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 인권위 조사기록

허벅지 짓이기고 다리 꺾기, 바가지로 코·입에 물 붓기, 성기·낭심 골라 때려 기절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11-25 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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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 인권위 조사기록
    지난해 10월말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사퇴를 불러온 서울지검 피의자 사망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1년 만에 나왔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이현승 부장판사)는 11월5일 홍경령 전 서울지검 검사와 채○○, 홍○○ 수사관에 대해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함으로써 유죄를 인정했다. 또 4명의 수사관에 대해선 징역 10월에서 징역 2년6월의 형에 집행유예를, 2명의 수사관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 조○○의 사망원인은 수사관들의 가혹행위였다”고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짓는 한편 “자해하는 피의자들을 제지하는 과정에 물리력이 행사됐다는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며 강압수사 관행에 일침을 놓았다. 특히 논란이 된 물고문 혐의에 대해 “수사관들은 잠을 깨우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행위의 목적을 떠나 행위 자체가 가혹행위인 점은 인정된다”며 사실상 물고문을 인정했다.

    검찰의 기각

    검찰은 지난해 11월13일 홍경령 전 검사와 채○○ 등 ‘구타 수사관’ 3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독직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홍 전 검사와 2명의 수사관에 대해서는 물고문 혐의를 추가했다. 또 조씨의 공범들을 구타한 수사관 7명 중 이○○ 등 5명에 대해서는 독직폭행치상 혐의로 불구속기소하는 한편 박○○ 등 2명은 징계위에 회부키로 했다. 이처럼 검찰의 기소는 조사과정에서 있었던 가혹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에 따라 법원 판결의 대상도 이 부분에 국한됐다.

    이에 반해 당시 2개월간 직권조사를 벌였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조사과정뿐만 아니라 체포과정의 불법성까지 문제삼고 가해자들의 혐의를 폭넓게 적용했다. 인권위는 지난 3월 홍 전 검사를 비롯한 수사관 10명을 불법체포, 불법감금 및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하고 박○○ 계장 등 4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들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피해자들을 긴급체포했고 ▲체포시 체포사유 및 변호인 조력권을 알리지 않았으며 ▲조사과정에서 변호인 도움을 받을 권리와 체포적부심 신청 권리, 진술 거부권 등을 실질적으로 침해했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불법 수사관행 일체를 문제삼은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지검은 6월23일 인권위 고발내용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인권위는 7월16일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0월10일 서울고검은 ‘항고 기각’ 결정을 통보해왔다. 이에 반발한 인권위는 10월25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검 재항고 방침을 밝혔다.

    일상적인 불법 수사관행

    ‘신동아’는 인권위의 재항고 결정과 1심 판결에 즈음해 이 사건에 대한 인권위 조사기록을 단독 입수해 발췌, 공개한다. 이 기록은 피해자들의 주장만 담은 것이 아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면담조사와 검찰 수사기록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인정된 사실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워낙 흔한 일이라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수사기관의 불법 체포와 불법 감금, 불법 조사 관행을 정식으로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역사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사망자 조씨를 비롯한 6명의 피해자는 모두 30대 초반이다. 인권위 조사기록에는 이들이 서울지검 특조실(특별조사실)에서 겪은 ‘인권 지옥’의 참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들의 눈은 가려졌고 입은 틀어막혔고 손발은 뒤로 묶였고 배와 등은 짓밟혔다. 가족과 변호인을 찾는 그들의 울부짖음은 칠흑 같은 공간 속에서 맥없이 잦아들었다.

    서울지검에서 살인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조씨가 사망한 것은 지난해 10월26일.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1월1일 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망한 조씨의 공범으로 긴급체포돼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정○○ 등 3명이 수사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것도 조사의 한 배경이 됐다.

    이 사건을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으로 이름 붙인 인권위는 11월2일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피해자들의 진술을 청취하고 신체감정을 하는 것으로 조사활동을 시작했다. 대검과 서울지검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고문치사가 발생한 서울지검의 특조실과 검사실, 구치감의 실태를 조사했다.

