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경찰대 20년‘하나회’냐 ‘엘리트’냐

  • 곽대중< 자유기고가 > bitdori21@hanmail.net

    입력2005-04-04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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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대학이 올해로 개교 20주년을 맞았다. 유능한 경찰간부를 양성한다는 취지 아래 경찰대학설치법을 제정·공포한 것이 1979년. 그리고 미처 캠퍼스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입생을 모집해 인천시 부평동 경찰종합학교 안에서 더부살이로 개교한 것이 1981년 3월이었다. 당시 경찰대학 신입생들의 입시경쟁률은 220 대 1. 기록적인 경쟁률이었다.

    물론 첫 입학생이다 보니 경찰대학과 관련한 입시데이터가 전무(全無)해, 순경시험쯤으로 생각하고 지원한 학생도 있었고 무술을 잘하면 특기생으로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원한 학생도 있어, 허수(虛數) 지원자가 많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줄곧 경찰대학은 20∼3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여왔다. 지난 9월8일 치른 2002학년도 신입생 모집 1차 시험에는 120명 정원에 3600명이 지원하여 3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체 간부의 20% 차지

    1989년부터는 고급 여성인력을 경찰간부로 채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남학생들의 경찰대학 경쟁률은 8.1 대 1이었지만 첫 여자 신입생들은 45.2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다. 1995년 여학생 모집에는 62.4 대 1이라는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여, 1997년부터는 여학생 모집 인원을 12명으로 늘렸다. 경찰대학에 합격한 여학생들의 입시 평균성적은 늘 남학생보다 1~ 2점 앞서고 있다.

    경찰대학은 1983년 1월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언남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1985년 이 캠퍼스에서 제1기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름하여 스물네 살의 ‘꽃경위(警衛)’. 이들은 경찰의 분위기를 개혁해 달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한편으론 이들의 업무능력을 믿어도 되느냐는 불안 섞인 걱정이 쏟아지기도 했다. 20대 나이에 일선 경찰서의 계장 혹은 파출소 소장을 한다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나 삼촌뻘 되는 부하직원을 호령하는 것은 시샘과 불만을 불러오기 쉬웠다.



    그리고 15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올해 3월 졸업한 17기생까지 포함해 경찰대학은 모두 1945명의 무궁화(경위)를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강물 위에 띄워 보냈다. 전국 각지의 경찰서와 파출소 지방경찰청에 있는 경위 이상의 간부 1만여 명 중에 약 20%는 경찰대학 출신자로 채워진 것이다.

    애초 우려와 다르게 이들은 물의를 빚지 않고 경찰업무를 무난히 수행하였다. 지난 4월 대우차노조 집회 과잉진압과 관련하여 경찰에 대한 국민여론이 악화되었을 때, 경찰대 동문회는 그들의 주장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자 ‘개혁세력이 되어야 할 경찰대 졸업생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힘을 과시한다’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 내의 하나회가 되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언론이 경찰대 동문들이 발표한 성명 내용을 다르게 보도한 것이 드러나면서 이런 비판은 고개를 숙였다.

    그 며칠 뒤에는 현직 경감(警監)인 4기 졸업생이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경찰청장 앞으로 보내 또 한 번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몇 가지 돌출행동, 그리고 다른 경찰간부들보다 더 강하고 공공연히 경찰수사권의 독립을 주장하여 온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경찰대 졸업생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썩 좋음’ 혹은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대학 입학 때부터 수재(秀才)였던 경찰대 졸업자들은 경찰 일선에 나가서도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경찰간부의 승진은 경정까지는 시험과 심사로, 총경 이상은 심사만으로 이루어진다. 승진이 능력을 온전히 비춰주는 가늠자는 아니지만, 20대의 경찰대 출신들은 40~50대와 함께 치른 승진시험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하여 30대 초반에 경감, 30대 중반에 경정으로 초고속 승진을 계속했다.

