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강남 학원가 ‘족집게 강사’의 경쟁력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4-11-17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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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력과 정보로 무장한 한국의 사교육은 공교육을 KO시켜 버렸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목마름을 느낀 학무모와 학생들이 ‘스타강사’를 찾아 학원가를 기웃거리고, 억대의 고액연봉 강사들이 대거 탄생한 게 한국교육의 현실이다. 학원강사들의 눈엔 명문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다는 강남의 학교 수업도 시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시간으로 비칠 따름이다.
    지난 1월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줄잡아 40여 대의 승용차들이 인도쪽 차도 2개를 점령하고 길게 늘어서 있다. 속속 도착하는 승용차들로 차량행렬은 계속 늘어난다. 차를 몰고온 사람은 대부분 40∼50대. 학원에 다니는 자녀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들이다. 학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나오자, 부모의 차를 찾는 학생들과 학생을 찾는 부모의 승용차가 뒤엉켜 큰길은 전쟁터로 변했다.

    학원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학부모 박모(48)씨는 “분당에까지 입소문이 퍼져 아들을 대치동 학원에 다니게 하고 있다”면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은 들지만 정보력이 떨어지는 분당에서 불안에 떠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대청중 3학년 김모(16)군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솔직히 부족함을 많이 느껴 학원에 다닌다”며 “반 친구들 대부분이 과외 수업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보습학원 160여 개가 대치역을 중심으로 들어선 대치동 학원가는 ‘사교육 1번지’로 불린다. 고학력자, 고소득자, 고득점자가 많다고 ‘삼고동(三高洞)’으로 불리기도 하는 대치동은, 명문 보습학원 덕택에 아파트 시세도 강남에서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 값의 가파른 오름세는 학원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강의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던 학원강사 박모씨는 “학교 수업만으로는 수능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며 “명문대 출신으로 구성된 강사진이 소집단을 가르친다는 게 대치동 학원가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또 다른 학원강사는 “대치동 보습학원엔 성북동 상계동 과천시에서 온 학생도 있다”면서 “최고 수준의 강의를 제공하는데다, 입시와 관련된 최신정보를 확보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학원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학원 밀집지역이란 인상을 주지 않는다. 강사진이 수십 명에 이르는 대형학원보다는 10~20명 정도의 강사가 특정 과목만을 가르치는 작은 규모의 전문학원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규모 학원은 수학능력시험에 꼭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서울대 수학과 출신 수학 강사가 굴러다니는 동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스타강사’ ‘족집게 강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선 방과후 학원수강이 청소년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강남교육청에 따르면 단과학원과 보습학원을 합쳐 대치동에만 163개의 입시학원이 있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보습학원에선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꼬집어 개인과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가르친다. 다시 말해 대치동 학원가는 학생들의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강남 사교육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둘로 나눠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테헤란로 위쪽 압구정동 청담동에선 고액과외가 성행했고, 아래쪽인 대치동 도곡동에선 학원강의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최근 들어 보습학원이 고액과외와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보면 될 겁니다. 압구정동 청담동에서도 최근엔 대치동으로 아이들을 보내니까요.”

    대치동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C원장이 보습학원이 입시과외의 주류가 되고 있다면서 한 얘기다. 학원수업만으로는 부족해 학원강사에게 개인 특강을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특정과목에서 뒤처진 아이들을 2~3명의 그룹으로 만들어 와서 과외를 시켜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밤 늦게까지 강의하는 강사들로부터 그룹과외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새벽 2~3시 정도예요. 일절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데도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C원장의 말처럼 ‘대치동 학원가가 떴다’고는 하지만 학원강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액과외가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수학능력시험 직전에는 여전히 ‘족집게’라는 상표를 내건 고액 과외가 판친다고 한다. 수능 직전 한두 달짜리 코스가 1000만~30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고액과외를 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학원강사와 학교선생들은 어찌 보면 순수하게 하는 사람들이고, 전문적인 ‘꾼’들도 있습니다. 과외 브로커나 독서실 주인을 통해 학생들을 모으는 사람들이죠. 브로커한테 100만~200만원 정도 쥐어주면 브로커는 강사가 원하는 액수에 맞는 학생을 척척 구해온다고 합니다. 과거 고액과외 하는 사람들 중에 현직교사가 많았던 반면 최근엔 학원강사들의 인기가 가장 높습니다. 사기꾼이 많은 고액과외 시장에서 학원강사만큼 검증된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까.”

    보습학원 강사 정모씨의 말이다.