    이어 성동구치소에 찾아가 홍경령 전 검사의 진술을 듣는 것을 시작으로 피진정인들, 곧 이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 서울지검과 대검은 인권위의 자료 제출 요구를 세 차례나 거절했다. 결국 인권위는 법원을 통해 검찰 수사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배경이 된 것은 1998년 6월에 일어난 파주스포츠파 두목 박○○의 사망사건이다. 박씨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됐는데, 당시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 근무하던 홍경령 검사는 박씨가 타살됐다는 제보를 접수하면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 인권위 조사기록

    검찰조사 중 숨진 조아무개씨 사망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2002년 11월29일 서울지방법원에 홍경령 전 담당검사가 출두하고 있다.

    홍검사의 내사에 따르면 박씨의 죽음은 당시 교도소에서 파주스포츠파 두목 자리를 노리던 신○○이 ‘박○○을 제거하라’는 밀지를 교도소 밖으로 내보낸 것과 관련돼 있다는 것. 이 사건엔 또 하나의 죽음이 연루돼 있다. 이 밀지 내용을 아는 이○○가 출소 후 파주스포츠파 조직원들을 협박하자 조직원들이 이○○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서울지검 강력부로 배속된 홍검사는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수사했다. 하지만 뚜렷한 물증을 잡지 못해 수사가 진전되지 못했다. 2002년 10월23일 수사팀은 죽은 이○○와 친분이 두터웠던 장○○을 잡아들였고, 장○○의 자백에 따라 10월24일 권○○과 정○○을, 10월25일엔 권○○의 자백에 따라 최○○, 박○○, 조○○을 공범으로 긴급체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0월26일 조○○이 조사를 받다가 사망한 것이다.

    인권위 조사의 핵심은 적법절차 위반 및 가혹행위 여부다. 먼저 적법절차 위반 여부부터 살펴보자.

    [긴급체표 규정 위반]

    형사소송법 제200의 3 제1항은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 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유를 알리고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며 긴급체포의 요건을 범죄의 상당성, 필요성, 긴급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장주의의 예외규정인 만큼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 요건의 엄격성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사기관이 법원의 통제를 받는 체포영장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먼저 장○○의 경우. 수사팀은 2002년 10월19일 인천에서 장○○의 소재를 확인하고 잠복근무를 하던 중 10월21일 장○○이 외출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들은 홍 전 검사의 지시에 따라 10월23일 장○○을 그의 이종사촌형 집 앞에서 긴급체포했다. 수사팀은 10월19일 이미 장○○의 소재를 파악했으므로 4일 후 긴급체포하기까지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권○○은 2002년 10월24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긴급체포됐다. 먼저 체포된 장○○이 공범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권○○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파주읍 소재 현 거주지에서 30여 년간 살아오는 등 주거가 일정한 데다 어머니, 부인, 두 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런 그가 살인사건에 연루됐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는 오로지 장○○의 진술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긴급체포한 것은 범죄의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정○○은 2002년 10월24일 서울 상계동 식당 앞에서 긴급체포됐다. 역시 장○○이 공범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이 공범이라고 의심할 만한 근거는 장○○의 진술밖에 없는 데다, 주거가 일정하고 주민등록상 전출입사실을 성실히 신고했으며 결혼해 처자식과 동거하고 있고 모 자동차운전학원 영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

    박○○은 2002년 10월25일 긴급체포됐다. 하루 전 체포된 권○○이 가혹행위를 당한 상태에서 공범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체포 당시 박○○은 결혼해 처자식이 있고 주거가 일정한 상태였다. 불법수사로 이뤄진 권○○의 진술 외에 그를 긴급체포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없었고 체포영장을 청구할 만한 시간이 충분했는 데도 긴급체포한 것은 헌법 제12조와 형사소송법 제200조에 규정된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 것이다.

    [체포이유와 변호인조력청구권 고지의무 위반]

    헌법 제12조 5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 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 장소가 지체 없이 통지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현행 형사소송규칙에 따르면 ①체포·구속사실을 통지받을 자로서 변호인이나 변호인 선임권자가 없는 경우를 대비해 피의자가 지정하는 자를 추가하고 ②늦어도 24시간 내에 서면으로 체포·구속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며 ③급속을 요하는 경우에는 체포·구속됐다는 취지 및 체포·구속의 일시, 장소를 전화, 모사전송기 기타 상당한 방법에 의해 우선 통지하도록 하되, 이 경우에도 체포·구속 통지는 다시 서면에 의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 인권위 조사기록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 국가인권위 조사기록

