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취미·특기·아이디어로 ‘평생직업’ 찾는 사람들

  • 박성원 < 한경비즈니스 기자 >

    입력2004-11-17 11: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벤처기업들이 무더기로 퇴출되고, 대기업은 수시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30~40대 직장인들이 대거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꿈을 안고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벤처기업에서 새 둥지를 튼 직장인이나 안정된 일자리가 좋아 대기업에 남아 있던 샐러리맨들 모두 지금은 처지가 비슷하다.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안정적인 ‘평생 직업’을 찾는 것. 요즘 부쩍 제2의 직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던 이경우(37)씨는 최근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회사를 나와야 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3년 전 벤처기업으로 옮긴 뒤 2차례나 직장을 바꿔 S벤처기업 이사로 스카우트 됐지만 끝은 허무했다. 직장을 옮기면서 연봉을 높이고, 업계에서 나름대로 이름도 날렸지만 결국 집에서 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가 회사를 나와야 했던 원인은 능력과는 상관없었다. 모기업인 미국 본사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자 그가 다니던 한국 지사 역시 동반 퇴출된 것. 한국지사는 사정이 나쁘지 않았지만 본사가 없는 마당에 더 이상의 영업은 불가능했다. 그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이 없었던 탓이다.

    이씨는 앞으로 직장생활을 3년쯤 더한 뒤 40세부터는 전혀 다른 일을 해볼 계획이다. 불안을 느끼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려면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한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라이선스를 갖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해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한의대 편입시험을 본 뒤 한의사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가 앞으로 다닐 직장은 한의사가 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뿐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이씨처럼 30대 후반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은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나이도 문제지만 벤처기업 이사로 단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연봉이 줄거나 직급이 낮아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자리를 구걸하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평생 직업을 꿈꾸며 생계를 위해 대충 시간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잡게 된다.

    KIS컨설팅 유미나 팀장은 “퇴출된 직장인들은 다시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며 “경영 기획 회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은 직접 창업하거나 1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 미래를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기업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했으면 노무사나 헤드헌터에 지원, 자신의 경력을 살리면서 직장에 구애받지 않는 전문가 과정을 걷는다. 경리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하기 위해 해외 유학의 길을 떠나거나, FP(재무설계사, Financial Planner) 시험을 치고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출한 ‘전공’이 없는 직장인은 높은 연봉이 보장되는 다른 직업을 갖기가 만만치 않다. 더구나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면 더 그렇다.

    연봉을 높이면서도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분야로 각광받는 종신보험설계사는 그래서 인기가 좋다. 특히 외국계 보험사에 입사할 경우, 금융전문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직접 영업을 하면서도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H그룹 기획팀장이었던 오영동(39)씨는 억대 연봉을 꿈꾸며 보험설계사의 길로 들어선 직장인이다. 회사 요직인 기획팀장으로 승승장구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만 매달려봐야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암울했다.

    그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도 ‘잃어버린 꿈’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ING생명의 재무설계사(Financial Planner)다. 국내보험사들이 30~40대 주부들을 보험설계사로 활용하는 반면 ING생명, 푸르덴셜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는 대기업 간부급 출신의 유능한 남성을 보험설계사로 모집하고 있다. 오씨는 ING생명에서 재무설계사로서 훈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고객의 재무상태를 정확하게 파악, 적절한 상품을 소개해주고 재무진단까지 해주는 그에게 고객들이 하나 둘씩 몰리기 시작했다. 재무설계사가 된 첫 해 그는 억대 연봉자로 올라섰고, 이듬해는 여성 비서까지 두면서 1인 사업가로 발돋움했다. 지금은 조직관리와 새로운 재무설계사를 모집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

    “노력에 따라 정직하게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보험회사예요. 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재충전하기 위해 월요일마다 아내와 골프를 칩니다. 월요일에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과의사 변호사 등은 골프장이 한가한 월요일에 골프를 하더군요. 재력에 따라 삶의 질은 상당히 달라집니다.”