    정씨는 고액과騈?대안으로 이용되는 이른바 ‘품앗이 과외’란 것도 있다고 말했다. 품앗이 과외는 학생 10여 명이 한명당 보통 15만~30만원의 돈을 걷어 스타강사를 초빙하는 것을 말한다. 강남에서 내로라 하는 강사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과외를 받는 데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이다. 유명 강사들은 짧은 시간에 큰 돈을 벌 수 있고 학부모들은 저렴하게 인기강사의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어 성행하고 있는 형태다.

    수리탐구I 영역의 인기강사 P씨는 “한 코스를 마스터하는데 8000만원을 제의받은 적이 있는데 단호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과목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강사다. 박씨 만큼은 아니더라도 인기강사를 초빙하려면 최소 1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학원강사들은 ‘스타강사’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합법적인 학원강의만으로도 강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 월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 월 1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학원가에서 ‘스타강사’로 뜨면 고액 과외 제의가 많이 들어와 억대연봉이 보장된다는 설명이다.

    “제가 아는 과학탐구 영역의 H강사는 세금을 납부하는 공식적인 학원 강의만 15곳에서 합니다. 거기에 고액과외, 그룹과외까지 하면 1년에 하루도 쉬지를 못하죠. 혼자서 스케줄을 관리할 수 없어 매니저까지 두고 있는데, 매니저 월급만 500만원입니다.”

    정씨의 말이다. 그는 또 “스타강사 중에는 정말 실력이 있어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지만 학원에서 전략적으로 키워 스타강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며 “말 잘하고 외모가 번듯한 사람을 선발해 전단지를 수만장 씩 뿌리며 홍보에 나서 스타강사로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능시험이 끝나고 강남 학원가에선 신종 과외가 탄생했다. 서울대가 내신성적 수능시험으로 정원의 두 배를 선발하고, 합격한 수험생을 대상으로 ‘제로 베이스’에서 구술면접을 실시해 최종 합격자를 배출하는 제도를 선보이면서 구술면접 과외 열풍이 분 것. 구술면접 과외는 2주 정도의 기간에 매일 10여 시간씩 면접을 대비하는 과정으로 짜여져 있는데 100만~200만원 정도의 가격에서 수업이 진행됐다.

    “입학 전형에서 ‘학습계획서’를 요구하는 대학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담임선생님이나 학부모 형제들이 대신 써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강남의 사교육이 이를 그대로 놔둘 이유가 없죠. 논술강사들이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무료로 대필해주기 시작한 겁니다. 강남 사교육은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논술을 강의하는 김기현(34)씨의 말이다.

    언어영어 분야의 스타강사 중 한 명인 C씨는 “구술 면접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직접 대학교수를 찾아 인터뷰한 뒤 강의교재를 만들고 아르바이트 학생을 통해 서울대 각 학과별 교수들의 성향, 관심사를 취재해 학생이 지원한 학과별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논술을 가르치는 박정주(33)씨는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사교육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고교장 추천제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면 ‘내신 족집게 강사’가 뜨고, 족집게 강사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학교의 시험문제를 빼돌릴 겁니다. 지금보다 더 불법적인 과외가 성행할 거란 얘기죠. 최근 학교 시험 문제가 쉬워지자 예체능 과외가 성행했습니다. 시험으로는 차이가 안 나니까 음악 미술에서 점수를 따야 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사교육은 제도의 빈 틈을 파고 듭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남지역 청소년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게 유명 강사들의 이름이다. 학생들 사이에 수학은 누가 최고, 과학은 누가 최고라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강사의 능력은 얼마나 수능시험 출제 경향에 가깝게 교재를 만들고 실제 시험에서 적중시키느냐에 있다. 다시 말해 ‘최근 시험 경향에 꼭 맞게 가르친다’ ‘지난해 수능에서 몇 문제를 맞췄더라’ 하는 소문이 퍼져야 비로소 인기강사의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다.

    학생들은 수능시험의 응시영역별로 과목별 유명 강사의 이름을 줄줄이 외고 있다. 언어영역의 Y, L씨 사회탐구영역의 S씨, 과학탐구영역의 L, H, K씨, 수리탐구 L, P씨 언어영역의 J, P, C씨 등이 ‘족집게 강사’란 명성을 듣고 있는 최고 인기강사 들이다. 인기강사 P씨의 수업을 듣는 숙명여고 2학년 박모(17)양은 “P강사가 짚어준 문제가 많게는 30%까지 실제 시험에 출제됐다”며 “겨울방학에 개설된 집중 강의를 듣기 위해 지방에서까지 학생들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타강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기에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그들에게 의지할까. 수입으로는 상류층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재 강남 학원가의 인기강사들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강사로 사회탐구 영역을 가르치는 손모씨의 경우다.