    2001년 10월부터 강간치상 혐의로 수배중이던 장○○은 2002년 10월23일 인천시 남동에서 긴급체포될 당시 수사관들이 체포사유를 고지하지 않아 강간치상 혐의로 체포되는 줄 알고 있었다. 당시 장○○을 긴급체포한 수사관 이○○ 진술에 의하면 “일부러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강간치상으로 얘기해 살살 달래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장○○이 연행될 당시 이를 목격한 사촌동생 문○○에 따르면 위 수사관들은 “서울지검에서 왔다”고만 얘기하고, 체포 사유나 변호인 선임권리, 변명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또 장○○의 어머니 박○○은 “체포사실을 사촌동생 문○○의 연락을 받고 알았으며 수사관들로부터는 체포와 관련해 아무런 통지를 받은 바 없다”고 진술했다.

    2002년 10월24일 가족이 보는 앞에서 연행된 권○○은 수사관들로부터 “의정부지청에서 나왔는데 마약혐의가 있으니 검사를 해보자”는 얘기를 들었을 뿐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의 처 백○○에 따르면 긴급체포 당시 변호인 선임권리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체포이유와 장소에 대해서도 허위로 고지했다.

    2002년 10월24일 정○○은 수배중이던 친구 장○○으로부터 “소주나 한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약속장소에 나갔으나 장○○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하던 중 수사관들에게 체포당했다. 차 안에서 수사관들은 “강동경찰서 강력반 형사인데 도박혐의가 있으니 임의동행하자”고 말했고 서울지검 지하2층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수갑을 채웠다. 역시 변호사 선임 권리 및 변명의 기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의 처 김○○는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과 불안으로 이틀을 보냈으며 10월2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이동하던 남편이 다른 사람 휴대전화로 연락해와 비로소 그 소재를 알았다”고 진술했다.

    2002년 10월25일 박○○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체포당했는데, 수사관들은 “용주골(파주시 소재 윤락가)과 관련해 물어볼 게 있다”며 동행을 요구했다. 박○○의 처 신○○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자 키 큰 사람이 “수원경찰서로 갈 거다. 아무에게도 남편의 연행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말했다.

    “살인혐의로 면회 불허한다”

    신○○은 다음날 오후까지 남편이나 수사관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남편의 친구인 허○○으로부터 조○○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서울지검 수사관이 전화해 “박○○이 서울지검 1206호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후 서울지검 1206호로 찾아갔으나 “살인혐의로 면회를 불허한다. 박○○은 서울지검에 없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고문치사 당한 조○○은 2002년 10월25일 오후 7시반경 파주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고 출석했다가 서울지검 수사관들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수사관들은 2000년말 아파트 새시 공사와 관련해 1000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체포한다고 허위 고지했다. 조○○의 형이 서울지검으로부터 동생의 체포소식을 통보받은 것은 다음날 오후 4시경이었다. “살인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 어머니를 보고 싶어한다”는 경찰관의 얘기를 듣고 검찰에 찾아가보니 이미 사망해 있었다.

    [변호인 조력 받을 권리 및 체포적부심 받을 권리 침해]

    헌법 제12조 4항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또 헌법 제12조 6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지검 11층 특조실에 인치(引致)되자마자 자백을 강요받고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과 가혹행위를 인정한 수사팀 진술에 비춰 피해자들은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 및 체포적부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체구속을 당한 피의자에 대해 변호인을 비롯한 외부인의 접견교통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방어권을 부당하게 제한한 것이다. 가족들도 구속사유 및 장소를 통지받지 못해 변호사 선임 등의 법률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또한 살인용의자로 긴급체포된 것이므로 체포에 대한 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보장했어야 함에도 이러한 권리를 알려주거나 보장하지 않았고 가족에게도 체포사실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가족 또한 그런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진술거부권 침해]

    헌법 제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제200조 2항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의 진술을 들을 때에는 미리 피의자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릴 의무’를, 같은 법 제289조는 ‘피고인은 각개의 신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또 대법원 판례(92도682)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미리 고지하지 아니한 경우 그 자백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 6명 모두 가혹행위를 통해 자백을 강요당한 만큼 진술거부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중 2명에 대해서는 11층 조사실에 들어가자마자 아무런 질문도 없이 곧바로 원산폭격 등의 가혹행위를 가했다.

