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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비평

제가(齊家)도 못하고 치국(治國)을 하였으니…

  • 안정효 < 번역가·소설가 >

제가(齊家)도 못하고 치국(治國)을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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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어찌어찌 됐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치자. 그러면 꼭 누군가 나서서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신통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이‘카더라 통신’은 사실이 되어 나타난다. 점쟁이를 능가하는 ‘카더라 통신사’의 거침없는 사세 확장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필자가 번역을 주업으로 삼았던 20∼30년 전에는, 해마다 10월 셋째 수요일 저녁 9시쯤 되면 장안의 수많은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잔뜩 긴장해서 뉴스를 기다렸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국제저작권이나 지적재산권을 전혀 아랑곳 않던 ‘문화 열등국’ 대한민국이 해적출판분야 세계 제1의 자리를 놓고 대만과 열심히 다투던 시절. 노벨상 발표가 9시뉴스에 나기만 하면, 너도나도 신속하게 외국에서 구해온 원작을 갈기갈기 찢어 몇 명에게 나누어주고 조각번역을 시켰다. 며칠만에 시장에 깔리는 이 ‘불량 번역문학’은 간발의 차로도 매출이 크게 달랐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노벨상 정보를 구하는 출판사라면 밝은 사업전망을 자신해도 좋았다.

실제로 1976년에는 그런 희비극이 두드러지게 엇갈리기도 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해에는 미국 작가 솔 벨로가 노벨상을 받으리라는 소문이 외신을 타고 이틀쯤 미리 알려졌다. 이미 6개월쯤 전에 필자가 벨로의 최근 소설 ‘험볼트의 선물’을 번역해 주어 1천부를 찍어서는 겨우 4백부밖에 팔지 못했던 출판사는, 공식 발표가 날 때까지 광고 따위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벨로가 정말 노벨상을 타자 큰 재미를 보았다. 남들이 원작을 준비하기도 전에 완제품을 만들어놓고 기다렸으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셈. 이 출판사의 재빠른 동작을 보고 한 방송에서는 “노벨상 발표가 난 지 24시간만에 책을 구해 하룻밤만에 번역해서 책을 냈다”고 호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 해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이 미리 알려져 크게 당혹해했다고 한다. 이후로는 정보가 미리 새나가지 않도록 특히 보안에 열심이어서 ‘하룻밤 번역’ 소동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보안도 대한민국의 정보망에는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를 보면 말이다. 한림원의 발표가 있기 몇 달 전부터, 아니, 필자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아마 1년도 더 시간이 남았을 때부터 시중에는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으리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것도 ‘후보에 오른다’는 희망 섞인 추측이 아니라, ‘노벨상을 받는다’는 확정적인 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흔히 그렇듯이 ‘소문’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만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를 그런 식으로 1년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출판사가 있다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붙잡아두고 전속 계약을 맺어 톡톡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니 그 출판사는 사업전망이 얼마나 밝을까 하는 생각에 군침이 돌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점쟁이가 될 수 있는 나라


노벨상 발표가 나기 얼마 전에, 지극히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 국회의장이 내한했다. 필자는 우연히 이만섭 국회의장이 신라호텔에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가,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국회의원으로부터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가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나도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묻지도 않은 해명을 들었다.

정치인들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호언장담을 하면, 그것은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어느어느 기업에서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 어쨌느니’ 하는 갖가지 소문은 전혀 사실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노벨상 같은 명예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한림원에서는 노벨상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줘야겠다고 미리 결정을 해놓았고,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출중한 선견지명으로 그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정치적 소신이나 다른 어떤 자질 못지않게 아버지의 무덤을 명당으로 옮기는 역술(曆術)적인 정성이 필요하고,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는 점집부터 찾아간다는 이 나라에서는, 아마도 점쟁이들이 그 정도로 신통한 모양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기로 했다. 한림원에서조차 알지 못했던 수상 사실을 1년 혹은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말이다.

이렇듯 ‘카더라 통신’만 수집해도 미래를 점치기가 어렵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무속인이나 역술인으로 활동하기가 퍽 쉽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즈음 학교처럼 무속인을 집단 배출하는 ‘무당 공장’까지 생겨났다는데, 점쟁이 양성소를 만들어 전국 역술인 연쇄점을 엮어놓으면 재벌로 성장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싶고. 내친김에 해외 점포와 대리점까지 개설하여 ‘카더라 통신업’을 아예 정부에서 산업화한다면, 새로운 첨단 점치기 기술을 통해 국가도 눈부시게 발전하리라는 전망도 쉽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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