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청계천 복원, 꿈인가 현실인가

서울시장 선거 핫 이슈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입력2004-09-09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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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0월, 연세대 환경공학부 노수홍 교수는 당시 토지문학관을 준비하던 작가 박경리씨와 함께 대전을 찾았다. 대전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대천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노교수는 자신의 관심분야인 청계천 얘기를 불쑥 꺼냈다.

    “콘크리트 더미 밑에서 썩어가는 청계천이 이제는 복원될 때도 된 것 같은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젊은 시절, 청계천변에서 문학의 꿈을 키워갔던 박씨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청계천 복원은 공학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비아의 황량한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한 우리 아닌가. 사람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림돌일 뿐이다. 노교수의 긍정적인 답변에 한껏 고무된 박경리씨는 그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계천을 복원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 얼굴에 쓰레기통이 웬말이냐!”



    청계천살리기연구회(일명 청계천포럼)는 그렇게 출범했다. 도시계획과 환경에 관심 있는 공학자들이 주축이 된 이 연구회는 최근 2년간 세 차례의 세미나를 열어 동참자를 늘리고 연구성과를 축적했다. 그러다 올해 초 서울시장 선거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청계천 이슈가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청계천 복원논란은 이명박·김민석 후보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 이번 서울시장 선거전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淸風溪川’의 운명


    청계천 복원론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도시설계와 건축을 연구하는 이들이 서울의 사대문 안을 새롭게 꾸미기 위해 내놓은 방안에는 매번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가 포함됐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까지를 없애고 창경궁에서 남산에 이르른 녹지축을 만들자는 게 그 골자. 서울의 도심부를 재정비할 때 가장 먼저 손대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 것이 복개된 청계천과 꼴사나운 청계고가도로, 청계천로다.

    환경론자들은 하천을 살리자는 뜻에서, 교통학자들은 청계고가·도로의 철거와 관련해서, 풍수가와 사학자들은 서울의 역사복원이라는 차원에서 청계천을 되살리자고 주장해왔다. 이런 목소리들이 박경리라는 대모(代母)를 만나면서 청계천 복원은 시민적 화두가 됐고, 선거판의 쟁점으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청풍계천(淸風溪川)’이라는 시적인 어원에서 보듯, 청계천을 글자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기억하는 서울사람은 얼마나 될까. 청계천 복개공사가 1958년에 시작됐으니 적어도 196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야 하고 당시 서울인구를 감안하면, 서울시민 가운데 200만명 정도가 그때의 모습을 아련하게나마 기억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들은 청계천이라고 하면 전쟁을 치르고 난 후의 피폐한 도심, 네모난 목조 ‘하꼬방’이 다닥다닥 붙은 천변 풍경, 하천으로 대소변을 흘려보내는 피란민들의 힘겨운 삶을 먼저 떠올린다. 종로3가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는 김학표(67)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일제시대 때는 여기 한전 변전소 자리에서 고기 잡고 목욕했지. 서울시내 아이들은 다 청계천변에서 놀았던 것 같아. 이승만 대통령 때 수표교까지 복개했는데, 그때 하꼬방 집에 불이 많이 났어. 주민들이 안 나가고 버티니까 정부가 불을 질렀다는 둥 별별 말들이 많았지. 그때는 뗏목에 쌀을 실어 한강으로 날랐으니 청계천과 마포를 운하로 연결하자는 계획도 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 청계천이 복개된 후에는 너무 더럽고 붕괴 위험도 있다고 미군들은 그 위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었어….”

    청계천 복개는 이미 일제 치하 때부터 거론됐다. 이후 도심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교통문제가 뒤따르자 공사가 시작됐다. 더욱이 당시 청계천은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잃을 만큼 더러워진 데다 그 주변에는 도시 빈민과 피란민들이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침내 정부와 서울시는 청계천의 죽음을 공식 선언하고 대대적인 복개공사에 돌입, 1961년 12월 1차로 광교에서 오간수교까지 복개했다. 이어 1966년에는 제2 청계교까지, 1978년에는 마장동 철도교 구간까지 복개되어 청계천은 철근 콘크리트 아래로 사라졌다.

    지난 5월 초 남산자락에 있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SDI). 서울시의 각종 정책을 검증하고 연구하는 이곳 연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청계천 복원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복원되면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어?”

    “노점상한테 가서 자리 비키라고 해봐. 불도저 앞에 드러누워버리면 서울시도 당해낼 재간이 없어. 수만명이나 되는 세입상인들은 또 어떻게 할거야?”

    “상인과 주민들의 의견을 조사하고 협상하는 데만도 족히 2년은 걸릴 거야.”