    이러한 진술거부권 침해는 수사팀이 객관적 증거를 수집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문 폭행 협박 등의 가혹행위를 통해 진술서를 받아낸 뒤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해온 수사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의자신문조서 확인서 등에는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으나, 이번 사건의 담당 수사관들은 실제로는 피의자들에게 이런 권리를 고지하지 않고 조서 말미 확인서에 피의자의 서명을 받는 식으로 사후에 형식적으로 이를 보완해 진술거부권을 침해한 사실을 감췄던 것으로 판단된다.

    [수사중 가혹행위]

    헌법 제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7항은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해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며 가혹행위에 의한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의 경우

    장○○의 주장에 따르면, ▲2002년 10월23일 서울지검 특조실 1101호에 인치된 후 수사관 이○○가 살인사건에 대해 10여 분에 걸쳐 질문한 후 수갑을 뒤로 채운 채 배와 대퇴부를 발로 차고 그후 두 명이 머리와 등, 허리를 구둣발로 찼다. ▲수사관 홍○○가 범행사실을 자백하라며 엉덩이를 발로 차 쓰러뜨린 후 다리를 밟고 손으로 목, 머리 등을 때린 후 양다리를 들어 얼굴 있는 쪽으로 꺾고 그 위에 올라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또한 누운 상태에서 목 양팔 양다리를 올리라고 한 후 허벅지에 올라타서 수갑 찬 손등과 성기를 주먹으로 때렸다. ▲검사실에서 수사관 채○○와 밥을 먹고 있는데 홍○○와 이○○가 들어와 ‘거짓말을 했다’며 발로 가슴과 따귀를 때리고 수갑을 뒤로 채웠다. ▲홍○○가 검사 앞 컴퓨터로 끌고 가 정○○ 사진을 보여주며 맞냐고 물어 맞다고 대답하자 이○○와 홍○○가 박스용 테이프로 눈을 가린 후에 폭행해 기절했다.

    불 끄고나서 원산폭격

    2002년 11월2일 정형외과 전문의 김○○의 신체검증 결과 장○○은 타박상으로 1주일간 치료가 요구되는 상해를 입었다.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작성된 장○○의 현인서에는 허리와 허벅지 부분에 멍 자국, 이마에 핏자국이 표시돼 있으며 ‘서울지검 특수부 수사관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후 좌측 허벅지가 결리고 왼쪽 허리의 통증, 좌측 뒤통수의 출혈로 인해 어지럼 증상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수사관 최○○은 “장○○을 체포해 특조실에서 조사중에 무릎을 꿇게 하고 발로 차고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눕게 한 다음 발을 들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데 이○○ 주임이 주도했고 채○○ 주임이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채○○의 진술에 따르면 “이○○가 양손으로 (장○○의) 뺨을 몇 대 때리고 무릎을 꿇리고 뒤로 눕게 해 다리를 들어 목으로 버티게 한 뒤 엉덩이에 올라타 몇 번 구르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또 채○○는 그때 주먹으로 머리를 몇 대 쥐어박았으며 이○○는 장○○의 양다리를 목 쪽으로 꺾어 양다리가 목에 맞닿을 정도가 되자 양다리 위에 올라타서 굴렀다.

    #권○○의 경우

    권○○의 진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2년 10월24일 긴급체포돼 서울지검으로 가는 차 안에서 수사관 홍○○, 이○○가 “이○○를 죽였냐”고 물어 “안 죽였다”고 하자 30여 분 동안 폭행했다. 이후 “권○○, 정○○을 아냐”고 물어 모른다고 하자 계속 폭행했다. ▲서울지검 특조실 1101호에 들어서자마자 이○○는 불을 끈 후 원산폭격을 시켰다. 이를 거부하자 뒤에서 발로 밟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이후 살인사건에 대해 자술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하자 (성명 미상의 수사관이) 그때까지 앞으로 채워져 있던 수갑을 뒤로 돌려 바닥에 눕힌 후 양다리를 천장을 향해 들게 하고, 이○○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위에서 누르고 다른 사람이 성기와 낭심을 20여 회 때리다가 낭심을 꽉 움켜쥐어 잠시 기절했다. ▲의식을 회복한 후 누워서 아내와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데 한 사람이 일으켜 주어 벽에 기대앉았다.