    오씨처럼 외국계 보험사의 재무설계사들이 억대연봉을 받으며 성공한 케이스가 속속 사회에 알려지면서 샐러리맨들에게 이 직종이 새로운 탈출구로 떠올랐다. 지난해 생명보험사들이 새로 충원한 종신보험 설계사는 무려 1만3000명. 대다수가 대졸 이상 고학력자로, 4~5년 이상 월급쟁이를 한 30~40대들이다.

    미국계인 푸르덴셜생명은 한 달 평균 15~20명의 종신보험 설계사를 뽑다가 지난해부터 채용인원을 매월 100명으로 늘렸다. 생명보험협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보험사에서 활동중인 종신보험 설계사는 3만명에 달한다. 지난 2000년 1만6000명에서 2년 만에 2배 정도로 늘어난 셈이다. 최근 충원된 설계사 인력 중엔 미국 MBA 소지자, 박사학위 소지자, 전직 의사,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 등 경력이 눈에 띄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이 종신보험 설계사를 제2의 직업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고소득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푸르덴셜생명 설계사들은 지난해 평균 월 72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연봉으로 따지면 약 9000만원 선. 경력 10년차 월급쟁이 연봉(보통 3000만~5000만원)의 2배에 이른다. 종신보험 설계사들이 고소득을 올리는 비결은 독특한 수당체계에 있다. 종신보험 설계사들은 고객이 보험가입 후 첫 해에 낸 보험료의 40%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연 50명의 고객을 유치하면 연봉 70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30~40대에 직장을 나온 샐러리맨을 유혹하는 또 다른 직업이 있다. 네트워크 마케터로 불리는 암웨이 사업가들이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등 다양한 직장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쌓아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 분야에 뛰어들 결심을 한다. 최근 들어 암웨이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이처럼 갈 곳 없는 30대 직장인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암웨이는 1991년 국내에 진출, 10년 만에 매출액 7200억원을 돌파하고, 회원수 120만 명을 확보한 업체로 성장했다. 다단계회사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진입 초기에는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보호운동, 중소기업 판로지원, 전국경제인연합회 가입, 국내 최대의 전자상거래사이트 운영 등 전방위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수많은 소비자를 네트워크로 묶은 거대 유통업체로 발돋움한 것. 국내에서 활동하는 핵심 사업가(IBO)만 10만명이다.

    열심히 뛰는 만큼 성과도 적지 않다. 전국 260쌍의 부부 다이아몬드(직급을 나타내는 용어, 암웨이는 보통 부부가 함께 사업을 진행한다)들은 연간 1억~3억원의 수입을 거둬들인다. 또 5000쌍의 플래티늄∼에머랄드급 사업자들은 연간 2000만~8000만원을 번다. 대기업 임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셈이다.

    암웨이가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의 억대 연봉자를 키워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공동매출, 차등분배’라는 사업방식에 있다. 그룹별로 매출은 함께 집계되지만 실적에 따라 분배는 차별화된다는 얘기다. 늦게 출발한 독립 사업자도 실적이 좋으면 먼저 출발한 사업가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다. 분배가 투명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대졸 출신의 직장인들이 쉽게 납득하고 이 분야에 투신한다. 또 자신이 구축해놓은 사업망을 자식들에게 상속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의 구미를 당긴다.

