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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농민 “실패한 재난대처” VS 당국 “성공한 방역대책”

‘구제역과의 전쟁’ 치르는 안성시 일죽면을 가다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농민 “실패한 재난대처” VS 당국 “성공한 방역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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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7월2일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안성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처음 구제역 발생이 신고된 지 정확하게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첫 신고가 들어온 5월2일 이후 용인과 안성에서 16건의 구제역이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발생한 곳은 6월23일 안성시 일죽면의 한 양돈 농가.

안성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도·농 통합도시. 안성에 도착한 버스는 폭포수처럼 뿜어나오는 소독약 세례를 받고 시내로 들어섰다.

안성시청은 시장의 취임식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한 공무원은 “시 문화회관에서 취임식을 열 예정이었으나 구제역 때문에 취소했다. 대신 시청 강당에서 면장과 공무원들만 참석해 조촐하게 치렀다”고 귀띔했다. “시장님은 행사 직후 구제역 발생 현장으로 출발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안성시 축산과는 직원 대부분이 현장으로 떠나고 없어 썰렁했다. 혼자 자리를 지키던 축산과장에게 상황을 물었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전 공무원이 두 달째 총동원됐습니다.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고 있어요. 어제까지 ‘살처분(殺處分)’을 마무리하고 사후관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돼지 7만9519마리, 한우 347마리, 젖소 967마리를 매립했어요. 보상은 현시세를 기준으로 하는데, 말이 많습니다. 농림부가 관장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축산농가와 정부 당국간 갈등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보상문제와 구제역 발생원인 및 확산의 책임소재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어요. 구제역은 전파속도가 빠른 데다, 의심되는 지역의 가축을 모두 도살해야 하기 때문이죠. 자세한 것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누군가의 실수가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미치니까 갈등의 불씨를 낳는 거죠. 다들 사정이 딱해요. 지금 이천으로 들어가는 경계지역 도로를 봉쇄하고 있는데, 이천 사람들이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있겠어요. 벌써 책임소재를 놓고 논란이 일어 당혹스럽습니다. 구제역은 공기를 통해서도 전파되고 야생동물이나 까치 같은 새가 옮길 수도 있어 답답할 수밖에요. 일단 초소를 30개 이상 운영하면서 위험지역 안에서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더 확산되지 않게 하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

축산업 본고장 덮친 재앙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과 축산에 적합한 지형 때문에 경기도에는 국내 젖소·돼지 등 축산농가의 40%가 몰려 있다. 예로부터 소를 사려면 안성과 평택으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안성은 소를 사육하기에 알맞은 구릉지와 목야지가 많아 일찍부터 축산업이 발달했다.

안성시 일죽면은 인구 8600명의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그럼에도 결코 ‘조용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은 단합된 농민회가 있기 때문이다. 소값, 돼지값, 쌀값 파동이 일 때마다 안성시의 각종 농민회 회원들이 앞장서서 머리띠를 동여맸다. 그래서 농림부도 안성 농민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김대중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은 김성훈 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방문한 곳도 안성이다.

축산업의 본고장이라 할 이곳에 재앙이 닥쳐온 것은 5월2일. 일죽면과 이웃한 삼죽면 율곡리의 한 농장에서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돼지가 발견된 것이다. 구제역은 주로 우제류(偶蹄類·소, 돼지, 염소, 사슴 등 발굽이 2갈래로 갈라진 동물)에 발생하는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코와 구강부의 점막이나 발굽 주변부의 피부에 특징적인 수포가 형성된다. 발병한 가축의 치사율이 50%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다.

대만은 구제역에 미흡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1997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초기 대응에 소홀했다가 무려 380만마리의 돼지를 도살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봄에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북한에 가로막혀 대륙과 이어지는 육상 교통로가 없는 우리나라도 구제역이라는 세계적 질병의 전파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당시 구제역은 경기도 파주, 화성과 충남 홍성, 연기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그때의 재앙에서 가까스로 비껴났던 일죽면 축산농민들이 구제역을 두려워하지 않을 리 없었다. 농림부와 검역원은 매주 수요일을 방역의 날로 정해 소독을 독려했다. 농민들은 그것도 부족해서 일주일에 한 차례씩 더 모여 축사와 길목 곳곳을 소독, 방역활동에 나섰다. 봄이 오면 기온이 올라가면서 구제역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에 2000년 구제역 파동 이후 이 지역 축산인들은 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2월부터 방역작업을 벌였다. 그런데도 구제역이 찾아든 것이다.

일죽면으로 가기 전에 구제역 첫 발생지인 삼죽면에 들렀다. ‘안성시 구제역 긴급방역 통제본부’가 삼죽면사무소에 설치돼 있었다. 삼죽면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전투경찰과 군인들이 경계를 풀지 않고 길목마다 진입하는 차량을 세우고 마치 세차하듯 소독약을 퍼부었다.

통제본부에는 전날 농림부 장관 일행이 다녀갔기 때문인지 지도며 브리핑 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5월2일 구제역을 처음 신고한 삼죽면 율곡리 율곡농장은 8000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큰 규모의 농장인 만큼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그간 꾸준히 방역활동을 해온 안성과 용인 일대 축산농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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