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粗하고 野하되 卑하지 않았다”

동아방송 ‘노변야화’ 대담자 권오기 전 통일부총리가 말하는 인간 김두한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입력2002-11-04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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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전파를 탄 동아방송의 ‘노변야화’는 밤 10시경 프라임 타임에 방송된 인기 프로였다. 진행자는 권오기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
    • 3개월여의 짧지않은 시간 함께 방송을 진행하며 느꼈던 인간 김두한에 대한 회고를 들어보았다.
    “粗하고 野하되 卑하지 않았다”
    권오기 당시 논설위원은 이후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쳐 1993년 동아일보사 사장, 1995년 통일부총리를 지낸 후 2000년부터 21세기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권이사장은 오래 전이라 할 얘기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막상 자리에 앉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정치기자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김두한을 상세히 묘사해 주었다.

    -우선 당시 동아방송의 ‘노변야화’가 어떤 코너였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1962년에 ‘정계야화’라는 제목으로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후로 몇 차례 이름을 바꿔서 계속되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 때 동아방송이 KBS로 통합되면서 사라졌죠.

    어떤 사건에 관한 공격 인터뷰가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 그 사람의 캐릭터를 끌어낼 수 있는 대담을 만들자는 컨셉이었습니다. 대담자인 나도 준비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일반 청취자 입장에서 쉽게 인터뷰를 했던 거지. ‘노변야화’라는 제목부터 ‘난롯가에서 이야기하듯 편하게’ 그런 뜻이잖아요. 대개 옛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 4층에 있던 동아방송 스튜디오에서 한번에 일주일 분량을 녹음했던 것 같습니다.”

    ‘적색분자 학살에 정신했다’



    -김두한씨를 부르자는 것은 누구 아이디어였습니까.

    “PD가 제안을 해 함께 의논했죠. 김두한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것은 방송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정치부 기자 시절에 스치기는 했지만 ‘우리와는 다른 세계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두한씨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던 것은 1954년 3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종로에 출마해 민주당 한근조 후보를 이기면서였죠. 당시 선거 포스터 이력란에 ‘해방 이후 적색분자를 학살하는 데 정신(挺身)했다’고 써서(정확히 ‘학살’이라는 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거 참 김두한답네’ 생각했습니다. ‘정신’이라는 건 어떤 일에 앞장선다는 뜻이죠. 누구를 열심히 죽였다는 얘기를 포스터에 쓴 게 묘해서 껄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심하다 싶었는지 나중에 그 부분만 종이로 가렸더라고요.”

    -PD의 제안을 들으셨을 때 선뜻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던가요. 워낙 독특한 인물이라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할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우선 미군정 때 힘으로 좌익을 때려잡는 데 앞장선 게 강한 인상을 남겼죠. 김두한씨가 없었다면 당시 남한 우익이 그렇게 힘주고 다니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나중에 있었던 국회의사당 오물투척사건이나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의미가 있었고요.”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어땠나요.

    “뭐랄까, 유교적으로 좋다는 가치, 예의라든가 성실이라든가 그런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죠. 한자로 표현하자면 ‘조잡하다’ 할 때의 粗(거칠 조)자 이미지, 우락부락한 이미지가 일단 강했죠. 野(들 야)자가 갖는 이미지도 있었고. 사람들이 흔히 ‘깡패’하면 떠올리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야비하다’ 할 때의 그 卑(낮출 비)자일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건 없었어요. 粗하고 野하지만 卑하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원래 제대로 된 큰 깡패는 야비하지 않은 법이거든요. 간단치는 않았어요. 왜 설명할 때 그냥 한 문장으로 하면 안되고, ‘그러나’ 하면서 주석이 붙어야 되는 그런 사람 있잖아요.

    나중에 한참 진행을 하다 보니 이런 순진한 면도 있더군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의식하는 거예요. 녹음할 때 엉뚱한 소리를 해서 PD나 내가 ‘에이, 그건 얘기 안 됩니다’하고 면박을 주면 본인이 먼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기도 하고. ‘뭐든지 내 맘대로 한다’,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단 신경을 써도 김두한스럽게 씁디다.”

