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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제조기’ 백남수가 작심하고 털어놓은 여자연예인과 재벌·정치인

혼자 자기 싫다는 C회장, 밤 늦게 연예인 찾아나선 비서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스타 제조기’ 백남수가 작심하고 털어놓은 여자연예인과 재벌·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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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비 이야기를 해봅시다. 검찰이 ‘금품’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촌지뿐만이 아니라 접대 술값까지 포함시킨 것 같은데요.

“예. 그것까지 포함한 게 맞습니다. 통상 룸살롱에서 접대를 하죠. 룸살롱에서 술(양주) 두 병에 안주 두 접시를 시키면 100만원 남짓 나와요. 술은 17년산 윈저나 임페리얼을 마십니다. 거기에 아가씨들 팁이 각 10만원, 룸을 왔다갔다하면서 심부름을 하는 새끼마담의 팁이 10만원이니까 보통 세 사람이 술을 마시면 140만∼150만원 정도 나와요.”

-주로 어디에 있는 룸살롱을 이용하나요.

“강남이죠. 룸살롱 접대는 소위 말하는 ‘give and take(기사게재, 방송출연 등 청탁 목적의 접대)’는 아닙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고 돈을 더 많이 버는 입장이기 때문에 제가 세 번 정도 사면 그쪽(PD나 기자)에서 한 번 사는 관계였지 일방적으로 접대하지는 않았어요. 이게 연예계의 관행으로 굳은 지 오래됐어요.”

-연예기획사(매니저)가 PD나 기자에게 베푸는 접대 수준이 일반 기업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어떻게 보면 그보다 훨씬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남에 있는 룸살롱 마담이나 그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연예계에 있는 사람들이 참 짜다고들 해요. 실제로 부동산이나 증권을 해서 돈을 번 사람들에 비해 술 마시는 수준이 다르다는 겁니다.

연예계 사람들이 생각보다 돈이 없어요. 이 바닥 사람들은 돈이 말랐다고들 표현하죠. 그리고 과감하게 (촌지를 돌리거나 접대를) 하는 사람들이 제가 알기로는 거의 없어요. 예전에는, 누구는…. 아마 누군지 다 알 겁니다. K씨는 워낙 유명해서. 그 사람이 한참 잘나갈 때 (촌지나 향응을) 많이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죠. K씨 같은 경우를 두고 저희들끼리는 ‘촌지발이 세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랬던 것도 한때였어요.

저도 드라마 캐스팅과 관련해 (촌지를 건넨 사실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요. 촌지와 향응제공뿐만 아니라 특별한 케이스였습니다만 소위 말하는 2차를 보내주고 나서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깊은 생각에 잠긴 그가 노트에 무엇인가를 기록하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예. 이 이야기는 아주 민감한 부분인데…. 이 바닥 전체가 그렇게 보일까봐 걱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한 몇몇 사람들 행위로 인해 연예계 전체가 그런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다른 업종의 접대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유독 이쪽만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는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물론 2차까지 보낸 접대행위가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잘못한 일인지 잘 알고 있어요. 제 자신이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비즈니스라는 핑계를 대고 과욕을 부렸던 겁니다. 절대로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인데. 그런 접대는 양심에 찔리는 것이었고, 이후에 몹시 후회를 했죠. 그렇다고 제가 도덕적으로 깨끗한 척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 상납 의혹도 조사받아

백남수씨는 경희대 의상학과 84학번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한때 국제복장학원에서 재단을 배운 적도 있는 그는 군에서 제대한 뒤 가정형편이 급격히 기울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막노동, 가방장사, 화장품 판매, 신용카드 가입 아르바이트, 패션쇼 연출 보조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이 중 패션쇼의 연출 보조 일은 그가 매니지먼트 사업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1989년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한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가 초기에 발굴한 탤런트 K, H 등 몇몇 스타들이 그의 무능을 탓하며 떠나간 1992년 이후 2∼3년 동안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서울 혜화동 친구의 사무실 한쪽에 전화기 하나 달랑 놓고 연예계 주변을 맴돌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발굴한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가 1994년 TV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단돈 300만원을 들고 백기획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의 ‘운전병’과 ‘연락병’ 수준에 머물던 시절에 그는 한 발 앞서 전문화, 과학화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했다. 그는 먼저 소속 연기자들을 철저히 분석했다. 연기자로서의 자질과 실력을 쌓은 후 대중에게 보여주는 장기적인 전략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연예인들의 수익관리뿐만 아니라 기획과 홍보도 체계화했다. 소속 연예인이 인기를 유지하면서 생명력을 오랫동안 보존해 자기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관리했다. 그러다 마침내 2000년 그는 톱탤런트와 가수들을 모아 (주)에이스타스를 발족시켜 ‘스타군단’을 이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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