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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粗하고 野하되 卑하지 않았다”

동아방송 ‘노변야화’ 대담자 권오기 전 통일부총리가 말하는 인간 김두한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粗하고 野하되 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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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전파를 탄 동아방송의 ‘노변야화’는 밤 10시경 프라임 타임에 방송된 인기 프로였다. 진행자는 권오기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
  • 3개월여의 짧지않은 시간 함께 방송을 진행하며 느꼈던 인간 김두한에 대한 회고를 들어보았다.
“粗하고 野하되 卑하지 않았다”
권오기 당시 논설위원은 이후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쳐 1993년 동아일보사 사장, 1995년 통일부총리를 지낸 후 2000년부터 21세기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권이사장은 오래 전이라 할 얘기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막상 자리에 앉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정치기자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김두한을 상세히 묘사해 주었다.

-우선 당시 동아방송의 ‘노변야화’가 어떤 코너였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1962년에 ‘정계야화’라는 제목으로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후로 몇 차례 이름을 바꿔서 계속되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 때 동아방송이 KBS로 통합되면서 사라졌죠.

어떤 사건에 관한 공격 인터뷰가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 그 사람의 캐릭터를 끌어낼 수 있는 대담을 만들자는 컨셉이었습니다. 대담자인 나도 준비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일반 청취자 입장에서 쉽게 인터뷰를 했던 거지. ‘노변야화’라는 제목부터 ‘난롯가에서 이야기하듯 편하게’ 그런 뜻이잖아요. 대개 옛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 4층에 있던 동아방송 스튜디오에서 한번에 일주일 분량을 녹음했던 것 같습니다.”

‘적색분자 학살에 정신했다’

-김두한씨를 부르자는 것은 누구 아이디어였습니까.

“PD가 제안을 해 함께 의논했죠. 김두한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것은 방송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정치부 기자 시절에 스치기는 했지만 ‘우리와는 다른 세계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두한씨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던 것은 1954년 3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종로에 출마해 민주당 한근조 후보를 이기면서였죠. 당시 선거 포스터 이력란에 ‘해방 이후 적색분자를 학살하는 데 정신(挺身)했다’고 써서(정확히 ‘학살’이라는 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거 참 김두한답네’ 생각했습니다. ‘정신’이라는 건 어떤 일에 앞장선다는 뜻이죠. 누구를 열심히 죽였다는 얘기를 포스터에 쓴 게 묘해서 껄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심하다 싶었는지 나중에 그 부분만 종이로 가렸더라고요.”

-PD의 제안을 들으셨을 때 선뜻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던가요. 워낙 독특한 인물이라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할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우선 미군정 때 힘으로 좌익을 때려잡는 데 앞장선 게 강한 인상을 남겼죠. 김두한씨가 없었다면 당시 남한 우익이 그렇게 힘주고 다니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나중에 있었던 국회의사당 오물투척사건이나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의미가 있었고요.”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어땠나요.

“뭐랄까, 유교적으로 좋다는 가치, 예의라든가 성실이라든가 그런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죠. 한자로 표현하자면 ‘조잡하다’ 할 때의 粗(거칠 조)자 이미지, 우락부락한 이미지가 일단 강했죠. 野(들 야)자가 갖는 이미지도 있었고. 사람들이 흔히 ‘깡패’하면 떠올리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야비하다’ 할 때의 그 卑(낮출 비)자일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건 없었어요. 粗하고 野하지만 卑하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원래 제대로 된 큰 깡패는 야비하지 않은 법이거든요. 간단치는 않았어요. 왜 설명할 때 그냥 한 문장으로 하면 안되고, ‘그러나’ 하면서 주석이 붙어야 되는 그런 사람 있잖아요.

나중에 한참 진행을 하다 보니 이런 순진한 면도 있더군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의식하는 거예요. 녹음할 때 엉뚱한 소리를 해서 PD나 내가 ‘에이, 그건 얘기 안 됩니다’하고 면박을 주면 본인이 먼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기도 하고. ‘뭐든지 내 맘대로 한다’,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단 신경을 써도 김두한스럽게 씁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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