    경찰 내에는 간부후보나 순경 출신 간부 경찰의 텃세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경찰대 출신들이 총경 계급을 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대 출신은 1기생인 윤재옥 경정이 1998년 처음으로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 반열에 오름으로써 이러한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윤총경이 대구 달서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이래, 모두 16명의 경찰대학 졸업생이 총경으로 진급했다. 이들이 군대의 별에 해당하는 경무관, 치안감 등 최고위급 경찰간부로 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

    경찰대 폐교론 등장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이력서의 이면(裏面)에는 그늘도 있다. 1·2·3기 등 초기 졸업생들은 부모의 권유에 따라 ‘경찰이 뭔지도 모르고’ 경찰대학에 지원한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지서(支署)장, 파출소장은 동네유지로 추앙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주고, 졸업하면 곧바로 파출소장을 시켜준다니, 부모들은 자식 덕에 동네에서 어깨 펴고 다니자며 엄하게 기른 자식들을 경찰대학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해서 일선에 배치된 초창기 졸업생들은 1980년대 중반 자신의 친구들이 도로를 점거해 투석전을 벌이며 ‘호헌철폐’를 외칠 때, 전경부대 지휘관이 되어 맞서야 했다. 괴로운 시기였다. 경찰대 2기생 A씨는 “군대를 갔다 와 복학한 고향친구가 Y대 3학년이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 종로거리에서 상황대기를 하던 중 그와 마주쳤다.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초창기 경찰대 출신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경찰서에 배치되니, 이번에는 믿고 의지할 선배와 인맥(人脈)이 없었다. 경찰조직 내에서는 처음 등장한 20대 상관을 부하 직원들은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 서장이 주재하는 참모회의에 들어가면 이들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술자리의 분위기 메이커는 언제나 젊은 과장들(경찰대 출신)에게로 돌아왔다.

    이러니 초창기 경찰대 출신 사이에서는 일찍 진급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회의감이 돌았다. 윗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아랫사람들과도 흉금을 터놓지 못하는 물에 뜬 기름 신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진 것이다. 개밥의 도토리. 그러자 일부 경찰대 졸업생은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는 사표를 내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대기업에 특채되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이런 가운데 10여 년이 지나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이번에는 경찰대학 폐지론이 등장해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경찰대 출신들은 병역을 면제받고, 무상으로 교육받는다’ ‘4년간 사관학교와 유사한 교육을 받아 선후배와 동기 간의 결속이 단단한 이들이 차례차례 경찰 간부로 성장하면, 육군 하나회처럼 경찰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집단이 될 수 있다’ ‘경찰대 출신은 사관학교 출신이고 다른 출신은 비사관 출신이냐’ ‘일반 대학 경찰행정학과 졸업자는 시험을 거쳐 경위가 되는데 경찰대학 출신은 바로 경위가 되니 형평에 어긋나는 처사다’ 등이 경찰대 폐지론을 나오게 한 주요 근거였다.

    이에 대해 경찰대 출신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이러한 것에 대응하자니 말 그대로 집단화되어 간다는 시비를 당할 것 같고, 그냥 듣고 있자니 경찰 조직의 모든 문제가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비쳤다. 정말 억울했다.”

    경찰대 폐지론이 나온 이유는 우리나라 경찰관 계급이 에펠탑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순경·경장·경사 등 하위직 경찰관 수는 많은 반면, 경위 이상의 간부는 갈수록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2001년 9월 현재 9만여 명의 경찰관(전경과 의경 및 기능·별정직 제외) 중에 경사 이하는 절대다수인 약 8만 명이다. 그리고 경위는 8000여 명, 경감·경정은 2000여 명, 총경은 370명 등 위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하위직 경찰관으로 채용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순경공채를 통해 입직(入職)하는 것이다. 그러나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은 경장으로 특채(特採)되기도 한다. 일반대학의 경찰행정학과 졸업자는 경사로 특채되기도 한다. 경찰대학 졸업자가 아닌 사람이 간부 경찰관으로 입직하는 코스로는 매년 50명씩 선발하는 경찰간부후보시험이 있다. 또 사시 합격자나 행시 일반직과 재경직 합격자로 2년 이상 중앙부처에서 근무한 자는 경정으로 특채된다.

