상 지방 근무를 하고 와야 되잖아요. 대다수가 가정주부인 사람들이 남편·자식 놔두고 지방에 가기가 어디 쉽습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만두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얼마나 통사정을 해야 하는지….”

    심평원의 열악한 업무 상황을 이야기하며 서 전원장은 한층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직원들의 고생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어 한참씩 말을 멈추기도 했다.

    “우리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보험노조가 몇 달씩 파업을 해도 아르바이트생 써서 그럭저럭 운영되지 않느냐, 우리는 그렇게 안된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다, 꼭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 독립하면서 오히려 축소된 기구, 책상 놓을 자리도 넉넉지 않은 사무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쏟아져 들어오는 질책. 그런 가운데서 직원들을 다독이고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서 전원장은 그래서 우선적으로 추진한 것이 사옥 매입이라고 했다. 그러나 심평원의 이러한 계획은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심평원이 재정파탄 와중에 500억원대 사옥을 매입하려는 것은 낭비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새 사옥 매입은 불가피합니다. 현재 심평원은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건강보험회관(15층)의 9개층과 인근 건물의 1개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단 건물 중 4개층은 심평원 소유지만 나머지들은 임대해 쓰고 있지요. 그 비용만 매월 9000만원 이상이에요. 게다가 사회보험노조는 노상 파업 중이라 어수선하기 그지없지, 또 올해 들어 두 차례에 걸쳐 임시직 300여 명을 충원하고 나니 책상 놓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더라구요. 여직원이 많아 임신 중인 이들도 적지 않은데 점심시간에 잠시 허리 누일 방 한 칸이 없는 겁니다.”

    건물 매입 비용 500억원은 자체 기금 350억원과 보험공단 건물 중 150억원 가량의 심평원 지분을 은행에 저당잡혀 융통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예산에 맞는 ‘싼 건물’을 찾지 못해 답보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심평원과 서 전원장을 가장 곤경에 빠뜨린 것은 1999년 1.38%에 이르던 의보 청구비 삭감률이, 의약분업에 따른 급여청구가 본격화한 2000년11월~2001년 2월 사이에는 0.78%로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의보 재정 파탄 논란이 극에 달했던 지난 3월, 이런 수치가 발표되자 심평원은 언론과 야당, 시민단체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다.

    “약제비 심사 말라” 명령한 장관

    -지금까지의 설명대로라면 삭감률이 떨어진 것은 전적으로 의약 분업 실시 때문이란 건데요.

    “물론 근본 원인은 그렇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훨씬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어요. 제가 참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복지부에서 우리한테 약제비 심사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제비 심사를 하지 말라니. 이는 약국에서 올라오는 의보 청구액은 한 푼도 깎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의보 재정 파탄 위기의 주무부처인 복지부에서 어떻게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있었을까.

    “앞에서도 말했듯 당시 심평원은 약제비 심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병원과의 연계심사가 안 되는 것도 그렇지만, 전산화되지 않은 청구가 (의약분업으로) 폭주해 제 때 의보 급여를 지급할 수 없었어요. 약사회에서 제 방까지 찾아와 “왜 빨리 급여를 내놓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지요. 저 역시 “약국들에서 제대로 올리면 왜 돈이 안나가겠느냐”고 맞받아칠 수밖에요. 하여튼 그렇게 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지난해 11월이었다. 서 전원장은 심사직원 360명을 증원해 달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들고 복지부 모실장을 만났다. 심사 청구 100건이 들어오면 그 중 70%는 건당 진료비만 보고 큰 문제가 없으면 그냥 넘겨야 했던 상황인 만큼 인력 충원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한 건 심사 소요시간을 4~5초로 잡았을 때 360명을 증원하면 60%는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심평원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그 실장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뭣 때문에 약제비 심사까지 하냐, 약국은 병원 처방대로 약만 지어주는 곳 아니냐, 그 일 안 하면 업무의 반은 없어지는 것이니 인력 충원은 해 줄 수 없다….’ 그러면서 ‘인력 충원은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것이라 원장님 신상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더군요.

