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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 꿈인가 현실인가

서울시장 선거 핫 이슈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청계천 복원, 꿈인가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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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독재시대의 유산을 걷어내고 환경중심으로 변모하는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인가, ‘서울의 현실을 무시하는 몽상가적인 발상’인가. 극단의 평가가 공존하는 청계천 복원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근대화의 격랑에 묻혀 자취를 감춘 청계천이 과연 무거운 콘크리트 더미를 내던지고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1997년 10월, 연세대 환경공학부 노수홍 교수는 당시 토지문학관을 준비하던 작가 박경리씨와 함께 대전을 찾았다. 대전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대천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노교수는 자신의 관심분야인 청계천 얘기를 불쑥 꺼냈다.

“콘크리트 더미 밑에서 썩어가는 청계천이 이제는 복원될 때도 된 것 같은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젊은 시절, 청계천변에서 문학의 꿈을 키워갔던 박씨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청계천 복원은 공학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비아의 황량한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한 우리 아닌가. 사람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림돌일 뿐이다. 노교수의 긍정적인 답변에 한껏 고무된 박경리씨는 그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계천을 복원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 얼굴에 쓰레기통이 웬말이냐!”

청계천살리기연구회(일명 청계천포럼)는 그렇게 출범했다. 도시계획과 환경에 관심 있는 공학자들이 주축이 된 이 연구회는 최근 2년간 세 차례의 세미나를 열어 동참자를 늘리고 연구성과를 축적했다. 그러다 올해 초 서울시장 선거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청계천 이슈가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청계천 복원논란은 이명박·김민석 후보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 이번 서울시장 선거전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淸風溪川’의 운명


청계천 복원론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도시설계와 건축을 연구하는 이들이 서울의 사대문 안을 새롭게 꾸미기 위해 내놓은 방안에는 매번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가 포함됐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까지를 없애고 창경궁에서 남산에 이르른 녹지축을 만들자는 게 그 골자. 서울의 도심부를 재정비할 때 가장 먼저 손대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 것이 복개된 청계천과 꼴사나운 청계고가도로, 청계천로다.

환경론자들은 하천을 살리자는 뜻에서, 교통학자들은 청계고가·도로의 철거와 관련해서, 풍수가와 사학자들은 서울의 역사복원이라는 차원에서 청계천을 되살리자고 주장해왔다. 이런 목소리들이 박경리라는 대모(代母)를 만나면서 청계천 복원은 시민적 화두가 됐고, 선거판의 쟁점으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청풍계천(淸風溪川)’이라는 시적인 어원에서 보듯, 청계천을 글자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기억하는 서울사람은 얼마나 될까. 청계천 복개공사가 1958년에 시작됐으니 적어도 196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야 하고 당시 서울인구를 감안하면, 서울시민 가운데 200만명 정도가 그때의 모습을 아련하게나마 기억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들은 청계천이라고 하면 전쟁을 치르고 난 후의 피폐한 도심, 네모난 목조 ‘하꼬방’이 다닥다닥 붙은 천변 풍경, 하천으로 대소변을 흘려보내는 피란민들의 힘겨운 삶을 먼저 떠올린다. 종로3가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는 김학표(67)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일제시대 때는 여기 한전 변전소 자리에서 고기 잡고 목욕했지. 서울시내 아이들은 다 청계천변에서 놀았던 것 같아. 이승만 대통령 때 수표교까지 복개했는데, 그때 하꼬방 집에 불이 많이 났어. 주민들이 안 나가고 버티니까 정부가 불을 질렀다는 둥 별별 말들이 많았지. 그때는 뗏목에 쌀을 실어 한강으로 날랐으니 청계천과 마포를 운하로 연결하자는 계획도 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 청계천이 복개된 후에는 너무 더럽고 붕괴 위험도 있다고 미군들은 그 위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었어….”

청계천 복개는 이미 일제 치하 때부터 거론됐다. 이후 도심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교통문제가 뒤따르자 공사가 시작됐다. 더욱이 당시 청계천은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잃을 만큼 더러워진 데다 그 주변에는 도시 빈민과 피란민들이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침내 정부와 서울시는 청계천의 죽음을 공식 선언하고 대대적인 복개공사에 돌입, 1961년 12월 1차로 광교에서 오간수교까지 복개했다. 이어 1966년에는 제2 청계교까지, 1978년에는 마장동 철도교 구간까지 복개되어 청계천은 철근 콘크리트 아래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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