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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④

“정의가 살아 있는 군대 만들겠다”

군의문사 유가족들 아픔 보살피는 이철학 신부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정의가 살아 있는 군대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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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해마다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이 사라진다. 200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9년 한 해에 230명의 젊은이가 군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유가족 중 상당수는 “죽음의 의혹이 명백하게 해소되지 않았다”며 군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과 행동을 함께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철학 신부를 만났다.
”이○○ 일병. 1998년 12월 입대 5개월 만에 부대 내 초소부근에서 K-2 소총으로 가슴에 2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 당초 부대 측은 ‘내성적인 성격과 부대생활 염증에 의한 자살’이라고 주장. 유족들은 다음날이 정기휴가 출발일이므로 자살할 이유가 없고, 사건 현장이 보존되지 않고 깨끗이 치워진 점,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세탁한 점, 현장에서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들어 의혹을 제기. 이후 고참들의 가혹행위와 구타사실이 밝혀져 선임병 구속.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타와 죽음이 상당한 연계성이 있다’고 예시함.”

“곽○○ 이경. 2001년 4월 입대해 서울 모 경찰서에서 복무하던 중 두 달 만에 4층 내무반에서 추락해 사망. 경찰 측은 ‘부대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떨어졌다’고 추정. 유족은 다음날이 누나 생일이어서 면회가 예정돼 있었다는 사실, 부검과정에서 발견된 가슴과 다리의 멍 등을 들어 구타에 의한 추락사 의혹 제기. 경찰은 1차 수사에서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발표했으나, 유족과 인권단체의 항의에 의해 이뤄진 서울시경의 재조사 과정에서 부대 내 폭력과 가혹행위가 드러나 관련자들 구속. 그러나 ‘타살이라는 확증이 없으므로’ 자살로 수사종결.”

군의문사. 이 말은 수사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유족이나 인권단체가 보기에 명백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군대 내 사망사고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과 처리과정에 의혹을 품은 유족들은 수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폐쇄적인 환경과 ‘군사보안’을 이유로 부대 측이 정보제공을 꺼려 마찰을 빚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이들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군의문사·군폭력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발족한 것은 지난해 5월.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사망사고와 관련해 인권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그간의 활동과정에서 김훈 중위 사건 이외에도 많은 군내 사망자 유가족들이 있음을 확인한 후 이를 지속적으로 다루기 위해 대책위를 출범시킨 것이다. 대책위는 의문사 유가족들로 이루어진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와 함께 2002년 6월 현재 모두 31건의 군의문사 사건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교회는 눈물이 있는 곳에”

출범 이후 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이철학(45) 신부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의정부 녹양동 성당을 찾은 것은 햇볕이 유난히 뜨겁던 6월 초의 평일 오후였다. 예배당을 꽝꽝 울리는 유행가 소리가 성당에 들어서던 기자의 귀를 파고들었다.

“가거라~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거룩해야 할 성당을 가득 메운 유행가가 생경스러워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60∼70대 할머니들이 ‘노래 강사’의 지도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금요일 오후에 동네 할머니들을 위해 노래교실을 열고 있어요. 점심때는 무료급식을 하기 때문에 신자가 아니라도 주변의 연세 드신 분들이나 극빈자들이 많이 오시죠. 따뜻한 식사 한 끼 드시고 노래도 한 자락 하시고…. 다들 좋아하세요.”

의아해하는 기자의 표정을 눈치챈 이철학 주임신부(45)가 빙그레 웃으며 덧붙인다.

“1999년 이곳으로 부임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이 교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성당 지하에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고요. 교회가 닫혀있을 필요는 없죠. 세상과 함께 숨쉴 때 교회도 비로소 살아있는 거니까요.”

시위현장에서 만나는 ‘열혈 사제’들과는 사뭇 다른 조용한 목소리, 국방부와 ‘맞장뜨기’를 서슴지 않는 강성 인권단체의 수장으로는 영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이신부가 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까닭을 언뜻 알 것도 같다. “억울한 눈물이 있으면 어디라도 달려가야 하는 게 사제의 의무”라고 그는 설명했다.

대책위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군의문사 사건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첫째는 조사활동. 의혹을 제기하는 유족이 있을 경우 상담을 통해 사건을 살펴보고, 함께 부대를 방문한다. 부검에 참여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의혹이 있는지 확인하고 군 검시관의 발표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과 함께 살펴 미비한 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부대 측이 사건을 ‘자살’로 예단하는 것을 막는 일. 수사당국과 유족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막기 위한 중재도 중요한 기능이다.

두번째는 법률구조사업.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유공자등록 거부를 취소하도록 소송을 제기하는 일에 법률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법률분과위원회에서 함께 일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의 조언이 이 부분에서 큰 힘이 된다고 이신부는 말한다. 더불어 군대 내 사망사고에 관한 보훈규정 등 관련법을 개정하는 일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도 대책위의 역할이다. 매년 천주교, 불교, 개신교 연합 추모제를 열고, 사망자의 장례식을 부대장으로 치를 수 있도록 영결식을 중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역시 조사활동입니다. 사고발생 이후 군 당국의 처리과정이나 대응이 미숙한 경우가 너무나 잦고, 민간단체인 대책위가 사건에 참여하는 것을 부대에서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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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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