    기가 막힐 밖에요. 의료비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 3분의 1 이상입니다. 그런데 그걸 심사하지 않고 무사통과시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병원 처방대로 짓는다지만, 막말로 병원에선 3일치만 주라고 했는데 서류에 0 하나 더 붙여 30일치라고 해버리면 그 낭비를 어떻게 합니까. 또 환자들이 약국에 가서 조제비를 내는 데는 병원에서 내 준 처방전에 약물 오·남용 소지가 있으면 그걸 발견해 재조정해달라는 뜻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잘못된 처방전 그대로 약을 짓는 것도 지적이 돼야지요.”

    화가 난 서 전원장은 그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그리고 얼마 후 최선정 당시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약사들이 보험급여가 빨리 안나온다는 이유로 다시 파업을 하려 하니 약국 심사는 생략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어쩔 수 있습니까. 지시대로 할 밖에요. 그래도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약제비 심사 필요성을 담은 공문을 만들어 복지부에 올렸습니다. 결국 복지부에서도 뒤늦게나마 중요성을 인식했는지 ‘심사는 정확히 하되 5일 이내에 끝내라’는 공문을 보냈더군요. 그러느라 한 일주일 정도 아예 약제비 심사를 못했습니다.”

    서 전원장의 얘기대로라면 의약 분업 대책 미비와, 의·약업계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복지부의 원칙 잃은 행정으로 올 초 삭감률이 급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심평원과 원장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심사 삭감률은 10%에 달하는데 심평원은 뭐 하는 거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기준으로 보면 한 해 1조5000억원은 삭감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의보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거였죠. 당시 이런 문제제기를 한 것이 사회보험노조여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사회보험노조는 저와 심평원을 사사건건 음해하고 있습니다. 제 취임부터 사옥 구입 문제, 직원 충원, 심지어는 말도 안되는 미국삭감률 10% 운운까지. 그 얘기를 하려면 또 한참 걸리니까 일단은 생략하고…. 분명한 건 심평원을 깎아내려 우리가 갖고 있는 심사 기능을 건강보험공단 업무로 가져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이 많아지면 구조조정 대상도 그만큼 줄어들테니까요. 공단 안에 그런 작업을 추진하는 테스크포스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미국 얘기를 좀 할까요. 그쪽 주장이 맞는다면 미국 의사 10명 중 1명은 도둑놈이란 말입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죠. 그럼 어떻게 된 거냐. 거기서 주장하는 수치 10%란, 부정청구 기관으로 의심되는 곳만 골라 경찰, 연방수사국, 보험감독기관 등이 총출동해 감사를 벌인 결과입니다. 애초 문제 기관이 대상이었던 거예요. 그것도 6년 전 통계고요. 우리도 문제 기관으로 의심되는 곳만 골라 실사를 나가면 적게는 5%, 많게는 25%까지도 삭감을 합니다. 사실이 이러니 제가 참 속이 상할 밖에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서원장의 과거 행적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개업의 시절 간호조무사에게 약을 짓도록 하고, 수입이 있는데도 큰아들의 직장의료보험에 등재해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는데요.

    “조제 얘기를 하자면, 내 한번 물어봅시다. 우리나라 개업의 중 약사를 고용해 약을 짓게 하는 곳이 있기는 합니까. 국회에서 약사법 위반 아니냐고 묻자 복지부 직원이 나와 ‘그렇다’고 말하더군요. 속으로 기가 막혔어요. 그럼 개업의들은 다 약사법으로 고발당해야 했던 겁니까. 그와 관련해서는 이미 보사부 시절 (무방하다는) 행정지시도 내려온 적이 있어요. 그걸 모를 리 없는 복지부 직원들이 내 변명을 한마디도 해주지 않다니, 뭐…,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요.”

    의료보험료와 관련한 설명도 이어졌다.

