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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대학 학과 판도가 변한다

수재들의 경연장, 연극영화학과의 대도약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수재들의 경연장, 연극영화학과의 대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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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영화학과에 수능시험 고득점 수험생들이 몰리고 있다. 계열수석을 배출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전체수석이 연극영화학과에서 나오는 대학도 있다.
젊음이 세상을 깨고 나가는 도구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통기타와 생맥주가 1970년대 젊은이들의 ‘틀거지’였다면 80년대 젊은이들은 사회과학이란 ‘무기’를 들고 세상에 맞섰다.

그렇다면 21세기 영상세대는?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이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먹고 자란 신세대들의 틀거지요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신세대들의 욕구를 반영하듯 각 대학 연극영화학과에는 ‘학력’과 ‘끼’를 겸비한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모여 들고 있다.

영화감독·배우를 꿈꾸는 영상세대

“하나! 둘! 엉덩이 빼지마.” 다리엔 힘이 없고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다. “다시 한번 해봐. 좀더 부드럽게.” 지시에 따라 몸을 다시 움직여 보지만 좀처럼 춤사위가 멋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지난 9월부터 저녁시간 짬을 내 재즈댄스 학원에 다니는 대입 삼수생 김모씨(21).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른 첫번째 입시에서 서강대 인문계열에 합격했다.

합격의 즐거움도 잠시, 한 달 남짓 대학생활을 하고 나니 ‘권태’가 밀려왔다. 전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부모님의 반대로 접을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의 길을 찾아 다시 대입준비에 나섰다. 목표는 서울 소재 대학 연극영화학과.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그만두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꼭 연극영화학과가 아니더라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길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371점을 받았다. 특차전형에서 동국대 예술대학 영화영상전공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낙방. 여러 학교에 원서를 낸 일반전형 결과도 모두 불합격이었다. ‘추가 합격자 명단’에서조차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합격선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재수에 실패한 뒤 그는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다. 마음이 약해져 도전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모의고사 점수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자 배우기 시작한 게 연극실기, 그리고 ‘특기시험용’ 재즈댄스다.

“수능성적만으로 뽑는 곳에 입학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물론 성적만 잘 나온다면 그간 땀 흘린 게 쓸모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실기시험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씨는 매주 토요일 고등학교 연극동아리 시절 선배에게 대사법·발성법·호흡법을 배운다. 연극영화학과 실기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희곡작품을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면접시험을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탠리 큐브릭 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그는 “연극영화학과에 합격해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해보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10월6일 늦은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춤 연습을 위해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곧이어 소형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춘 춤판이 10분 남짓 이어졌다.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은 비 보잉(B-boying).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브레이크 댄스로 힙합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에어트랙(물구나무를 서고 공중회전을 하는 동작) 연습에 여념이 없는 강형인군이 브레이크 댄스에 입문한 건 2년 전. 장래희망이 영화배우라고 한다.

“여러 사람의 동작과 음악이 하나가 돼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꼭 춤은 영화와 똑같습니다.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서 배우가 될 거예요.”

“다른 학과는 관심 없다”

그는 반에서 5등 밖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우등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재주꾼’이라는 게 옆에서 헤드스핀(머리를 지지대로 회전을 하는 동작) 연습을 하던 친구의 평이다.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강군은 올 겨울부터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영화학과 입시를 준비할 생각이다.

함께 춤 연습을 하던 그의 친구 3명도 연극영화학과에 지원할 계획이다. 스타가 돼 ‘폼’ 나고 ‘튀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그들의 희망. 또래의 대중스타들이 방송에서 환호받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는 강군은 연극영화학과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 반에 10명 정도는 될 걸요, 연극영화과 시험 본다는 애들이. 요사이 인기 있는 애들 대부분이 연극영화과 출신이잖아요. ‘스타’가 되는 지름길이 연극영화과 아니예요?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뮤직비디오 등과 관련된 일을 하려면 연극영화과가 유리하잖아요. 다른 학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강군은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는 게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연극영화학과 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던질 준비가 돼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춤을 잠시 포기하더라도 대학입시 공부에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고, 중·고생들 사이에서는 연극영화학과가 최고 인기학과가 된 지 오래다. 각종 연기영화 관련 학원은 연극영화학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늘 만원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뭇 사람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 ‘영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영화감독’을 꿈꿔본다. 하지만 오랜 기간 예술이나 창작 분야에 직접 발을 들여놓는 데는, 이를 가로막는 일종의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중·고등학교를 다닌 영상세대들이 성인이 되면서 이러한 장벽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연예·예술인이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의 하나로 등장한 것은 연예·예술인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편견이 영상세대들에겐 더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청소년개발원이 서울시내 중·고생 698명에게 장래 희망직업을 물은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디자이너(9.8%), 연예인(8.8%) 예술인(8.8%) 등 예술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싶다고 응답한 학생이 전체의 45.8%인 반면 의사·약사(5.7%) 교수(5.1%) 법조인(3.9%) 등 전통적인 전문직은 34.2%에 불과했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뭉뚱그려 놓은 ‘생비자(prosumer)’란 조어처럼 영상광고·텔레비전·인터넷·뮤직비디오와 함께 자란 영상세대들은 영상텍스트의 소비자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생산자로 직접 뛰어들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연극영화학과의 경쟁률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연예인에 대한 동경이나 막연한 기대감으로 지원한 학생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 연극영화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영상산업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게 과거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중인 송혜진씨는 연극영화학과의 인기에 대해 “미디어를 향한 욕구를 터뜨리는 분출구로 영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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