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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物論 녹이는 有神論, 한국 극동방송의 對共투쟁 30년

라디오가 한반도 재통일한다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唯物論 녹이는 有神論, 한국 극동방송의 對共투쟁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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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소리’ 방송보다 더 공격적으로 대북방송을 하는 것이 ‘자유아시아 방송(RFA)’이다. VOA는 미국 행정부에 속해 있지만 자유아시아 방송은 미국 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자유아시아 방송은 북한에 관대했던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4년 미국 의회에 의해 설립됐다가 1996년 민간방송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운영비는 미국 의회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 방송은 언론자유가 없는 아시아의 몇몇 나라를 위해 그 나라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밝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북한이었다.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자유아시아 방송의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아시아 방송에서는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이동복(李東馥) 전 의원과 전성훈(全星勳)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자주 출연해 동북아 정세와 북핵 문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 또 황장엽(黃長燁)씨가 남북통일 방안에 대해 쓴 ‘황장엽의 대전략’을 정기적으로 낭독해주고 있다.

KBS 사회교육방송이나 VOA·RFA는 미국이나 한국 정부(또는 의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나 FEBC로 불리는 극동방송은 기독교 단체인 민간 기관이 주도하는 방송이다. 여타의 대북방송이 정치성 강한 프로그램을 많이 내보내는 데 비해 극동방송은 선교 위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국가들은 서방국가의 전파공격에 전파방해로 대항한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파방해를 받은 주파수에서는 세칭 ‘개구리 울음’이라고 하는 “왈왈왈” 하는 소리가 나와 방송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극동방송은 시사적인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공산국가로부터 전파방해를 거의 받지 않는다.



한국 극동방송의 경우를 살펴보자. 종교 단체가 주관하는 민간기업인 한국 극동방송은 어떻게 중국과 북한을 뚫고 들어갔을까. 그리고 선교사들과 연계된 지금의 극동방송은 이들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한국 극동방송은 세계 34개국에서 운영되는 극동방송 중의 하나로 오키나와에 있던 극동방송이 1973년 제주도로 옮겨옴으로써 시작되었다. 그후 사세를 넓혀 지금은 서울·제주·대전·창원·목포·영동(속초)·포항·울산 등 여덟 곳에 방송국을 두고 있다. 이중 서울·제주를 제외한 여섯 군데 방송국은 음질은 뛰어나지만 가청거리가 짧은(수십㎞) FM(초단파)으로만 방송을 내보낸다.

그러나 제주와 서울의 극동방송은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중국에서도 선명히 들을 수 있는 AM(중파)으로도 전파를 송출한다. 따라서 한국 극동방송이라고 할 때는 제주와 서울의 극동방송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중에서도 대표는 한국 극동방송의 효시인 제주 극동방송인데, 제주 극동방송의 출력은 국내 AM 방송 중에서 가장 큰 250㎾이다.

제주 극동방송은 하루 22시간 방송하는데 이중 15시간은 한국어, 5시간15분은 중국어, 1시간15분은 일본어, 30분은 러시아어로 방송한다. 따라서 AM 라디오를 갖고 있는 북한인이 1566㎑인 제주 극동방송이나 1188㎑의 서울 극동방송 주파수에 맞춘다면, 그는 15시간 동안 계속되는 한국어 선교방송을 들을 수 있다. 중국인은 중국어 방송이 나가는 한밤중에 이 주파수에 맞추면 5시간15분 동안 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극동방송은 또 하나의 기독교계 방송인 기독교방송(CBS)과 조직과 편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독교방송은 선교 방송과 함께 시사 뉴스를 내보내므로 기자들이 일하는 보도국이 있다. 그러나 극동방송은 뉴스를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보도국이 없다. 기독교방송은 상업 광고를 내보내나 극동방송은 광고 없이 헌금만으로 운영한다. 방송선교를 내고 싶은 교회들은 극동방송에 헌금을 내고 선교방송을 내보내는데, 이 헌금이 극동방송의 주수입원이다.

기독교방송은 일반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가 강하나, 극동방송은 낙태나 피임 같은 종교적인 차원의 사회문제를 거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자기 성격을 한정시켜놓았기 때문에 극동방송은, 강력한 전파를 송출하고 있음에도 공산국가로부터 적극적인 방해전파를 받지 않는 것이다. 중국이나 평양을 방문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극동방송이 또렷이 잡히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극동방송은 공산권, 그중에서도 대(對)중국 선교를 최대 목표로 창설된 방송국이다. 따라서 한국 극동방송도 중국인 목사들이 편성한 중국어 선교방송을 내보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미·중 수교가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 극동방송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있는 극동방송들은 아무 ‘메아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다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은 1979년 홍콩 극동방송은 중국 내 청취자들이 보내온 1만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러한 반응에 극동방송측은 크게 고무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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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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