    억대 연봉을 꿈꾸는 또 다른 직장인들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특히 미국 경영학석사 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직장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반 회사에 근무하는 사무직종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의사 변호사 언론인 등 전문직종에도 MBA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2만5000명의 직장인이 MBA 유학을 준비중이며 매년 500명 정도가 미국 상위 50위권 이내의 MBA과정에 진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령층도 예전에 비해 다양해지고 있다. 유학을 떠나는 직장인 중 26∼30세가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31∼35세가 30% 가량이며 30대 후반도 10%나 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반도체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스쿠버다이버가 된 유정웅(43)씨는 지난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하이닉스반도체 구매과장으로 일했다. 그는 입사하면서부터 스킨스쿠버 동아리에 가입,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강원도 주문진이 고향인 유씨는 바닷가에서 자란 탓에 수영실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이어서 핸디캡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기업에서 경영자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또 고향에 내려가서 일하고 싶었어요. 이런 감정들이 얽히면서 스킨스쿠버에 빠져들었고 그러다보니 레저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스킨스쿠버는 31시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강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1996년 고참 과장인 그는 홀연히 사표를 던지고 낙향했다. 지금 그는 강원도 주문진 동산항에서 카페와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가이드하고 있다.

    “아내가 나의 선택을 믿어줬습니다. ‘몇 년이라도 고생할 각오가 돼 있으니 당신은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낸 거죠. 지금 생활이요? 대기업 과장 월급보다야 물론 많이 벌고 있고, 앞으로의 사업전망도 밝습니다. 50세까지 번듯한 해양 레저시설을 갖추는 것이 제 꿈입니다.”

    KIS컨설팅 유미나 팀장은 “올해부터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직장인들에게 상당한 관심거리”라며 “유씨처럼 레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로게이머 매니저인 김양중씨 역시 취미를 제2의 직업으로 삼은 경우. 퇴근 후 심심풀이로 들른 PC방에서 그는 새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던 김씨는 1998년 유행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시간이 날 때면 PC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현재 그가 매니저를 맡고 있는 프로게이머 임요환씨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게임을 잘하는 고등학생 정도로 여기고 친하게 지냈지만, 그가 대회에 나가서도 우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임요환 선수에게 밥을 사주면서 게임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냥 따뜻한 형 노릇을 한 거죠. 그런데 1998년 SBS에서 멀티게임챔피언십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출전해보자고 임선수에게 제의했어요. PC방에서 머물지 말고 넓은 세상으로 가보자며 설득했죠. 임선수는 대회 1위를 했고, 프로게이머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임선수의 매니저로 나섰구요. 아직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월급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취미를 제2의 직업으로 삼은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취미(Hobby)와 직업(Occupation)을 결합한 호큐페이션(Hocupation)이란 조어까지 등장했다.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직업이 세분화, 예전에 없던 직업이 새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매력으로 호큐페이션이 직장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겟모어증권 묵현상(42) 사장은 골프에 빠져 골프서적(내기골프에서 이기는 노하우)을 출판했다. 대부분의 골프책이 스윙자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심리적으로 상대편의 기를 죽이는 전략을 소개한 것. 그는 자신의 골프점수를 분석한 결과, 자세보다는 전략의 부재로 번번이 게임에서 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런 분석 뒤로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의 성공 비결은 핸디캡을 많이 받고 타격거리에 욕심을 내지 않으며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는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할 예정이다.

    자격증을 10개나 보유한 이호헌(42) 기업은행 과장의 인생 얘기도 흥미롭다. 신용분석사, 공인중개사, 금융상담사, 금융자산관리사, 선물거래상담사, 국제금융역, 대출심사역, 2종투자상담사, 개인 기업고객 상담사 등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렵다. 말이 자격증 10개지, 이를 취득하기 위해 이과장은 지독하게 공부했다. 퇴근한 뒤 저녁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도 없이 공부에 몰두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보고 ‘공부쟁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다.