    “교통문제도 심각해요. 서울의 도로 율이 겨우 23% 정도인데, 청계천을 복원하면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도로폭도 3분의 1로 줄어요. 아직은 이른 얘기 아닙니까?”



    “복원한다고 해도 그 땅에 맑은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이론은 무성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겐 이렇듯 엄청난 프로젝트를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재개발사업에 참여해 곤욕을 치러본 사람들은 더욱 회의적이었다. 도심 재개발은 이론만 가지고는 가능하지도 않고, 더구나 이처럼 수십만의 이해당사자가 관련된 사업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가며 접근하지 않으면 자칫 ‘수십만과의 싸움’으로 비화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생각해야 할 현실적 문제는 돈이다. 공사가 시작되면 건설비로만 최소한 3600억원에서 1조원의 초기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이미 6조2000억원의 재정적자를 떠안고 있는 서울시로서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라고 파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에 대해 복원 찬성론자들은 조순 전 서울시장 때부터 적립해온 서울시 신청사 건설기금 1300억원과 청계고가 보수예산을 청계천 복원비용으로 돌려 이를 모태로 공사에 착수하면 별 무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예상하는 대략적인 기본개발 비용은 와 같다.

    하지만 돈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사비도 공사비지만,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지역 상권이 입게 될 피해를 보상하는 데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

    청계천 주변은 공구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하루에도 수십만의 유동인구로 넘쳐나는 대표적인 재래상권이다. 이런 곳의 도로를 막고 공사를 벌인다면 엄청난 교통체증과 상권 침해가 불가피하다. 서울시는 30년에 걸쳐 지하철 공사를 벌이면서 소수 영업권 침해에 대한 보상을 해준 경험이 있지만, 청계천 복원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도심 재개발은 유례가 없기 때문에 어떤 돌발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박종철 사무국장도 보상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한 재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운상가 상인들의 기득권이 보장될지 의문스럽다보니 현상유지만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보상이 전제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보상액수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긴 하겠지만.”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정창무 교수 연구팀은 전체 복개구간의 3분의 1 정도를 재건축하는 데 12조원의 민자가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여기에는 재건축에 대한 투자와 보상만 계산되었을 뿐, 청계천 복원에 따른 상권 피해 보상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복원 반대론자들은 재래상권을 유지하고 영세 세입상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청계천 일대의 재래식 상가 상인들은 80% 이상이 세입자다. 이 일대는 땅값이 평당 3000만원에 이르는 데다 주인들이 땅을 조각조각 나눠갖고 있고, 소방도로도 없을 만큼 저개발 상태라 부동산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땅주인들은 세입자들로부터 월세를 받는 데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땅을 재개발해서 토지소유주에게만 개발이익이 돌아갈 경우 영세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공구상과 인쇄소, 기념품 가게, 직물상점 등이 주류인 청계천 상가 상인들은 대부분 수익성이 낮아 재개발 후 높아질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곳을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40년을 이어온 전통상권을 보존하면서 개발을 병행하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방법이 아니면 재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부터 이전이 추진된 세운상가도 아직껏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도심 재개발계획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더욱이 청계천 세입상인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가 있다. 이들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을 경우 집단민원 사태가 빚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서울시장 자리를 더 높은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준비단계쯤으로 보는 우리 현실에서 이는 시장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므로 시장이 소신 있게 도심 재개발에 나서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소요되는 기간은 4년 정도로 예상되지만, 이것도 자신하기 어렵다. 교통체증 때문에 서울 중심부로는 대형 덤프트럭이나 각종 건설중장비가 쉽게 드나들지 못한다. 공사현장에서 나올 75만t 분량의 건설폐기물도 청계천변에서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청계고가와 복개 청계천 12차로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건설장비와 공사인력을 들어앉혀야 하니 공사현장 안팎의 교통 흐름이 원활할 리 만무하다.

    청계고가 철거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는 민주당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가 여러 차례 우려를 표명한 바 있지만, 상당수 서울시 관계자나 시민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하루에 12만대의 자동차가 오가는 청계고가는 서울 동-서 교통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어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청계고가는 과거엔 동-서축 방향의 교통만 담당했지만, 지금은 서울 순환도로와 남산1호 터널에 연결되어 도심 교통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맡고 있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서울 답십리에 사는 K씨는 청계고가를 이용해 시청 부근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한다. 더러 길이 막힐 때도 있지만 자동차 전용도로이기 때문에 참을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2005년 어느날 청계고가가 철거됐다. 그후로 K씨는 출근시간을 종잡을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체증이 심하던 을지로나 충무로는 청계고가 철거 이후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직선거리로 10km에 불과한 서울시내로 접근하는 데 두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참다못한 K씨는 서울시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가 도로교통정비촉진법과 도시체계효율화법에 위배되게 청계고가를 대안 없이 철거, 서울 동부지역 주민들의 교통권과 경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다.’