    이렇게 다양한 입직 과정 중 유독 경찰대 출신만 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순경으로 입직한 경찰관은 15년, 때로는 평생을 근무해야 경위가 되는데, 경찰대학 출신은 경찰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경위를 달기 때문이다. 우수한 간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특혜를 줘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찰관 채용제도는 어떠한가?

    영국·스코틀랜드·뉴질랜드·미국 등은 단일(單一) 입직제도를 택하고 있다. 모든 경찰관이 순경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다만 영국은 대졸 학력 이상의 순경지원자 중에 우수자를 선발해, ‘대졸자 특별승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도 특수한 직책에 대해서는 개방형 계약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는 순경이라 하더라도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보수가 높아 특별히 승진을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계급 승진에 대한 욕구가 적은 것이다.

    독일과 홍콩은 간부와 비간부로 이원화해 경찰관을 채용한다. 독일은 주(州)마다 있는 경찰대학을 통해 간부를 육성하므로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하다. 프랑스와 일본은 비간부, 관리자급, 지휘관급으로 나눠 다양하게 경찰관을 채용한다. 프랑스는 국립경찰대학(ENSP)을 두고 있지만 경찰학에 대한 연구와 경찰간부 교육, 국제협조를 담당할 뿐이다. 경찰대학을 통해 간부를 육성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극소수의 나라뿐이다. 이러한 현실이 경찰대 폐교론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월 사이버 경찰청 토론방에 마련된 ‘경찰대학이 꼭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발언대에서는 경찰대 존폐문제를 놓고 일반 출신과 경찰대 출신, 그리고 네티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일부에서는 “경찰대학은 경찰조직 내의 성골 귀족이다”고 비아냥거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찰대학 졸업생 중에는 “내가 졸업하고 10년이 지나면 과연 우리 대학이 남아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늘어났다. 경찰대 폐교론은 한참 들끓다 물밑으로 들어갔지만, 앞으로도 적지않은 기간 경찰이 풀어야 할 숙제다.

    지금까지 경찰대학 입학자격은 고등학교 졸업예정자(고3)와 재수생에게만 주어졌다. 이유는 병무이행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병역법이 개정돼, 내년도부터는 삼수생도 경찰대에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경찰대학의 신입생 선발은, 경찰대학에서 자체로 실시하는 1차 시험에서 모집 정원의 3배수를 선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합격한 수험생은 100m 달리기, 장거리달리기(남자 1500m, 여자 1200m), 윗몸일으키기 등 신체검사와 적성검사, 면접 등 2차 시험을 치르고, 최종적으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와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합산해 합격을 결정한다.

    입시전문가들은 경찰대학 합격선을 “고교 성적 상위 0.5∼2%”로 추정한다. 작년에는 수능에서 만점 받은 학생이 입학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찰대학의 커트라인은 연·고대에 필적한다.

    빡빡한 수업 일정

    1980∼90년대 경찰대 입학생들은 ‘뭘 모르고’ 입학한 경우가 많았다 치자. 그렇다면 개교 20년이 지나 알 만한 것은 다 아는 요즘 신세대들은 무슨 이유로 경찰대학에 진학하는 것일까? 현재 경찰대학의 4학년생은 18기, 1학년은 21기다. 이들은 정보가 무제한으로 전파되고 공유되는 인터넷 세대다. 따라서 이 예비 경찰관들은 선배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사전 지식을 갖고 경찰대학에 입학한다.