    이씨는 “근무시간 외에는 철저하게 자기 개발에 힘을 쏟으라”고 조언하면서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해당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삶에 대한 긴장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찬씨는 취미로 시작한 집필작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씨는 현재 경기도 광명에서 근무하는 경찰이다. 이씨는 1998년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는 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이 책은 7만 권이나 팔렸다. 2000년에는 경찰생활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묶어 ‘너희가 폴리스를 아느냐’란 책을 펴내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경찰홍보를 잘 해주었다는 뜻으로 경찰서장 표창도 받았다. 글 솜씨를 살려 명예와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취미는 자신의 경험을 노트에 정리하는 것이다. 예전엔 기자수첩에 기록했고, 최근 들어 전자수첩을 구입해 메모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비단 경찰경험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여행 뒷얘기 등 일상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이씨는 “두 권의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내가 겪은 신기한 경험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이 내 취미이자 기쁨”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업작가가 되려는 욕심은 없지만, 취미를 계속 살리고 싶단다. 취미로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수십 번씩 글을 고치는 것은 기본이고, 경찰직종의 특성상 명예훼손 등 글쓰기에서 고려할 점이 많다고 한다. 그는 쉬는 날이면 자신의 글을 정리하고 이를 인터넷에 옮기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직장에서 쫓겨나 길거리로 나온 샐러리맨들은 실직의 스트레스와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직장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전문가였지만, 실직한 순간부터 ‘무능력자’ 취급을 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전직 선생님이나 제조업체 엔지니어, 금융기관 종사자들에서 특히 그런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정택수 직업능력개발연구실장은 “퇴직한 뒤 제2의 직업교육을 받는 것보다 재직중에 이런 훈련을 받아두는 것이 훨씬 좋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퇴직 이후엔 마음이 울적하고 비관적이기 때문에 앞날을 준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40대 후반과 50대의 샐러리맨들이 제2의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이유는 막막한 노후생활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영풍상호신용금고 사장이던 김기선(58)씨는 은퇴 뒤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택시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예전 삼미그룹 부회장이었던 서상록씨가 롯데호텔 웨이터로 전직한 경우와 비슷하다. 서울 신화여객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김씨는 3년 뒤 개인택시를 장만하는 꿈을 꾸고 있다.

    “택시기사가 되는 것이 쉽지는 않습디다. 자격시험에 합격하는 것부터가 힘들어요. 자격을 획득하고 교통회관 앞으로 나오는데 한 수십 명이 몰려와 나를 스카우트해 가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인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어요.”

    정부 부처 고위 관리였다가 퇴직한 박일수(가명·56)씨는 요즘 새로 배운 기술 덕택에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모 부처 국장으로 은퇴한 박씨는 과거 엘리트 대접을 받았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이발 기술을 배웠고 직접 이발관을 차렸다. 수입은 은퇴 전보다 못하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은 과거와 같다고 말한다. 박씨는 “앞으로 남은 20여 년 동안 무엇을 할지 처음엔 막연했다”며 “지금은 든든한 쿠션(이발소)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이 활짝 핀 것은 수입원이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일요일마다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어린이들의 머리를 깎아준다. 무료 봉사를 하는 것이다. 수입도 있고, 아울러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로 좋은 일도 하니 그의 얼굴이 환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은퇴한 뒤에도 직업을 갖고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직도 은퇴 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지금부터 은퇴 뒤의 삶을 준비하지 않으면 노인이 된 뒤 ‘쓰레기통’을 뒤져서 연명하는 시대가 온다는 점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고 은퇴시기는 빨라지면서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인간의 기대수명을 85세까지만 잡아도, 25년 벌어서 30년을 먹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은퇴 시기, 그 뒤의 생활, 그에 따른 자금마련 계획 등을 세워놓지 않으면 남은 인생이 막막해질 수 있다.