    김민석 후보는 교통혼잡에 따라 최소한 하루 14억원씩, 1년에 5000억원 정도의 추가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교통체증은 차량 배출가스를 증가시키게 마련인데, 이에 따른 환경공해 또한 계산에 넣지 않은 피해라는 것. 홍익대 도시공학과 이인원 교수는 “서울시 ‘기본계획’에 따라 도시고속화도로를 확충하고 있는 현실에서 멀쩡한 자동차전용도로를 철거한다는 것은 경제성의 논리에 위배된다”고 말한다.

    청계천 복원논란은 정책적 우선순위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복원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청계천 복원은, 가뜩이나 예산부족에 허덕이는 서울시가 다른 시급한 문제를 제쳐두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 김민석 후보가 “결식아동, 장애인,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 부문 예산을 먼저 배정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의 역량을 놓고보면 복지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대규모 투자는 경제성을 치밀하게 검토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을 연구하는 KDI 이혜훈 박사는 “그간 복지·교육에 대한 지방정부의 역할이 너무나 간과돼왔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예산배정에서 사회간접자본보다 이들 부문을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질타했다.

    청계천 복원논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천 복원과 고가도로 철거에 찬성하는 쪽은 이미 상당한 연구성과를 축적한 반면, 반대하는 쪽은 연구성과가 다소 미흡해 복원론이 논란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청계천 복원은 서울시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다분하다. 그 결과 두 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에서 70%, 90%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한국교원대 기술교육과 정동양 교수는 청계천을 복원해 그 위에 배를 띄울 꿈을 갖고 있다.

    “발전된 서울이다 뭐다 하지만 청계천 밑바닥에 한번 들어가 보세요. 우리가 발딛고 있는 것은 허상이에요. 하수로가 분리되어 있다지만, 오수와 계천이 만나 썩어서 금세 구토가 납디다. 미군들이 이 길을 피해다녔다는 게 이해가 간다니까요. 이걸 강남의 테헤란로보다 더 경제적이고 쾌적하고 문화적인 공간으로 변신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조선 태종 때 유럽보다 400년이나 앞서 청계천을 근대적인 하천으로 개발했어요. 온통 회색 콘크리트 숲으로 뒤덮인 삭막한 서울에 마음의 고향 같은 청계천이 흘러야 하지 않겠어요?”

    청계천 복원에 찬성하는 이들은 학계와 건설업계, 시민단체 등에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들도 대부분 공유된 상황이다. 운하형의 복원과 경전철 도입, 재개발 방법론 등에서 이견이 있지만, 다양한 아이디어와 방법론들이 활발하게 토의되고 있다. 하나로 명확하게 정리된 흐름은 없지만, 어차피 청계고가도로가 낡아 보수가 필요한 시점이니 이 기회에 아예 청계천을 복원해서 서울의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자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청계천 복원이야말로 경제(Economy)와 생태(Ecology), 즉 ‘에코-2’를 함께 살리는 작업이라는 것.

    하지만 이미 물이 말라 건천(乾川)으로 변한 지 오래인데다, 복잡하게 얽힌 하수관들을 끼고 있는 청계천에 과연 맑은 물이 흐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연세대 노수홍 교수는 대구 신천의 예를 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구 신천은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 길이 10km와 고도차 35m를 단숨에 극복하고 맑은 물이 흐르게 했습니다. 청계천은 부근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충분할 뿐 아니라 7km 거리에 중랑하수종말처리장이 있기 때문에 고도 처리된 물 10만t만 있으면 운하를 건설할 수도 있어요.”