    2001년 말, 강남의 한 호텔 대형 홀에 아줌마들이 모여들었다. 홀 입구에는 진행 요원들이 배치돼 있고 1000여 개의 의자가 놓인 대형 홀은 곧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손씨가 개최한 ‘2003년 수능을 위한 학부모 예비 설명회’.

    손씨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단에 올라 수려한 말솜씨로 내년 입시경향과 전략에 대해 강의했다. 학부모들은 그의 말 하나하나를 꼼꼼히 메모한다. 손씨는 강의를 모두 끝내고도 한동안 구름같이 몰려든 아줌마들의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은 영어가 약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줌마들은 손씨에게 허리를 굽히며 구걸하듯 묻는다.

    계속되는 질문에 짜증 한번 내는 법 없이 손씨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질문에 답해줬다. 이곳에 모인 학부모들에게 그는 이처럼 연예인을 뺨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자녀를 둔 부모중에 ‘손사탐(손 사회탐구 선생님을 줄인 말)’이라는 그의 별명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손씨의 연수입은 그가 밝히는 것이 연간 15억원에 이른다.

    국영수가 아닌 사회과학 과목에서 ‘스타강사’가 나온 것은 수학능력 시험이 도입되기 전까진 전례가 없었다. 수리탐구Ⅱ(사회와 과학 영역) 영역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주가가 높아진 것은 최근 3~4년 동안의 일이다. 손씨가 과거에는 없던 과외시장을 개척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손씨의 성공을 쫓아 ‘수탐Ⅱ 드림팀’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암기과목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손씨 밑에서 강의를 하는 한 강사는 “지난해를 제외하고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서 국영수보다 암기과목에서 누가 실수를 안 하느냐가 당락의 관건이 됐기 때문에 사회과목이 중요해진 것 같다”고 인기비결을 분석했다.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쉽게 출제된 수능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제도가 아무리 변화해도 사교육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리탐구Ⅱ의 사회영역은 국사, 윤리, 지리, 정치, 경제를 담당하는 각각의 강사가 한 팀이 돼 수업을 진행한다. 수강료는 네 과목을 묶어 30만~50만원 대에 이르는 곳도 있다. 언뜻 보기에 불법과외로 보이지만 ‘편법’이라고는 부를 수는 있어도 법적 수강료를 준수하는 합법적인 과외 형태다. 일부 학원에선 스타강사는 네 과목의 강사 중 한 명 뿐이지만 학생들은 네 과목 모두를 수강해야 한다. 나머지 강사들은 스타강사가 거느리는 이른바 ‘새끼강사’들이다. 인기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덤으로 ‘새끼강사’들의 수업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학원은 학생들에게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시간당 수강료만 받아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타강사들이 한 팀이 되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강료가 적어질 수밖에 없지요. 다시 말해 ‘새끼강사’를 두고 자신들이 가져갈 몫을 늘리는 겁니다.”

    인기강사의 매니저 노릇을 하고 있는 W씨의 말이다.

    어떤 학원은 국사가 강하고 다른 학원은 지리 과목에 스타강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수험생들은 두 학원을 모두 등록해 한 학원에서 국사 스타강사의 수업을 듣고 다른 학원에서 지리를 듣기도 한다. 따라서 드림팀만을 쫓아 수강하는 수험생은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지불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드림팀 운운하는 강의가 성행하는 데는 손씨의 성공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서 학원강사가 됐습니다. 2년 동안 5000만원만 벌어서 유학자금을 마련하자고 시작한 과외가 어느새 직업이 되었군요.”

    손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전공인 철학을 계속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고 했다. 학원강사 중에는 손씨처럼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르바이트 삼아 하던 게 평생 직업이 된 경우가 많다.

    손씨는 사회탐구 강사생활이 올해로 6년째, 과외선생 일을 시작한 지는 20년이 됐다. ‘이 문제는 꼭 나온다’는 자신감, 유머감각을 겸비한 지루하지 않은 강의, 학생을 위해서 새벽 6시까지 상담해주는 열정이 손씨의 성공 비결이다. 학원이 아닌 학교에 있었다면 ‘참 스승’으로 불려야 할 정도로 학생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까지 넉넉하다.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진 지난해 11월7일부터 원서접수가 마감될 때까지 손씨의 휴대폰은 쉴새없이 울렸다. 어려운 수능 때문에 낙심한 수험생들이 상담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몰려드는 학생들을 마다하지 않고 일일이 지원전략을 함께 논의하면서 처진 어깨를 다독거려줬다. 학교에 담임선생님이 있는데도 손씨에게 상담을 원하는 학생들이 이처럼 많은 것은 학생들이 학원과 학원강사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손씨는 보통 오전 6~7시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11시면 하루를 시작한다. 식사는 차 속에서 햄버거와 김밥으로 때울 때가 대부분이다. 수능이 끝나고서는 지원 전략을 주제로 상담을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손씨는 1980년대 후반, 맡은 학생들마다 성적이 쑥쑥 올라 과외선생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2년 동안 번 돈이 당시에 1억원이 넘었을 정도. 과외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90년 서초구 양재동에 50평짜리 보습학원을 열었다. 전과목을 모두 가르쳤다고 한다. 고용한 사람들에게 월급을 600만원씩 줄 수 있었을 정도로 학원은 문전성시였다.