    ▲이후 홍경령 검사가 장○○을 데려와 대질신문을 시켰다. 장○○이 “솔직하게 얘기해” 하기에 “야, 새끼야, 뭘 얘기해”라고 악을 썼다. 그러자 이○○, 채○○가 얼굴을 때리다가 눕힌 후 발목과 엉덩이를 걷어차고, 몸 위에 올라가 이○○는 수건을 입안에 넣어 누르고, 홍○○는 성기를 때리고 고환을 움켜쥐어 기절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김○○의 진단서에 따르면 권○○은 타박상, 찰과상, 요추부 염좌로 2주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해를 입었다.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작성된 권○○의 현인서에는 ‘서울지검 조사실 형사에게 자백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꾸로 엎어놓고 허벅지, 가슴, 얼굴 등을 발로 밟고 성기를 주먹으로 때리고 고환을 꽉 잡아 기절도 시키는 등 고문을 당해 현재 왼쪽 갈비뼈가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촬영된 권○○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몸에 다수의 멍 자국이 발견된다.

    권○○과 서초경찰서 유치 및 서울구치소 입감을 함께한 문○○의 진술에 따르면 권○○이 “고문을 당해 갈비뼈와 무릎이 많이 아프다”고 했으며 구치소 입감 신체검사시 “숨을 못 쉬게 아프니 병원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수사관 최○○은 이렇게 진술했다.

    “10월25일 밤에 서울지검 1101호실에서 권○○에 대해 이○○ 주임, 채○○ 주임과 함께 권○○의 반항을 저지하며 무릎을 꿇게 하고 손을 꺾고 목을 잡았으나 무릎을 꿇은 채 바닥으로 구르기에 무릎으로 허리 부분을 짓누르고 손목을 잡아 꺾었고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이○○가 원산폭격을 시키고 뺨을 때릴 때 가세해 욕을 하고 엉덩이와 발목 부분을 걷어찬 사실이 있다.”

    #정○○의 경우

    정○○의 주장에 따르면 2002년 10월24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서울지검 1103호실에서 이○○ 살인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당하는 한편 협박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의 진술은 이렇다.

    ▲팬티와 양말을 제외하고는 옷을 모두 벗겨 수갑을 앞으로 채운 상태로 똑바로 눕게 한 뒤 발과 목을 들도록 해 발이 아래로 내려올 때마다 발뒤꿈치와 주먹으로 어깨와 허벅지, 날갯죽지 등을 때렸다. ▲옷을 벗기고 가혹행위를 하면 상처가 난다는 이유로 다시 옷을 입힌 후 눕힌 상태로 수사관 홍○○가 발로 목을 세게 눌러 기절했으며 뒤로 수갑이 채워진 손을 허리로 내리도록 해 발로 아랫배를 꽉 눌렀다.

    ▲살인혐의를 부인하자 수갑이 뒤로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 홍○○가 머리를 땅에 박게 한 후 한쪽 발을 들게 했다. 홍○○는 “네가 잡혀온 사실은 아무도 모르니 죽어나가도 모를 거다. 각오해라”고 협박했다. 계속 부인하자 무릎을 꿇도록 하고 수갑을 앞으로 채운 뒤 갈색 테이프로 눈을 가린 후 자백을 강요했다.

    ▲그래도 계속 부인하자 테이프로 코 부분까지 감은 후 “장○○이 임신 4개월인 너의 처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자백했다”며 “네 부인도 잡아와 네가 보는 앞에서 조사하겠다”고 협박했다. 고통에 못 이겨 그중 한 사람의 발을 잡고 “살려달라”고 울면서 빌었다. 임신중인 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해 허위자백을 했다. 그후 자술서를 쓰기 위해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 얼굴에 감은 테이프를 풀어줬다.

    “임신중인 부인도 잡아와 조사하겠다”

    정형외과 전문의 김○○의 진단서에 따르면 정○○은 다발성 타박상 및 찰과상으로 전치2주의 상해를 입었다.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작성된 현인서에는 허벅지와 어깨 등에 멍 자국이 표시돼 있으며 ‘서울지검 검사실에서 검찰 직원이 자백을 받으려고 테이프로 얼굴을 둘둘 감고 나서 손과 발로 무차별로 때려 온몸이 결리고 아프고 머리에는 혹과 진물이 나온다’고 기록돼 있다.

