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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때리고 나가다 보니 먼동이 터오는데…”

김두한이 말하는 긴또깡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치고 때리고 나가다 보니 먼동이 터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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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한에 관한 영화나 소설은 많지만 정작 1차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방송 ‘노변야화’ 대담 테이프는 이미 고인이 된 본인의 육성을 통해 ‘인간 김두한’의 실체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그 중 가장 흥미진진한 다섯 편을 골라 오디오 자료와 함께 소개한다.
다시 ‘김두한 열풍’이 불고 있다. 장군의 아들에서 주먹대장으로, 정치테러리스트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을 거듭한 드라마틱한 삶이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2002년 가을, 다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도화선이 된 것은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의 폭발적인 인기.

지난 7월29일 밤 9시55분 김두한의 ‘국회오물투척사건’을 서두로 첫 전파를 탄 이 드라마는 9월 셋째 주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후 9월30일과 10월1일 시청률은 각각 44.1%, 48.3%(닐슨미디어리서치·전국기준)에 이르러 50%에 육박했고 다소 주춤했던 10월7일과 8일 방영분도 여전히 40%대를 유지하며 1위를 지켰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그 역사적 배경과 김두한을 둘러싼 네티즌들의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커뮤니티에는 이미 지난 9월 말에 ‘야인시대’를 주제로 한 카페가 100개를 돌파했고, 관련된 카페까지 합친다면 300개를 넘어섰다. ‘의송 김두한 공식 홈페이지(www.kimdoohan.org)’ 또한 쇄도하는 네티즌들로 붐벼 10월15일 현재 방문자 35만을 돌파하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김두한을 소재로 다룬 대중매체는 모두 큰 인기를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제작된 영화 ‘김두한 1~4편’을 필두로 1990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장군의 아들 1~3’ 시리즈 등 10여 편의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홍성유의 ‘김두한’, SBS드라마의 원작이 된 이환경의 ‘야인시대’ 등 소설은 물론, ‘의협 김두한’ ‘협객 김두한’ 등 만화 또한 줄을 이어 출간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야인시대’에 열광하는 주 시청자 층이 10~30대 젊은 계층이라는 것.

이전 영화·소설의 인기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공유하고 있는’ 중·장년층의 반응에 힘입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김두한 열풍’은 그의 삶이 갖고 있는 극적 흡입력이 세대를 뛰어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야인시대’의 작가인 이환경씨는 그동안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집필하기 위해 1963년 발간된 김두한씨의 회고록 ‘피로 물든 건국전야’와 동아방송을 통해 방영된 라디오 프로그램 ‘노변야화-김두한 편’의 녹취분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69년 10월14일부터 이듬해 1월26일까지 방송된 ‘김두한 편’은 1일 방송량이 12분 내외로, 총 60분짜리 테이프 22개의 방대한 분량.

‘신동아’가 이번에 공개하는 부분은 이중 가장 흥미롭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다섯 회다. 1969년 10월18일 방송된 5회 ‘소년시절 걸어온 이야기’, 10월21일 방송된 7회 ‘우미관 뒷골목 이야기’, 10월23일 방송된 9회 ‘장충공원에서 일본깡패와 겨루던 일’ 등은 종로를 누비던 김두한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같은 해 11월2일 방송된 18회 ‘연애 이야기’에서는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실패한 첫사랑 추억담이 담겨 있다. 12월2일 방송된 39회는 ‘여운형 집 폭파’. 광복 이후 좌우익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절 몽양 여운형의 가회동 자택을 폭파했던 암살미수 사건을 회고하고 있다.

떠돌이 소년, 원노인을 만나다

김두한은 1918년 음력 5월15일에 출생했다. “일본 경찰에 쫓기는 신세였던 아버지 김좌진이 몸을 숨기기 위해 담을 넘었던 집에서 어머니를 만나 ‘혁명적 로맨스’를 통해 자신을 잉태했다”는 것이 본인의 주장이다(김두한 회고록 ‘피로 물든 건국전야’ 9페이지). 이러한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해 학계 일부에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또한 김두한은 ‘노변야화’ 4회 방송분에서 “아버지는 원래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양아들이어서 나는 김옥균의 손자인데, 일제 때 족보가 조작됐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 또한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김두한의 회고에 따르면 김좌진 장군은 자신이 태어나던 해 만주로 떠났다. 그 당시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지만 여섯 살(회고록에는 일곱 살로 기록) 무렵 외할머니와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아버지를 만났다는 증언이다. 이후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이 극심한 탄압에 부딪히자 ‘하나밖에 없는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이듬해 2월 아버지가 자신을 한국으로 돌려보냈다는 것. 이후 서울에서 ‘부잣집 귀공자’로 자라던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일본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투옥되고 외삼촌이 집과 땅을 모두 팔아먹은 후 떠돌이 거지생활을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이 시점, 떠돌이 생활을 하던 와중에 부친에게 신세를 졌던 설렁탕집 ‘사동옥’의 원노인을 만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원노인의 도움을 받던 성장기가 주된 내용. 자신이 왜 주먹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으뜸가는 주먹이 되기 위한 자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김두한식’ 해석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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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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