    “1991년의 일입니다. 명절 때 집에서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명색이 서울대 나온 놈이 학원강사를 하고 있다고요. 교통사고로 아이 둘을 보내고 난 뒤부터는 오기까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에서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일에 미쳐서 지내게 된 것이지요. 정말 악랄하게 공부하고 가르쳤습니다.”

    1996년 서울 강남 학원가에 대대적인 사정바람이 불었을 때 손씨도 이를 비켜갈 수 없었다. 300만원의 벌금을 내고 학원운영을 금지당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강의다. 수능시험에 사회탐구 영역을 묶어 ‘통합사회’란 제목으로 강의하기 시작했고 강남지역 학부모들 사이에 그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손씨가 사용하는 교재는 언뜻 보기에도 탁월했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다른 국사 참고서와 비교할 때 손씨가 직접 만든 교재는 사료를 주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수능시험의 출제 의도를 헤아려 교재를 만든 것이다. 강의는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라 원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학교 선생님들은 저처럼 접근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암기식으로 가르치는 것이지요. 교과서도 문제예요. 과외 없애려면 교과서부터 바꿔야 합니다. 수능시험이 도입된 지 8년이 지났는데도 교과서는 학력고사 시절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시험만 바꾸면 뭘 합니까. 교과서도 나열식 암기교재가 아닌 자료해석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야죠. 시험은 발전했는데 교재는 그대로니 사교육을 따라올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박봉과 잡무에 시달리는 학교 선생님들은 연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의욕도 없고요. 엉망 투성이인 교과서만 공부하면 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손씨의 말에서 공교육에 대한 조소가 느껴진다. 손씨는 수능 만점자 중에 상당수를 구체적인 이름까지 대면서 자신이 가르쳤다고 자랑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교과서만 가지고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다는 만점자들의 얘기는 모두 거짓이 되는 셈이다.

    “지난해를 제외하고 한동안 과외를 없앤다고 수능을 쉽게 출제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습니까. 사교육 시장은 더 활황이었습니다. 입시를 복잡하게 만든 것도 문제입니다. ‘실력 경쟁’이 아니라 ‘정보 싸움’이 돼버렸습니다.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곳이 바로 강남입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괜찮은 대학에 갈 학생이 강남의 정보까지 갖추면 명문대도 들어갈 수 있는 거지요.”

    손씨는 강남 학원가를 ‘정글’이라고 표현했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강사가 나오면 바로 ‘스타강사’의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현장이 강남학원가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까지 강남 학원가로 몰려와 최근엔 강사들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최고의 강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스타강사들은 하루 18시간씩 일합니다. 매번 교재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필수고요. 이러니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강사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지요. 계속 이런 추세로 나가면 사교육과 공교육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겁니다.”

    손씨는 2000년 장안에 잘 나간다는 인기 강사들과 함께 온라인 교육업체를 만들었다. 인기 강사들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판매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다. 지난해 손씨의 인터넷 강의는 16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사연도 학원강사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정보가 강남에 집중돼서는 안됩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전국의 학생들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인터넷 강의가 전국적으로 이용되면 사교육으로 인해 발생한 서울 강남과 기타지역의 격차도 줄일 수 있습니다. 교육 솔루션을 개발해 선진국에 수출도 할 겁니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손씨는 이처럼 교육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그는 “국사 시간에 ‘8조법’을 설명하면 대부분의 학생이 8쪽으로 페이지를 넘긴다”며 “학생들의 학력 저하 현상이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대가 과외를 조장한다” “교육부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등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무언가 거꾸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손씨뿐만 아니라 잘 나간다는 스타강사 대부분이 공교육을 비아냥거리는 말을 많이 한다. 심지어 한 스타강사는 “학교에 다니게 하느니 그 시간에 책을 읽히고 학원에 보내는 것이 훨씬 낫다, 꼭 시험을 잘 보아서가 아니라 학원에서 참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씨처럼 다른 지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남에서 자리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서울 기타지역 학원에서 강의하다 강남으로 스카우트된다. ‘공명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스타강사 대열에 오른 박모씨는 강사생활 10여 년 만에 강남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0년대 초반 은평구 쪽에서는 저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 납치할 정도였으니까요, 학원계는 이만큼 경쟁이 치열합니다. 스타강사 한 명이 한 학원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0군데 학원을 뛰면 10개의 학원을 먹여 살리는 꼴입니다.”

