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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5

‘아동학대 근절 위한 가족모임’ 대표 송영옥씨

“성추행 당한 어린이의 절망을 아시나요”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아동학대 근절 위한 가족모임’ 대표 송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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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난 딸아이 꽃님이(가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은 7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몇 달 전부터 유난히 소변을 오래 보고 유치원에 가길 꺼리는 것을 보고도, 엄마는 친구들과 싸웠겠거니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듭 짜증을 부릴 때도 설마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아이는 “선생님이 여기를 만졌다”며 자신의 성기를 내보였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아닐 거라고, 아이가 잘못 말하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이의 상태는 심각해졌다. 망치를 들어 제 언니를 때리고,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휘둘렀다. 산부인과와 성폭력상담소를 찾았다. 의사는 “아이는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 믿으시는 게 좋겠다”고 진단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은 그날 이후 막을 내렸다.

그날 저녁 42도의 신열이 아이를 덮쳤다.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간 병원 응급실에서 아이는 침대 밑에 숨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를 진찰한 소아정신과 의사는 폐쇄병동 입원을 권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집에 왔지만 엄마도 제 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한 말을 갖고 뭘 그러느냐, 과민반응하지 말라”는 시댁 식구들의 만류를 뒤로한 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들어섰다. 이미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환자였다.

병원에서 아이의 행동은 끔찍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어린 딸은 시도 때도 없이 자위를 해 댔다. “엄마는 왜 선생님처럼 못 만져줘?” 동물처럼 먹고 자기만을 반복하는 아이 앞에서 엄마는 무너져내렸다. 가족을 돌보는 일도, 큰아이를 살피는 일도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3년의 세월이 지난 2001년 5월, 엄마는 법정에 서있었다. 검찰에서는 유치원 원장 부부를 불기소처분했지만 민사소송에서는 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루한 싸움 끝에 얻어낸 승소판결. 법원은 “아동 성추행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리기 위해”라는 이유로 6000만원의 적지않은 배상판결을 내렸다. 돈이 아이를 예전대로 돌려놓을 수는 없었지만, 이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사는 수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위한 첫걸음은 될 수 있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던 평범한 여성 송영옥(43)씨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가족모임’(이하 가족모임)의 대표 ‘싸움꾼’이 된 것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였다.

美, 피해 부모 80% 이혼

“XX이 엄마, XX이 사건 이겨야 되는 거 맞는데, 나는 오는 사람한테마다 진다고 말해요. 현실이 그러니까. 정말 길고 힘든 싸움이에요.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엄마가 정신 바짝 차려야 돼요. 정신 놓지 말고, 밥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고. 쉽지 않겠지만 가능한 한 정상생활을 유지하고요.”

2002년 6월 말 기자가 방문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족모임 사무실. 송영옥 대표는 찾아온 피해자 가족과 상담 중이었다. 역시 형사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기각결정이 내려진 사건이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법원의 결정에 피해자 가족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가족모임은 지난해 10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그전부터 자신의 사건이 진행되던 와중에도 송대표는 많은 피해 어린이 가족들을 만나 대응방법이나 후유증 방지를 위한 병원치료를 안내해 왔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체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말 그대로 ‘모임’이었던 가족모임은 7월 하순 사무국 체계를 갖추고 좀더 조직적인 활동을 벌일 예정. 송대표가 그동안 만난 이들만 어느새 100여 가족을 넘어섰다.

“아이가 겪는 후유증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가족들의 삶도 완전히 붕괴됩니다. 이 일을 하다보니 술값이 가장 많이 드는 거예요.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한밤중에라도 전화를 걸어오면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줘야 하니까. 상처를 모두 극복하고 나면 다른 피해 가족들을 받은 만큼 도와주라고 얘기하곤 하죠.”

가족모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성폭력 피해 어린이 부모의 80%가 이혼에 이른다. 아이에게 닥친 사건의 충격이 가족 전체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가족모임이 올해 가장 큰 사업목표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 어린이 치료센터’에 가족에 대한 치료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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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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