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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르포

“개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가족입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 박은경·자유기고가

“개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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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신탕 논쟁이 국경을 넘나들며 치열하다. 한국은 정녕 개들의 지옥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인들은 ‘죽은 개’도 좋아하지만 ‘산 개’는 더 사랑한다. 많은 이들이 개를 삶의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들이 개와 나누는 교감과 사랑의 실체.
유시춘(작가·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씨는 일요일마다 산악회원들과 북한산에 오른다. 그런데 구기터널에서 이북5도청을 지나 비봉까지 오르는 긴 산행길의 초입에 들어서면 늘 그의 발목을 붙잡는 광경이 있다.

“개가 아닙니다. 가족입니다. 이 개를 보셨거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갖가지 애달픈 사연이 담긴 전단들이 산바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것을 보면 유씨는 자신이 잃어버린 개 주인이라도 된 듯 안타까운 심정에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오래 전 그 역시 정들었던 애완견을 잃고 마치 가족을 떠나보낸 듯 가슴앓이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개도 외로움을 탄다

그의 가족이 ‘보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0년 전. 낳은 지 한 달도 채 안된 푸들을 안고 온 친지가 한번 길러보라며 덜렁 놓고 갔다. 눈만 겨우 뜬 채 꼼지락거리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유씨는 ‘저걸 어떻게 기를까…’ 싶었다. 잠시 유년시절의 기억이 스쳤다. 경북 경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집에서 오랫동안 기르던 개가 쥐약이 든 음식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손도 못 쓰며 눈물로 지켜본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개와 살가운 인연을 맺지 못했다.

싫은 내색도 못하고 얼결에 떠맡은 보리는 식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무릎이든 발뒤꿈치든 가리지 않고 머리를 기대왔다. 사람과 몸이 닿아 있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늘 체온을 찾아 코를 파묻어대던 보리가 어느날부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현관에 벗어둔 신발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가 하면, 발 냄새를 좇아 몸의 특정부위를 비벼대는 통에 유씨네는 몹시 당황했다. 발정기를 맞았던 것이다.

“눈뜨기 무섭게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처음에는 20분쯤 돌아다니다 들어오곤 했는데, 갈수록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어느 날은 나간 지 두 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어요.”

유씨도 그날 따라 보리를 집 밖으로 내보내기 싫었다. 보리의 성화에 못이겨 현관문을 열어준 뒤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에 2층 베란다에서 보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보리는 저만치 골목 모퉁이를 돌기 전에 잠깐 멈춰 서서 집쪽을 휙 돌아보더니 이내 사라졌다. 순간 느낌이 너무 이상했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 작별인사인 듯했다.

해질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보리를 찾아 사방으로 헤매다니느라 중요한 약속마저 까마득히 잊은 유씨는 행여 보리가 어디 가서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설사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어디에선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음날 날이 밝자 보리의 모습을 실은 전단 100장을 동네 곳곳에 뿌렸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혹시 보리를 봤다는 연락이 올까 해서 약속도 하지 못하고 며칠동안 집에 틀어박혀 전화기 앞만 지켰다.

그러나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은 한 달이 넘도록 들려오지 않았고 유씨는 자신을 돌아보던 보리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개가 눈에 띄면 혹시 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름을 불러봤지만 번번이 실망만 안은 채 돌아왔고, 그런 날이면 더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동안 새록새록 떠오르는 보리의 기억들이 유씨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했다. 유씨와 남편, 아이들이 일터와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면 보리는 하루종일 혼자 집을 지켰다. 이웃 사람들이 “개를 왜 혼자 놔두고 다니냐. 하루종일 사람처럼 애처롭게 울어대는 통에 신경이 쓰여 못살겠다”며 눈총을 주기도 했다. 유씨는 개도 사람처럼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을 보리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보리 때문에 팔자에 없는 아양도 떨었습니다. 군사정권 때 독재반대 투쟁을 하던 기깨나 센 여자가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반상회에 나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 비위 맞추고 떡까지 해서 돌렸다면 누가 믿겠어요?”

사람과 교감하는 개

보리의 귀를 닦아주던 면봉과 소독약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게 보리의 몸 일부인 양 끌어안고 지냈던 때도 있다. 그나마 흔적을 없애버리면 보리가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았고, 한편으론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는 것 같은 야속함이 느껴져 껴안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보리를 못 잊게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보리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 요크셔테리어 ‘유리’다. 2000년에 가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유씨는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어느 날 참고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러자 울음소리에 놀란 유리가 쪼르르 달려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치 주인의 심정을 안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핥는 바람에 유씨는 유리를 끌어안고 소리내 울었다.

개와의 교감. 그 무렵에 읽은 어느 단편소설의 끝 부분에서 유씨는 전율했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한평생 술 주정꾼으로 가족에게 박대받으며 살았다. 그런 아버지를 유독 따르던 개가 어느 날 난데없이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술에 취한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고 있었다. 유씨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의 고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불가에서는 3000억겁의 인연이 있어야 부모 자식 간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인간과 더불어 교감하고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 지금은 비록 동물로 태어났지만, 억겁 윤회의 바퀴 속에서는 언젠가 인간이었거나 인간으로 태어날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문득 서늘해질 때가 있어요. 지상의 모든 생명은 개와 사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떠나서 생명 있는 것과 교감하며 윤회를 거치지 않을까 싶어요.”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했던가. 만난 자는 뒤에 반드시 헤어지고,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유씨는 개를 기르는 동안 새삼 되새기려 애쓴다.

“개를 키우면서 모든 생명 있는 동물을 생각하게 됩니다. 식용으로 기르는 소나 돼지도 먹이를 주고 씻겨주고 돌봐주는 주인과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맞추면서 자랐을 겁니다. 그 선하고 슬픈 듯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개고기든 쇠고기든 좀체 육류에는 손이 가질 않아요. 이러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아닌지….”

개와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유씨는 마음 한 곳에 부채를 안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 키우는 데 정성을 쏟는 게 개 기르는 것보다는 뜻있지 않냐”며 개 기르는 정성으로 입양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활동에 몸담고 있는 그 또한 같은 생각이다. 입양은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개를 키우는 것에 비하면 몇 배나 더 어렵고 큰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를 기르기 시작한 이후 입양은 유씨가 스스로에게 던진, 아직 풀어내지 못한 화두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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