    홍경령 전 검사의 진술에 따르면 정○○에게 “네 와이프는 구속하지 않고 봐줄 테니 빨리 자백하라”고 했다 한다. 수사관 홍○○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시키고 깍지끼고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무릎을 꿇게 해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발로 대퇴사두근(넓적다리 앞면) 부분을 밟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자백하기 전에 겁을 주기 위해 눈 부분에 잠시 테이프를 붙인 것이냐”는 이 사건 조사 검사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다.

    수사관 채○○는 정○○의 옷을 벗긴 이유에 대해 “문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며 “무릎을 꿇게 하고 엉덩이를 찬 것은 맞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검사가 “정○○의 허벅지, 정강이, 가슴, 어깨 등에 좌상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는 피의자 등이 때려서 난 상처로 볼 수 있는가”라고 묻자 “예”라고 답변하며 “정○○을 때리는 과정에 엉덩이만 구타한 것이 아니라 정강이를 걷어찬 적도 있고 주먹으로 가슴과 어깨를 때린 적도 있다”고 폭행사실을 시인했다.

    #최○○의 경우

    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0월25일 오후 3시경 서울지검 1101호에서 채○○가 베개 위에 원산폭격을 시킨 후 “두 명 죽인 것에 대해 얘기하라”며 30여 분 동안 폭행했다. 머리를 움켜쥐고 끌고 다녀서 얼굴에 상처가 생겼으며 땅바닥에 엎드리게 해 구두 뒤축으로 대퇴부 등을 짓이겼다. ▲수갑을 뒤로 차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이○○가 허리를 꺾어 다리를 들어올리게 하고 성기를 잡아당겼다. ▲오후 5시경 홍경령 검사가 “잘 안다고 빨리 진술하라”는 등의 얘기를 하며 10여 분간 있었다. 오후 7시경 홍검사가 다시 와 20여 분 동안 구두신문을 했다. 이때 얼굴에 상처가 있었고 팔 부분이 찢어졌으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위와 같은 가혹행위를 당한 지 세 시간 만에 자백하겠다고 해서 진술하던 중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는 이유로 30여 분간 폭행을 당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진단서에 따르면 최○○는 염좌 및 좌상으로 3주간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었다. 수사관 채○○는 “최○○에게 머리를 바닥에 박게 하는 원산폭격 자세를 시킨 후 대퇴부, 장딴지를 찍어 짓밟고 발과 주먹으로 등과 허리, 어깨를 걷어차고 때린 게 사실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예”라고 시인했다. 수사관 최○○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최○○에게 욕설을 하며 원산폭격을 시킨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수사관 구○○은 “최○○가 1101호실 바닥에 앞으로 수갑을 차고 앉아 있었는데, 구두 같은 것으로 차였는지 구두약 등이 옷에 묻어 있었고 상당히 위축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 직감적으로 맞았다고 느꼈다”고 진술했다.

    #박○○의 경우

    박○○은 “2002년 10월25일 밤 9시경 서울지검 특조실 오른쪽 끝방에 들어가자마자 홍○○가 원산폭격을 하라고 해 수갑을 앞으로 찬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고 진술했다.

    “코로 물 좀 먹어야지”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죽은) 박○○과 이○○를 아느냐”고 물어 모른다고 하면 허벅지와 등을 발로 밟고 때렸다. ▲약 1시간 동안 구타하면서 중간에 수갑을 풀어주면서 팬티만 남겨놓고 옷을 벗으라고 한 후 흰색 러닝 셔츠로 눈을 가린 후 수갑을 뒤로 채웠다. ▲이후 천장을 보고 누우라고 한 후 배에 올라 앉아서 빙글빙글 돌거나 배와 가슴을 발로 밟았다. 그 때문에 수갑 찬 손목에 상처가 많이 생겼다.