    현재 인터넷 동호회 중에는 ‘경찰대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카페가 있고, 경찰대 입시정보를 나누는 홈페이지도 여럿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경찰대에 진학하는 방법, 학교생활, 졸업 후 진로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예비 선배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벌써부터 경찰대 2004학번으로 자처하는 학생들도 눈에 띈다. 경찰대학의 한 관계자는 “요즘 학생들은 대학 직원보다 학교에 대해 더 잘 알고 입학하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경찰대학은 매년 5월, 재학생들을 졸업한 고등학교로 보내 경찰대학을 홍보하는 모교 방문행사를 실시한다. 고교생 중에는 이것을 계기로 경찰대학의 존재를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제복생활을 하고 싶었다”는 도주호(21)씨 역시 이러한 케이스다. 그는 “홍보비디오를 보자마자 나는 저 대학 학생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고교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재수를 하여 그는 올해 경찰대학 1학년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 대해 정보를 많이 갖고 입학하는 것과 올바른 경찰상 및 뚜렷한 직업관을 갖고 입학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신세대 한 예비 경찰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국가를 위해 충성해야겠다, 혹은 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경찰이 되어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솔직히 없다. 강한 결심과 의지를 발휘해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보다는 내 직업과 행동 자체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보탬이 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그 대표적인 분야로 경찰이나 소방관을 생각했다. 이것이 경찰대에 진학한 동기다.” 이제 졸업을 앞둔 4학년 정성진(24)씨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정씨는 “경찰관으로 평생을 사신 할아버지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찰대학 내의 학생생활은 자율과 통제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 경찰대학 초창기에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대학이 없어 대부분 사관학교 시스템을 모방했다. 벤치마킹할 대상이 사관학교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과목만 달랐지 사관학교와 거의 비슷한 생활규율과 학칙을 따랐기 때문에 ‘경찰사관학교’로 비치기도 했다. 경찰대학 교육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5기 졸업생 박경식 경정은 “경찰대학은 개교 초기에는 사관학교식 통제생활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다 점차 일반대학에 가깝게 자율을 확대해 오는 역사를 거쳤다”며,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함께 요구되는 경찰업무의 성격상 이 둘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경찰대학의 특징이자 과제”라고 설명한다.

    통제적인 측면은 재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방학이 일반 대학보다 짧다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찰대의 학생 기숙사는 다섯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네 동은 남학생, 한 동은 여학생이 생활한다. 한 방의 인원은 3~4명. 방원(房員)은 모두 같은 학년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생활방이 4개 모여 하나의 섹터를 형성한다. 한 섹터는 1, 2, 3, 4학년 방이 하나씩 섞여 있고 자율적인 생활통제는 섹터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숙사 생활에 대해 도주호씨는 “일반 대학에 비해 사람을 사귀는 양적인 부피는 적을지도 모르지만 한정된 인원을 사귀다 보니 질적인 깊이는 훨씬 클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동료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방학은 여름은 5주, 겨울은 6주간이다. 학기는 일반 대학과 비슷한 시기에 끝나지만 경찰대학생들은 여름학기, 계절학기 등으로 펼쳐지는 3∼4주의 ‘보충수업’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이루어지는 수업은 자동차 운전면허 취득, 무도(武道) 유단 취득, 수영 및 인명구조 자격증 취득 등이다. 또 관서(官署)실습이라 하여 일선 경찰서, 파출소, 기동대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기도 한다.

    “우리 대학은 법학, 행정학 등 정규수업 이외에 경찰 관련 과목과 각종 특기 분야를 이수해야 하므로, 일반 대학의 학생들보다 두세 곱절 많이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정성진씨는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생활의 4년 연장이라는 것이다.

    외출·외박은 주중 외출과 주말 외박이 있다. 수요일의 주중 외출에서 1·2학년은 밤 11시까지, 3·4학년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귀교해야 한다. 주말 외박은 전학년 모두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밤 10시까지다. 주중 외출 때는 사복을 착용할 수 있으나 주말 외박 때는 정복을 입어야 한다.

    경찰대 학생들의 복장 규정은 매우 복잡한데, 이 대학의 교수부장 권지관 경무관은 “불필요한 통제는 앞으로 점차 개선할 계획”이라고 했다. 통제를 줄여가는 것은 이 대학 출신들이 졸업 후 국민을 상대로 한 대민 업무인 치안서비스를 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비경찰관 때 이들의 생활과 사고를 너무 경직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경찰대학은 ‘자율화 조치’의 일환으로, 이번 학기부터 4학년생에게 자유로운 외출 외박을 허용했다고 한다.

