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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마스크 대신 행복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마지막 안식처’ 호스피스 병동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산소마스크 대신 행복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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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들 한 인간의 탄생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과 축복을 보낸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죽은 뒤에는 유족들이 경제 능력을 뛰어넘는 풍성한 장례를 치르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누구도 제대로 돈을 들이지 않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고스란히 당사자가 가져가야 한다.
가정집을 방문해서 말기환자를 돌보는 심재희(38)씨는 2000년 11월 아들 김성원(당시 10세)군을 잃었다.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의사가 골수검사를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설마 백혈병은 아니야… 오진이겠지’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김군은 결국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아이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손발을 심하게 떠는 증상이 나타났고 구토가 더욱 심해졌으며 탈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조언에도 심씨는 치료에만 매달렸다.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사이비 의약품을 아들에게 먹이기도 했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병을 고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주치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해야 성원이가 가장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김군은 고통에 지쳐 잠자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손과 발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이가 잠시 의식을 찾아 “엄마 나 언제쯤 학교에 갈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심씨는 아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눈물이 나올 만큼 김군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정을 떼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죽음을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불렀을까…”

엄마의 그런 무관심한 태도에 열살배기 아들은 외부의 자극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게 됐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이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뱉는 순간, 심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입맞춤해주지도, 꼭 껴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다. 눈물이 쏟아졌지만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내 잘 가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아들의 죽음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안녕이라는 말이라도 해주었어야 하는데…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

아들을 이렇게 보낸 심씨는 심한 죄의식에 시달렸다. 무서움에 떨며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는 성원이의 모습이 꿈에 나타나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우울증에 걸린 심씨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평범한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사는 것 자체가 악몽과 같아 다 털어버리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괴로워하는 심씨에게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가 호스피스 봉사자교육을 받을 것을 권했다. 교육을 통해 말기환자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이 아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아들을 돌본다는 생각으로 말기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돕느라 여념이 없는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울증도 깨끗이 씻어냈다.

“인간의 죽음이 삶보다 더 고귀하고 존엄한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무지한 엄마 때문에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불행하게 보낸 성원이를 생각하면 미안할 뿐입니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들이 죽기 전에 호스피스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호스피스의 설립목적은 김군과 같은 상황에 처한 말기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남은 여생,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정신적으로 돕고, 환자의 가족들이 간병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도록 도와준다. 또 사별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느끼는 상실감을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편지나 전화 모임 등을 통해 도와주고 격려하는 의료서비스다.

병원 중환자실에선 임종 직전까지 수혈을 받으며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며 최후까지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과 호스피스를 통해 차분히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 중 누가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일까.

봉사자로 어렵게 꾸려가는 호스피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짐을… 벗으며…”

복도 끝에 위치한 병실에서 입원한 한 말기암 환자가 나즈막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 배어있었지만 기도를 하는 표정은 매우 평화로웠다.

말기환자들은 누구나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욕구, 생의 가치나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욕구가 생겨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말기환자들 중엔 때늦게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많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종교를 믿는 경우보다는 삶과 죽음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신앙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설명이다.

기도를 하던 이 환자도 말기암 진단을 받고나서 영세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몸은 고통에 떨며 신음하고 있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너무도 태연했다.

이 병원에서는 6명으로 구성된 7개조가 번갈아가며 환자를 간호한다. 병원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말기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객혈을 하는 환자를 돕고 영적인 상담을 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말기환자의 앞 이마에 정성스럽게 냉찜질을 해주고, 세면장에서 비눗물로 환자의 항문주위를 조심스럽게 헹구어 내는 일도 모두 봉사자들의 몫이다.

말기암 환자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것. 암환자의 통증은 신체내부에서 자라난 종양이 신경을 누르거나 뼈로 전이됐을 때 나타나는데, 수발하는 사람이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환자들의 고통이 매우 크다고 한다.

한 봉사자는 “봉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말기환자들이 고통에 시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며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내 살이 찢기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성가복지병원(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호스피스 병동의 풍경이다.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하는 성가복지병원은 행려병자, 무의탁자, 극빈자를 돌보는 무료 병원이다. 이 병원에는 의탁할 곳 없는 극빈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을 설치, 말기환자들이 안락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성가복지병원 같은 형태를 병동형 호스피스라고 한다. 병동형 호스피스는 국내에 몇 군데 없다. 병동형은 병원 내에 확보된 병동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유형으로 의료시스템이나 의료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아 공익목적이 아니라면 설치하기가 어렵다. 체계적인 완화치료를 위해서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

한편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병원의 대부분은 산재(散在)형이다. 내과병동이나 암병동에 일반환자들과 함께 호스피스 환자들을 입원시켜 별도로 구성된 호스피스팀의 치료를 받게 하는 시스템이다. 말기환자가 일반환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단점 때문에 호스피스 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간호가 어렵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의 유형은 가정호스피스. 가정호스피스는 호스피스 요원이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돌보는 형태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다. 집이라는 편안한 환경에서 간호를 받을 수 있고 언제든 다시 입원이 가능해 환자들이 가장 선호한다.

이처럼 크게 3종류로 나뉘는 호스피스의 대부분은 의사나 간호사 등 전문인력의 참여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봉사자들의 희생정신에 의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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