    ▲중간에 (성명 미상) 수사관이 들어와 수갑을 뒤로 채운 상태에서 눕게 한 후 배와 가슴을 밟고 성기 윗부분을 발로 찼다. 잠시 후 채○○가 들어와 엎드리게 한 후 허벅지와 다리를 들어올려 꺾었으며 슬리퍼 신은 발로 목을 반복해 밟아 기절했다. ▲홍○○가 들어와 “코로 물 좀 먹어야지” 하면서 하얀 수건을 갖고 와 얼굴 윗부분을 묶은 후 화장실로 상반신만 끌고 들어가 채○○가 배에 올라타고 홍○○가 바가지에 물을 떠와서 수건 위로 부었다. 머리를 흔들면 채○○가 목을 잡고, 바가지에 물이 없으면 다시 받아 붓기를 반복해 두 차례 기절했다. ▲소리를 지르자 화장실 밖으로 끌고 나와 다시 폭행했다. 검찰 직원 박○○이 수건을 눈 부위에 감아 수차례 가격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진단서에 따르면 박○○은 타박상 및 다발성 찰과상으로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현인서에는 ‘서울지검 특조실에서 강력계 수사관으로부터 수사 도중 눈 머리 어깨 무릎 허벅지 손목 등에 상처를 입었고 걷기가 힘들고 현재는 타박상의 통증이 많이 줄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방배경찰서 유치장 간수업무)은 2002년 10월26일 오전 9시 박○○의 방배경찰서 유치장 입감 당시 신체검사를 담당했다. 그는 “입감 전 박○○의 몸은 어떤 상태였나”라는 검사의 질문에 “당시 박○○은 고통을 호소하는 표정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박○○에게 가까이 갔더니 지린내가 나고 상의와 하의 전면이 축축해 ‘옷을 입은 상태에서 방뇨한 것이냐’고 묻자 박○○은 ‘조사 받다가 굴림을 당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눈 가리면 공포감 클 것 같아”

    이에 대한 수사관 홍○○의 진술.

    “박○○으로 하여금 양손으로 깍지를 낀 상태에서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요령을 피우려고 하면 발로 다리와 허벅지 등 여러 곳을 걷어찼다. 또 박○○의 배를 수회 걷어찼고 눈을 가린 상태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맨발로 대퇴사두근을 몇 번 밟은 적이 있고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폭행한 사실이 있다.”

    “박○○의 눈을 수건으로 묶어 가린 후 화장실로 들어가 상체를 화장실 안으로 하체를 화장실 밖으로 해 똑바로 눕혔다. 이때 박○○은 손을 뒤로 하고 수갑을 찬 상태였다. 그리고 나서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수건을 내리면서 오른손으로 물을 박○○의 얼굴에 부었다. 박○○이 몸을 일으키기에 채○○를 불러 박○○의 몸을 잡으라고 했다. 채○○는 얼떨결에 박○○의 상체에 올라타 수건을 펴서 얼굴에 잡아 붙이는 역할을 했다. 그후 내가 박○○의 코와 입에 2∼3회 물을 부으면서 ‘조○○, 최○○와 함께 이○○를 죽이지 않았냐’고 물었다.”

    #조○○(사망자)의 경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조씨의 사인은 ‘광범위한 자상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다.

    먼저 수사관 홍○○의 진술.

    “10월25일 밤 9시경 조○○이 난동을 부려서 조○○이 넘어져 있는 상태에서 왼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오른발로 조○○의 오른쪽 어깨 알통 부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조○○의 왼쪽 알통 부분을 눌러 제지가 됐다. 이는 조○○의 자해를 방지하자는 측면도 있었지만 기를 죽이고 수사관의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 상태에서 원산폭격을 하는 형식으로 만들기 위해 발로 엉덩이 부분을 툭툭 치면서 엉덩이를 들도록 했으나 조○○은 그렇게 하지 못해 무릎을 꿇게 한 상태에서 발로 여러 번 밟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조○○을 발로 밟으면서 수건으로 눈을 가렸던 적이 있으며 약 20분 정도 있다가 풀어주었다. 눈을 가리면 공포감이 더 클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수사관 최○○은 “조○○을 무릎 꿇리게 하고 발로 엉덩이를 차고 수갑을 채운 채로 엎드려 뻗쳐를 시킨 사실이 있는데 상당히 기운이 빠졌는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수사관 채○○의 진술.

