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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의 현장

絶景과 전통문화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도시’

전라북도 남원시

  • 글: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hanmir.com, www.travelwriters.co.kr

絶景과 전통문화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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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시는 농업과 제조업, 서비스업의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한다. 드넓은 옥토를 바탕으로 농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농업정책을 펴는 한편, 농공단지를 조성하고 투자유치팀을 가동하면서 유망 제조업체를 끌어들인다. 또한 아름다운 풍광과 전통문화를 관광상품화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絶景과 전통문화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도시’

지방 유일의 국립국악원인 국립민속국악원. 어현동 남원관광단지에 있다.

”동문 밖에 나가오면 장림숲 천은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오면 관왕묘(關王廟)는 천고영웅 엄한 위풍 어제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에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좋사옵고, 북문 밖에 나가오면 푸른 하늘에 금부용 꽃이 빼어나 괴팍하게 우뚝 섰으니 기암 둥실 교룡산성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시이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방자가 새로 부임한 사또의 아들 이몽룡에게 남원 고을의 경치를 이르는 대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문, 서문, 북문, 남문은 옛 남원성의 성문인데, 모두 난리 중에 불타거나 헐려 없어지고 지금은 지명만 남아 이곳 토박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천은사(선원사), 관왕묘,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교룡산성 등은 옛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여태껏 남아 있다.

오랜 옛날부터 남원은 인근 여러 고을의 중심지 구실을 해온 고장이다. 도시의 역사는 삼국시대의 고도(古都) 경주나 부여, 공주 못잖게 유구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원경(청주), 북원경(원주), 중원경(충주), 금관경(김해) 등과 함께 5소경(小京)의 하나인 남원경이 들어섰고, 고려 때에는 순창, 임실의 2개 군과 장계, 장수, 구례 등의 7개 현(縣)을 거느린 남원부가 자리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남원도호부로 승격해 담양부와 순창군 이외에 무주, 진안, 장수, 임실, 구례, 곡성 등을 포함한 9개 현을 관장함으로써 전라좌도의 경제·문화·행정·교통 중심지 구실을 했다.

‘沃野百里 天府之地’

오늘날에도 남원은 전라북도 동부와 지리산 권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하지만 그 비중과 기능은 옛 시절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도시의 성장이 사실상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 사람들이 제 고장의 변화와 발전이 더디다는 점을 강조할 때는 흔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전주시와 순천시를 비교상대로 든다. 남원은 일제 때인 1931년에 전주, 순천 등과 함께 읍(邑)이 되었다. 그런데 순천과 전주는 불과 18년 만인 1949년에 시로 승격된 반면, 남원은 그로부터 30여 년이나 뒤진 1981년에야 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전주시가 60여 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청 소재지이고, 순천시가 인구 27만명의 중견도시로 성장한 데 비해 남원시는 인구 10만명의 아담한 소도시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큰 ‘인물’과 공장이 없어서 지역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적잖은 부작용을 겪고 있는 여느 도시들보다는 차라리 지금의 남원이 더 살기 좋다는 것이다. 사실 지역경제의 ‘낙후성’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조차도 “안정적인 생업만 확보된다면 남원만큼 살기 좋은 도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남원은 사람 살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고장이다. 명산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두른 분지(盆地)인 데다 청류(淸流)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蓼川)이 일군 옥토가 사방으로 너르게 펼쳐진 덕택이다. 특히 남원은 예로부터 ‘옥야백리 천부지지(沃野百里 天府之地)’라 했을 만큼 땅이 기름진 고장이다.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도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다.

“땅이 기름지다는 것은 토양이 오곡과 목화를 가꾸기에 알맞음을 말한다. 논으로 말하자면 볍씨 한 말로 나락 60말을 거두는 것이 제일이고, 40∼50말을 거두는 곳이 다음이며… 나라 안에서 가장 기름진 땅은 전라도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 등 몇 곳뿐이다. 이곳에서는 볍씨 한 말을 뿌려서 많게는 140말, 보통 100말, 아무리 못해도 80말은 거두는 곳인데, 다른 데는 그렇지 못하다… 전라도에서 좌도의 지리산 곁은 모두 기름지다.”

제조업체 끌어들이기

이처럼 남원은 농지가 비옥할 뿐만 아니라 둘레 800리의 지리산 품에 안긴 산간지방 치고는 농지(전체의 23%)도 비교적 너른 편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쌀 생산이 과잉상태에 이른데다 농업분야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호막이 한 겹 한 겹씩 걷히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농지가 너르고 비옥하다는 것만으로는 농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남원시는 안정적인 농업생산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경지정리, 기계화 경작로 포장, 관개·수리시설 정비 등에 적잖은 예산을 투입해왔다. 또한 최근에는 농업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친환경농업 육성시책으로 청정미생산단지와 친환경농업지구 조성, 친환경농업마을 선정, 축산분뇨 액비화(液肥化) 사업, 우리밀 재배확대, 퇴비증산 등에 진력하고 있다. 그밖에도 ‘춘향골 흑돼지’ 등의 고소득 특화상품 생산 지원, 물류표준화사업과 농·특산물의 브랜드화를 통한 유통구조 개선, 농축산물의 해외시장 개척, 농업인의 정보화 교육 강화, 정보화시범마을(운봉읍 동하마을) 조성, 신지식농업인의 발굴 등 농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책들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농업경쟁력을 어느 수준까지 높였다고 해도 농업만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남원시 주민들 가운데에는 “지역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딘 것은 이렇다할 제조업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이가 많다.

남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목기, 부채, 한지, 상(床), 식도(食刀), 담뱃대, 유기(鍮器) 등과 같은 전통공예품이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남원 목기는 특유의 향기와 함께 모양이 정교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나무질이 단단해서 조선 초기부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특산품이다. 지금도 남원 목기는 전국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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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hanmir.com, www.travelwrit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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