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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누명 쓰며 세계를 누볐다

한국형 액체로켓 KSR-Ⅲ 발사 성공기

  • 글: 신동호 dongho/Dongailbo

스파이 누명 쓰며 세계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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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로 남북한의 위성발사체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일본은 얼마전 H-2A 로켓 발사에 성공했으며, 중국은 이미 장정(長征) 로켓으로 위성을 쏘아올리고 있다. 치열한 동북아의 로켓 경쟁에 한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늘 정복을 위해 불면의 나날을 보내는 과학자들의 세계와 한국형 로켓 발사 뒷이야기.
스파이 누명 쓰며 세계를 누볐다

KRS-III 발사장면

“셋·둘·하나, 발사.”

2002년 11월28일 오후 2시52분26초.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이 위치한 서해안 태안반도 앞 바다의 한 섬. 국내 최초의 액체로켓 KSR -Ⅲ이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화염을 분출하며 서서히 발사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발사각도 82.6도로 천천히 수직 상승한 로켓에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발사대를 떠난 지 30여 초가 지나자 로켓은 하늘에 하얀 비행 구름만 남긴 채 시야에서 사라졌다. 관람석 여기저기에서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스피커에서는 레이더로 관측한 로켓의 비행상황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시간 53초. 최대고도 42.7㎞ 도달.”

“비행시간 231초 서해상에 착수(着水).”

로켓이 남서쪽으로 79㎞ 떨어진 전북 어청도 서남방 30㎞ 지점 바다에 떨어졌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몇 달 전부터 섬에 들어와 추위와 싸우며 발사대와 로켓 조립대를 설치했던 60여 명의 연구원과 기술자들은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10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개발해온 액체로켓 발사 시험이 4분도 못 돼 끝난 것을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애초 목표했던 최대도달고도 42km, 사거리 84km와 차이는 있었지만, 오차 범위 이내였다. 바람의 영향과 처녀 비행인 점을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액체로켓은 우주발사체 개발에 필수

발사는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애초 발사 예정일은 11월27일이었지만 폭풍이 불어 하루 연기됐다. 다음날 카운트다운은 새벽 4시에 시작됐다. 서해안 일대의 항공기와 선박 운항이 통제됐다. 곧이어 액체산소 주입에 들어갔다. 그런데 발사 직전 로켓 낙하 예상해역에 외국상선이 들어와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상선이 20분 만에 빠져나가 예정보다 22분 가량 늦은 오후 2시52분, 발사되었다.

액체로켓 발사 시험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을 나는 액체로켓은 영하 183℃로 냉각시킨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싣고 간다. 액체산소를 주입한 로켓은 상온에서 30분 이상 놔둘 수 없다. 30분 내에 발사하지 못하면 다시 몇 시간에 걸쳐 액체산소를 주입해야 한다.

이날 발사된 KSR-Ⅲ는 길이 14m, 지름 1m, 무게 6t의 소형 과학관측 로켓이다. 로켓엔진의 추력은 12.5t이고 연료는 최고급 등유를 사용한다. 길이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개발한 V-2로켓과 같지만 무게는 절반이다.

KSR-Ⅲ는 액체엔진을 쓴 것 외에도 첨단의 추력벡터 제어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유도제어용 관성항법장치를 이용해 로켓이 자세와 위치, 가속도를 스스로 파악해 화염이 분사되는 엔진의 노즐 방향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발사체연구부 김준 박사는 “발사 직전 로켓의 컴퓨터에 목표지점의 좌표를 입력하면, 로켓이 엔진 노즐의 추력 방향을 조절해 목표지점에 정확히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자의반 타의반 100% 국산화

로켓은 어떤 연료를 쓰느냐에 따라 액체로켓과 고체로켓으로 나뉜다. 액체로켓은 고체로켓보다 강한 추력을 발생시킨다. 발사 뒤에도 점화와 소화를 반복하며 궤도를 정확히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위성 발사체로 흔히 이용된다. 고체로켓은 점화한 다음에는 속도 조절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값이 싸고 특별한 준비 과정 없이 바로 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로 주로 쓰인다.

액체로켓은 1926년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가 처음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을 괴롭힌 독일의 V-2로켓,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나 아폴로호를 달에 보낸 로켓, 미국의 우주왕복선, 북한의 대포동 위성발사체가 모두 액체로켓이다.

액체로켓은 우주 개척의 필수품이지만, 로켓 머리 부분에 인공위성 대신 핵탄두를 달면 대륙간 탄도탄으로 쓸 수 있다. 이번에 한국이 쏜 액체로켓은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쓰기 때문에 발사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군사용 로켓으로 쓸 수 없다. 강대국들은 연료나 산화제를 미리 로켓에 주입해 장시간 보관하다가 준비작업 없이 바로 쏠 수 있는 액체로켓을 개발해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쓰고 있다.

KSR-Ⅲ는 부품을 100% 국산화한 ‘토종 로켓’이다. 국산 기술을 고집해 토종이 된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부품을 사올 수 없었기 때문에 국산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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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동호 dongho/Donga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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