    국민연금도 노년의 생활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40대 샐러리맨이 55세에 은퇴한다고 할 경우, 지금부터 매월 120만원을 저축해야 60세 이후 150만원(국민연금 수령액 포함)의 최저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자녀 교육비, 결혼자금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40대 샐러리맨중 몇 %가 매월 자신을 위해 100만원 이상 저축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집을 갖고 있다’고 안심하는 샐러리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늙어서 치매나 뇌졸중에 걸리면 수억원짜리 아파트는 고스란히 병원비로 나가야 한다. 최근 노년에 뇌졸중을 앓는 여성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병원비로 매월 200만원을 지출한다면 이는 가족들에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은퇴설계의 전문가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은퇴한 뒤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놓고 준비해야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는다”며 “목표는 구체적으로 짜야 하고 자금계획까지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네띠앙 이종혁(33) 홍보팀장은 국내 최대의 홍보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가 비영리로 운영하는 코리아피알(www.koreapr.org)은 전국 3800명의 홍보맨을 회원으로 확보했고, 하루 100여 명의 기업체 홍보맨들이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3년 전 불과 10여 명의 홍보맨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교류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여기까지 성장하는 데는 이팀장이 자기 돈 1000여 만원을 들여 세 차례 홈페이지를 개편했고, 저녁시간 대부분을 홍보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 무엇 때문에 이런 수고를 자청한 걸까.

    “해외에는 연구할 만한 PR사례들이 많은데 국내 사례는 빈약합니다.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이 보안의식 때문에 정보교류를 하지 않는 탓이죠. 정보는 나눠야 커진다는 생각에 내가 하는 일들을 몇몇 홍보맨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어요. 또 국내외 홍보관련 사이트를 찾아 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죠. 그러던 것이 입소문을 타고 커져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홍보를 담당하는 정훈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국내 대기업 홍보실에서 홍보맨 생활을 시작한 이팀장은 사이버 홍보 전문가로서 경력을 다지기 위해 대리 시절 네띠앙 홍보팀으로 전직했다. 대학시절부터 PR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홍보경력을 쌓은 그는 1999년 ‘사이버시대, 홍보 벗기기’란 책을 펴냈고, 올해 ‘사이버홍보닷컴’을 발간했다. 매주 이틀은 경희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과정을 공부할 정도로 대단히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닥치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꼭 거창한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고 하지 말고, 관심분야에 저돌적으로 도전하면 됩니다. 저는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교수들과 이메일도 교환하고, 만나고 싶으면 휴가를 내서라도 찾아갑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모르는 사이 변화된 자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변화된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삼성SDS 김진홍(38) 교육과장의 명함에는 삼성멀티캠퍼스 사업총괄이란 직함이 있다. 과장의 포스트를 뛰어넘어 모든 교육과정을 총괄한다는 얘기다. 해마다 수많은 강좌를 개발, 기획하고 효과까지 검증하는 그야말로 총괄적 책임을 맡고 있는 것. 7000여 명의 삼성SDS 직원뿐 아니라 연간 30만 명의 다른 회사직원들까지 그가 기획한 교육과정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요즘 사업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올해 국내외 21개 IT전문학원과 제휴를 맺고 IT분야의 교육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거든요. 지방엔 IT인력이 모자랄 뿐 아니라 제대로 육성하는 곳이 없습니다. 내년까지 2만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할 계획입니다.”

    이렇듯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는 김과장은 걷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보족을 사용하는 장애인이다. 1991년 장애인 고용촉진법에 따라 삼성에 늦깎이 입사한 그는 “잘해야 다음에 장애인들이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다. 교육분야에서 꾸준히 실력을 닦아온 그는 1999년 사내 사업아이디어 공모에서 10위 안에 들면서 단순 관리자에서 ‘준사업가’의 자리로 도약했다. ‘의약분업을 지원하는 약국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자신도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어 자신이 근무하는 교육부서에도 이런 사업 마인드를 접목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과장이 아니라 사업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일이 기다려지고 오늘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저에게 일할 기회를 준 회사가 고맙습니다. 교육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성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자신의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일터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은 직장인보다는 직업인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더 깊이 들어갈 곳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변형된 직종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 직종에서 그들은 제1인자로 군림한다. 그러나 상당수 샐러리맨들은 일터에서 보람을 찾지 못해 직장이 싫고 또 다른 일을 찾고 싶어한다.

    일본은 회사나 정부가 나서서 실직이 예상되는 직장인이나 다른 곳에 가고 싶어하는 샐러리맨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고 있다.

