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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⑨ 과거제도

대리시험, 커닝, 시험관 매수… 타락의 극치 보여준 양반들의 잔치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대리시험, 커닝, 시험관 매수… 타락의 극치 보여준 양반들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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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
  • 세도가의 자제는 천자문을 몰라도 합격했다. 임금이 직접 주관한 과장에서도 술판, 싸움판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 암행어사 박문수도 대리시험으로 장원급제했다는 소설까지 나왔다.
대리시험, 커닝, 시험관 매수… 타락의 극치 보여준 양반들의 잔치
요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수의 서울대생들이 전공 불문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만의 현상도 아니다. 전국 대학마다 고시에 청춘을 건 학생들이 적지 않다. 청년 실업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고시 열풍이 분다. 이것이 건전한 사회현상일까.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고작 일개 자격증 시험에 수년을 투자하는 사회를 건강하다 할 수는 없으리라. 고시 열풍은 한국사회 특유의 병리 현상이다.

현재의 고시제도는 조선시대 과거(科擧)와 너무도 닮아 있다. 요즘 청년들이 고시에 목을 걸 듯이 조선시대 식자층들도 그랬다. 한국사회에선 ‘사법시험 합격=신분의 수직상승’으로 통한다. 조선시대 때도 이러한 등식이 성립됐다. 그러다 보니 과거제도 자체가 타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조선시대는 양반관료 사회다. 말하자면 ‘관료’가 그 사회의 주체요, 지배자란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이야 돈이 으뜸의 가치가 되었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가치는 입신양명, 즉 고급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관직에 대한 조선인의 열망은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는 것에서 사랑을 성취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관료가 됨으로써 해결되었다. 수많은 영웅소설의 주인공들은 높은 벼슬에 올라서 이름을 떨치고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도 이도령이 임금의 신임을 받는 암행어사가 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 아니던가.

관료의 등용문

관료가 되려면 과거를 거쳐야 했다. 먼저 조선시대 과거에 대해 정리해 보자. 과거에는 문과(文科) 무과(武科) 잡과(雜科)가 있다. 문과는 학문의 깊이가 시험대상이고 무과는 무예가 주 시험대상이다. 잡과는 역관(譯官) 의관(醫官) 등 기술관료를 뽑는 시험이다. 잡과는 일반적으로 중인들만 응시하는 것이어서 문과, 무과에 비해 격이 낮았다.

문과와 무과 중에선 문과가 훨씬 중요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라 하면 주로 문과를 가리켰다. 문과는 다시 소과(小科)와 대과(大科)로 분류됐다. 소과는 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시험이고, 대과는 국가의 정식 관료 33명을 선발하는 시험이다. 일반적으로 과거라 함은 바로 이 문과의 대과를 지칭했다.

현재 과거와 비슷한 시험인 행정고시는 1년에 한 번 시행된다. 하지만 과거는 달랐다. 과거는 3년에 한 번씩 치르는 식년시(式年試)가 정기 시험이었다. 1년에 11명의 합격자만 나오는 셈이니 당시 인구 수를 감안하더라도 합격의 문은 무척이나 좁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식년시 이외에도 무수한 비정기적 과거가 시행됐다. 바로 이 비정기적 과거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식년시 이외의 문과 과거로는 증광문과(增廣文科) 별시문과(別試文科) 외방별시(外方別試) 알성문과(謁聖文科) 정시문과(庭試文科) 춘당대시문과(春塘臺試文科) 등이 있다. 성균관 유생에 한정해 치르는 인일제(人日製) 삼일제(三日製) 칠석제(七夕製) 구일제(九日製)도 있었다. 이 외에도 황감제(黃柑製)니 도기과(到記科)니 하는 별도의 비정기적 과거가 있었다. 이처럼 과거의 종류와 절차, 시험방식은 복잡했다.

과거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취지였으므로 그나마 중세사회에서 비교적 공정한 제도였다. 과거를 실시한 사회는 혈통에 따라 자동적으로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세습받았던 귀족사회에 비해 진일보한 사회였음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 골품제를 유지했던 신라에 비해 과거제를 도입했던 고려가 좀더 진보한 사회인 것은 물론이다.

시험지 바꾸기, 합격자 바꿔치기

그러나 실제로 과거는 공정했을까. 답은 ‘예’가 결코 아니다. 과거는 시행 과정에 이미 커다란 불공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불공정성이야말로 중세 조선의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요약한 것이었다. 제도상 천민(賤民)을 제외하면 과거 응시에 아무런 신분적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과거를 준비하는 비용과 교육 기회는 사실상 양반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인구의 대다수인 농민-상민은 과거에 응시할 현실적 여건을 갖지 못했다. 상민에게 과거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래서 과거는 참여자가 양반으로 제한된 양반사회 내부의 게임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마저도 공정하지 않았다. ‘부정 시험’이 존재했던 것이다. 과거에 관한 저서나 문헌을 뒤지면 그야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 방법이 동원됐음이 확인된다. 예상 답안지를 미리 만들어 가는 것, 시험지를 바꾸는 것,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를 주는 것, 합격자의 이름을 바꿔치기 하는 것 등등 이루 다 꼽을 수가 없다. 첨단기술(?)도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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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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