    “갑자기 쿵 하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1146호 조사실로 들어가 보니 홍○○가 조○○의 뒤쪽에서 팔로 조○○의 팔과 목을 붙잡고 무릎으로 그의 허벅지 뒤 부위를 치고 있었다. 조○○이 자꾸 머리를 벽 쪽으로 치려고 해 홍○○이 양손으로 조○○의 어깨를 잡고 오른발로 그의 오른쪽 다리를 바깥쪽으로 걸어 바닥에 넘어뜨려 머리를 꽉 짓눌렀다. 나는 오른쪽 무릎으로 조○○의 양쪽 허벅지를 대여섯 번 힘껏 짓이겨 다리의 힘을 뺐다.”

    “10월26일 새벽 2시30분경 조○○의 낭심 부위를 밑에서 위쪽으로 1회 걷어찼다. 조○○이 꿇어앉는 형태로 주저앉기에 양쪽 허벅지를 5, 6회 정도 밟았다.”

    조○○의 사체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의 진술에 따르면 외상 이마와 좌 옆머리(관자놀이, 귀밑 부위)에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좌상 혹은 타박상이 보였다. 또 양쪽 팔꿈치와 무릎에서 까진 상처가 보였고 양쪽 허벅지, 종아리, 팔 여러 군데에서 좌상 혹은 타박상이 보였다. 손목 부위에서도 까진 상처가 보였고 손등에서는 여러 개의 작은 멍이 보였다.

    왼쪽 다리에는 엉덩이부터 종아리에 걸쳐, 오른쪽 다리에서는 엉덩이부터 무릎 오금에 걸쳐 광범위한 피하출혈 및 근육 간 출혈이 발견됐다. 또한 사타구니부터 무릎 위쪽에 걸쳐 역시 광범위한 피하출혈 및 근육 간 출혈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손목 및 무릎의 상처 부위에서도 피하출혈이 발견됐다.

    침대 아래에서 발견된 경찰봉

    인권위는 조사보고서에서 “조직폭력배의 경우 일단 인치한 후 먼저 무술수사요원들이 신문한 후 자술서를 받는 게 수사관행이었다는 점에서 수사관들의 조사시 가혹행위를 묵인하고 조장한 지휘검사 홍경령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수사관 채○○는 “박○○, 이○○의 살인사건이 3∼4년 전에 일어난 것이라 주변인물 조사가 어렵고 뚜렷한 물증이 없어 용의자들의 진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수사팀은 살인 혐의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이유로 피의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이다.

    피해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당했던 가혹행위 유형으로는 잠 안 재우기, 누워서 머리와 다리를 든 상태로 폭행하기, 테이프로 얼굴을 감고 협박하고 폭행하기, 뒷짐을 지고 머리를 땅에 박는 이른바 원산폭격, 누워서 양다리를 얼굴 쪽으로 꺾은 뒤 엉덩이 위로 올라타 폭행하기, 낭심 폭행, 눈 찌르기 등이 있다. 특히 박○○은 물고문까지 당했다.

    2002년 11월8일 인권위의 서울지검 실지조사시 사망한 조○○이 조사를 받았던 1146호의 침대 아래에서 경찰봉이 발견됐다. 검찰은 이것이 조○○ 구타에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나 그것이 침대 아래 있었던 이유와 그 용도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은 또 조사실에 인치된 후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할 때까지 장기간 밤샘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은 3일간, 권○○은 17시간, 정○○은 20시간, 박○○과 조○○은 약 11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즉 최소한의 휴식과 수면도 없이 계속 가혹행위를 당하며 신문을 받은 것이다.

    인권위는 조사보고서 말미에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의 원인에 대해 “진실 발견을 위해서는 적법절차가 무시돼도 좋다는 잘못된 수사관행과 사실관계만 밝혀진다면 가혹행위는 용인될 수 있다는 안이한 인권의식이 피의자들에 대한 물고문, 가혹행위 및 사망을 초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만약 수사관들이 수사과정에 적법한 체포 등 절차를 준수했다면 피의자 사망 및 고문사건은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검찰이 폭행과 가혹행위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한 것을 비판했다.

    “불법체포, 감금 등 적법절차 위반 행위는 형법상 가혹행위보다 그 형량이 더 중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며 폭행과 가혹행위는 체포·연행·조사과정에서의 적법절차 위반에 수반된 결과다. 이에 대한 고발은 체포·감금 과정에서의 적법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향후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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