    -김두한 식으로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위선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김두한씨는 일종의 ‘위악자’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그게 꼭 자기 본 모습은 아닌데 일부러 예의 없고 무식한 것처럼 구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게 김두한답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거죠. 미리 외부에 비칠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겁니다. ‘남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봐주고 있나’ 계속 의식하죠. 그런데 그 위악에서 솔직한 어법이 나오더라고요.

    일종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생각도 듭니다. 얘기를 듣다 보면 어디 테러하러 갈 때는 꼭 망토를 입는 장면이 나와요. 실제로 망토를 입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옛날 영화를 보면 태양빛을 배경으로 멋있게 서 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속에 자기를 그리는 거지. 그런 심미(審美)가 있었어요.”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매력 있었죠. 일단 정직해 보여요. 정치 깡패들 중에 눈만 반질반질하고 거짓말 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인상이 없어요. 머리로는 ‘저게 거짓말이다’ 싶은데도 믿게 되고. 적어도 ‘본인은 그걸 진실이라고 믿고 있구나’ 싶으니까요. 왜 여러 번 얘기하다 보면 본인 스스로도 과장됐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걸 잊고 진짜라고 믿게 되잖아요. 그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학계 일부에서는 김두한씨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얘기 역시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아닌데 본인이 자기최면을 통해 믿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견해입니다만.

    “이제 와서 유전자 검사를 할 수는 없겠지만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장군의 아들이므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렛대 삼아 자신을 제어하는 거죠. 더 형편없는 짓도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일종의 브레이크가 돼준 겁니다. 방송을 들어보면 아버지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합니다. 자기도 그 이름에 걸맞으려고 애쓰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였을 겁니다.”

    -방송을 들어보면 말하는 스타일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듣는 이 머리 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자연스럽게 그때 상황이 눈 앞에 떠오르게 하는 화법을 사용하던데요.

    “그런 특징이 있죠. 그건 그 사람이 어릴 때 극장을 많이 다녔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싸웠는지 얘기할 때 보면 굉장히 영화적이에요. 이런 식입니다. ‘공원길을 슥 걸어가는데 놈들이 저기서 이렇게 달려들더라. 그걸 내가 이렇게 날아서 이렇게 옆 발로 돌려 차서 샥샥 해치웠다.’ 한 장면 한 장면 보여주듯 계속 ‘묘사’하는 화법이죠. 그렇게 스토리를 영상으로 풀어내니까 듣는 사람이 재미있거든요. 생각해보면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가 말하는 방식을 보고 흉내낸 것 같아요.”

    영화적 이미지 사용하는 묘한 화법

    -그런 식의 화법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그래요. 처음 들을 때는 말도 참 우락부락하게 하는구나 싶은데 듣다 보면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는 사람입니다. 뭐랄까, ‘감각’이 있는 말하기였죠. 녹음 끝날 무렵에 ‘다음에는 이런 얘기 합시다’ 말해두면 다음에는 주문한 것 이상으로 이야기가 나오곤 했습니다. 방송을 참 잘했어요. 텔레비전 시대였다면 더 유명해졌을 거예요.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그랬지 머리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디다.”

    -방송 당시 청취자들의 반응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반응에 고무돼서 방송기간을 늘린 출연자 가운데 하나였어요. 하다가 별로 재미가 없으면 줄이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광고도 많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 주변에도 재미있게 들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김두한이 그냥 깡패인 줄만 알았더니 재미있는 사람이네’하는 식으로.

    김두한씨 본인도 방송이 끝나고 나서 ‘나가길 잘했다’고 했다더군요.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흔치 않았으니까요. 자기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됐다는 거죠.”

    -최근에 다시 김두한 열풍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그 사람을 과연 협객이나 영웅으로 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 사람이 따를 만한 표상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요. 협객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웅이라는 말은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그 시대에는 꼭 한 명쯤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길거리 보통 깡패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죠. 다양한 지점에서 복잡한 의미로 한국 현대사를 증언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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