    “제 이름이 아들 보험증에 등재된 게 62살 때입니다. 어느날 동회에 보험료를 내러 갔던 간호사가 돌아와선 ‘동회 직원이 그러는데 원장님은 직장 다니는 아들한테 이름을 올리면 된다더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죠. 보험료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일부러 떼어먹겠습니까. 또 그게 법적으로 안되는 거면 의료보험 가입을 받는 쪽에서 저지를 했어야지요. 하여튼 수입이 있으면서도 보험료를 내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라 국회 답변 때도 깨끗이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장관이 사퇴 종용한 일 없다”

    서 전원장은 사퇴와 관련해서도 여러 차례 언론의 구설수에 올랐다. 김원길 복지부장관은 3월부터 사퇴를 종용했는데, 서 전원장이 버텨 이제서야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 전원장은 “김장관은 내게 사퇴를 권고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늘 다정한 사이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김장관이) 절 꼭 어른 대접해주고, 실무와 관련해서도 늘 의견일치가 되는 편이지요. 사퇴 얘기는 제가 먼저 꺼냈어요. 여러 난관 속에서도 심평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감사원 감사 결과 심평원이 의보 재정 파탄에 큰 책임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이만 용퇴하겠다고요. 대통령께 누가 됐음은 물론, 저 한 사람 때문에 생전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던 심평원이 집중포화를 맞는 것 같아 그동안 마음이 참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왜 김장관과 서원장 간의 갈등설이 유포된 걸까요.

    “하하, 저도 그 기사들을 봤습니다. 그래 김장관한테 물었죠,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느냐고. 그랬더니 김장관이 다 자신이 경솔했던 탓이라고 사과합디다. 기자들이 하도 ‘서원장이 힘이 세 못 내쫓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에 ‘무슨 소리냐, 나도 힘세다’고 반 농담을 한 것이 와전됐다고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의보 재정 파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해결책은 있다고 보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재정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의약분업이 아닙니다. 물론 분업을 위해 의보수가를 인상한 것이 촉매제 역할은 했겠지요.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라 의료수준과 그 혜택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날로 높아지는데 보험재정은 자꾸 줄어든다는 거예요. 시술료, 약품값, 재료비 인상률을 보험료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국민에게 자꾸 더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일단 각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대표들의 반대 때문에라도 시행하기 어려울 겁니다.

    해결방법이 있기는 하죠. 가장 필요한 것은 민간의료보험 도입입니다. 예를 들어 1년에 1인당 1000만원까지는 건강보험에서 책임을 지되, 그 이상 올라가는 비용은 환자 개인이 든 민간의보로 커버하는 방식이죠. 민간보험에 들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긴 하는데, 이는 심장병 재단처럼 각 질병 별로 복지기금을 조성한다든지 아니면 일정 기준을 두어 국가에서 보조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김장관 또한 이런 방향으로 제도 개혁을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재희 전원장은 1928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1945년 여수수산학교 졸업 후 1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광주의대(현 전남의대) 예과에 진학했다. 세브란스 의대에서 본과 과정을 마친 후 육군 중위로 입대, 1965년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전투사단 의무참모, 야전병원장 등을 지냈다.

    부인 차은경씨를 만난 건 수도통합병원에 근무 중이던 대위 시절. 당시 이대 국문과 학생이던 차씨를 만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서 전원장 부부는 인터뷰 간간이 김대통령 내외와 조카인 홍일·홍업·홍걸 씨에 대한 애틋한 정을 내비쳤다. 한편으로는 “야당 지도자 처남이라고 고대까지 나와 동서기로 전전하다 퇴임한” 차 씨 큰오빠 이야기를 하며 가슴아파하기도 했다. 차은경씨는 “선거 때면 큰오빠는 웃분들 명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씩 근무지를 옮겨 다녀야 했다. 예편 후 여수에서 개업한 우리집에도 정보요원이 상주하다시피 했다”고 옛 일을 회상했다.

    “고생이 많았지만 가족 누구도 형부(김대통령)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 같으면 연이 끊길 법도 한데, 형부는 물론 이희호 여사가 워낙 한동기처럼 잘 대해 주셔서 오늘까지 가족의 정을 나누며 삽니다. 어려운 시기, 큰 도움이 못돼 드린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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