    박씨는 출신대학을 학생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학원가에서 서울대가 아닌 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학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게 관례다. 그의 일과도 손씨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주당 학원 강의만 60여 시간에 이르고 강의 이외의 시간은 학생상담과 교재집필에 사용한다. 하루 수면 시간은 3~4시간 정도.

    식사는 운전기사가 딸린 승용차 안에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조교를 6명 두고 있고, 별도로 ‘새끼강사’는 관리하지 않는다.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수 없기 때문이란다. 6명의 조교 중 4명은 연구조교. 나머지 2명은 답안지를 수거하고, 출석부 작성 등의 일을 하는 보조조교다.

    “새벽 1시에 수업이 끝납니다. 수업을 마치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조교들과 회의를 합니다. 회의가 끝나면 학생들로부터 온 상담메일을 확인하고 학생들의 휴대폰에 음성메시지로 몇 시에 전화하라고 남겨놓습니다. 다음날 강의를 준비하고 교재를 만들다보면 오전 7시가 넘습니다.”

    박씨는 학생들과 일일이 전화로 상담한다.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공부 방향을 잡아주는 것. 그가 전화로 시간을 남겨놓으면 학생들이 그 시간에 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상담이 이뤄진다. 아무리 피곤해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 법은 없다. 담임교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의 대학입시 지원전략을 짜는 것도 물론 그의 몫이다.

    “솔직히 공식적인 학원강의로는 큰 돈 못 법니다. 제일 잘 번다는 사람이 겨우 일년에 15억원 아닙니까. 열정이 없으면 학원강사 생활 못합니다. 돈 벌려면 고액과외가 오히려 낫지요. 저도 수천만원짜리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일절 거절하고 있습니다. 시간도 없고 그런 식으로 돈 벌어서 뭣 합니까.”

    박씨는 인기강사들에게 15억원은 큰 돈이 아닌 것처럼 얘기했다. 박씨도 강남과 기타지역 학생들은 학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명문고가 몰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학원강사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이 지역 교사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강남의 고등학교 수준은 다른 지역보다 낫기는 하지만 차이가 큰 것은 아닙니다. 명문고가 몰려 있다고 하는데도 질적으로 다른 지역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요. 교육의 효과는 누가 정보를 먼저 갖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조교와 함께 매일 공부하고, 교재를 만들고,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학생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수학문제를 예로 들며 공교육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손씨의 얘기와 비슷했다. 사고력 창의성을 중심으로 출제되는 수학능력 시험이 도입된 뒤에도 수학교과서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고, 논리력을 키우는 과목인 수학을 여전히 암기과목 다루듯이 가르친다는 것이다.

    “수능시험 수학문제는 SAT(미국 수학능력시험)를 베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슷한 문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동구권이나 인도쪽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의 문제를 철저히 분석한 뒤 교재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해 접근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족집게로 문제를 맞추는 게 아니라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 논리적으로 문제를 푸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죠.”

    손씨와 박씨 같은 학원강사들은 실력과 정보로 무장하고 공교육을 무너뜨려 버렸다. 족집게 강사들은 학교교육은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공교육을 비웃고 조롱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목마름을 느낀 학무모와 학생들이 ‘스타강사’를 찾아 학원가를 기웃거리고 수억대의 고액연봉 강사들이 활개치는 모습이 한국교육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학원강사들의 눈엔 명문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다는 강남의 학교 수업도 시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시간으로 비칠 따름이다. 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강사들은 연구도 돈이 되고 상담도 돈이 된다. 노력하는 대로 돈이 벌리니 당연히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에 작은 월급, 궂은 일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교사들은 어떨까.

    교사 출신 학원강사의 말이다.

    “과외를 자꾸 막으려고 하면 가격만 올라갈 뿐이다. 자식 교육에 눈이 먼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학벌에 목숨을 건다. ‘위험수당’까지 집어주고 과외를 할 사람들이다. 이대로 가면 부모의 계급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세습되는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과외를 막는 것보다 학교를 바로 세워야 한다. 교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게 가장 먼저다. 정부는 억장이 무너지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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