    국내에는 포철, 삼성 등 일부 기업이 전직(轉職)을 도와주는 리플레이스먼트(Replacemen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제일제당은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달간 제빵·제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상권 물색을 도와주고 6000만원(무이자)의 창업자금을 지원한다. 다국적 기업 P&G는 영어·컴퓨터 교육을 제공하고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퇴직자의 85%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으며 이중 80%가 창업과 재취업에 성공했다.

    대우자동차도 희망센터라는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7000명의 해직 근로자가 발생한 대우차는 전문컨설팅사와 계약, 전직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도 고용보험기금 400억원으로 실업급여를 지원한다. 상담 신청자들은 향후 6개월간 영어와 컴퓨터 등 재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재취업 전략을 짠다.

    정택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능력개발연구실 실장은 “정부에서 전직 지원금 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다. 노동부 고용보험법에서 시행하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직장인들은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라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인터넷을 통한 전직 훈련 과정이 활성화될 것이고, 샐러리맨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지난해 5000억원의 직업훈련 지원자금 중 1500억원이 인터넷을 통한 직업훈련 과정에 사용됐다.

    오랫동안 실업자들과 직장인들의 전직과정을 연구한 정실장은 “정작 중요한 것은 직장인들이 제2의 직업을 갖기 전 충분히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서 성공을 확신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성공하려면 그 분야의 밑바닥에서 몇 년간 생활하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제빵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제과점에 취직해서 심부름부터 하라는 얘기다. 현장에서 제과점의 생존전략은 어떤 것인지, 종업원들은 어떻게 대하는지 고객들의 요구는 어떤 것인지 파악하지 않고 시작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업종별 직업별 표준화가 문서로 기록되어 있지 않아 철저히 선배로부터 배워야 한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은 직업별로 직무표준이 있어서 그 분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발소를 차려도 지역 이발소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주변 경쟁업체들로부터 악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게 현실이다. 따라서 제2의 직업을 구한다면 먼저 밑바닥부터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직장인들이 삶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것으로는 구본형씨의 책을 들 수 있다. 외국계 서적들이 대부분 자기관리나 습관의 문제를 다룬 책을 내놓고 있지만, 구씨의 책처럼 구체적이고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없다.

    우선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47) 소장의 일주일을 보자. 일주일 중 사흘은 강연, 집필, 독서 등으로 정신없이 보낸다. 그리고 이틀은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쉰다. 만화방에 가고 도서관에도 간다. 때론 짧은 여행도 한다. 나머지 이틀은 가족과 함께 지낸다. 아파트 방 하나를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다. 한 달에 10여 차례 강연에 나가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는 것으로 생활이 해결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삶을 그는 실제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가능할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합니다. 그런데 변해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자기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비로소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변화에 대한 맹목적인 충동의 결과는 실업자가 될 뿐입니다.”

    지난해 직업이 없는 직장인의 탈출을 주제로 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그의 책은 발간된 지 1개월 만에 6만 부가 팔려나갔다. 직장인들의 고민이 위험 수준에 있다는 방증이다.

    직업이 없는 직장인이란 전문영역을 구축해 놓지 않고 수동적으로 그리고 기계처럼 일에 매달려 있는 직장인을 말한다. 남에게 나를 소개할 때 회사이름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 소속된 부서 그리고 이름 순으로 얘기한다면 직업이 없는 직장인일 가능성이 많다.

    반면 이름을 먼저 말하고 직위나 소속 부서 그리고 회사를 말할 경우 직업이 있는 훌륭한 직장인일 가능성이 많다.

    예컨대 변호사나 의사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아무개 변호사 혹은 아무개 의사라고 하지 무슨 병원에 다니고 무슨 과에 있는지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삼성이나 현대 등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리 기업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대개 회사이름을 먼저 말하고 본인의 이름을 소개하곤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누가 직업이 없는 직장인인지 알 수 있다.