    하수도 물을 고도 처리하면 수돗물에 가까운 수준으로 질소와 인이 제거된다. 따라서 악취와 오염을 유발하지 않을 뿐더러 지하수와 섞여 흘린다면 생태계의 복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구 신천은 최근에야 고도 처리가 시작됐지만, 금호강 물을 섞어 흘려보냄으로써 물 문제를 해결해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청계천 복원도 어차피 하수처리장에 고도 처리 비용으로 배분할 900억원을 미리 집행해 신천과 비슷한 방법으로 추진하면 된다는 게 노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서울 지하철의 풍부한 지하수다. 지하가 파헤쳐진 서울 지하철에선 하루 수백만t의 지하수가 흘러나와 살수차 등의 허드렛물로 쓰이고 있다. 광화문 지역 지하철에서만 하루 2만t 이상의 지하수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이 지하수에다 중랑하수종말처리장 물까지 끌어온다면 하루 10만t 정도, 즉 청계천에 깊이 50cm 이상의 물을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의 물이 확보되어 말라버린 청계천을 충분히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교원대 정동양 교수는 “자연생태계를 제대로 복원하려면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물을 끌어오지 말고 빗물을 이용해도 충분한 수원(水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복원론자들은 “현재 폭 50m 정도인 복개도로에 폭 20m의 하천을 만들고 그 옆에 하수관과 물을 끌어오는 관을 묻고 고수부지를 만들어 나무를 심고 보행자 도로를 만들더라도 좌우 2차로씩 자동차 도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추가로 땅을 매입하지 않고 청계천변의 서울 시유지만 이용해도 복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청계천을 복원할 경우 복개된 8차로와 청계고가도로 4차로 등 12차로가 4차로로 줄어들어 동-서 교통축의 체증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 황기연 박사와 한양대 도시대학원 원제무 교수는 “4개로 되어 있는 동-서축 러시아워를 기준으로 평균시속이 1.7∼4.4km 떨어지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며, 서울시민의 잠재 교통수요를 고려하면 더 이상 도로를 확충하는 방안만으로 도심 교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10년 안에 개발비용 뽑는다”

    이와 관련, 도시교통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이른바 ‘다운스의 역설’이다. 즉 도시 주민들은 자동차에 대한 잠재수요가 커 도시 중심부에서는 도로가 아무리 늘어나도 이런 잠재수요 때문에 체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심으로 들어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우리 실정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교통정책은 대중교통의 혁신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청계고가도로는 이미 그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철거해도 중심부 교통은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 찬성론자들은 복원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남의 마지막 생태계를 파괴하는 도시고속화도로가 예산집행 우선순위에 올라 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 청계천 복원이 뒤로 밀려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1000억원대의 청계고가 공사가 눈앞에 닥쳐 미리 도로를 폐쇄해야 할 것이 예견되는 상황도 한몫 거든다.

    도시를 관통하는 하천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게 이들의 공감대다. 런던의 템스강이나 파리의 센강은 대표적인 운하형 하천이다. 서울엔 한강이 있지만 한강의 지천 34개 중 24개가 복개됐기 때문에 실제로 중심 도심부를 흐르는 하천다운 하천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첨단 기술을 동원해 양재천 일부의 생태계를 복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세대 노수홍 교수는 “청계천 복원을 통한 하천 살리기는 전국적인 파급력을 가진 환경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청계천은 서울의 중심, 우리나라의 중심에 있는 하천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 복개되지 않은 하천이나 잘 가꾸라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청계천 복원이 우선입니다. 청계천 복원 논의가 나오기 시작하자 여러 도시에서 하천을 복개하려는 움직임이 사라졌습니다. 환경문제에서는 가장 중요한 ‘샘플’을 하나 만들면 다른 것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서울시립대 정창무 교수는 청계천 복원의 경제효과에 대해서도 낙관한다.

    “공사비와 보상비 부담이 적지 않지만, 청계천 개발이익으로 10년 안에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보상문제야 개발이익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보전 가능하고요. 경제적 파급효과만 16조원, 고용창출효과는 18만명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서울 강남과 강북의 불균형 발전과 지역격차 해소를 유도할 수도 있죠. 도심에 자연을 가져오는 기념비적인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외국에도 비슷한 성공사례가 많아요. 경부고속전철사업과 비견될 만한 국책사업으로 지정하여, 특별법을 만들어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과 주변지역 재개발을 연계하는 것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 적어도 10년 이상, 길게는 20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청계고가도로를 뜯어내고 하천을 복원하는 것만도 의미 있는 발전으로 여긴다. 고가만 철거하면 땅주인들이 스스로 재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고가도로 주변은 대개 열악한 환경에서 슬럼화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 따라서 고가도로가 없어지면 자연스레 주변 재개발이 이뤄져 서울 도심부가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도심 재개발을 연구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양윤재 교수는 “청계천 일대의 도심 재개발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양교수에 따르면 청계천 일대는 비록 노후했지만 서구의 도심 주변처럼 범죄와 마약, 매춘, 인종갈등 같은 대도시의 병폐를 찾아보기 힘든,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의 명소라는 것. 따라서 유리로 덮인 ‘오피스 빌딩’들만 지어올리는 도심 재개발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종로일대는 상권이 뚜렷하게 구성돼 있고 역사성을 지닌 곳입니다. 이곳을 마구잡이로 개발하면 기존 상권이 해체되고, 중심부의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건물들이 들어설 공산이 큽니다. 때문에 기존의 상권을 보호하고 인간적인 소규모 네트워크가 유지되도록 저밀도-소단위 재개발이 필요합니다. 땅주인과 세입자, 그리고 서울시민 모두가 혜택을 얻는 ‘윈-윈전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거판에 낀 ‘청계천’