    경찰대학 최종합격자들은 입학식 이전에 ‘예비입학’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종의 신입생 예비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이 과정은 전(前)기수 선배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경찰대 학생들은 이 기간을 가장 큰 추억으로 삼고, 전기수 중에서 예비입학생을 지도하는 훈련관이 되는 학생은 훈련관이 된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여긴다.

    “예비입학 때 훈련관이 되는 선배는 재학시절 내내 ‘따르고 싶은 표상’으로 남는다. 졸업 후 술자리에서도 예비대학 때의 에피소드는 내내 안주거리로 오른다고 한다. 예비입학생을 지도하는 훈련관은 최고의 명예직이다. 때문에 전기수들은 투표로 훈련관을 선발한다.”

    지난해 훈련관으로 후배들을 지도했던 3학년 안미연(22)씨의 자랑이다.

    주로 체력단련과 선배들의 학교생활 소개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1학년을 표시하는 작대기 하나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옷깃에 배지를 다는 순간 경찰대 학생이 되었음을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경찰대의 하루 생활은 오전 5시50분 기상나팔로 시작된다. 운동장에 모여든 이들은 인원 점검을 받고 간단한 체조와 구보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잘 사람은 자고, 수업 준비를 할 사람은 하면서 일상생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후 일과는 오전 9시에 1교시가 시작되는 등 일반 대학과 똑같이 운영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강의실을 찾아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전체 학생의 수업이 거의 똑같기 때문에, 학생들은 한 강의실에서 하루종일 지낸다. 오후에는 주로 실무 위주의 수업이 있고 수업을 마치면 동아리 활동이 이어진다.

    “수업시간에 조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많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수업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학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도 점차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경찰대 1기 황운하 경정의 조언이다.

    경찰대학은 전체 학생의 학비를 전액 국가에서 지원한다. 교재와 의복, 생활용품까지 무료로 지급한다. 또 품위유지비라 하여 1학년생 10만원에서, 4학년생 16만원까지 용돈도 지급한다. 학내에서는 음주행위가 전면 금지되지만, 흡연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허용된다. 역시 사관학교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경찰대 학생 1인에게 지급되는 피복 급식비는 4년간 1700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등록금과 실습비, 학교운영비 등까지 추산하면 졸업생 1명에게 투자되는 비용은 1억원 정도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남학생들은 4주간 군부대에 입영해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졸업 후 8주 동안은 남녀 학생 모두가 경찰종합학교에 입교해 전술지휘과정을 이수한다. ‘현장 투입’은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친 후 시작된다. 이때 남자 졸업생은 병역의무를 마치는 차원에서 2년간 기동대나 전경대 등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여자 졸업생들은 일선 경찰서에 배치된다.

    남자 경찰대 졸업생들이 각종 시위현장과 시설경비 근무에 동원되는 것은 바로 이때다. 한 졸업생은 한나라당사 경비에 동원되고, 다른 졸업생은 민주당사 경비에 동원돼 서로 마주치기도 한다. 여자 졸업생들은 집회현장에서 ‘폴리스라인(police line)’을 설정하는 일에 도맡다시피 동원된다. 그래서 “동기회는 여의도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농담도 생겼다.

    취재중 만난 한 졸업생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겁이 난다”고 했다. “경찰내에서 중추를 맡고 있는 선배들을 볼 때면 과연 나도 저렇게 일을 할 수 있을지 부담스러워진다. 유능하고 똑똑한 선배가 조직 내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소일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렇게 적당히 살아가게 될까 싶어 겁난다”는 것이다.

    민주 경찰이 될 것인가

    경찰대 출신들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 정답은 본인들의 의지와 결단, 사명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천년제국으로 흥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잘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경찰대 출신들은 과연 민주경찰 시스템을 운영할 만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경찰대 출신들이 어떤 자세로 공부하고 어떤 의지로 행동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후배들이 자라는 경찰대의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것만이 한국을 치안 선진국, 민주 국가로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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