    “강연장에서 만난 직장인들이나 독자들이 제게 던지는 질문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로 압축됩니다. 그럼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해주죠. 저도 이들처럼 직장생활(15년간 한국IBM 경영혁신실무)을 하며 수없이 미래에 대해 고민했거든요. 추상적인 설명보다 결국 내 몸과 정신을 실험물로 놓고 실험한 최근 결과를 들려주면 이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구소장 역시 샐러리맨 시절 미래 비전과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말 못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구소장이 근무하던 한국IBM에서는 승진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부서가 있다. 영업부에서 탁월한 실적을 보여야 매니저도 되고 사장도 된다.

    그런데 구소장은 영업부를 거치지 않았다. 본인이 지원하면 영업부에 갈 수 있었지만, 내성적인 탓에 영업부에 지원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구소장은 입사 이래 15년 동안 경영혁신팀에서 일했다. 또 1991년부터 96년까지는 IBM 본사의 볼드리지 평가관(기업실사관쯤으로 이해하면 된다)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다시말해 영업보다는 관리부서에서 돌았다는 얘기다. 볼드리지 평가관으로 일하면서 기업의 변화와 변화를 위한 실무 등을 평가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서 현재 변화경영연구소를 운영하게 됐다.

    그는 3년 전부터 샐러리맨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에 어떻게든 두 시간을 만들어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것이 그의 핵심 행동강령이다. 3년에 걸쳐 이같은 변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하면 어느 순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막다른 인생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씨는 변화를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생각할 것, 마음만 먹지 말고 실천할 것, 10년 20년 계획을 세우지 말고 3년 단위로 계획을 세울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들과 접촉하라”고 한다.

    예컨대 마케팅 전문가가 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치자. 그러나 나는 영업부서에서 일하며, 마케팅의 ‘마’자도 모른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케팅에 관한 책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지식을 쌓거나 혹은 마케팅에 관련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저녁 시간을 이용해 야간대학에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돈과 시간 그리고 열정을 지속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구소장은 우선 마케팅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책을 집필한 저자를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저자에게 전화하고 찾아가려면 그가 쓴 책을 정독해야 할 것이고, 질문도 준비할 것이다. 좀더 세심한 책 읽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서 그 저자를 만난다. 직접 만나보면 책에서 읽은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더러 자신의 지식이 훨씬 업그레이드됐다는 자부심이 든다.

    저자를 만난 뒤 꼭 할 일은 그 저자에게 다른 마케팅 전문가를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이다. 꼭 그 저자가 만남을 주선할 필요는 없다. 이름과 일터만 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뒤 또 다른 전문가의 책이나 최근 강연 등을 미리 읽어놓고 다시 만나러 간다.

    1년 정도 이 과정을 반복하면 적어도 5~10명의 전문가와 안면을 튼 상태가 된다. 이는 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의미다. 아마 1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이다. 또 항상 긴장하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내용 이해도 빠를 것이다. 이렇게 차분하게 준비하면 점점 목표에 다가서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느낌이 사실 가장 중요하다. 뭔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면 이미 결승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구본형씨는 “조직 속에 사는 조직인간에게 자기 반성이나 자기 표현은 중요하지 않다. 조직은 별도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성원은 그 목적을 위해 종사한다. 조직은 있고 개인은 없다. 충성이 곧 돈이고 승진이고 성장이다. 조직이 곧 개인의 명함이고 정체성이다. 그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 내세울 만한 자기다운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상시 구조조정과 시도 때도 없는 감원은 직원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던 가부장적 지배구조의 뿌리를 흔들었고, 조직이 직장의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자 수직적 충성도 사라졌다. 더욱이 그 동안의 번영은 개인으로 하여금 먹고 사는 욕구 외에 더 중요한 자기에 대한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구씨는 “조직목표를 위해 나의 정체성을 감추고 개성을 억누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진실해지고 싶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원하는 일을 하며 그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건 ‘직업’을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자, 우리도 우리만의 직업을 찾는 짧은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어느 방향으로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순풍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