    서울 강북지역의 경제력은 지속적으로 하강하고 있다. 삶의 질은 차치하고, 일단 도시 인프라가 강남에 비해 매우 뒤처진다. 주거시설과 사람을 끌어들일 매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상권과 교육의 혜택이 강남으로 집중되는 것은 이미 사회문제화한 지 오래다. 역사적으로 청계천은 상류층과 하류층을 나누는 사회적 경계선이었다. 지금은 한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듯이. 낙후된 청계천변은 강북지역 개발 필요성의 절실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가져올 경제효과 중 하나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동대문 상권과 청량리 상권으로 이어지는, 퇴조한 강북지역의 재개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동대문 운동장의 공원화 사업도 강북지역의 공간 재배치를 통한 상권중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계천 복원논란에 대해 서울시는 곤혹스러워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 차기 시장선거 입후보자들이 뚜렷한 정책 차별화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청계천 복원과 직결되는 청계고가도로 보수문제는 차기 시장에게 재량권을 주기 위해 6월 이후로 결정을 미뤘다. 청계고가도로는 상판이 부식되는 등 노후 정도가 심해 이미 오래 전부터 철거논의가 있어 왔다. 1990년대 중반 청계3가까지의 상판을 교체하는 비용으로 400억원이 들어갔고, 올 들어서도 50억원의 보수비가 투입됐다. 청계7가까지 상판을 교체하는 데는 1000억원이 필요하다.

    청계천 문제가 이명박, 김민석 두 시장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측면도 있다. 논의가 단지 복원하자, 말자는 차원을 지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확대되면서 청계천 이외의 다른 정책 대안들은 세인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 이명박 캠프는 청계천 복원이라는 테마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구체적인 방법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답답해하고 있다. 김민석 후보 캠프는 더 다급한 상황.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들이 묻히고 청계천 문제가 너무나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불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복원에 반대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민단체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환경연대시민연합과 녹색연합은 이 문제가 선거쟁점으로 부각되자 섣부르게 환경론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다. 연구성과도 충분하게 축적되지 않았지만, 환경연대시민연합의 경우 이번 지방선거에 후보를 출마시켰기 때문에 청계천 복원을 단순한 환경문제로 파악해 개입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녹색연합은 ‘녹색서울 만들기 10대 공약’을 제안하면서 “청계천에 버들치가 헤엄치게 만들자”고 주장한 바 있지만, 이 문제가 선거이슈로 끼어들자 앞으로의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논의가 선거판의 쟁점이 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시각도 많다. 단순히 찬성이냐 반대를 묻는 의사결정 시스템으로는 환경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녹색연합 유상오 녹색도시 국장의 지적.

    “이처럼 중대한 사업이 가장 잘못되는 길은 개개인들의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폭넓게 공론화하고, 민간과 공공부문이 함께 비전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시민의 이익에 부합되게 일을 추진해야 해요. 지금은 이 논의가 그저 선거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차원의 문제로 격하된 느낌입니다.”

    청계천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문제지만 단순히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게 전부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공공과 개인이 시민사회의 틀 안에서 합리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절차의 민주화가 전제돼야 갈등을 최소화하며 일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 청계천 복원처럼 미래지향적인 프로젝트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 방식인 ‘정치이슈화로 밀어붙이기’로 추진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전문가 집단과 시민이 이 논의를 주도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이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업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도심 재개발 문제도, 교통문제도 풀어갈 수 없다. 서울 인사동의 노점상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 노점상 문제는 개인들간의 권리와 법이 충돌하는 것이었지만, 인사동이라는 문화공간을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노점상과 상가, 전통문화보존회가 좌대의 크기에 합의해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민의 합의 없이는 법도 공권력도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선거바람에 휘말리면서 논의의 정체성이 왜곡된 측면이 있지만, 청계천 복원문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주요 후보가 모두 큰 틀에서 동의를 했기 때문에 복원사업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이 대역사를 성공으로 이끈 서울시장에겐 경제와 환경 그리고 역사를 함께 살렸다는 찬사가 뒤따르겠지만, 대규모 민원과 갈등, 시의 재정난을 불러일으킬 위험부담도 크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 문제는 공공성 확보를 위한 정부와 서울시, 전문가들의 활발한 정책토론과 더불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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